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아빠가 미안해
-다음 소식입니다. 며칠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학대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태경이 병원에 들어오자 대기실에 걸려 있는 티비에 도한연의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어! 국민 x년 소식 나오네. 어머. 죄송해요. 제가 저 여자만 보면 화딱지가 나서.”
“그게 왜 죄송해요. 저 여자는 욕도 아까워요. 그나저나 처벌이나 강하게 받아야 할 텐데.”
“처벌이다 뭐다 전 그냥 똑같이 당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래요. 감옥에서 삼시 세끼 밥 먹고 징역 사는 게 다인데 그게 무슨 처벌이에요.”
“어휴. 가만 보면 우리나라는 형량이 너무 가볍다니까요.”
수납하던 환자가 뉴스를 보며 던진 말에 직원은 격하게 공감했고, 태경을 비롯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티비에 쏠렸다.
* * *
“아동학대 주범인 도 모씨가 현재 검찰 송치를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구영재 기자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죽여!”
“도한연 사형시켜라.”
“저 여사는 교도소에 보내는 것도 아깝다.”
“애가 느낀 고통 몇십 배는 느끼게 해야 합니다.”
“맞아요! 엄벌에 처해 주세요.”
“여기는 지금 oo경찰서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취재진과 분노한 시민들로 현장은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무슨 재판이냐, 그냥 죽여.”
“oo경찰서는 그동안 도 모씨의 검찰 송치 시 포토라인을 세우라는 민원으로 전화가 폭주했다고 합니다. 경찰 측에서 강력 범죄를 일으킨 흉악범만 세우는 포토라인에 도 모씨를 세울지 현장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아이한테 저주 부적이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어.”
“도한연을 포토라인에 세워라!”
“어! 저기 쓰레기 나온다.”
“시민들의 원성이 큰 가운데 지금 도 모씨가 검찰 송치를 위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자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화가 난 사람들의 원성 속에 도한연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 두 명이 양쪽 팔짱을 낀 채 등장한 도한연은 긴 머리를 커튼처럼 풀어헤치고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상태였다.
수갑이 채워진 양손을 수건으로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 나온 도한연은 경찰과 함께 포토라인에 멈춰 섰다. 그러자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너나없이 무릎을 굽인 채 마이크를 입으로 갖다 댔다.
“지금 심경이 어떤지 한마디 해 주시죠.”
“…….”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고 씨 부녀에게 접근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
미친 듯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기사들의 질문에도 도한연은 입을 열지 않았다.
“피해 아동이 수술을 받았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어렵게 입을 연 도한연은 사과의 말을 전했다.
“세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저 자신이 원망스럽고 지난날들이 후회스럽습니다. 아울러 아이 아빠에게도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미안합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직접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도 엄마가 처음이라 서툴렀습니다. 세라야 정말 미안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경찰분께 질문하겠습니다. 도 모씨는 바로 검찰로 향하는 겁니까?”
도한연의 팔을 잡고 있던 경찰이 질문의 대답하려던 그때였다.
“네, 지금 바로 검찰…….”
“야! 독한년?”
안전을 위해 경찰들 뒤로 이어진 질서유지선 뒤에 서 있던 여자 한 명이 분을 참지 못하고 포토라인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처음이라고? 어디서 같잖은 말을 싸지르고 뭘 잘했다고 모자는 쓰고 있어!”
“악!”
그러더니 도한연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기고 머리끄덩이를 잡아 흔들며 험한 말을 쏟아 냈다.
“엄마가 두 번째고 세 번째인 사람도 있냐? 진짜 미친년 아니야.”
“너 오늘 어디 한 번 똑같이 당해 봐.”
한 명이 들어오자 그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경찰들을 밀치며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넌 살 가치도 없는 인간 말종이야!”
“후회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리고 뭐, 네가 뭔데 세라한테 그 낯짝으로 사과를 해!”
“어떻게 그 어린 애를 굶길 수가 있어!”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었기에 그 분노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만하세요.”
“빨리 현장 정리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경찰들이 사람들과 도한연을 떼어 놓으려고 달려들었지만 쉽지 않았다.
“피해 아동에게 사과를 전한 도 모씨는 바로 검찰로 송치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oo경찰서 앞에서 SBC 구영재였습니다.”
예기치 못한 초유의 상황에 현장에 있던 기자는 재빨리 마무리 멘트를 하며 중계를 마쳤다.
더 이상 뉴스에는 중계되지 않았지만, 도한연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말 그대로 몰매를 맞은 뒤에야 호송 차량에 탑승할 수 있었다.
* * *
그날 저녁-
“여깁니다. 아버님.”
차에서 내린 김 경사가 보조석에서 내린 남자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인중과 턱 부분에 거뭇거뭇 짧게 난 수염과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작업복을 입은 남자는 고영철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절차상 조사를 받아야 했기에 기다리던 경찰과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김 경사의 도움으로 조사를 빨리 마칠 수 있었다.
“저곳이…….”
그는 마치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처럼 우리병원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세영이가 입원한 병원인가요?”
“네, 아버님 맞습니다. 가시죠.”
“네.”
병원으로 향하는 고영철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마치 발에 쇳덩이라도 달린 기분이었다.
병원에 가까울수록 딸을 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자신 때문에 세영이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자책감도 함께 밀려왔다.
“하!”
“아버님, 잠시만요.”
김 경사가 땅이 꺼지도록 깊은 한숨을 토해 내며 걷고 있는 고영철을 그 자리에 멈춰 세웠다.
“아버님 저거 보이세요?”
“…….”
“땅 그만 보시고 병원 담벼락 한 번 봐 주세요.”
“……!”
땅만 보고 걷던 고영철의 시선이 병원 정문 담벼락으로 향했다. 그러자 자책감이 응집된 그의 동공이 파르르 떨려 왔다.
-세라야 사랑해.
-세라야 우리가 함께할게.
자신의 딸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메시지를 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이게 전부 다 우리 세영이한테…….”
“네, 아버님. 전부 세영 양을 응원하는 마음이에요.”
최 팀장이 도착하면 뒷문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지만 김 경사는 일부러 정문 근처에 주차했다. 고영철에게 이 광경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우리 세영이가, 흑!’
조사받는 내내 괴로움에 몸서리쳤던 고영철에게 위로와 힘을 주고 싶었다.
“정말 감사하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아버님, 기운 내시고 우리 밝은 얼굴로 세영이 만나요. 그래야 세영이도 얼른 기운 차리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 경사는 고영철의 등을 토닥이며 함께 병원으로 들어갔다.
* * *
“선생님, 저 수술해야 할까요?”
진료실 베드에서 새우 자세로 옆을 보고 누워 있던 남자가 바지를 올리며 일어났다.
“아니요. 수술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설사로 인해 항문이 좀 부은 거예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당분간 자극적인 음식 피하고 수분 보충 자주 해 주시고 잊지 말고 좌욕 꼭 해 주세요. 먹는 약이랑 연고 처방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환자분 수납하시고 처방전 받아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김 경사님 오셨는데 아버님도 오신 것 같아요.”
문밖에서 환자를 안내하던 임정숙 간호사는 진료실로 향하는 김 경사를 봤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고영철을 보며 세영이 아빠라는 걸 확신했다.
“그래요?”
“원장님, 저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김 경사님.”
“이쪽은 세영이 아버님이세요. 아버님, 이쪽은 세영이 치료해 주신 선생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김태경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세영이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영철은 자신의 은인을 만난 것처럼 전심을 다해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아닙니다. 아버님. 걱정 많으셨죠? 얼른 세영이 만나러 가셔야죠.”
태경은 고영철을 3층으로 안내하며 세영이의 병실로 향했다.
* * *
“세영이 그림 잘 그리네. 누구야?”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러 온 간호사가 베드 테이블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세영이에게 물었다.
“아빠요. 우리 아빠.”
“아빠구나. 너무 멋지다. 그러면 여기 아빠랑 손잡고 있는 친구는 세영이네. 맞지?”
“네. 저예요.”
“아빠랑 손잡고 어디 놀러 가는 거야?”
“아니요.”
세영이는 고개를 한 번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집이에요.”
“집?”
“네. 아빠 고기 잡으러 못 가게 손잡고 있는 거예요. 아빠랑 헤어지기 싫어서요.”
“아……. 근데 아빠 오시면 이제 세영이랑 같이 계실 거야.”
“정말요?”
똑똑-
간호사의 말에 세영이가 되묻는 사이 반가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세영아!”
고영철이 딸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들어오자 세영이가 고개를 돌리며 쳐다봤다.
“아, 아빠!”
“세영아!”
세영이는 고영철을 보자마자 베드에서 벌떡 일어나 맨발로 아빠에게 달려가 안겼다.
“아빠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간호사는 조용히 병실을 나왔고 태경과 김 경사도 두 사람의 재회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밖에서 기다렸다.
“내 새끼, 얼마나 아팠을까?”
“아빠 보고 싶었어.”
“아빠도……. 아빠도 우리 세영이 많이 보고 싶었어.”
“정말?”
“그럼.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울지 말자.
절대로 세영이 앞에서 울지 말자.
병원으로 오는 동안 차 안에서 수없이 다짐했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딸을 품에 안은 고영철은 또다시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세영이가 너무 많이 야위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영아 아빠가…….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어. 흑!”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고영철은 야윈 세영이를 꼭 안지도 못 하며 계속 눈물을 쏟았다.
“아빠가……흑! 흐윽!”
“아빠 울지 마.”
고영철과 달리 세영이는 울지 않았다. 아빠를 만났다는 지금 이 자체가 너무 기뻤기 때문이다.
세영이는 아빠의 얼굴 위로 흐르는 굵은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오히려 고영철을 위로했다.
“나 이제 괜찮아. 그러니까 아빠 울지 마.”
“어, 그래. 아빠 안 울게. 미안해. 세영이 수술하는 거 안 무서웠어?”
“하나도 안 무서웠어. 의사 선생님이 아프지 않게 해주셨어.”
“기특해라.”
“근데 아빠 있잖아…….”
세영이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말끝을 흐렸다.
“아빠한테 할 말 있어?”
“응. 있어.”
“뭐든 말해 봐. 아빠가 원하는 건 전부 다 들어줄게.”
“이제 어디 안 갈 거지?”
“그럼. 안 가지. 이제 세영이 두고 절대 어디에도 안 갈 거야.”
“정말이지? 이제 아빠랑 계속 같이 사는 거지?”
“그럼. 당연하지.”
“아빠 근데 있잖아……. 나는 아빠랑 둘이 살고 싶어.”
세영이의 말에 고영철은 다시 마음이 저릿하며 아파 왔다. 혹시라도 또 그 여자와 같이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빠가 약속할게.”
“약속!”
작고 고운 손가락이 바닷바람에 거칠어진 큰 손에 고리를 걸며 엄지를 맞닿았다.
“앞으로 세영이랑 아빠랑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자.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 줄게.”
“응. 세영이랑 아빠랑 행복하게 살아.”
고영철은 이제야 세영이를 제대로 품에 꼭 안으며 안도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 남은 자신의 인생은 딸을 위해 살겠다고.
세영이의 얼굴 위로 웃음이 끊이질 않도록 아이의 건강과 행복만을 위해 살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우리 딸 아빠가 많이 사랑해.”
“아빠, 사랑해요.”
세영이는 아빠의 품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 속에서처럼 햇살같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