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21화 (120/472)

121화. 파블로프의 개

“잠시만요?”

김진경이 이동규의 팔을 잡고 지하철 출구 쪽으로 등을 돌리려 하자 중년 여자가 별안간 김진경의 손목을 잡았다.

그 순간 소맷자락이 중년 여자 손에 의해 미끄러져 올라가고 그 안에 있던 흉터 자국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머나, 저런!”

중년 여자는 딱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듯 눈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흉터에 고정된 시선을 김진경에게 천천히 옮긴 뒤 음흉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우리 여자분, 지금 삶이 힘드시죠?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데…….”

뻔뻔하고 무례한 태도에 어이가 없던 찰나,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여자분께서 인상은 너무 좋으신데 보니까 마음에 화도 울분도 많으시네요. 저희랑 잠시 이야기 나누시면서 마음을 정화하는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큭! 하하!”

여자의 말을 듣고 있던 김진경은 갑자기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마음의 정화요?”

다 웃고 난 김진경은 그들에게 반문했다.

“어떻게 제 마음을 정화해 줄 건데요?”

“좋은 말씀과 듣고 그것을 실천하고 또 함께 모여 기도를 하며 마음속 고민과 힘…….”

“좋은 말씀으로 사람들 현혹하고, 실천한다고 하면서 지금처럼 주변에 새로운 먹잇감 찾아 나서서 포교하고, 기도한답시고 돈 다 빼내려고 하는 건 아니고요?”

“……!”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젊은 여자가 당황하며 아무 말도 못 하자 옆에 있던 중년 여자가 급하게 말을 이으며 정리하려 했다.

“진짜 오해하셨나 보네. 저희는 그냥 좋은 말씀을 전하는 작은 단체예요. 생각하시는 그런 이상한…….”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사이비 종교 맞잖아요.”

“사, 사이비 종교라니요? 무슨 그런 말을. 실례가 많았네요.”

김진경의 대놓고 때리는 팩폭 사이다에 당황한 두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를 옮겼다.

“놀라셨죠?”

“아, 아니요.”

평상시 화를 내지도 않고 잘 웃지도 않고 말수도 적은 김진경의 저런 모습을 처음 본 이동규는 살짝 놀란 모습이었다.

사실 저런 사람들이야 항상 있는 집단인데 왜 저렇게까지 정색을 할까 싶었다.

“그보다 진경 씨, 괜찮으세……!”

놀란 마음을 티 내지 않고 김진경에게 묻던 이동규는 말을 하다 말문을 닫았다.

단호했던 표정과 말투와는 달리 김진경의 두 손은 사시나무 떨듯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진경 씨, 잠깐 여기 좀 앉아 있어요. 금방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앉아 있어요.”

이동규는 김진경을 바로 뒤편에 있는 벤치로 데려간 뒤 맞은편 편의점으로 득달같이 달려가 손에 생수를 들고 돌아왔다.

“자요? 물 좀 마셔요.”

“네…….”

가방에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꺼낸 김진경은 물과 함께 약을 먹었다.

“고마워요.”

“고맙긴요. 그보다 진경 씨 많이 놀란 것 같던데 좀 괜찮아요?”

“괜찮아요. 저보다 동규 씨가 더 놀란 거 같은데요?”

“사실 진경 씨 그런 모습을 처음 봐서요. 정말 괜찮은 거죠?”

“아! 이거요?”

떨림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내밀며 김진경이 말을 이었다.

“파블로프의 개라고나 할까요?”

“네……?”

“동규 씨 파블로프의 개 뭔지 아시죠?”

“종소리에 반응하는 개 말하는 거죠?”

“네.”

파블로프의 개는 밥을 줄 때 종소리를 들려줬더니 나중에 종소리만 들려줘도 개가 밥을 주는 줄 알고 침을 흘리는 고전적 조건형성이었다.

“아까 동규 씨한테 말 걸었던, 아니 포교하려고 했던 그 사이비 종교 사람들이 저한테는 파블로프의 개나 마찬가지예요.”

“……?”

“저런 사람들 보기만 해도 전 울화가 치밀어 올라요. 우리 집이 사이비 종교 때문에 박살이 났거든요. 엄마가 사이비에 빠져서 맹신하고 있어요.”

“……!”

엄청난 발언에 이동규는 뭐라고 반응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회사 사람들이 저한테 궁금한 거 많잖아요. 왜 번번이 회식은 참석을 안 하는지? 왜 늘 죽상인지? 왜 다른 사람들이랑 못 어울리는지? 정말 무슨 우울증이라도 걸린 건지?”

김진경도 회사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하는 말들을 전부 알고 있었다. 개중에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도 있었지만 일일이 대응하기에는 삶이 너무 힘들기에 무시할 뿐이었다.

“그게 사실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가 사이비에 빠져서 병을 키웠어요. 그래서 지금 말기 암으로 병원에 계세요.”

어디 가서 차마 말하기도 부끄러운 이 사실을 왜 이동규에게 말하는지 김진경 본인도 알지 못했다. 다만 우연히 퇴근길에 접한 사이비 무리를 보니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지금 이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진경 씨가 많이 힘들었겠어요.”

김진경의 말을 들은 이동규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왜 이제야 그녀의 표정이 그렇게 쓸쓸하고 우울해 보였는지 모든 게 이해가 됐다.

“모르겠어요. 이제 힘든 것도 제 삶의 일부분이 된 것 같아요. 저 사실 동규 씨 볼 때마다 부러웠어요.”

“저를요?”

“네. 가끔 퇴근길에 가족분들과 통화하는 소리를 들을 때도, 오늘처럼 여동생의 간식을 사 갈 때도 그런 모습들이 부럽더라고요.”

“그랬군요. 저기, 그런데 어머님께서 어쩌다가 그렇게 되셨는지…….”

이쯤 되니 궁금해진 이동규는 아주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짝을 이뤄 동네에서 포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한테 넘어가셨어요.”

김진경은 가끔 이동규를 볼 때마다 예전의 행복했던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정한 아빠와 상냥하고 따뜻한 엄마, 장난기 많은 남동생까지. 여느 가정처럼 자신 집안도 평범했다.

특히 엄마는 가족들을 살뜰히 챙기며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변한 건 동네를 돌며 포교를 하는 사이비 종교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처음에는 일상적인 이야기로 얼굴을 익힌 그들은 조금씩 엄마에게 교묘하게 점점 더 접근했다.

집 앞에서 쓰레기를 버릴 때도, 근처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도, 외출하고 돌아올 때도 모든 걸 우연을 가장해 계획적으로 엄마를 구워삶았다.

여러 번 거절하며 손사래를 치던 엄마도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상냥함과 친절한 수법에 조금씩 귀를 기울였다.

티브이 속에서만 보던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마치 영화 속 드라마 속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자기 가족에게 벌어진 것이다.

누가 저런 사이비에 빠지냐고 말도 안 된다고.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나 그런 데 빠진다고 말을 하던 엄마가 누구보다 심하게 빠져들었다.

‘엄마 또 나가?’

‘어. 엄마 모임이 있어서.’

‘무슨 모임?’

‘그냥. 아줌마들 계모임.’

‘당신 계모임 저번 달에 했잖아.’

‘이번에 모임에서 좋은 일 있어서 한 번 더 모이기로 했어요. 갔다 올게.’

엄마는 점점 외출이 잦아들었고 그때마다 그럴듯한 이유를 가족들은 믿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엄마는 이미 깊게 빠져들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제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사이비 종교를 다룬 다큐를 보니까 가족들의 고통이 말이 아니더라고요.”

“맞아요. 나머지 가족들이 너무 괴로워요.”

가족들의 그 괴로움과 심적 고통은 겪어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을 만큼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집안이 그렇게 되고 주변에 지인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가족들이 엄마 하나 못 빼내 오냐고.”

“말이 쉽지, 그 단체에서 빼내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전 대학까지 휴학하고 아빠는 휴가 끌어다 쓰면서 주말이면 엄마 찾아 나서고 아주 난리가 아니었어요.”

김진경은 주말마다 아빠와 함께 엄마가 머무는 종교 시설을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이미 뼛속까지 사상에 물든 엄마는 가족보다 자신이 빠진 그 종교가 우선이었다.

“경찰에 신고해도 이게 종교적인 부분이라 개입이 어려워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나라에서 종교적인 부분은 크게 개입을 안 하는 거 같더라고요.”

“맞아요. 자유민주주의 국가고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서 경찰이 큰 사건이 있지 않은 이상 직접 엄마를 빼내기는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김진경은 학생인 동생 대신 또다시 아빠와 함께 엄마를 찾아갔지만, 오히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엄마는 가족들에게 화를 냈다.

‘엄마 제발 좀 돌아와.’

‘여보! 정신 좀 차려!’

‘왜 날 이해 못 해? 어? 여보, 진경아, 우리 함께하자. 응? 다들 사탄에 물들었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 엄마에게 질려 버린 아빠는 지방으로 발령 난 뒤 동생과 함께 내려갔다.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진경은 할 만큼 했다며 그만하자는 아빠의 말에 엄마를 잊고 학교생활에 몰두했다.

사이비에 빠지면 답도 없다는 말을 몸소 보여 주는 엄마를 더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김진경은 자신이 살기 위해 엄마를 마음속에서 지웠다.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엄마를 일부러 더 생각하지 않고 지냈어요.”

“진경 씨 마음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지금까지 김진경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동규는 그녀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고 지쳤으면 저랬을까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도 잘 지내겠지. 엄마가 그렇게 좋아 죽겠다는 그 집단 속에서 잘 지내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내 일상에 복귀했어요. 그런데 다시 마음이 안정될 즈음 엄마가 다시 돌아왔어요.”

“어머님께서 직접이요?”

“네, 어느 날 문득 집에 돌아왔어요. 소식을 듣고 아빠도 바로 올라오셨고요.”

한참 시설에 머물며 연락이 닿지 않던 엄마는 거짓말처럼 집에 돌아왔다.

가족들은 이제야 엄마가 정신을 차린 줄 알았지만, 그날 엄마가 한 말은 아직까지 김진경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나. 암이래. 유방암 초기.’

유지천은 병과 함께 가족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뭐!? 당신 그게 진짜야?’

‘엄마 그럼 이럴 게 아니라 내일 당장 병원 가서 수술 날짜 잡아야지.’

‘그래, 진경이 말대로 내일 당장 병원부터 가자고. 일단 당신 몸이 우선이잖아. 치료부터 받자고. 응?’

‘당연히 치료받을 거예요. 우리 진 선생님께서 치료해 주실 거니까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

‘여보!’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진 선생님만이 날 치료할 수 있어. 그분은 모든 걸 다 하실 수 있어.’

엄마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인 진 선생이란 작자가 자신을 치료해 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 믿음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가족들의 감시가 소홀해진 새벽에 또 집을 나가 그 단체로 숨어 버렸다.

그때부터 김진경의 삶은 급격하게 무너졌다.

사이비 종교 시설로 숨어 버린 유지천은 몸이 안 좋을 때면 다시 돌아왔다. 김진경은 그때마다 응급실에 데려가거나 병원에 입원시켰지만, 역시나 틈만 나면 유지천은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괴로운 일상을 반복하며 또 연기처럼 증발해 버린 유지천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돌아온 것이다.

“근데 가족이 참 그런 거 같아요. 이 연을 끊으려고 해도 쉽게 끊어지지 않아요.”

“왜 아니겠어요.”

“어느 날은 속으로 너무 힘드니까 차라리 엄마가 나쁜 엄마였다면, 그랬다면 내가 진즉에 포기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엄마 참 좋은 엄마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엄마를 포기 못 하는 거 같아요.”

“진경 씨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아니에요. 엄마니까……. 엄마가 나 잘 키워 줬으니까 내가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야겠다는 그런 생각뿐이에요.”

김진경은 속으로 엄마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자신도 사람이기에 아무리 가족이라도 엄마가 미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에게 불쌍한 마음이 더 컸다.

“주제넘은 생각이지만 어머님께서 남은 시간은 편하게 진경 씨랑 대화도 많이 하시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저도요. 그러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지금 제 소원이 딱 하나 있는데 엄마랑 여행 가는 거예요. 엄마랑 여행 한 번을 못 가 봤거든요.”

“그 소원 꼭 이뤄지길 바랄게요.”

“고마워요. 그리고 오늘 제 얘기 들어 준 것도 정말 고마워요.”

김진경은 유쾌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준 이동규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고맙긴요. 제가 더 고맙죠. 그리고 진경 씨 마음 답답할 때 언제든지 저한테 말해요. 제가 원래 듣는 거 잘하거든요.”

이동규는 힘든 상황 속에 놓인 김진경이 참 안쓰러웠다. 자신도 뭔가 작은 힘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동규 씨, 저 이만 가 볼게요.”

“그래요. 얼른 가요. 조심히 가요.”

“네, 들어가세요.”

김진경은 이동규와 인사를 하며 엄마가 있는 우리병원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팥빵이 담긴 상자가 시린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달래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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