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제일 무섭지만 가장 따뜻한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서서히 돌아서던 장득칠이 완전히 몸을 돌리자 최 팀장은 깜짝 놀라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아 깜짝아! 지금 근무시간에 뭐하는 짓입니까?”
체격도 크고 키도 크고 무섭고 험상궂게 생긴 얼굴에 무시무시한 자상까지 있는 사람이 양팔에 커다란 인형을 잔뜩 들고 낑낑대고 있었다.
알록달록 여러 색깔의 인형과 장득칠이라니. 정말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설마 근무시간에 무슨 인형 뽑기라도 다녀온 건가요?”
“아닙니다. 팀장님, 그보다 인형 하나만 좀 들어 주시죠.”
“들어는 주는데……. 갑자기 인형은 왜 들고 있나요?”
“조금 전에 퀵으로 배달이 왔습니다.”
“퀵으로 배달이요?”
“네. 퀵 기사가 그러는데 세라 양한테 온 거라고 전해 달라던데요.”
“시민분들이 보내 주셨나 보네요. 근데 왜 갑자기 인형일까요?”
“아이들이 인형을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장 요원? 나도 자식 있어요. 누가 그걸 모릅니까. 인형도 인형 나름이지 좀 특이하니까 그렇죠.”
그건 최 팀장의 말이 맞았다. 보통 아이들이 무난하게 좋아할 만한 인형과는 좀 거리가 멀었다. 귀여운 동물 모양의 인형도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들 만화 캐릭터 인형도 아니었다.
“이거 지렁이 모양 아닙니까? 도대체 왜 이런 인형을…….”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참 신기한 인형도 다 있네요.”
“일단 인형을 좀 옮기자고요.”
그렇게 두 사람 모두 지렁이 인형에 의문을 품고 병원 정문 마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던 그때였다.
“실례합니다.”
모자를 쓴 젊은 남자 한 명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예?”
“병원분들이신가요?”
“맞습니다. 진료 보러 오셨나요?”
“안 그래도 막 들어가려던 참인데 잘됐네요.”
“아, 네. 들어가셔서 접수하시고 급한 진료는 응급실 진료로도 보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하나 했거든요. 두 분이면 금방 옮기시겠네요.”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두 사람과 달리 젊은 남자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최 팀장과 장득칠을 정문 앞 갓길에 세운 트럭으로 인도했다.
“저기 우리 젊은 분은 진료를 보러 오신 게 아니면 어디서 오셨는지?”
“전 쏙마켓 새벽 배송팀인데요. 여기가 세라 양이 입원한 병원인가 보네요.”
“아, 네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갑자기 그건 왜?”
워낙 전 국민적으로 기사가 나는 바람에 세영이가 입원한 병원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게 세라 양 앞으로 배송이 와서요.”
탁- 철컥-
“와…….”
“세상에.”
“놀라셨죠? 저도 처음에 꽤 놀랐습니다.”
배송 직원이 트럭 뒷문을 열자 인형과 각종 과자부터 문구용품이 트럭 안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반 이상은 장득칠이 안고 있는 특이한 지렁이 인형이었다.
“설마 이, 이게 전부 다인가요?”
“네, 이게 정확히 세라 양 앞으로만 온 물건들이에요. 워낙 많아서 저 혼자 따로 배정받아서 병원에 온 거고 아마 제 예상인데 또 올 수도 있어요.”
“네에?”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머리털 나고 이렇게 많은 택배를 본 건 처음입니다.”
“그럼, 물건은 어디에다가 내려놓을까요?”
“일단 여기 앞에 내려 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네.”
잠시 후, 최 팀장과 장득칠은 택배기사와 함께 물건을 전부 내렸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수고하셨어요.”
“안녕히 계세요.”
“팀장님? 근데 저 지렁이 인형은 왜 이렇게 많이 온 걸까요?”
“글쎄요. 그게 나도 궁금하긴 하네요. 참 요상하게도 생겼네.”
“그나저나 이걸 다 어디다 옮길까요?”
“일단 제 사무실로 옮겨 놓죠.”
“알겠습니다.”
최 팀장과 장득칠은 새벽이슬을 맞으며 세영이에게 온 물건들을 빠르게 옮겼다.
* * *
유달리 지렁이 인형이 많은 건 바로 최모나가 준 그 인형 때문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마취가 깬 세영이는 최모나가 준 인형을 꼭 쥐고 있었다.
화장실을 갈 때도 베드에 누워서 쉴 때도 거의 손에서 놓지를 않고 함께했다.
심지어 잠이 든 순간에도 지렁이 인형을 안고 잠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같은 3층 병동에 있던 어느 보호자가 사진을 찍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여러분 다들 뉴스 보셨죠? 경찰 인터뷰 보니까 세라 아빠 출발했다는데 이제 곧 만나겠네요.
-그러니까요. 근데 세라 병원에서 잘 지내고 있겠죠?
-선생님 인상이 너무 좋고 그 동네 커뮤니티 보니까 좋은 선생님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의료진분들이 잘 챙겨 주실 것 같아요.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잘 있는지 궁금해요.
-그러게요. 충수가 녹아서 힘들었을 텐데 수술 잘 견뎌 줘서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몰라요.
-제가 지금 같은 병원인데 세라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염려 마세요.
-정말 같은 병원이에요? 장난 아니죠?
-이런 상황에 저런 글 함부로 올리면 욕먹습니다. 관심 필요하시면 다른 곳 가서 하세요.
-거짓말 아닌데요? 제가 3층에 입원한 가족 보호자인데요. 사진 보이시죠? 수술 후 화장실도 잘 다니고 의료진분들 보살핌에 잘 지내고 있어요.
-대박! 진짜네요. 근데 세라 혈색이 좋아졌네요. 창백했는데 핏기가 돈 거 같은? 그런 느낌이네요.
-저기, 사진 올린 댓글님! 지금 좋은 마음으로 그러시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래도 그렇지 사진을 올리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사진 내려 주세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사진 내릴게요. 퍼트리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사진을 올린 작성자는 고작 2분도 안 돼서 사진을 내렸지만, 그 짧은 시간에 저 사진은 삽시간에 퍼져 뉴스에까지 나왔다.
-혹시, 세라 사진 보셨나요? 그 지렁이 인형 들고 있는 사진이요?
-당연히 봤죠. 세라가 좋아하는 인형인가 봐요.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전 세라 입원한 병원에 택배로 보냈어요.
-어! 저도 보냈는데. 전 주변 엄마들끼리 돈 모아서 인형이랑 학용품도 같이 보냈어요.
그 결과 사진을 접한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비슷한 인형과 기타 물품들을 구매해 병원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팀장님, 이걸 다 어디다 옮길까요?”
“일단 제 사무실로 옮겨 놓죠.”
“네, 알겠습니다.”
최 팀장과 장득칠은 새벽이슬을 맞으며 세영이에게 온 물건들을 빠르게 옮겼다.
* * *
태경은 오전 회진을 한 뒤 임정숙 간호사와 함께 세영이 병실로 향했다.
“염증 수치가 떨어져서 다행이네요.”
“네. 수치 떨어질 때마다 제 기분이 다 좋더라고요.”
“저도 그래요. 그리고 아까 김 경사님한테 전화 왔는데 세영이 아버님께서 예상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다고 하네요.”
“잘됐다. 그게 제일 좋은 소식이네요. 꽤 충격 받으셨을 텐데 별일 없이 잘 오셨으면 좋겠어요.”
“잘 오실 거예요. 자! 세영이 한테 한 번 가 볼까요.”
철컥-
“세영아?”
“선생님!!”
문이 열리자마자 좋은 냄새와 함께 세영이가 웃는 얼굴로 태경을 반겼다. 정말 단 하루 사이에 참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모든 걸 포기한 듯 자포자기한 눈빛으로 얼룩진 얼굴을 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커다란 눈망울에도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에도 어느새 조금씩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세영아 잘 잤어?”
“네, 무서운 꿈도 하나도 안 꾸고 잘 잤어요.”
그동안 악몽에 시달리던 세영이는 병원에서 처음으로 기분 좋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잠자리가 불편한 병원이 지금, 세영이에게는 가장 편한 안식처였다.
“수술한 곳 배가 아프거나 당기거나 그러지 않아?”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 선생님 근데요, 저 밥 언제 먹어요.”
“아고. 배고프지?”
세영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세영이가 아까 눈뜰 때부터 배가 고프다고 했어요.”
“그랬구나. 배고파서 어떡하나.”
금식 중에 아무리 수액을 맞고 있어도 배가 고플 수 있다. 가끔 노인 환자 중에는 금식을 못 참고 몰래 음식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하물며 세영이는 계속 영양실조인 상태였으니 몸에 수액을 들어간다 해도 분명 배가 고플 것이다.
“맞다! 선생님 저 아까 방구도 나왔는데…….”
방구가 나오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소리에 세영이는 방구가 나올 때 진심으로 좋아했다.
“방구 나왔어? 잘됐다. 근데 세영이 몸 상태를 선생님이 잘 보고 내일까지 금식을 해야 하거든. 그래서 밥 먹으려면 내일이 지나야 해. 조금만 기다릴 수 있을까?”
“그럼 내일 지나면 먹을 수 있어요?”
“그럼, 먹을 수 있지.”
“두 밤 자면요?”
세영이는 작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며 물었다.
“그래, 두 밤 자면 먹을 수 있어.”
“네. 기다릴게요. 두 밤 기다리는 건 쉬워요. 할 수 있어요.”
“그래, 우리 두 밤 지나면 죽 먹고 또 밥도 먹고 그러자.”
“네. 선생님 근데 할 말이 있어요.”
“그래, 뭔데?”
“감사해요.”
세영이는 별안간 고개를 숙이며 태경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선생님이 저 살려 주셨잖아요. 손에 제가 그린 점이요. 아무도 몰랐는데 선생님이 알아봐 주셔서 그 집에서 나올 수 있었어요.”
세영이한테는 태경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가장 고마운 사람이었다.
“아니야. 고맙다는 인사는 선생님이 아니라 세영이가 받아야 해. 세영가 용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 검은 점을 볼 수 있었어.”
“근데 세영아. 간호사 선생님이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물었다.
“네, 물어보세요.”
“우리 세영이는 그 검은 점이 도와주세요라는 뜻인 거 알고 있었어?”
안 그래도 모두가 궁금해했던 질문이었다.
태경도 김 경사도 병원 사람을 비롯해 저 어린 아이가 일반 사람조차 잘 모르는 블랙 닷 캠페인 구조 신호를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두 사람을 소름 돋게 만든 대답이 곧이어 들려왔다.
“엄마요. 우리 엄마가 알려 줬어요.”
“엄마가 알려 주신 거야?”
“네. 우리 엄마가 예전에 알려 줬어요.”
세영이의 친엄마인 김고윤은 살아 있을 당시 책을 유통하는 온라인 서점의 MD였다.
직업 특성상 책을 보는 일이 잦았던 김고윤은 우연히 책에서 블랫 닷 캠페인을 접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기억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좋은 구조 신호를 자신의 딸인 세영이에게 가르친 것이다.
‘세영아, 손 줘 봐.’
‘손?’
‘응. 우리 딸은 손도 어쩜 이렇게 예쁠까? 세영이 누구 딸?’
‘엄마, 김고윤 아빠, 고영철 딸.’
‘정답. 세영아, 엄마가 지금 손에 그린 거 보여?’
‘응. 이거 점이잖아. 왜 그린 거야?’
‘이 검은 점이 구조 신호인데 블랙 닷 캠페인이라고 하는 거야.’
‘구조 신호?’
‘응. 세영이가 만약 도움이 필요할 때 손에 점을 그려서 사람들 보여 주면 도와줄 거야.’
‘근데 내 옆에는 아빠 엄마가 항상 같이 있잖아.’
‘당연하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알아 두면 좋잖아. 그러니까 잊지 말고 꼭 기억해 놔. 알았지?’
‘응. 꼭 기억할게.’
그렇게 세영이는 엄마가 알려 준 구조 신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도한연이 어딜 가나 꼭 붙어 있던 탓에 점을 그릴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 다큐 촬영 때 도한연과 세리가 병원을 간 사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점을 그릴 수 있었다.
결국 절대 사용할 일 없을 것만 같던 엄마의 구조 신호가 세영이를 구한 것이다.
“세영이가 그걸 계속 기억하고 있던 거야?”
“네, 엄마가 꼭 기억해야 한다고 해서 기억했어요.”
“진짜 똑똑하다.”
“참! 세영아. 선생님이 좋은 소식 갖고 왔는데.”
“좋은 소식이요?”
“이제 곧 아빠 만날 수 있을 거야.”
“아빠! 우리 아빠요?”
‘아빠’라는 말이 나오자 세영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 물었다.
“아빠가 지금 세영이 보려고 비행기 타고 오고 계신대.”
“정말요? 아빠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세영이는 아빠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지금까지 중에 가장 크게 웃으며 또래 아이처럼 기뻐했다.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는 그 모습을 보고 병실을 나왔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임정숙 간호사는 태경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뭐가요?”
“표정이 심각해 보여서요.”
“아. 그게 세영이 어머님이 참 대단한 것 같아서요. 어머님이 하늘에서조차 딸을 지켰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신께서 모든 사람들을 돌볼 수 없어서 대신 보낸 사람들이 엄마라고요. 아! 물론 도한연 같은 나쁜 사람은 빼고요. 아주 그냥 벼락을 맞아야 해요.”
“사람이 제일 무섭지만 또 사람만큼 가장 따뜻한 게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맞아요. 병원일 하다 보면 더 그렇게 느끼는 거 같아요.”
“아무튼 세영이가 기운 차려서 참 감사하네요. 오늘은 금식 유지해 주시고 이따 해바라기 센터 담당자분 온다고 했으니까 확인하시고 안내해 주세요.”
“네, 그럴게요.”
“그리고 유지천 환자…….”
“원장님!”
태경이 다른 환자에 대해 말하려는 순간 최 팀장이 헐레벌떡 계단으로 뛰어와 다급하게 외쳤다.
“원장님! 큰일이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우리 팀장님께서 아침부터 이렇게 놀라셨을까?
행동이 요란한 최 팀장을 보며 임정숙 간호사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임 선생, 이렇게 태연하게 있을 때가 아니에요. 그보다 원장님 혹시 머리는 감으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