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죽게 놔두세요
외국 원양어선-
“형님, 뭐 해요?”
한차례 폭풍 같은 노동을 끝내고 쉬고 있는 고영철을 동료가 불렀다.
“한국 들어가면 우리 공주님들이 하고 싶은 것들 적고 있었어.”
“어디 좀 봐요. 동물원 가기, 바다 놀러 가기, 한우 먹으러 가기, 가족사진 찍기? 이게 무슨 애들이 하고 싶은 거예요. 다 형님이 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어떻게 알았어? 실은 내가 하고 싶은 거야. 하하하.”
멋쩍게 웃는 고영철의 얼굴 위로 행복이 가득했다.
“요즘 애들이 무슨 가족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그나저나 오늘은 유난히 힘드네요.”
“원래 며칠 쉬다 나오면 더 힘들잖아.”
“그건 그래요. 쉴 때 핸드폰으로 너튜브 몇 번 보고 게임 한두 판 해 주면 그래도 좀 낫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통신이 안 되는 곳에 와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나도 우리 애들 영상 보고 싶은데 못 보니까 힘이 안 나.”
“하여간 자식 사랑이 대단해요. 근데 형님은 왜 재혼을 결심했어요?”
“어?”
동료의 뜻밖의 질문에 고영철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니, 뭔가 신기해서요. 형님 보면 재혼은 왠지 안 할 것 같은 성격인데 어떻게 했나 싶어서요.”
동료는 워낙에 낯도 많이 가리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 고영철의 재혼이 궁금했다.
“그냥 뭔가 사람이 괜찮더라고.”
“지금 형수님이요?”
“응. 사실 세영이 엄마가 투병 생활을 좀 했는데 가끔씩 그런 말을 했거든. 자기 가고 나면 세영이도 어리니까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고. 그래야 자기도 마음 편할 거 같다고.”
“와!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하지만 되게 멋진 분이셨네요.”
“맞아. 세영이 엄마가 진짜 멋진 사람이었어. 나한테는 진짜 과분한 사람이었지. 그래서 더 잊지 못했는데 사람이 참 간사하더라.”
“왜요?”
“지금 와이프가 세영이를 참 많이 챙겨 줬어. 처음에 알아 갈 때도 옷이며 먹거리며 이거 저거 좋은 거는 다 갖다 줬거든.”
“고마웠겠네요.”
“그렇지. 그런 모습이 좋게 보이면서 더 친해지고 그러다 보니까 이런 사람이면 가정을 꾸리는 게 세영이한테도 좋겠다 싶더라고. 먼저 하늘나라 간 세영 엄마 생각도 덜 나기 시작하는데 이게 어쩔 수 없이 사람 마음이 그런가 봐.”
고영철이 도한연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세영이에게 잘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내가 결혼은 안 했지만 뭔가 형님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네요.”
“됐네요. 총각이 무슨 이해는. 빨리 좋은 사람이나 만나.”
“어어. 총각 마음 무시하세요?”
“그래. 무시한다.”
“영철이?”
동료와 한참 얘기를 하던 고영철은 급하게 찾는 선장의 외침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철이 어디 있어?”
“네, 선장님 저 여기 있습니다.”
“어, 여기 있었네. 저기, 빨리 가서 전화 좀 받아 봐.”
“전화요?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어. 어서 가.”
표정이 심상치 않은 선장을 보며 고영철은 선장실로 향했다.
통신이 안 터지는 지역에서 육지와 유일하게 연락이 되는 게 선장실에 있는 전화였다.
보통은 갑작스러운 위급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거나 탁송품을 실고 온 운반선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 사용했다. 그리고 배에 탄 선원과 항해사들 가족에게 아주 위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연락 올 데가 없는데. 선장님 어디서 온 전화예요?”
“빨리 가서 받기나 해. 급한 전화야.”
아무리 생각해도 연락이 올 곳이 없는 고영철은 선장에게 다시 물었지만 선장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고영철 씨 되십니까?
“네, 제가 고영철입니다만 어디시죠?”
-여기, oo동 경찰서입니다.
“경찰서요? 경찰서에서 저한테 왜…….”
경찰이 무슨 일인가 싶던 고영철은 혹시라도 가족에게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외국 바다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저 멀리 한국에서 연락 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희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고세영 양이 친딸 맞으시죠?
“네, 맞아요. 우리 세영이한테 무슨 일 생겼어요?”
-고세영 양이 현재 병원에 있습니다.
“병원이라니…….”
-지금 고세영 양이 수술 후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수, 수술이요? 우리 세영이가 왜요! 왜 갑자기? 사고라고 났나요? 집사람이랑 둘째도 다쳤어요?”
-고영철 씨.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고세영 양이 도한연 씨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쳐 충수가 녹아 수술을 받았어요. 다행이 수술은 잘 끝났고…….
“……!”
탁-
고영철은 순간 바닥에 주저앉으며 수화기를 놓쳤다.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소리에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그래서 빨리 한국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고영철 씨?
전화를 건 경찰이 고영철을 불렀지만 충격에 휩싸인 그는 들리지 않았다.
-고영철 씨?
“영철아? 너 괜찮아?”
곁에 있던 선장은 충격으로 놀란 고영철을 연신 불렀다.
“아아!!!!!!!!”
급기야 고영철은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하나뿐인 내 딸이, 죽은 아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내 딸이, 내 전부인 내 딸이 학대라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여보, 우리 세영이는 날 닮아서 이렇게 예쁜가 봐. 우리는 가족이 될 운영이었어요.’
‘나는 우리 세영이 때문에 당신이랑 재혼한 거야.’
‘나중에 아까워서 세영이 시집 어떻게 보내지?’
도한연이 자신에게 했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누구라도 좋으니 이 모든 게 꿈이라고, 장난이라고 해 줬으면 좋겠다.
‘아빠 언제 와? 나 아빠 보고 싶어.’
그제야 세영이가 통화 때 했던 말의 의미가 생각나 억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소리치며 울부짖던 그는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다에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야야! 영철이 잡아.”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형님 왜 이래요?”
“세영아!!!”
자신이 세영이한테 지옥을 선물했다는 사실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선장님, 저 죽게 놔두세요. 죽고 싶으니까 놔두라고요.”
쫙-
영문도 모르는 동료들이 말리는 사이 선장이 통제가 안 되는 고영철의 뺨을 날리며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지금 이럴 때야? 어?”
“선장님 왜 그러세요?”
“사람을 왜 때리고 그래요.”
“니들은 모르면 잠자코 있어. 너 빨리 정신 차려. 지금 네 자식은 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비라는 놈이 뭘 잘했다고 죽는다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어?”
“…….”
“딸한테 안 갈 거야? 너 인마 딸을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알았어?”
“죄, 죄송합니다. 너무 속이 상해서……. 선장님, 저 죽을 것만 같아요. 흑!”
“알아. 아는데 그럴수록 정신 바짝 차려. 야! 그물 걷어. 항구로 돌아간다.”
“예? 그물을요?”
“그래. 빨리 걷어.”
거친 바다 사람이었지만 속이 깊은 선장은 고영철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운반선이 들어올 날짜도 멀었고 여기까지 부를 배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배를 돌리면 손해가 막심했지만 선장이 고영철을 도와줄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선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알면 됐고. 가서 짐 정리나 해. 자! 자! 나머진 빨리 그물이나 올리자.”
빠르게 그물을 올린 선장은 항구로 배를 돌리기 시작했다.
* * *
새벽 시간 젊은 사람 두 명이 우리병원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여기 맞지?”
“공지 다시 확인해 보자.”
-현재 세라 입원해 있는 병원이에요. 주소는 oo동 oo번지.
우리병원 간판 바로 보이실 겁니다. 병원 주차장 뒤편에 있는데 가능하면 근처 공용 주차장에 주차하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병원 진료 방해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세라에게 조용히 희망을 전달하고자 하는 겁니다. 세라와 다른 환자들을 치료하시는 의료진들에게 피해 가지 않게 규칙 지켜 주세요.
“잘 찾아왔네.”
핸드폰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을 다시 확인한 두 사람은 병원 정문과 연결된 담벼락으로 향했다.
“여기다 붙이면 되겠다. 이미 사람들 좀 다녀갔나 보다.”
“그러게. 꽤 있네.”
두 사람은 준비한 쇼핑백에서 노란색 포스트잇을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포스트잇을 담벼락에 붙이며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세라야 사랑해.
-세라야 우리가 함께할게.
그렇게 종이를 붙인 두 사람은 담벼락에 작은 인형을 내려놓은 뒤 조용히 병원을 떠났다.
* * *
“이 쌤?”
김 경사가 가고 난 뒤 지금까지 환자를 보던 태경이 응급실을 나가려고 하자 스테이션 간호사가 이찬희를 불렀다.
“네?”
“선생님 나가시잖아요. 이 쌤이 좀 가서 물어봐요.”
“내가요?”
환자의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이찬희가 태경의 뒷모습을 보며 답했다.
“저희가 물어볼 순 없잖아요.”
“뭐 어때요. 물어보셔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요. 이 쌤도 궁금하다고 그랬잖아요.”
“당연히 궁금하죠. 알았어요. 그럼 제가 대표로 물어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주제인지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이찬희가 태경을 불러 세웠다.
“선생님?”
“왜?”
“그게 사실입니까?”
“다짜고짜 그게 무슨 소리야. 주어 붙여서 말해.”
“감덕찬 국회의원 측에서 연락 왔는데 선생님께서 거절하셨다는 게 사실인가 해서요.”
“어. 사실인데. 그게 왜?”
한 시간 전, 유명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태경에게 직접 연락이 왔었다.
연락을 한 수석보좌관은 아이에게 후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태경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예? 아니, 지금 세라 사정도 있는데 그걸 왜 거절하셨어요? 그 사람 국회의원이라 돈도 많은데 후원 받으면 좋잖아요.”
“당연히 거절해야지.”
“그러니까 왜요?”
“이찬희 너 국회의원 진료해 본 적 있어?”
“저요? 저야 당연히 없죠. 제가 국회의원을 어디서 진료하겠어요.”
이찬의와 달리 태경은 있었다. 전에 몸담았던 병원에서, 그것도 생각보다 많은 국회의원을 진료했었다.
대한민국 모든 국회의원을 전부 진료 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본 그쪽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똑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절대 목적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리고 연락 온 국회의원도 역시나 단지 후원만 주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더라. 그 보좌관이.”
“사진이면 선생님과 사진을요?”
“아니. 나랑 세영이랑 셋이서.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기 사 갈 테니까 병실에서 직접 국회의원이 전달식 하고 후원 증정하는 사진 좀 찍자길래 한마디 하고 바로 끊었어.”
“뭐라고요?”
“나야 그렇다 치지만 그 힘든 일을 겪은 어린애까지 당신들 정치판에 이용하고 싶으냐고. 정신 차리고 나랏일이나 잘하라고.”
“와우! 역시 우리 선생님 멋지십니다.”
이찬희는 쌍 검지를 추켜세우며 본인이 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가 멋있어, 당연한 거지. 나 진료실 가 있을게 급한 응급 오면 콜 해.”
“네, 알겠습니다.”
응급실에서 나온 태경이 로비로 향했다. 그러자 대기실 구석진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던 모자 쓴 여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저기, 선생님?”
“네, 보호자분. 어머니께 문제 있어요?”
“아니요. 아직은 없네요.”
아이러니한 대답을 한 여자는 2층 병동에 입원한 유지천 환자의 보호자인 딸 김진경이었다.
“선생님께 드릴게 있어서 기다렸어요.”
“저한테요.”
“네.”
피곤에 찌든 김진경은 청바지 주머니에 있던 꼬깃꼬깃한 흰 봉투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요.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