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11화 (110/472)

111화. 도한연의 이유

경찰서-

김 경사와 경찰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경찰서 내부로 들어왔던 사람들을 간신히 내보냈다.

그 뒤 김 경사는 두 시간이 넘는 조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도한연 씨?”

“네…….”

도한연의 머리는 계란과 침으로 범벅이 됐고 돌에 맞은 뺨과 관자놀이는 작은 찰과상이 생겼다.

경찰이 닦으라고 준 수건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저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묻는 말에만 짧게 답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진술한 모든 것들 다 인정하는 거죠?”

“인정……합니다.”

“참나, 당신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면서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했어요.”

“…….”

“할 말 있습니까?”

“제, 딸…….”

더 이상 혐의를 부정하진 않은 도한연이 조사 말미에 꺼낸 말은 세영이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친딸에 대한 말이었다.

“우리 세리는요?”

“아까 말했다시피 아동보호 센터에서 잘 있습니다.”

“저기 얼굴 한 번만 보여 주시면 안 될까요? 밥은 잘 먹는지 걱정 돼서…….”

“이봐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본인 자식 밥 먹는 게 그렇게 걱정되는 사람이 세영이는 영양실조를 만들어요? 네?”

“…….”

“하다하다 당신 같은 사람은 내 경찰 생활하면서 처음 봅니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아이한테 반성부터 하세요. 반성!”

철컥!

“야! 여기 도한연 유치장으로 데려가!”

“네.”

“휴! 아으. 피곤하다.”

“선배님?”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해 자판기로 향하는 김 경사를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돌아온 후배 경찰이 불렀다.

“어! 너 출동 나갔다 왔어?”

“네. 부부 싸움 신고가 들어와서 화해시켜 드리고 왔습니다. 선배님, 여기 커피요.”

“안 그래도 자판기 커피 한 잔 하려고 했는데 땡큐다. 밖에 사람들 다 갔나?”

“누구요? 시위하던 사람들이요?”

“어. 조용하네.”

“가긴요. 아직 밖에 있어요.”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해?”

“배가 따뜻해야 더 힘내서 시위하신다고 한쪽에 모여서 배달 음식으로 식사들 하고 계세요.”

“와! 대단하시다.”

“그나저나 도한연은 어떻게 됐어요? 혐의 다 인정했어요?”

“인정 안 하면? 막말로 지금 대한민국 공공의 적이다 못해 국민 쌍x이 됐는데 당연히 인정해야지.”

“그건 맞죠. 안 그래도 저 출동 나갔는데 편의점이고 어디고 사람들 다들 그 얘기뿐이더라고요.”

후배 경찰의 말이 맞았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도한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튼 나, 병원 갔다 올 테니까 나 찾는 전화 오면 그렇게 말하고 이따 보자.”

“선배님, 부적은요? 그 부적 왜 그런 거래요?”

후배 경찰은 도한연이 세영이 사진에 붙여 뒀던 부적에 대해 물었지만 김 경사는 답을 주지 않았다.

* * *

“저기, 간호사 선생님?”

얼마 전 갑상선암 수술을 했던 이고철의 아내 푸엉이 병동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네, 보호자분. 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그게 아니라. 질문이 있다.”

“네, 말씀하세요.”

“아가 있잖아요?”

여기서 말한 아가는 세영이를 뜻하는 거였다.

지금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 중에 세영이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같은 3층 병동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돌아가면서 나와 세영이를 걱정하며 아이 상태에 대해 물었다.

“아가 괜찮아요? 수술했다고 하던데 잘됐나요?”

아이를 임신 중인 푸엉은 세영이의 소식을 듣고 그 마음이 더 찢어지게 아파서 한참을 울었다.

“네, 잘됐어요.”

“그래요? 정말 다행이다.”

“여보!”

또다시 눈물을 글썽이는 푸엉을 병실에서 나온 이고철이 불렀다.

“화장실 갔다 온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안 들어오나 했더니 여기서 뭐해.”

“남편아 아가 수술 잘됐대.”

“그래? 그거 정말 다행이네. 우리 선생님이 수술하셨는데 당연히 잘됐겠지.”

“맞다. 진짜 김태경 선생님이 최고다.”

“자! 이제 그만 병실로 들어가자. 응?”

“알았어. 들어가자.”

“그럼 수고들 하세요.”

“네.”

이고철과 푸엉 부부가 들어간 후에도 각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계속해서 세영이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는 괜찮은 거죠?”

“네, 괜찮아요.”

철컥-

때마침 세영이 자는 걸 확인하고 병실에서 나온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를 본 몇몇 환자들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선생님 아까 인터뷰하시는 거 봤어요. 세상에 선생님이 정말 큰일 하신 거예요.”

“그럼요. 복 받으실 거예요.”

“별말씀을요. 다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자들의 인사를 받은 태경은 계단으로 향하며 임정숙 간호사와 대화를 나눴다.

“수술 후 소변도 잘 나오고 잠도 잘 자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전 사실 아까 세영이 잠들기 전에 했던 말이 찡해서 혼났어요.”

‘이제 침대에서 편하게 이불 덮고 잘 수 있어서 좋아요.’

그동안 지하실 바닥에서 자는 게 전부였던 세영이는 병원 침대에서 자는 것조차 행복해하며 좋아했다.

“참, 선생님도 인형 꼭 끌어안고 자는 거 보셨죠?”

“지렁이 인형이요?”

“네, 최 쌤이 준 건데 화장실 갈 때도 꼭 갖고 가고 세영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최 선생이 좋은 일 했네요.”

“참, 아까 팀장님이 그러는데 방송국에서 취재 좀 하면 안 되냐고 전화가 계속 오고 있나 봐요.”

정보 검색에 능한 한국 사람들의 결속력으로 찾아낸 병원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면서 취재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 대놓고 찾아올까 봐 걱정돼요. 아까는 몇 명이 환자인 척하고 찾아왔다가 장득칠 씨가 쫓아냈다고 하더라고요.”

“업무가 힘들 정도로 찾아오면 제가 조취를 취할 테니까 너무 염려 마세요. 저, 진료실에서 가 볼게요. 세영이 중간 중간 확인해 주시고 가스 나오는지도 잘 봐 주세요.”

“네, 걱정 마세요.”

태경은 진료실로 향하면서 ‘의문의 냄새’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도 나네.’

세영이에게서 나는 그 사탕 같고 따뜻한 냄새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 냄새가 다른 사람들도 맡을 수 있는 건가 싶어 물어봤지만 아니었다.

지금까지 추측한 건 다섯 번째 바이탈은 절대 아니라는 것과, 어른과 다른 아이 환자에게서는 저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 다른 건…….’

나름 심각하게 생각을 해 본 결과 세영이가 다른 환자들과 다른 건 하나뿐이었다.

힘들고 고통스럽게 아동학대를 당했다는 점이었다.

‘이게 연관이 있는 건가?’

과연 학대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세영이였기 때문에 저 좋은 냄새가 났는지 좀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 * *

“원장님, 아까 인터뷰 잘 봤습니다.”

진료실로 돌아온 태경은 김 경사를 만났다.

“아니, 어쩜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

“아닙니다. 그것보다 김 경사님도 그렇고 경찰분들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밤새 환자를 보시는 의료진분들이 고생이시죠.”

그 후 태경은 세영이의 상태에 대해 묻는 김 경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전한 뒤 도한연에 대해 물었다.

“조사는 어떻게 됐나요?”

“조사는 잘 끝났습니다. 사실 온 세상이 이 문제로 들끓는데 도한연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이유도 말하던가요?”

“네, 말하긴 했는데 그 이유라는 게 참 어이가 없더라고요.”

자신이 한 끔찍한 짓을 모두 인정한 도한연은 학대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말도 안 되는 답변을 내놨다.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모든 게 친딸 때문에 벌인 일이랍니다.”

“도한연의 친딸이요?”

“네. 모든 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철저하게 계획을 했더라고요.”

김 경사는 황당하다 못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사건의 전말을 전했다.

도한연은 처음부터 세영이를 노리고 고영철과 재혼을 했다는 것이다.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고 있던 도한연은 잔병치레가 유달리 많은 딸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어린 딸은 툭하면 넘어지기 일쑤였고 수시로 코피도 쏟았다. 그때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엄마로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몸에 좋은 건 다 해 먹여도 아이의 잔병치레가 줄지를 않자 도한연은 자신이 평소 맹신하며 친하게 지내는 점쟁이를 찾아갔다.

‘언니, 나 정말 우리 애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요. 뭐 좋은 방법 없을까요?’

‘자기 딸래미가 아프지 않으려면 건강한 또래 아이에게서 그 기를 뺏어야 해.’

정말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지만, 사이비 사상에 빠진 도한연은 점쟁이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굳게 믿었다.

그 뒤 한 동네에서 부인이 죽고 홀로 딸을 키우고 있던 고영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렇게 고영철에게 아이의 옷이나 음식을 가져다주며 세상 착한 여자 코스프레를 했고 세영이와도 조금씩 친해졌다.

1년을 만난 두 사람은 결혼식 없이 혼인 신고를 했다.

‘세영아, 안녕. 앞으로는 이모 말고 엄마라고 불러.’

‘엄마.’

‘그래. 우리 세영이 정말 너무 예쁘다. 우리 아빠랑 동생이랑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

친엄마가 그리웠지만 그래도 좋은 새엄마가 생겼다고 생각했던 세영이의 생각은 얼마 안 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고영철이 생계를 위해 원양어선을 타러 외국을 나가자마자 학대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도한연은 점쟁이에게 저주 부적까지 사서 세영이의 사진에 붙여 가며 미친 짓거리를 계속한 것이다.

똘똘하고 언제나 햇살처럼 잘 웃던 세영이는 모진 학대에 점점 표정을 잃어 갔고, 살기 위해 도한연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하! 아니, 어떻게…….”

태경은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황당하시죠? 이게 진짜인가 싶고요. 그런데 원장님. 제가 경찰 일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일이 있다는 게 믿을 수가 없네요.”

“예전에 대규모 사이비 단체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는데 사람이 뭔가 하나에 미치면 정말 답이 없더라고요.”

“아! 사이비…….”

사이비라는 말이 나오자 태경은 뭔가 떠오르며 대번에 이해가 갔다. 사이비에 빠지면 사람이 어찌 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도한연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워낙에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라서 진행이 빠르게 될 겁니다. 조사도 내일쯤 마무리 짓고 그 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고요.”

“그렇군요. 뭐랄까 고작 감옥에 가는 게 전부인 뭔가 참 씁쓸하네요.”

김 경사의 말을 들은 태경은 마음이 무거웠다.

정해진 결과에 따라 법의 처벌을 받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이가 받은 고통에 비하면 그 결과가 작다고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경찰인 저도 그렇습니다.”

“참, 세영이 아버님과는 연락이 됐나요?”

“그게 외국으로 나간 원양어선업체를 파악하고 현재 연락을 계속 취하고 있습니다. 아마 곧 연락이 될 겁니다.”

“세영이가 아빠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어서요.”

“안 그래도 김 순경한테 들었습니다. 연락이 닿는 대로 바로 알려드릴게요.”

태경은 김 경사와 대화를 마친 뒤 세영이의 상태를 한 번 더 체크하고 응급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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