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09화 (108/472)

109화. 언론 플레이

“최 쌤, 나 방금 대박 소식 듣고 왔다.”

응급실에 들어선 이찬희는 스테이션에서 간호사와 대화하고 있는 최모나에게 다가갔다.

“야, 사람이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을까 싶다.”

“이 쌤, 혹시 도한연 소식이에요?”

현재 우리병원에서 가장 핫한 주제는 도한연의 처벌 수위였다.

“맞아요. 다들 놀라지 말고 들어요.”

“뜸들이지 말고 얼른 말해.”

“방금 수 쌤이랑 김 순경님이랑 하는 대화 들었는데 그 여자가 변호사 불러 달라고 했다네.”

“예? 웬일이야. 정말이에요?”

“그러면서 증거 있냐고 자기가 학대한 증거 있냐고 발뺌하고 난리도 아니랍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예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범인으로 잡아넣을 수 있으니까요. 사실 도한연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 놀랍지는 않은데 증거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으니 참 씁쓸한 거죠.”

“아니, 피해자가 이렇게 확실한데 증거 타령이라니 어이가 없네요. 안 그래요 최 쌤?”

“이런 미친x 같은 때려죽일 x. 아주 벼락을 처맞아야 해.”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최모나는 광분하며 거하게 욕을 던졌다.

* * *

“…….”

긴 속눈썹이 잠에서 깨어난 듯 연신 깜빡거렸다.

“선생……님.”

회복실에서 눈을 뜬 세영은 마취에서 깨자마자 눈앞의 태경을 불렀다.

“세영아 괜찮아?”

태경은 수술실에서 나온 후 진료실에 들렀다 곧장 회복실로 왔다.

“네. 수술 다 끝났어요?”

“응. 세영이 배 아프게 했던 거 선생님이 잘 떼어 냈어.”

“감사합니다.”

“지금 마취가 풀리는 중이라 좀 아플 수도 있어. 아프거나 힘들면 참지 말고 바로바로 이야기해야 해.”

“네. 지금은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픈 것도 아니에요.”

고통과 통증에 익숙한 세영이가 덤덤하게 말을 할 때마다 태경은 어른으로서 괜히 더 미안했다.

“세영아. 우리 병실로 이동할까?”

“네.”

태경은 세영이와 함께 병실로 향했다.

“우와! 선생님 이게 뭐예요?”

병실로 돌아온 세영이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태경은 그동안 고생한 세영이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귀여운 인형과 크고 작은 스티커로 병실을 화사하게 꾸며놓은 것이다.

세영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밝고 좋은 것들만 보고 편한 마음으로 지냈으면 싶었다. 그래서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 최 팀장에게 부탁을 했었다.

“마음에 들어?”

“네, 너무 예뻐요. 예전에 엄마가 읽어 준 동화책이 있는데 꼭 거기 나오는 공주님 방 같아요.”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이다.”

“진짜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세영아. 혹시 필요한 거나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지 선생님한테 말해. 알았지?”

“뭐든지 다요?”

“뭐든 다.”

“사실 하나가 있긴 해요.”

“그래 뭔데? 말만 해. 선생님이 다 들어줄게.”

처음으로 세영이가 원하는 걸 이야기하자 태경은 크게 반응했다.

“필요한 거나 갖고 싶은 건 아닌데요. 소원이 하나 있어요.”

“소원? 무슨 소원인데.”

“저를 아프게 한 그 나쁜 여자가 벌을 꼭 받았으면 좋겠어요.”

세영이가 말하는 나쁜 여자는 도한연을 지칭하는 거였다.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소원이라고 말한 것이 도한연의 처벌이었다.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아이한테는 그만큼 이 문제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게 세영이 소원이야?”

“……네.”

“그래, 그 소원 꼭 이뤄질 거야. 선생님이 약속할게.”

똑똑-

“선생님 저, 세영이랑 잠시 얘기할 수 있을까요?”

“들어오세요. 세영아, 선생님 또 올게.”

“네, 선생님.”

김 순경이 들어오자 태경은 자리를 피해 줬다.

* * *

“세영이가 정말 그렇게 말을 했어요?”

병실을 나온 태경은 의진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여자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인데 소원이라고 했을까 싶네요.”

“그러니까. 그 얘기 듣는데 마음이 또 안 좋더라고.”

“근데 도한연이 증거니 변호사니 운운하면서 뻔뻔하게 굴고 있나 봐요.”

“나도 들었어. 정말 사람이길 포기한 여자야.”

“제가 잘 아는 변호사 분이 있는데 부탁해 볼까요?”

의진은 아까부터 친언니에게 진지하게 부탁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한데 제대로 벌을 받게 하려면 뭔가 더 큰 게 필요할 거 같아.”

“큰 거요?”

“어. 사실 변호사는 정말 큰 중범죄를 진 사람도 돈이 있으면 누구나 선임을 할 수 있는 거잖아.”

“그건 맞죠.”

“도한연은 그동안 너튜브로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었을 거야. 그 돈으로 소위 잘나가는 변호사를 선임한다면 분명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할 거고. 아마 하다 하다 안 되면 형량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라도 쓰겠지.”

태경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법이란 게 항상 약자의 편에 서서 약자만을 보호하는 건 아니었다.

가끔 말도 안 되게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도 비싼 변호사와 함께 심신미약과 정신질환을 앞세워서 무죄를 선고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돈도 많고 머리도 영악한 도한연이라면 아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근데, 설마 저런 악질 중의 악질 변호를 맡으려고 하는 변호사가 과연 있을까요?”

“있을 수도 있지. 사람 죽이고도 무죄 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생각보다 돈 되면 뭐든 하는 사람들은 꽤 많아.”

“하긴 뉴스에 나오는 사건만 봐도 그렇죠. 그럼 어떡해요? 도한연은 변호사 선임한다고 설치고 있는데.”

“이럴 땐 기름에 불을 질러야 해.”

“기름에 불? 그게 뭔데요?”

“언론을 이용해야지.”

“설마 언론에 알리려고요?”

“그래 볼까 해.”

* * *

“안녕하세요. 어디 진료 보러 오셨어요?”

“저는 진료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원장님을 뵈러 왔는데요.”

“원장님이요? 누구신데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태경을 보러 왔다는 중년 남자의 말에 접수처 직원은 경계하듯 물었다.

“SBC 보도국에서 인터뷰 때문에 나왔습니다.”

“SBC면 방송국! 어머, 웬일이야. 이보세요. 우리 원장님은 그런 거 안 해요.”

방송국에서 나왔다는 말에 직원들은 단호하게 대처했다.

“영이 씨, 빨리 보안요원 불러. 무슨 인터뷰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장 요원님, 여기 잡상인 출입했어요.”

“뭐, 잡상인?”

정문을 지키고 있던 장득칠은 그 소리를 듣고 인상을 팍 쓰며 다가왔다.

“어이, 이보슈. 인터뷰니 그딴 거 안 하니까 좋은 말로 할 때 곱게 나가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 선생님 뭔가 착각을 하신 것 같은데요.”

“착각은 무슨 착각입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나…….”

장득칠이 중년 남자를 끌고 나가던 찰나 계단에서 내려오던 태경이 그 모습을 봤다.

“괜찮아요. 제 손님이에요.”

모두의 궁금한 표정을 뒤로한 채 중년 남자는 태경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 * *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SBC 보도국 팀장 구고찬이라고 합니다.”

“김태경입니다.”

“당연히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하고 연락을 드린 건데 이렇게 인터뷰에 응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태경이 방송국 사람을 만나게 된 전말은 이랬다.

구고찬은 방송국에서 세리세라의 다큐를 진행했던 박 피디가 병원에서 촬영한 도한연의 모습을 직접 봤다. 그리고 망설일 것도 없이 그 영상을 오늘 9시 뉴스 메인에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아, 이 의사 선생 인터뷰가 들어가야 더 극적일 거 같은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문가이자 세영의 주치의인 태경의 인터뷰가 있어야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 것 같았다.

결국 시도라도 해 보자는 생각으로 방송국 인맥을 총동원해서 알아낸 휴대폰 번호로 연락을 했고, 태경의 허락을 받아 냈다. 그래서 구고찬은 직접 인터뷰를 하기 위해 급하게 병원으로 온 것이다.

“궁금해서 드리는 질문인데 왜 인터뷰에 응하셨나요? 후배 피디 말로는 예전에 신화대병원에 계셨을 때도 촬영을 거절했다고 들었거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영이에게 인터뷰가 도움이 될 것 같아 수락했습니다.”

도한연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전 국민의 관심을 사는 일이었다.

뭐든 크게 이슈화되어 이목이 쏠리면 사건 해결이 그만큼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만큼 빠른 게 없다고 생각한 찰나, 때마침 연락 온 구고찬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아까 전화로 간단하게 말씀드리긴 했지만, 병원에서 찍힌 도한연의 영상도 나갈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직원들이 나오지 않게 도한연 위주로 나가는 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영상이 공개돼야 사람들이 도한연의 실체를 알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이게 진짜 극비 사항이긴 한데 저희가 박 피디에게 병원 영상을 받은 뒤에 증거 영상도 입수했습니다.”

“증거 영상이요?”

“네, 옆집에 사는 젊은 남자가 새벽에 여자 친구랑 통화하다 2층 창문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렸답니다.”

구고찬은 태경에게 증거 영상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줬다.

밖으로 폰을 주우러 나간 남자는 우연히 옆집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찜찜한 기분에 그냥 넘어갈 수 없던 남자는 결국 담을 넘어 도한연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미세하게 열린 지하실 창문 틈으로 보이는 끔찍한 장면을 핸드폰에 담은 것이다.

그 뒤 고민하던 남자는 방송국에 제보 영상을 보냈고 뒤이어 집에 찾아온 경찰에게도 영상을 넘겼다.

“처음에는 다른 시사고발 팀에 제보가 들어온 건데 그 피디가 뉴스로 먼저 내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보도국에 들어오게 된 겁니다.”

“그거 정말 잘됐네요.”

그렇게 증거 영상을 운운하던 도한연도 이제 정말 끝이구나 싶었다.

아마도 오늘 밤 이 영상이 공개되면 도한연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의 적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저희 팀도 이 정도면 세영이를 하늘에서 돕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인터뷰는 제가 드리는 질문에 편하게 답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 * *

“이거!”

탁-

“이거!”

탁- 탁- 탁-

“그리고 이거랑 이것도.”

도한연을 조사하고 있는 김 경사는 조사하고 돌아온 후배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책상 위에 하나씩 나열했다.

“도한연 씨 이거 다 뭔지 알지?”

기다란 50cm 자부터 뾰족한 철사와 가죽 끈 등 모두가 도한연이 아이를 학대하며 사용한 물건들이었다.

“도대체 이런 건 왜 한 거래. 참나!”

그리고 방에서 발견한 가장 황당한 물품이 있었으니 바로 부적이었다.

도한연이 사용하는 방 한쪽에는 여러 장의 부적이 웃고 있는 세영이의 사진에 떡하니 붙여져 있었다.

“당신 집에서 가져온 증거품들이야. 이래도 계속 발뺌할 거야?”

“그래요. 이거 다 내 물건 맞아요. 근데 이게 왜! 내가 이걸로 누굴 때렸어요? 그냥 내 물건일 뿐인데 뭘 발뺌을 했다는 거야. 그리고 빨리 변호사한테 연락이나 해 줘요. 내가 아까 번호 알려 줬잖아요.”

“시끄럽고 이 부적은 왜 사진에 붙여 둔 건지나 말해요?”

“아니, 엄마가 아이 잘되라고 일부러 부적 사서 붙이는 것도 안 돼요?”

“그러니까 당신 말은 세라 잘되라고 부적을 사서 사진에 붙였다?”

“그래요.”

“그래? 그럼 이건 어떨까? 당신 증거 운운했지? 어딜 이걸 보고도 발뺌할 수 있을지 한 번 보자고.”

“경사님, 경사님?”

김 경사가 핸드폰에 저장된 영상을 클릭하려는 그때 후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지금 조사 중이잖아.”

“빨리 티비 좀 보세요.”

“티비?”

후배는 경찰서 벽에 걸려 있는 꺼진 티비의 전원을 켰다.

“우리가 입수한 증거 영상이 뉴스에 나온다고 예고했대요.”

“뉴스! 방송국 놈들이 벌써 냄새 맡은 거야?”

“일단 보세요.”

-다음 소식은 조금 충격적인 소식을 전할까 합니다.

후배가 티비를 틀자마자 심각하다 못해 참담한 표정의 앵커가 세영이의 소식을 막 다루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천사 엄마라고 알려진 어느 유명 너튜버의 엄마가 사실은 아동학대범이라면 여러분들은 믿으시겠습니까?

도한연은 자신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자 뻔뻔한 얼굴을 비티를 향해 천천히 돌렸다.

-혹시 너튜브 ‘세리세라’라는 채널을 알고 계시나요?

지금 전 국민을 광분하게 만들 믿을 수 없는 뉴스가 전국적으로 티비와 너튜브를 통해 방송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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