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국회의원 감덕찬
“원장님! 큰일이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우리 팀장님께서 아침부터 이렇게 놀라셨을까?”
행동이 요란한 최 팀장을 보며 임정숙 간호사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임 선생, 이렇게 태연하게 있을 때가 아니에요. 그보다 원장님 혹시 머리는 감으셨습니까?”
“머리요?”
“네, 머리요.”
급하게 올라온 최 팀장은 죽은 사람이라도 본 것같이 놀란 얼굴로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세수는 당연히 하셨겠죠?”
머리에 이어 세수까지. 무슨 학교 등교시키는 학부모도 아니고 갑자기 태경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왜요? 저한테 무슨 냄새나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원장님 놀라지 마세요. 바, 밖에 엄청난 게, 아니 엄청난 사람이 왔습니다.”
“엄청난 사람이요?”
“네. 그러니까 그게 제가 너무 놀라서…….”
“팀장님!”
임정숙 간호사가 답답함에 버럭 소리를 높였다.
“뜸 좀 그만 들이고 빨리 말하세요.”
“알겠습니다. 밖에 국회의원님께서 오셨습니다.”
“국회의원이요?”
태경이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되물었다.
“혹시, 감덕찬 의원인가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팀장님 어제 못 들으셨구나.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연락 왔었잖아요. 세영이 후원 문제로.”
“예!? 아니, 임 선생 지금 그 말이 사실인가요?”
“네, 직원들 꽤 아는데.”
“그런 중대한 문제를 왜 저만 몰랐던 거죠? 왜요?”
밤새 취재 요청 전화 거절에 택배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던 최 팀장은 직원들이 하는 얘기를 들을 새가 없었다.
“원장님, 이럴게 아니라 빨리 내려가서 일단 만나세요. 어서요.”
“그래요. 일단 내려갑시다.”
“임 선생 수고해요.”
“네, 수고하세요.”
태경은 영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최 팀장에게 등 떠밀리듯 계단을 내려갔다.
“잠시만요! 원장님 설마 지금 그 차림새로 가시려는 건 아니시겠죠?”
최 팀장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던 태경을 불러 세웠다.
“의사가 이 복장이면 됐죠.”
“아니요. 원장님. 지금 그 근무복이 제일 문제입니다.”
“그럼 정장이라도 갈아입고 갈까요?”
“그게 좋긴 한데 말이죠.”
최 팀장은 사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자신의 옷과 바꿔 입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으니 일단 급한 대로 태경의 맨발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크룩스만이라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신경 쓴 티가 나야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맨발은 좀…….’
그래도 명색이 국회의원을 만나는데 맨발은 예의가 없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과 인맥을 쌓아서 나쁠 건 없으니 조금이라도 태경의 첫인상을 좋게 심어 주고 싶었다.
“원장님, 그럼 아쉬운 대로 신발이라도 제 구두랑 바꿔 신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양말도 같이……. 원장님!”
최 팀장이 빠른 동작으로 한 쪽 신발과 양말을 벗는 사이 태경은 아무렇지 않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원장님? 같이 가요.”
* * *
척-
영어 알파벳 대문자 H의 금색 장식이 돋보이는 구두가 오른쪽을 향하자 흰색 운동화가 그 앞을 막았다.
척-
“하!”
허공에 퍼지는 콧방귀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구두가 왼쪽으로 향하자 운동화가 또다시 그 앞을 가로막았다.
“뭡니까?”
“뭐가요?”
“장난하십니까?”
“장난 아닌데요.”
“지금 뭐하는 건지 물었습니다.”
“일하고 있는 중인데요.”
“좀 들어가죠.”
정장 차림에 구두를 신은 남자는 국회의원 보좌관이었다. 그는 뒷문 앞을 막고 서 있는 장득칠을 불편한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선생님, 이거 보이시죠?”
장득칠은 손가락으로 뒷문에 걸린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병원 정문을 이용해 주세요.’라는 팻말을 가리켰다.
“죄송하지만 현재 뒷문으로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조금 전에 저랑 대화한 최 팀장님이란 분은 들어가시던데요.”
“그거야 팀장님은 저희 병원 관계자니까 그렇죠.”
“병원을 찾아온 환자를 이런 식으로 대하시나 봅니다.”
“우리병원을 찾아온 환자를 이런 식으로 대하진 않습니다만, 선생님은 딱 봐도 환자는 아닌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현재 환자분들도 아주 급하고 위중한 환자가 아니면 다들 정문을 이용해 주시고 계십니다.”
“성함이 장득칠 씨?”
보좌관은 장득칠 상의에 꽂혀 있는 신분증을 보며 이름을 확인했다.
“네.”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사실 제가 모시고 온 분이 이름이 좀 있는 분이라 뒷문을 좀 이용했으면 하는데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정문에는 세영이를 응원하러 온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놓고 정문을 이용하는 건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사실 보좌관은 오늘 자신이 모시고 있는 감덕찬 국회의원의 이미지 쇄신을 노리며 철저한 계획 아래 병원을 찾은 것이다.
감덕찬은 하수구에 사는 쥐새끼들도 피한다고 하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4선을 하는 동안 나름 잡음 없이 청렴한 이미지를 유지한 거물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 그의 정치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다.
남동생 부부가 불법 투기와 관련이 있다는 뉴스가 터졌고, 다른 정당에서는 감덕찬도 연관이 있다고 몰고 가며 수사를 촉구했다.
결국 의원직을 걸고 수사를 받은 감덕찬은 아무 연관이 없는 걸로 밝혀졌고 동생 또한 무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워낙 깨끗한 이미지였기에 실망한 사람들이 꽤 많았고 그의 이미지는 예전 같지 않았다.
보좌관은 그동안 감덕찬의 내려간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는 미비했다. 그러던 차에 세라의 사건이 터진 것이다.
속으로 이거다 싶었다.
특히 5년 전, 아동학대 특별법 통과에 일등 공신이었던 감덕찬이었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물론 병원 대표인 김태경에게 전화로 거절당했지만 그래도 찾아왔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을 실제로 만나 부탁을 거절한 사람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다른 일행들은 배제한 채 본인이 직접 운전까지 하고 은밀하게 온 만큼 보좌관은 오늘 꼭 목적을 달성해야 했다.
“장득칠 씨, 방금 제 말 못 들으셨습니까? 이름 있는 분…….”
“저는 무식해서 그런 거 모릅니다. 팀장님 오시면 그때 말해 보시던가요.”
“하! 말이 안 통하는군요.”
철컥-
“원장님, 이쪽입니다.”
보좌관과 장득칠이 대치하는 사이 태경이 최 팀장과 함께 뒷문으로 나왔다.
“보좌관님. 이쪽은 저희 병원 대표이신 김태경 원장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일전에 연락드렸던 감덕찬 의원님 수석보좌관 이현직입니다.”
이현직은 장득칠을 쳐다보던 표정과는 반대로 태경을 보자마자 웃음을 보이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김태경입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런데 뉴스를 볼 때도 느꼈지만 인물이 정말 좋으시네요.”
“맞습니다. 우리 원장님께서 좀 잘생기시긴 하셨죠. 하하!”
“그런데 어떤 일로 절 찾아오셨나요?”
“원장님과 대화를 잠시 나눌 수 있을까요? 시간 많이 안 뺏겠습니다.”
“팀장님, 잠시 자리 좀 비켜 주세요.”
당연히 사무실로 안내할 줄 알았던 이현직은 태경의 말에 살짝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그럼요. 장 요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자고요.”
“네.”
철컥-
“말씀하시죠.”
“실은 후원 때문에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후원이라면 제가 답변을 이미 드렸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맞습니다. 어찌나 시원하게 거절을 하시던지 솔직히 전화 끊고 조금 민망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생각해 봤는데 제가 실수를 했더군요.”
“실수요?”
“네. 그래서 아이를 응원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후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후원만 하시겠다는 뜻으로 들어도 되겠습니까?”
진짜 순수한 마음과 함께 후원만 한다고 했다면 태경 역시 흔쾌히 허락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온 보좌관의 말은 역시나였다.
“물론입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작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후원을 하는데 제안이 필요한가요?”
“저희 의원님께서 원장님께 후원금을 전달해 드리는 그 모습만 살짝 사진에 담았으면 하는데요.”
생각해 보니 아이에게 후원금과 게임기를 주면서 대놓고 사진을 찍는 건 티가 너무 나기 때문에 역효과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치 지나가다 찍은 것처럼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모른 척 올릴 생각이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 정도는 해 주실 수 있죠?”
“어려운 일은 아닌데 깨끗한 일은 아닌 것 같아 해 드릴 수 없습니다.”
“거절하신다고요?”
“네. 보좌관님이 그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후원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요.”
“아니. 뭐,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윈윈 아닐까요? 아이는 돈을 받아 좋고 원장님은 우리 의원님과 인맥을 넓혀서 좋고요. 게다가 우리 의원님도 적당히 도움이 되니 누구도 손해가 아닌 제안인 것 같은데요.”
“제가 국회의원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냥 돌아가시라고 드리는 말입니다.”
“젊은 분이 눈치가 없으신 건지 지금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모릅니까?”
누군가는 꼭 갖고 싶은 인맥일지 몰라도 태경에게 아니었다.
물론 국회의원을 알면 앞으로 병원을 키워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정신이 똑바로 박힌 제대로 된 국회의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대가를 바라고 구린내가 풍기는 그런 부류라면 더러움에 같이 발을 담그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예 모르는 게 낫다.
권력의 맛을 보고 거기에 중독되면 사람이 얼마나 추악해지는지 신화대병원 고계득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이보세요, 김태경 원장님. 감덕찬 의원이 누구신지 모르는 건 아니죠? 더군다나 우리 의원님 정도면…….”
기분이 상한 이현직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던 그때,
“이보게. 이 수석!”
검정색 승용차에서 내린 남자가 그의 무례함을 멈췄다.
중후한 목소리를 풍기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남자는 감덕찬 의원이었다.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동네에서 산책로를 걸을 법한 평범한 복장에 철저히 계산을 하고 왔구나 싶던 찰나 예상치 목한 그의 행동이 태경을 당황케 했다.
“김태경 원장님. 초면에 큰 실례를 했습니다.”
감덕찬은 통성명을 하기도 전에 자신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허리를 푹 숙이며 사과를 전했다.
“인사가 늦었네요. 감덕찬이라고 합니다.”
“아, 네. 우리병원 김태경입니다.”
“이 수석이 실수를 했네요. 아랫사람을 관리 못 한 제 잘못입니다.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국회의원 특유의 당당하고 잘난 눈빛과 우월한 분위기가 감덕찬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 수석이 꼭 들려야 할 곳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거기가 여기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 수석! 자네 이런 사람이었나?”
“전 그저 의원님께 도움을 드리고자 했는데…….”
“자네 정말 이게 나한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거야?”
감덕찬은 불같이 화를 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 몰라? 왜 사람이 어리석은 짓을 해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려고 해.”
감덕찬의 말대로 이 모든 일이 이현직이 혼자 계획한 일이었다.
당내 의원들과 새벽에 가벼운 등산을 마친 후 집으로 가는 사이 꼭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고 해서 찾은 곳이 이곳이었다.
도착 후 잠시만 기다리라는 이현직에 말에 차 안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에 차장을 내리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됐다.
감덕찬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얼른 내려 사과를 하게 된 것이다.
“왜, 사람이 어리석은 짓을 하고 그래. 어?”
“죄송합니다. 의원님. 제가 생각이 아둔했습니다. 그리고 원장님께도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태경은 사과를 하는 이현직이 아닌 감덕찬을 보며 말했다.
보좌관의 사과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감덕찬 의원의 사과는 가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뉴스를 보고 저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모쪼록 세라 양이 속히 쾌차할 수 있도록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잘 치료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실은 김태경 원장님의 대해 익히 들은 게 있어 그런지 처음 뵙는 거 같지 않군요.”
“제 얘기를 들으셨다고요?”
태경은 감덕천과 전혀 접점이 없었기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네. 아무튼 바쁘실 텐데 이만하고 제가 앞으로 의료적인 문제로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한 번 주시죠.”
태경은 감덕천이 내민 개인 명함을 받았다.
“그땐 이런 치졸한 행동이 아닌 앞에서 떳떳하게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분 조심히 들어가세요.”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지금까지 만난 국회의원과는 뭔가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저나 내 얘기를 어디서 들었을까?”
태경은 고개를 갸웃하며 병원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