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환자의 주권
손 소독을 철저하게 한 뒤 일회용 파란색 가운을 입고 일회용 장갑을 끼고서 유지천 환자가 있는 1인실 병동으로 들어갔다.
“……!”
그런데 순간 태경이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니 확실히 이상하다.
‘이게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지?’
다섯 번째 바이탈이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었다.
조금 전 병동 간호사가 전화로 알려 준 유지천의 상태를 들었을 때도 당연히 냄새가 심해졌을 거라 예상했었다.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지면 그에 따라 다섯 번째 바이탈도 안 좋아졌으니까. 그런데 포르말린에 섞인 유황 그리고 시큼하면서도 역겹고 고약함을 풍기는 냄새가 미세하게 느껴졌다.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히 새로운 냄새였다. 다른 건 모르지만 환자들에게 나는 다섯 번째 바이탈에 관한 냄새의 변화는 아주 미약한 부분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혹시…….’
태경은 뭔가 짚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이 신비한 냄새로 여러 환자의 치료에 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태경은 증거 중심의 교육받은 의사였다.
그렇기에 단순히 새로운 냄새만을 갖고 바로 어떤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아직 검증되지 않고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환자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진 이유가 일단 먼저였다.
“환자분 지금 기운이 없죠? 여기가 어딘지는 알겠어요?”
“네…….”
태경의 물음에 기운 없는 유지천이 작게 답했다. 환자를 향한 시선이 빠르게 모니터로 옮겨졌다.
모니터에 나타난 환자의 혈압은 86/55이고 산소포화도는 90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 선생님.
태경이 급하게 전화를 들었다.
“지금 중환자실 예약하고 ABGA(동맥혈 가스 분석)해 주세요.”
“저기, 선생님! 안 돼요. 중환자실은 안 돼요.”
“네?”
당황한 태경은 전화를 끊고 유지천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환자분 이러다 돌아가세요.”
보통의 환자라면 소리를 높였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유지천 환자는 보통의 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이비에 빠진 환자였다. 의학적 지식이 가득한 의사보다 저들은 교주의 규칙과 말이 우선이었다.
그렇기에 소리를 높여 환자를 설득하는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억지로 중환자실로 밀고 들어가고 싶지만 환자가 강하게 거부하는 이상 그러기란 쉽지 않았다.
태경은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환자분 제 말 들으세요. 아니, 들으셔야 해요.”
“선생님이 저 많이 신경 써 주시는 거 잘 알아요. 저 안 죽어요. 그런데요 선생님. 저 중환자실은 안 돼요.”
몸에 기운이 없는 와중에도 얼마나 중환자실을 가기 싫었는지 유지천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중환자실을 안 가려고 하는 것도 환자분이 믿고 있는 그 교주란 사람 때문인가요?”
“…….”
굳이 유지천의 답변을 듣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상태가 더 악화할 수 있기에 보호자에게 연락할게요.”
“…….”
유지천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태경은 환자에게 필요한 오더를 내리고 병실 밖으로 나와 스테이션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지?’
갑자기 저렇게 몸이 나빠지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물론 호중구감소증으로 그럴 가능성이 항상 있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 옆에 있던 환자, 아까 보니까 상태가 안 좋아서 병실 옮기는 것 같던데…….”
“1인실로 옮겼대. 그이는 사람은 참 순해 보이는데 딸이랑 대화할 때 보면 은근히 고집이 엄청나더라.”
“원래 사이비에 빠지면 가족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하잖아.”
“하긴 그건 그래. 왜 답이 없다고 하잖아. 보면 참 딱해.”
유지천 환자와 같은 병실을 사용했던 207호 환자와 보호자의 대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들은 복도를 지나며 계속 대화를 이어 갔지만 태경은 사망 가능성이 높아진 유지천 환자로 인해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있었다.
‘혹시 그 생명수 때문인가?’
사실 가장 가능성을 크게 두고 의심되는 부분은 역시나 김진경이 당부했던 문제의 생명수였다.
하지만 태경이 몇 번이나 주변을 확인해 봤지만 문제의 페트병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런데 그이는 그 노란 가방에서 맨날 뭘 꺼내 먹는 거야? 보니까 화장실 갈 때도 그렇고 잠깐 병동 나올 때도 갖고 다니더라.”
“그 소스 통? 나도 잘 몰라. 워낙 말수가 적은 여자라 말을 잘 안 해.”
그때였다. 한 귀로 듣고 흘리고 있던 태경은 사람들의 말소리에 해답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노란 가방? 소스 통?’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스치며 확신한 태경은 다시 일회용 가운을 입고 환자의 병실로 뛰어갔다.
‘분명 틀림없어.’
병실로 들어온 태경은 유지천 환자의 베드 주변을 살폈다. 베드 아래쪽부터 사물함과 서랍장을 확인하던 분주한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선생님? 뭐 하세요?”
유지천이 물었지만 태경은 답하지 않았다.
‘노란 가방!’
사물함 안에 있는 검은 가방 뒤로 살짝 삐져나온 노란 천이 보였다. 성인 남자의 손바닥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가방이 태경의 손에 의해 딸려 나왔다.
전에 페트병을 찾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가방이었다. 아마도 유지천이 숨겨 놨던 것 같다.
“선생님!”
유지천이 다급하게 말했지만 태경의 행동이 더 빨랐다.
지익-
지퍼를 열자 손가락 길이만 한 작은 소스 통이 가방 안에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래서 몰랐던 거야.’
언제나처럼 생명수가 페트병에 담겨 있을 거로 생각한 김진경은 페트병에만 초점을 맞췄다. 유지천이 작은 소스 통과 가방에 이런 식으로 소분해서 숨겨 둘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 어……. 선생님 그거 귀한 거예요. 그냥 두세요. 이제 구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구하지도 못해요. 선생님?”
태경은 유지천의 말을 뒤로한 채 소스 통을 열었다. 문제의 소스 통을 열자 상한 음식 냄새가 강하게 올라왔다.
‘이게 도대체 뭐지?’
겉면이 불투명한 소스 통의 뚜껑을 열자 뭔가 물과 함께 걸쭉한 무언가도 들어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게 무엇이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유지천이 맹신하는 문제의 생명수는 상했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세균도 득실하게 들어 있을 게 분명했다.
“환자분 아까 들어올 때 보니까 화장실에서 변 냄새가 심하게 났었는데 설사 증세도 있으시죠?”
“네, 온몸이 쑤시면서 그러네요.”
“환자분 변 배양 검사도 나갈게요.”
“아, 저 선생님?”
태경이 문제의 소스 통이 담긴 노란 가방을 들고 나가려 하자 유지천이 다급하게 불렀다.
“그거 제 생명수예요. 그거는 주고 가세요.”
“이거 못 드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태경은 환자의 말을 듣고 대답하는 대신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고 갑자기 소스 통의 뚜껑을 전부 다 빠르게 열더니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 안에 버리고 변기를 내려 버렸다.
도저히 이 사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머, 선생님 그러지 마세요.”
물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태경이 빈 통을 들고나오자 유지천은 황당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선생님 설마 그 귀한 걸 버린 거예요? 예?”
“네. 전부 버렸습니다.”
“아니 어떻게 생명수를…….”
“이건 생명수가 아니라 환자분의 몸을 헤치는 더러운 쓰레기일 뿐이에요.”
“……!”
“환자분. 현행법상 의사는 환자분의 뜻을 위배해서 무언가를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법이고 환자의 주권이에요. 하지만 이 순간 저는 더 이상 환자분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어리석은 행위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려면 신고하셔도 좋습니다.”
“…….”
“저 소스 통 안에 들어 있는 상한 것들이 원인으로 보입니다. 지금 환자분은 면역이 상당히 약한 상태예요. 그래서 음식도 익힌 음식만 드셔야 하고요. 그런데 저런 상한 것들이 계속 몸에 들어가니 견딜 수가 없는 겁니다.”
태경은 환자의 잘못된 생각이 조금이라도 깨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고 말을 이었다. 부디 그 허황하고 헛된 마음에서 유지천이 나오길 바랐다.
“그리고 이제는 받아들이세요. 교주는 당신을 낫게 할 수 없을뿐더러 전 재산을 뺏어 간 나쁜 사기꾼일 뿐이에요.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환자분도 알잖아요.”
태경의 말에 환자는 이윽고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이미 수분이 부족한데도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흑!”
“유지천 환자분…….”
태경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 숙인 환자와 눈높이를 맞추며 조금 전과 달리 따뜻한 어투로 말했다.
“과한 행동으로 놀라게 해 드린 점 죄송해요. 하지만 이제 현실에서 도망치지 마세요. 다 아시잖아요. 이미 지난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니 남은 기간이라도 현실과 당당하게 마주하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늦었지만 엄마 역할도 하셔야죠. 진경 씨와 진현이가 있잖아요. 자녀라는 그 귀한 선물을 다시 품으셔야죠.”
“흑! 흐흑…….”
태경이 말이 끝나자 유지천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울기만 했다.
지금 유지천의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오직 본인만이 알 것이다. 다만 태경은 자신이 전한 말이 유지천의 마음에 작은 울림이라도 있길 바라며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태경이 병실을 나간 뒤 마음이 진정된 유지천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리도 평범한 가족으로 지내면 안 돼?’
그러다 문득 딸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엄마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나도 진현이도 아빠도 가족끼리 웃으면서 밥도 먹고 싶고 그냥 함께 모여 같이 대화도 하고 싶어. 엄마? 나는 여전히 엄마가 좋아.’
유지천은 사물함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가족 단톡방을 확인했다.
-여보 밥은 먹었어? 또 내 전화 안 받을 거야?
-엄마 아들이 많이 사랑해.
-엄마, 아빠랑 진현이 카톡에 답장이라도 좀 보내 줘.
가족들이 보낸 메시지는 카톡 창을 아무리 올려도 줄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가족들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유지천은 베드에 누워 가족들이 보낸 메시지를 천천히 읽어 나갔다.
* * *
다음 날 태경은 아침부터 진료실에서 전자 차트를 열어 유지천의 새로 나온 Lab(혈액검사)을 확인하고 있었다.
“하! 잘됐다.”
태경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행히도 수치가 약간 좋아졌다. 그래도 워낙 몸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일반 환자가 좋아진 케이스랑은 달랐다. 그럴지라도 지금의 검사 수치만 보면 희망적이다.
완치의 개념으로 희망적인 건 아니었다. 유지천이 가족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희망이었다.
‘최선을 다하자.’
태경은 환자가 남은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몸과 마음이 편할 수 있도록 언제나 그랬듯이 의사로서 열심히 임할 생각이다.
“전데요. 유지천 환자 오더할게요.”
-네, 선생님.
병동 간호사에게 전화 건 태경은 오더를 내렸다.
“플루이드(fluid, 수액) 우선 소듐(sodium, 나트륨)과 포타슘(potassium, 칼륨) 들어 있는 NaK1으로 바꿔 주시고 속도는 80cc/hr로 주세요. 소변량 보고 다시 조절할게요.”
-네.
“항생제는 신장 수치 보니까 과한 것 같아서 양을 2/3로 줄일게요. 지금 같이 랩(lab, 혈액검사)은 4시간마다 나가 주세요. BP(혈압) 저하되면 바로 알려 주고요.”
-알겠습니다.
그날 오전 유지천은 좋아진 검사 수치로 인해 원래 있던 207호 병실로 다시 돌아왔다.
유지천은 그날 다른 때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평소처럼 몸이 좋다는 말도, 일부러 웃음을 짓지도 않았다. 그리고 항상 굳게 쳐져 있던 베드 커튼을 한쪽만 살짝 치고 오픈했다.
“진경이 엄마 커튼 열었네? 왜요? 이불 바꾸시게?”
“아니요. 답답해서요. 이제 열어 두려고요.”
“그래, 잘 생각했네. 몸은 좀 괜찮아요?”
“네, 어제보다는 괜찮아요.”
말을 걸어도 잘 대답하지 않던 옆 베드 보호자와도 곧잘 말을 주고받았다.
퇴근하고 병원에 온 김진경은 태경에게 있었던 일은 전부 듣고 문제의 생명수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다.
“진경아?”
“응?”
“없어.”
유지천은 사물함과 가방을 살피는 딸에게 말했다.
“너 혹시라도 엄마가 또 생명수 갖고 있을까 봐 그러지?”
솔직히 그랬다. 선생님이 변기에 전부 쏟아 버렸다고 했지만, 행여 하나라도 남아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선생님이 버린 게 다야. 정말 없어.”
“진짜지?”
“그럼 이번에는 진짜야. 엄마 믿어도 돼. 그보다 진경아. 엄마가 너한테 할 말이 좀 있는데…….”
“할 말?”
유지천의 시선이 김진경의 손목에 자리 잡은 작은 상처로 옮겨졌다.
“미안해.”
“…….”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우리 딸한테 사과해야 할 것 같아서.”
“엄마…….”
“진심으로 엄마가 미안해.”
유지천은 딸과 가족에게 사과를 전했다.
“너도 아빠도 진현이한테도 전부 미안해.”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미안한 거 하나도 없어. 괜찮아.”
그날 아주 오랜만에 서로를 끌어안은 모녀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3일 뒤 유지천은 태경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다.
“환자분 설사는 이제 안 하신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