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24화 (123/472)

124화. 상처를 위한 시도

“환자요?”

“네. 24세 여자로 왼쪽 손목에 라서레이션(laceration, 베인 상처) 2cm 정도 있습니다.”

“원인은요?”

“자해입니다. 음주 상태로 소주 반 병 마셨답니다.”

“바로 갈게요.”

태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자가 있는 베드로 향했다.

챠륵-

“환자분, 저는 오늘 응급실 외과 당직 의사입니다.”

마른 체구와 청순한 외모의 여자가 물끄러미 태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개를 떨궜다.

“환자분 잠깐 상처 좀 볼게요.”

가끔 오늘처럼 응급실에 오면 꼭 마주치게 되는 환자들이 있다.

교통사고 혹은 골절 등의 환자도 꼭 보이지만 일정 시간이 되면 등장하는 환자들이 있다.

이런 환자들은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수가 늘어나며 늦은 밤과 새벽이 될수록 스멀스멀 나타난다.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 음주로 인한 난폭 환자를 떠올리겠지만, 아니었다. 이들은 응급실에서 종종 마주치는 환자가 아니라 마치 응급실에 있는 환자 베드처럼 항상 있는 환자들이다.

바로 지금 태경이 보고 있는 자해 환자들이었다.

“환자분 손목 좀 볼 수 있을까요?”

태경이 가만히 있는 환자에게 다시 한번 말을 하자 그제야 여자가 자기 손을 들어 보였다.

“제가 좀 볼게요.”

응급실에는 지금 이 환자처럼 자해한 젊은 환자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자주 온다. 근데 지금 이 환자도 그동안 자해를 한 환자들과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대부분 커터 칼 같은 것으로 손목을 그어서 온다. 그 손목을 보면 과거의 흔적들이 있었다.

이 여자 환자도 지금의 상처 위로 하나의 흉터가 더 보였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생명에 아무 지장이 없는 곳에 자해했다는 거였다.

“환자분 다행히 지금 아주 상처가 깊지는 않아요. 그래서 바로 봉합해 드릴게요.”

“……네.”

“봉합 준비해 주세요. 나일론(nylon, 녹지 않는 실로 피부 봉합 시 사용될 수 있음) 4-0(바늘과 거기에 달린 실에 대한 굵기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태경은 환자가 누워 있는 베드 왼쪽으로 가서 앉은 뒤, 소독 장비를 펼치고 나서 자해한 상처를 소독했다.

“환자분 지금 소독할게요. 따끔합니다.”

“윽!”

빨간약이 닿자 환자는 움찔하면서 소리를 냈다.

“자, 이제 마취할게요.”

“저기……. 잠시만요.”

“네?”

“마취 많이 아플까요?”

지금까지 무관심한 듯 아무 반응이 없던 환자가 태경에게 물었다.

“손목에 상처 냈을 때보다는 안 아플 거예요.”

“네…….”

“아플까 봐 겁나세요?”

“예…….”

“이렇게 무서워하면서 이런 행동은 왜 하셨어요?”

아직 한참 젊은 나이에 자해한 사람들은 보면 태경은 마음이 안 좋았다.

“…….”

환자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 따끔해요.”

바늘이 자해 상처 주변으로 8번 정도 마취약을 주입하려고 들어갔다 나왔다. 환자는 그때마다 움찔움찔하며 표정을 찡그렸다.

“마취됐고요. 이제 봉합할게요.”

마취 여부를 확인한 태경이 봉합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환자의 상체가 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가슴 쪽이 과하게 움직이다가 떨리면서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후우!”

환자는 지금 울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울음을 참고 있었다.

“환자분?”

조용히 봉합을 시작한 태경이 힘들어 보이는 환자에게 말을 건넸다.

“뭐가 그리 슬프세요?”

“아… 아니에요.”

“많이 서러우시죠? 많이 힘드신 것 같아요. 환자분?”

“네?”

“고생했어요.”

태경의 말에 참았던 울음이 터진 환자는 더 크게 떨면서 호흡했다. 참았던 서러운 울음이 뚫고 나와 처치실에 울렸다.

“혹시 누구랑 다투었어요?”

“아니요.”

“그럼 그냥 혼자서 그러신 거예요?”

“네…….”

“자해하면 조금 나아지세요?”

“아니요. 전혀…….”

“근데 왜 했어요?”

“힘드니까요.”

태경도 손목에 상처를 입은 환자도 알고 있다. 내 몸에 상처를 입혀 자해한다고 나아지는 게 없다는 것을. 하지만 방금 이 환자의 짧은 대답처럼 참고 견디고 견디다가 너무 힘이 들어 순간 잘못된 생각을 한 것이다.

“무슨 일이신데요?”

태경이 자꾸 질문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해한 환자의 개인적인 일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자해도 한 번 두 번 시도하다 보면 습관이 될 수 있기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사실 이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이 상처의 봉합이 아니다. 마음이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자해의 가능성과 나아가 자살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신과적 문제가 훨씬 급하고 중요했다.

태경은 그 시작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게 엄마가 사이비에 빠졌어요. 몸에 암이 있는데…….”

“…….”

“암 환자인데,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거기에만 몰두하세요. 그게 너무 힘들어요.”

“많이 힘드실 거 같은데 혹시 그 문제를 토로할 사람이 있나요?”

환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없어요.”

“아버지는요?”

“당연히 아시죠. 근데 저보다 더 힘들어하세요. 이 문제로 아빠도 충분히 힘든데 말을 꺼낼 수가 없어요.”

“그래도 주변에 보시면 한없이 받아 주는 이가 있을 거예요.”

“말하면 그거 듣는 사람이 힘들잖아요.”

“아니요. 환자분.”

쓴웃음을 보이며 말하는 환자에게 태경이 단호하게 답했다.

“말 안 하면 환자분 안에서 곪잖아요.”

“…….”

환자는 태경의 답변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휘몰아치듯 일어난 집안일로 인해 자신이 곪아 가고 있다는 그 간단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엄마에 대한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환자분 상담 한번 받아 보실래요?”

“아니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시간이 없기도 하고 뭔가 크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환자분 혹시 지금 병원에 왜 오셨어요?”

“네?”

“아프니까 상처 봉합하려고 오셨죠?”

“네.”

“아프고 피가 나면 봉합하거나 약을 먹거나 치료하려고 병원을 오잖아요. 제 말 맞죠?”

“네.”

“마음도 똑같아요. 아프면 치료해야 해요. 살과 같이 봉합이 필요하면 봉합해야 하고 살이 붙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도 똑같아요. 환자분도 아시죠? 환자분 마음에 상처가 있어요.”

“…….”

“치료가 필요해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으면 병원을 옮겨서 나와 맞는 선생님을 찾거나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세요.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시도는 계속해야 해요. 상처가 있으면 아프니까요.”

“선생님 말씀을 나긋나긋하게 하시네요.”

“그런가요? 환자분 마음에 닿았으면 해서요.”

“…….”

사람은 때론 아무것도 아닌 작은 말 한마디에 위로 받을 때가 있다. 환자도 그랬다.

그저 상처 난 손목을 치료하기 위해 온 병원이었다. 그런데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의 위로도 함께 받게 된 것이다.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봉합할게요. 그리고 어떤 여성분이 옆에 와서 환자분 마음에 문을 노크할 거예요. 혹시 불편하시면 아무 말 안 해도 돼요. 그냥 하는 말을 들어나 볼래요?”

“…….”

“싫으면 억지로 하지…….”

“받아 볼게요.”

“그래요. 환자분 고마워요. 환자분의 소중한 몸과 마음을 돌보려고 해 줘서 고마워요.”

“저기, 근데 선생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지…….”

“궁금하세요?”

“네.”

“간단해요. 사람 살리는 의사니까요.”

태경은 지금 이 여자 환자가 특별해서 한 게 아니었다. 이런 비슷한 환자가 내원할 때면 태경은 항상 이래 왔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모든 환자의 반응이 좋았건 건 아니다. 지금처럼 받아들인 환자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환자도 있었다.

간혹 몸에 병이나 고치지 쓸데없이 아는 척하지 말라고 말을 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태경이 계속 이런 환자들에게 똑같이 하는 이유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아주 간단한 이유였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환자들과 살기 위해 수술 받는 환자들을 볼 때면 삶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해나 자살 시도를 한 환자들을 보면 작은 도움이나마 주고 싶었다.

“선생님 참 좋은 의사인 거 같아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그런 제가 한마디만 더 해도 될까요?”

“아, 네.”

“환자분께서 지금부터 이거 하나만 기억해 줬으면 해서요. 환자분의 몸과 마음이 참 귀하다는 거요. 아셨죠?”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태경은 봉합을 끝낸 뒤 환자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 당직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여기 ER인데요. 환자분이 진료가 필요한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태경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어찌 보면 단순한 봉합이지만 태경은 손으로만 봉합을 한 것이 아니다. 손과 입과 마음으로 봉합을 한 것이다.

심각한 질환이나 병, 또는 사고로 큰 수술을 한 환자들의 결과가 좋을 때만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다.

방금처럼 작은 일일지라도 환자가 긍정의 신호를 보내면 의사로서 똑같이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ER 내려온 보람이 있네.”

오늘은 유난히 피곤했기에 사실 잠이나 실컷 자고 싶었다. 후배 놈의 장염 때문에 억지로 내려온 마음이 컸었다. 그런데 환자의 반응을 보니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맛에 의사하는 거지.”

“김 선생님 괜찮으세요?”

“네? 왜요?”

응급실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태경에게 물었다.

“뭔 일 생겼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걸어오시길래 너무 힘드셔서 그런 건가 싶어서요.”

“아니에요. 기분 좋아서 웃었습니다.”

“여자 친구 연락이라도 온 거예요?”

“솔로입니다.”

“아! 제가 실례를……. 근데 왜 기분 좋으신 거예요?”

간호사는 방금까지 환자를 치료하고 온 사람이 뭐가 기분이 좋을까 싶었다.

“가끔 응급실에서 기분 좋을 일이 있더라고요.”

“가만 보면 김 선생님 참 특이한 분이세요.”

“제가요?”

“네. 제가 그때마다 봐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아무리 바빠도 환자 앞에서는 늘 표정이 좋으시더라고요.”

“그랬나요? 저도 몰랐네요.”

“힘들면 표정에 나타나는 법인데 그러고 보면 선생님도 대단하세요.”

“아, 이걸 오늘 응급실 바쁘다고 저 너무 띄워 주시네요.”

“어머. 티 났어요?”

“네. 티 났습니다.”

“김 선생님 여기 좀!”

“네, 과장님 갑니다.”

간호사랑 대화하는 사이 한쪽에서 부르는 소리에 태경이 환자가 있는 곳으로 급하게 향했다.

그날, 태경이 손목에 자해를 치료해 준 여자 환자가 유지천의 딸 김진경이었다.

김진경은 그날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꾸준히 상담을 받았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어느 날 태경은 김진경의 손에 이끌려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온 유지천을 마주했다.

초기로 암을 진단받은 뒤 수술을 받지 않고 있던 유지천의 상태를 보고 안타까워 탄식하며 진료를 봤었다.

“유지천 환자분, 무조건 수술해야 합니다.”

그렇게 환자를 타이르기도 하고 목소리도 높이며 수술과 치료에 대한 강조를 격하게 한 뒤 진료를 마쳤다.

“아셨죠? 환자분. 반드시 꼭 치료받으셔야 해요. 네?”

“제가 엄마 잘 설득할게요. 그리고 선생님? 저 기억하시죠?”

그 뒤 진료가 끝나고 유지천의 손을 잡고 진료실을 나서던 김진경이 태경에게 말했다.

“그날, 응급실에서 응원해준 선생님이 덕분에 잘 버티면서 지내고 있어요.”

물론 그녀의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김진경의 표정은 몇 달 전보다 좀 더 나아졌기에 태경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저 잡아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김진경은 엄마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인사를 하며 진료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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