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15시간짜리 LT
다음 날.
태경은 여느 때와 같이 오전 회진을 돌고 있었다.
병원 건물 안은 어느 곳을 가든 다섯 번째 바이탈이 가득하다.
외래 진료를 볼 때면 그렇게 심한 단계의 냄새는 자주 없지만, 아무래도 응급실과 병동을 다닐 때면 그 냄새의 변화가 다양하게 퍼져 있다.
각 단계별로 올라갈수록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질수록 그 냄새 또한 고약하게 변해 갔다.
누군가는 이런 냄새를 맡고 코를 막고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태경은 단 한 번도 이 냄새들이 불편하거나 싫지 않았다.
물론 초반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적응하니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환자의 병증을 파악하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되니 참 고마운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네, 이따 또 뵐게요.”
이미 2층 병실을 다 돌았던 태경은 다시 한번 207호에 들어가 환자 한 명을 다시 확인하고 나왔다.
“207호 유지천 환자. 이상 있으면 언제든지 콜해 주세요.”
“네, 원장님.”
2층 스테이션 간호사에게 전달 사항을 마친 뒤 3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잠시 멈췄다. 그리고 가운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207호 유지천 환자.
4단계 극심한 포르말린과 유황 냄새 동반. (어제보다 냄새의 강도가 좀 더 올라감.)
태경은 휴대폰 메모장에 병동 환자 중 전날과 비교해 다섯 번째 바이탈이 변한 환자의 메모를 남겼다.
원래는 늘 소지하던 작은 수첩에 남겼지만, 분실을 우려해 휴대폰으로 바꿨다.
“하!”
휴대폰 화면 위로 쓰인 ‘유지천’이란 이름을 마주한 눈빛에 걱정과 안타까움 그리고 답답함이 가득했다.
“원장님?”
“김 경사님.”
휴대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사이 세영이를 만나고 내려오는 김 경사가 태경을 불렀다.
“일찍 오셨네요.”
“네, 오늘은 출근 전에 아버님께 소식도 전할 겸 일찍 왔습니다.”
“경사님. 도한연은 검찰에서 계속 조사받는 건가요?”
태경은 어제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도한연에 관한 질문을 했다.
“담당 검사님이 법원에 영장을 발부받아 구속 기소될 예정입니다.”
“확실하게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죠?”
“재판해야 하니까 시간이 꽤 걸릴 거예요. 그래도 워낙에 국민들의 관심이 많은 사건이라 다른 사건보다는 결과가 좀 빠를 겁니다.”
“제가 알기로 아동학대가 5년에서 최대 무기징역까지라고 하는데 맞나요?”
“원장님은 모르시는 게 없네요. 맞습니다. 몇 년 전에 정부가 중대 범죄로 간주해서 특례법으로 제정했어요.”
“그럼 도한연이 무기징역을 받을까요?”
세영이의 고통을 직접 발견하고 치료한 태경은 다른 누구보다 도한연이 엄중한 처벌을 받았으면 했다.
“저 역시 같은 마음인데 그 부분은 재판부의 권한이라 저도 기다려 봐야 알 것 같아요. 그래도 담당 검사님이 아동학대 사건에 열정이 있는 분이라 잘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근데 아침부터 그건 왜…….”
태경의 시선이 아까부터 김 경사의 품에 폭 안겨 있는 인형에게 향했다.
“이거요? 귀엽죠?”
지금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김 경사가 요상한 표정의 지렁이 인형을 쓰다듬으며 진심으로 좋아했다.
“…….”
“원장님, 그 표정의 의미는 뭐죠? 이거 세영이가 선물한 거예요.”
“아, 그렇군요. 제가 살짝 오해할 뻔했네요.”
“아무튼 전 이만 출근하겠습니다.”
“네, 출근 잘하세요.”
김 경사와 인사를 나눈 태경은 3층 병동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환자들을 꼼꼼히 살피면서 순서대로 병실을 오가며 VVIP 병동으로 향했다.
“선생님?”
뒤를 돌아보니 아빠의 손을 꼭 잡은 세영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함께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세영이도 안녕.”
점점 떨어지는 염증 수치와 함께 세영이에게서 느껴지는 냄새의 농도 또한 내려가고 있었다. 태경은 아이가 잘 회복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잘 잤어?”
“네, 잘 잤어요.”
아빠와 함께한 세영이의 표정은 어제보다 더 활기가 가득했다.
그건 고영철도 마찬가지였다. 자책함과 미안함에 물들었던 그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보호자분 불편하진 않으셨어요?”
“불편하긴요. 아주 편하게 잤습니다. 제가 어제 인사를 잘 못 드린 것 같아서요. 이렇게 좋은 병실을 주시고 우리 세영이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는 의사로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인사를 잘 못 드렸다는 말과 달리 고영철은 태경만 보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어제 세영이와 재회 후 아이의 상태를 전해 들었을 때도, 새벽에 병동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도 그렇고 만날 때마다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모르고 하는 인사가 아니었다. 자신의 딸을 잘 치료해 준 태경에게 몇 번이나 감사함을 전해도 부족했기에 한 인사였다.
“선생님? 저 보여 줄 거 있어요. 이쪽으로 와보세요.”
태경과 아빠가 인사를 하는 사이 세영이가 가운 끝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병실로 이끌었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이게 다 뭐야?”
“선물 받았어요.”
병실에는 세영이 앞으로 온 택배 물건의 일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조금 전, 최 팀장은 세영이와 고영철을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밤새 쌓인 택배를 보여 줬다.
‘우와! 이게 다 제 거예요?’
‘당연하지.’
‘아빠 나 이거 가져도 돼?’
‘그럼. 세영이 응원하는 분들이 보내 준 거니까 전부 다 가져도 돼.’
그렇게 세영이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랐고 고영철과 최 팀장이 병실로 옮겨 줬다.
“세영이 선물 받아서 좋겠다.”
“밑에 더 많이 있어요. 근데 저 혼자 갖기에는 많아서 친구들 주기로 했어요.”
“친구들?”
“아, 세영이가 자기는 이것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요. 다른 친구들 나눠 가졌으면 한다고 해서 해바라기 센터 선생님과 상의 후에 보육원에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늘 도한연의 친딸인 세리의 물건을 바라보기만 했던 세영이는 갖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무실에 있던 수많은 물건을 보는 순간 행복했지만, 욕심내어 전부 갖진 않기로 한 것이다.
“우리 세영이는 어쩜 이렇게 마음도 멋질까? 세영이 최고다.”
“선생님 이거요.”
“어! 선생님도 주는 거야?”
한쪽 벽에 쪼르르 줄을 맞춰 서 있는 초록색 지렁이 인형 중에 가장 덩치가 큰 인형을 고른 세영이가 앞으로 내밀었다.
“네, 초록이가 여기서 가장 크거든요. 선생님도 여기서 대장이니까요.”
“선생님이 이거 잘 간직할게. 고마워.”
“우와! 멋있다.”
태경이가 고마운 마음을 전하던 그때였다. 별안간 들려오는 우렁찬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지렁이 짱 크다.”
어느새 나타난 우진이가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배꼼 하며 구경하고 있었다.
“안녕, 난 이우진이야.”
세영이랑 눈이 마주치자 우진이는 씩씩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안녕. 난 고세영이야. 같이 놀래? 들어와.”
“정말? 고마워. 근데 이거 다 네 거야?”
“응. 너두 하나 줄까?”
“아니야. 너 해. 난 괜찮아.”
아이들은 금방 친해진다고 하더니 우진이랑 세영이는 금세 친구가 됐다.
“마음에 드는 거 하나 골라 봐. 내가 선물로 줄게.”
“고마워, 그럼 나는…….”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좌우를 배회하더니 정착한 곳이 태경이가 들고 있는 인형이었다.
우진이는 초록색 지렁이 인형과 태경이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대장 선생님?”
“우, 우진아, 이거? 이거 선생님 건데.”
태경이가 곤란한 듯 지렁이 인형을 따라 하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자 세영이와 우진이의 웃음소리가 병실 가득 울려 퍼졌다.
“하하! 선생님 표정 웃겨요.”
“지렁이 표정이랑 닮았다.”
결국 태경이는 우진이에게 초록이를 양보하고 대신 핫핑크색 지렁이 인형을 들고 병실을 나왔다.
* * *
“최 쌤? 그거 뭐야?”
“…….”
휴대폰에 달린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인형에 관해 물었지만 최모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최모나 선생님?”
“최모나? 그게 누구지? 내 이름은 개모나인데.”
“……!”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찬희는 움찔하며 최모나의 어깨를 툭 쳤다.
“에이, 장난인데. 설마 삐진 거 아니지?”
“내가 애야? 삐지게.”
“역시, 최 쌤이 그런 걸로 삐질 리가 없지. 그래서 그 요상한 인형은 뭔데?”
“난 최 쌤이 아니라 개 쌤이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개모나는 리만 환자 보러 간다.”
최모나가 무심한 표정으로 환자를 보러 베드로 향했다.
“삐졌네. 근데 최모나가 삐지기도 하네. 어! 선생님?”
최모나의 반응을 신기하게 생각하던 이찬희가 때마침 응급실로 들어오는 태경에게 향했다.
“선생님 그 지렁이는 뭐예요?”
“선물 받았어.”
“아니, 최 쌤도 비슷한 인형 갖고 있던데……. 그거 혹시 세영이가 준 거예요?”
“맞아.”
“어? 나는 왜 안 주지? 나 세영이랑 친한데.”
“그건 이 선생 혼자만의 생각이겠지.”
“진짜 저 세영이랑 친해요.”
“알았고, 그런데 이 선생 왜 여태 여기 있어? 안 가?”
“가다니. 어디를요?”
태경은 이찬희의 얼굴 뒤로 시선을 넘기며 응급실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이찬희도 그렇고 베드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최모나의 모습도 보였다.
“최 선생도 그렇고 이 선생도 그렇고 뭐하고 있어? 둘 다 퇴근 안 해?”
병원 붙박이다 못해 병원과 거의 한 몸으로 지내는 태경은 자신의 퇴근과는 별개로 직원들의 퇴근은 엄청나게 챙겼다.
“선생님도 안 하시잖아요. 선생님은 왜 이렇게 퇴근을 안 하세요?”
“병원에 있는 게 편하니까.”
우리병원 직원들 사이에서 3대 미스터리 중 하나가 ‘김태경 선생님은 왜 퇴근을 안 할까?’였다.
지금까지 모든 직원이 한 번씩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태경은 방금처럼 간단히 답했다.
굳이 김철기와 자신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말할 필요도 없었고, 농담이 아니라 진짜 병원에 있는 게 환자 한 명이라도 더 볼 수 있어서 마음도 편하고 좋았다.
“아무리 그래도 병원이 편할 순 없는데……. 선생님 혹시 집 없으세요?”
“야! 나도 집은 있어. 자가가 아니어서 그렇지.”
“선생님, 요즘 서울에 자가면 부자예요.”
“참나.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근데 이 선생은 내 퇴근 여부를 왜 이렇게 물어봐.”
그러고 보니 이찬희는 가끔가다 꼭 한 번씩 퇴근에 대해 꾸준히 물었다.
“그거야 우리병원의 수장인 선생님의 건강을 생각하는 후배의 따뜻한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전혀 따뜻해 보이지 않는데. 너, 숙제 안 했지?”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당연히 했습니다.”
늘 퇴근 무렵이 되면 숙제할 생각에 울상이 되어 있던 이찬희였다. 하지만 이제 요령이 생겼기에 어려운 숙제가 아닌 이상 일을 하면서 틈틈이 할 수 있었다.
“선생님 메일 안 보셨죠?”
“정신이 없어서 아직 못 봤어. 그리고 퇴근 물어봤는데 자꾸 딴 얘기 할래?”
“최 쌤은 당직이고 전 오늘 자체 당직하려고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가서 좀 쉬세요.”
“갑자기 자체 당직을 왜?”
“아니요. 갑자기가 아니라 늘 선생님을 본받고 싶은 후배의 갸륵한 마음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이찬희?”
“네, 선생님.”
“내가 집도했던 수술 중에 15시간짜리 LT(Liver transplantation, 간이식 수술)가 있었거든.”
“열, 열다섯 시간짜리 LT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찬희는 저도 모르게 말을 살짝 더듬었다.
‘뭐지? 왠지 x된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순간 기분이 싸한 게 등줄기에 땀이 흐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