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오른쪽 1cm 미만의
“더 좋은 거요?”
“바로 이거.”
태경은 허공 위로 손을 들어 올리며 자신 있게 답했다.
“손가락이요?”
“그렇지. 최고의 기구지.”
놀란 이찬희를 뒤로하고 태경은 환자에게 다가갔다.
“환자분 아직도 배가 아프시죠?”
다행히 환자는 병이 아닌 변비인지라 다섯 번째 바이탈은 미미한 2단계 정도였다.
“아, 네……. 선생님. 너무 아파요.”
베드에 누워있는 남자의 얼굴은 말 그대로 고통스러워 보였다.
“지금 대장에 변이 가득 찼어요.”
“제가 원래 변비가 좀 있는 편이긴 한데 이번에는 열흘이나 변을 못 봤거든요. 이런 적이 처음이에요.”
“맞아요. 그 변비 때문에 변이 제대로 배출이 안 돼서 아프신 거예요.”
사람에게 있어 잘 먹고 잘 내보내는 일은 중요하다.
특히 잘 내보내는 일은 몇 번을 강조해도 될 만큼 생각보다 정말 중요하다.
변비를 단 한 번이라도 걸려 본 사람이라면 그 고통과 괴로움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물며 열흘 가까이 변을 못 보고 독소 가득한 그것들이 대장에 가득 차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 남자 환자는 지금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선생님 그러면 어떡해야 하나요?”
“변을 빼내야죠.”
“어떡해요?”
“원래 관장을 하면 좋지만 지금 변이 너무 단단해서 관이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아요.”
응급실에는 변비로 인해 변을 배출하지 못한 환자가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생각보다 많이 온다. 보통은 관장으로 주입하고 변이 잘 나오게 한다. 하지만 지금 이 환자처럼 오랫동안 변을 보지 못했을 때는 직접 손으로 굳은 변을 파내야 한다.
“관장이 안 되면 전 어떻게 하나요?”
“제가 손가락으로 파 드릴 겁니다.”
“네? 손으로요? 죄송한데. 그거……. 파내면 안 아파요?”
“아마 겉의 것만 파내면 변을 많이 보실 거예요. 그러면 안 아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근데 여기서 하나요? 화장실에서 하지 않고요?”
“네, 환자분. 여기서 합니다.”
가끔 환자들이 민망함에 화장실에서 하면 안 되냐며 묻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술기를 할 수는 없었다.
환자의 항문을 생각하며 조심히 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고, 또한 술기를 시행하는 의사의 자세가 편해야 했다.
화장실에서는 환자도 의사도 편할 수 없기에 그런 이유로 베드에서 술기를 하는 것이다.
“아……. 그럼 부탁드릴게요.”
“여기 패드 좀 깔아 주세요.”
“네, 선생님.”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가 준 넓은 패드를 환자의 엉덩이 부분에 깔았다. 그리고 베드 아래쪽에 커다란 통을 준비했다.
“환자분 힘 빼셔야 해요. ‘후’ 해 보세요.”
“후우~!”
그 뒤 의료용 장갑을 착용한 손가락에 젤을 듬뿍 바르고 새우 자세를 하고 누워 있는 환자의 항문으로 검지를 쑤욱 집어넣었다.
“악! 선생님. 윽!”
“환자분 힘 빼세요. 항문에 힘주시면 제 손가락이 못 움직여요.”
환자도 힘을 주고 싶진 않았지만,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놀라지 마시고 천천히 힘을 빼 주세요.”
“네……. 네.”
태경이 손가락 끝을 구부리며 단단하다 못해 딱딱함이 느껴지는 것들을 조심스럽게 파냈다.
후두둑-
그리고 변을 파내자 딱딱함이 느껴지는 덩어리들이 항문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어, 선생님 잠시만요.”
“환자분 괜찮습니다. 다 됐어요.”
태경은 환자를 달래며 한 번 더 남아 있는 덩어리들을 밖으로 긁어냈다.
“선생님!”
그 순간 환자는 항문에 힘이 풀려 버렸고, 대장을 꽉 차있던 그것들이 순식간에 밖으로 배출됐다.
후득- 후두득-
수없이 변비 환자를 접한 태경은 신속하고 정확한 타이밍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 인해 얼굴과 옷에 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미리 준비한 큰 통 때문에 응급실 바닥도 무사했다.
“죄, 죄송……합니다.”
민망한 환자가 연신 사과를 전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배가 극심하게 아파 치료를 받으러 왔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의사가 직접 손으로 변을 내보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환자는 고통이 사라지자 미안함을 넘어 죄송한 마음마저 들었다.
“선생님들 정말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환자분 고생하셨어요. 이따가 청소하는 직원분 오실 때 감사하다고 해 주세요.”
“아, 예. 그럼요. 당연하죠. 그런데 배가 거의 안 아프네요.”
진짜 신기하게도 쥐어짜듯 아팠던 통증도 사라지고 묵직하고 답답했던 아랫배가 한결 가벼웠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수액 맞고 가시고 외래도 잡아 드릴게요. 그리고 오늘 집에 가면 항문이 후끈하고 잔변이 남아 있으면 변을 또 볼 수도 있어요. 따뜻하게 5분 미만으로 좌욕해 주시고 수분 보충 많이 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여기, 변통 치워지면 환자분 수액 놔주세요.”
“네, 선생님.”
“으악! 이게 무슨 냄새야?”
“어떤 미친 사람이 응급실에 똥을 싼 거야?”
“간호사 선생님. 어디서 똥 냄새나요.”
응급실 내부에 순식간에 퍼진 어마어마한 냄새로 의료진들은 물론 치료를 받던 환자들도 깜짝 놀라며 한 마디씩 던졌다.
“아이고 변비가 심하셨나 보다.”
그 뒤 청소를 담당하는 여사님이 와서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신속하고 빠르게 주변을 정리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아이고. 별게 다 죄송하네. 치료받다 그런 건데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남자의 사과에 괜찮다며 미소를 보인 청소 담당자는 조용히 공기청정기를 가져와 전원을 누르며 응급실을 나갔다.
삑-
공기청정기는 오염지수 농도가 가장 높은 빨간불에 불이 켜지며 열심히 돌아갔다.
그사이 태경은 손을 깨끗이 씻고 스테이션 모니터 앞에 자리했다.
‘평소 나는 냄새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거뜬하지.’
냄새 때문에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평소 맡는 냄새에 이미 적응된 태경에게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았다.
“최 선생?”
“네, 선생님.”
태경이 스테이션 모니터에 자리 잡은 최모나를 불렀다.
“혹시 최근에 전원 온 환자 자료 봤나 해서.”
“207호 캔서 터미널 패이션트(cancer terminal patient, 말기 암 환자) 확인했습니다.”
“잘했네. 최 선생 급한 환자 없지?”
“네, 환자들 검사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여긴 나랑 이 선생이 볼 테니까 가서 좀 쉬다 와.”
“괜찮습…….”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지 말고. 어차피 최 선생 쉬고 오면 이 선생도 쉬라고 할 거야. 응급 와서 손 부족하면 바로 콜할 거니까 가서 쉬어.”
“네, 알겠습니다. 저기……. 선생님?”
최모나는 할 말이 있는지 다시 등을 돌려 태경에게 다가왔다.
“어. 왜?”
“세영이 어린이는 퇴원하면 해바라기 센터로 가는 거 맞습니까?”
해바라기 센터는 아동 폭력, 가정 폭력, 성폭력 등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치료와 심리 치료를 돕는 곳이었다.
“그렇지. 그곳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과 심리치료사 선생님들이 심리적인 부분이 잘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거야.”
“잘됐습니다.”
“왜, 막상 세영이 갈 생각하니까 우리 최 선생이 많이 아쉬운 가 봐.”
“아니, 그게……. 전 그럼 쉬다 오겠습니다.”
최모나는 자신의 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서둘러 인사를 하며 응급실을 나갔다.
“거북이 2호의 성장이 볼만하네.”
“아으 냄새. 무슨 거북이요?”
태경의 변비 환자 술기를 보다가 다른 환자 진료를 보고 온 이찬희가 다가오며 말했다.
“우리 거북이 1호도 잘하고 있어.”
“예? 또 거북이 타령을 하시네. 그것보다 선생님 대단하시네요.”
“방금 변비 환자?”
“네.”
“뭐 대단한 일 했다고 그래. 의사들 다 하는 일인데.”
의사들이 다 하는 일인 건 맞지만 관장을 많이 한 이찬희는 아직 저렇게 직접 하지는 못했다.
태경의 말대로 술기 자체는 대단하다고 할 수 없고 손으로 하는 게 전부이긴 했다. 하지만 뭔가 그 더러운 변을 직접 배출하는 게 대단해 보였다. 실제로 하다 보면 얼굴이나 몸에 변이 다 튈 때도 있고 말 못 할 고충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별일 아니니까 호들갑 떨지 마.”
“어! 유지천 환자?”
이찬희가 태경의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 오시고 저 환자처럼 우리병원으로 옮긴 환자가 적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게. 나 하나 때문에 일부러 옮기시다니 감사하지.”
“근데 저분은 수술 후 항암이신 건가요?”
“아직 환자 파악 못 했나 봐?”
태경이 모니터에 고정했던 시선을 이찬희에게 옮기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타원 자료를 자세히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리 와 봐. 같이 보자. 나야 다 알지만 이 선생도 알아야지.”
“네. 제가 진작 확인해 봤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바쁘더라도 타원 환자 오면 잊지 말고 확인해 봐.”
“네, 알겠습니다.”
딸칵- 딸칵-
태경은 유지천 환자의 예전 파일을 클릭했다.
“근데 유지천 환자하고 선생님이 무슨 인연이라도 있으세요?”
“인연?”
“유달리 관심을 두고 신경을 쓰시는 것 같아서요.”
사실 태경은 모든 환자에게 관심과 신경을 많이 쓴다. 더군다나 의사와 환자 간의 믿음과 신뢰, 유대 관계를 나타내는 라뽀(Rapport)도 굉장히 좋다.
그건 이찬희뿐만 아니라 우리병원 직원이라면 다들 똑같이 느끼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가끔 저렇게까지 환자에게 세심하게 신경을 쓸까 싶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안 그래도 회진을 많이 하는데 유지천 환자는 그보다 더 자주 들여다보고 상태를 확인하곤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태경이 저 정도로 신경을 쓰니 이찬희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지인분이세요?”
“아니, 전혀. 유지천 환자분은 뭐랄까 좀 아픈 사연이 있어.”
“아픈 사연이요?”
“사실 이분은 건강 검진하다가 초기에 암을 발견했어. 여기 봐. 그때 기록지야.”
“어, 정말 그러네요.”
“심지어 내가 초음파로 발견했지. 보면 오른쪽 유방 1cm 미만의 작고…….”
태경은 유지천의 그 당시 초음파 사진을 클릭했다.
“여기 그때 초음파를 보면 경계가 불규칙하잖아. 그리고 이 가슴에 있는 펙토랄리스 매이저(pectoralis major, 가슴에 있는 큰 근육)에 평행하게 더 길고. 그래서 암을 의심했고 바로 biopsy(생검, 주사기 등으로 조직 일부를 떼어 내서 현미경으로 악성 여부를 진단하는 방법)를 했어. 그리고 암으로 진단됐고, 이후 암 병변만 간단하게 절제하면 깔끔하게 끝날 일이었지. 그랬었지.”
태경의 말 그대로였다. 당시 초음파 사진은 물론 결과 기록지는 이찬희가 봐도 완전 초기 암이었다.
암이 어느 정도 꽤 진행되어 결과를 받은 사람들은 간혹 초기에 발견됐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을 한다.
그만큼 초기와 병이 진행된 상태는 치료법도 환자의 통증도 생존율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지천 환자는 초기에 암을 발견한 뒤 어쩌다 상태가 이토록 극심한 말기 암 환자가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근데 왜 저렇게 된 건가요? 도대체 환자분께 어떤 일이 있었길래…….”
“아무 일도.”
태경의 입에서는 전혀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그래서 큰일이 되었지.”
“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