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압착 기계와 심한 통증
태경이 최 팀장과 의료 봉사 현장으로 떠난 사이, 이찬희와 최모나는 응급실에 있었다.
“최 쌤? 3번 베드 환자 처방전 있냐고 물으시는데요?”
“다이아리아(Diarrhea, 설사)가 심해서 처방전 나간다고 전해 주시면 됩니다. 지금 바로 나갑니다.”
“네, 알겠습니다.”
“하!”
최모나가 응급실 스테이션 모니터에서 환자 관련 업무를 보자 바로 옆 모니터 앞에 있던 이찬희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아직도 카톡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지?”
“아직도라니. 선생님께서 아끼는 오른팔로서 나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나름 중요한 문제라고.”
누가 들으면 마치 대단한 문제라도 있는 줄 알겠지만, 그저 카톡 답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태경의 답이었다.
아까 출발하는 태경에게 ‘선생님 저 못 믿으세요?’라는 질문을 했던 이찬희는 그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까짓 대답 하나 못 들은 게 뭐 그리 큰 문제인가 싶겠지만, 우리병원 김태경 바라기인 이찬희는 신경 쓰였다.
‘그렇게 답이 궁금하면 선생님께 문자든 톡이든 보내면 되잖아.’
결국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최모나가 메시지를 보내라고 한 것이다.
“근데 이 쌤이 선생님 오른팔은 맞아요?”
“아니, 수 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섭하죠. 당연히 제가 오른팔이죠.”
“그럼 최 쌤은요? 왼팔이에요?”
“그럼요. 그나저나 왜 이렇게 답장이 없지? 아직 못 보셨나?”
“못 보신 게 아니라 굳이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안 보시는 걸지도 모르지.”
“최 쌤 그렇게 핵심을 콕 짚어 말하면 우리 이 쌤 상처받아요.”
“전혀요. 전 그런 걸로 상처 안 받습니다.”
“그래요. 상처……. 어! 선생님 전화 왔네요.”
말을 하던 임정숙 간호사는 격하게 진동하는 휴대폰을 보며 태경에게서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네, 선생님. 도착하셨어요?”
-아니요. 잠깐 휴게소에 들렸는데, 전달 사항이 있어서 연락했어요. 203호 이기운 환자 lab 결과 나왔죠?
“네, 그렇지 않아도 아까 조절해 놨어요. 그럼요. 알겠습니다. 아! 선생님? 이 쌤이 보낸 카톡 보셨어요?”
-네, 봤어요.
“답장을 엄청나게 기다리고 있어서요. 큭! 네. 조심히 가세요.”
“선생님이 뭐라고 하세요?”
이찬희가 전화를 끊은 임정숙 간호사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믿는다고 하시네요.”
“그렇죠? 그것 보세요. 제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요.”
“신환입니다.”
“네, 갑니다.”
이찬희는 상당히 뿌듯한 표정으로 스테이션을 벗어났다.
“선생님께서 정말 그렇게 대답하셨습니까?”
“아니요. 전혀요.”
최모나의 질문에 임정숙 간호사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환자나 잘 보라고 전해 주세요. 라고 하셨어요.”
“역시 제 예상과 똑같습니다. 근데 왜 그렇게…….”
“왜긴요. 사실대로 말하면 이 쌤 성격에 또 한참 생각하다 의기소침할 수도 있잖아요.”
“수 쌤은 참 현명하십니다.”
최모나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임정숙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태경이 믿는다는 소리에 마음이 든든해진 이찬희는 환자가 있는 베드로 향했다.
“아으! 윽!”
“많이 아파?”
“아파. 윽! 많이 아파.”
“그러게 조심 좀 하라니까. 기계 만질 때 단 1초라도 딴생각하면 안 된다고.”
공장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같은 복장을 한 청년을 걱정하고 있었다.
챠륵-
“안녕하세요. 환자분”
“아으윽!”
이찬희가 커튼을 열고 베드로 들어서자 손에 천을 감은 청년이 얼굴을 찡그리며 그를 쳐다봤다.
“어쩌다가 다치셨어요?”
“으아악! 아아…….”
청년은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앓는 소리만 내뱉었다.
“그 압착 기계에 손이 좀 끼인 거 같아요. 석현아 괜찮아?”
“제가 상처 좀 볼게요.”
이찬희가 조심스럽게 환자의 오른손을 감싼 천을 걷어냈다.
“다행히 외상은 없으시네요.”
압착 기계에 손이 끼이고 환자가 워낙 심하게 아파하길래 라서레이션(laceration, 베인 상처)이나 어브레이션(abrasion, 긁힌 상처) 등을 의심했지만 다행히 없었다.
“바로 X-ray 촬영할게요.”
“환자분 이쪽으로 오세요.”
“저기 선생님?”
환자가 간호사와 함께 베드를 나가자 함께 온 보호자가 이찬희를 불렀다.
“제가 잘 몰라서요. 저 정도면 많이 다친 건가요? 움직일 수는 있겠죠?”
“다행히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없지만, 압착 기계면 뼈가 다치거나 신경이 다쳤을 확률도 높아요. 그게 우선 파악이 돼야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죠. 제가 실은 저놈 애비입니다. 저 녀석이 막내아들이거든요. 겉멋만 잔뜩 들어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놀러 다니는 거 잡아다 강제로 일을 시켰더니 이런 일이 생기네요. 거참.”
환자의 아버지였던 보호자는 자신 때문에 아들이 하기 싫은 일을 하다가 다친 것 같다며 자책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 속이 답답해서 그런데 잠시 나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뒷머리를 털며 밖으로 나가는 보호자를 보며 이찬희도 마음이 안 좋았다.
‘압착 기계라면 분명 뼈가 성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찬희는 검사 결과를 보고 뼈에 문제가 생겼으면 정형외과 수술이 필요하니 태경에게 응급 콜을 하거나 전원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쌤 X-ray 나왔습니다.”
“네.”
이찬희가 스테이션 모니터로 다가가 결과를 확인했다.
“어라!”
“왜. 안 좋아?”
X-ray 결과를 본 이찬희가 놀라자 옆 모니터에 있던 최모나가 한마디 거들었다.
“멀쩡한 뼈 사진이 그렇게 놀랄 일이야?”
“아니. 너무 멀쩡해서.”
말 그대로였다. 정상인의 손과 차이가 없었다.
‘다행이네.’
환자가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이찬희는 약간 어이가 없었다. 이쯤 되니 진짜 압착기에 눌린 게 맞나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환자분 어디 있죠?”
“18번 베드입니다.”
이제 그 합리적 의심이 사실인지 확인하러 갈 차례였다.
“환자분 좀 어떠세요?”
“너무 아프네요. 선생님, 결과는 좀 어떤가요?”
환자는 아프다고 했지만 아까처럼 인상을 크게 찡그리지도 심하게 앓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일단 뼈는 정상일지라도 신경 손상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찬희는 신체검사를 하기로 했다.
“환자분 우선 지금 가장 아픈 곳이 어디예요?”
“손이요. 손 전체가 다 아파요.”
이찬희가 조심스럽게 환자의 손을 만져 본다. 환자는 아프다는 말을 바로 하지 않았다.
“아악!”
그러더니 갑자기 대뜸 소리를 높였다.
“선생님 너무 아파요.”
그 소리가 어찌나 갑작스러웠던지 이찬희는 짐짓 놀랐다.
보통 아픈 곳을 만지면 마치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소리가 나는 것처럼 환자도 바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쉽게 말해 건반은 눌렀는데 소리가 뒤늦게 난 것처럼 아프다는 환자 소리와 박자가 맞지 않았다.
‘이건 아니지.’
아무리 봐도 통증 증상의 호소가 어느 것 하나 해부학적으로 맞지 않았다.
“선생님 많이 안 좋은가요?”
잠깐 밖에 나갔다 온 보호자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보호자분 걱정 많으실 텐데 잠시 원무과에 한 번 다녀오시겠어요? 다녀오시면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보호자가 자리를 뜨자 이찬희는 손을 바꿔 다시 촉진했다. 하지만 손의 위치만 바꿨을 뿐 같은 근육을, 같은 신경 다발의 영역을 촉진하고 있었다.
“환자분 안 아프세요?”
“아까보다는 덜 아프네요.”
이찬희는 여기서 확신했다. 계속 머릿속에 떠오른 합리적 의심이 더는 의심이 아니었다.
환자는 어릴 적, 한 번은 해 봤을 그 병을 앓고 있었다. 환자의 병명은 바로 ‘꾀병’이었다.
놀랍게도 응급실에 꾀병으로 오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청년이 어떤 이유에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급진적인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환자분?”
“네.”
“현재 환자분 손의 통증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마취하고 수술을 통해 손의 이상 여부를 확인해야 할 거 같아요.”
“네? 수술이요?”
수술이란 말에 환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원인은 모르지만 통증이 너무 심해서요.”
“아니요. 선생님 괜찮아요. 그냥 며칠 입원만 시켜 주세요.”
“입원만 하시고 수술은 원하지 않으세요?”
“네, 수술은 됐어요. 통증도 금방 사라질 거 같아요.”
“통증이 사라질지는 환자분이 어떻게 아세요?”
“아, 그게……. 예전에도 이렇게 비슷하게 아팠던 적이 있어서요.”
“전에도 아팠던 경험이 있으셨구나.”
“네. 그러니까 그냥 진통제나 마취 주사 같은 거 한 방 놔 주세요.”
“선생님, 원무과 갔더니 아직 치료가 안 끝나서 할 게 없다고 하네요.”
그사이 응급실을 나갔던 보호자가 돌아왔다.
“그나저나 우리 아들 괜찮은가요?”
“계속 통증을 호소하고 있어서 치료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이 아파?”
“그럼 아프지. 아!”
“그럼 환자분 이거 마취제거든요. 주사는 따끔하지 아프진 않을 거예요. 너무 아파하시니까 이거 주사하고 만져 볼게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선생님 그게 좋겠어요.”
이찬희가 환자의 손을 잡고 통증을 호소하는 손에 소량의 액체를 한 군데 주사했다.
“다 된 건가요?”
“네, 마취가 다 돼서 이제 안 아플 거예요.”
이찬희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환자가 아프다고 했던 부위를 다시 한번 촉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환자의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
“어떠세요?”
“오! 우와. 선생님 명의시네요. 주사 한 방 맞았더니 진짜 안 아파요.”
“안 아파?”
“응. 전혀. 하나도 안 아파.”
“다행이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근데 우리 아들 녀석 병명이 뭔가요?”
“진단명은 꾀병입니다. 환자분은 지극히 정상이세요.”
“예!? 꾀, 꾀병이요?”
“아, 아니에요. 꾀병이라뇨!”
‘꾀병’이란 소리에 보호자는 크게 놀랐고 환자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아까 보호자분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모두 같은 곳을 촉진했는데 통증의 반응이 달랐어요. 그리고 방금 투여한 주사는 마취제가 아닌 식염수입니다. 만약 환자분의 통증이 진짜라고 하시면 지금도 같은 통증을 호소했을 거예요. 환자분은 정확히 정상입니다.”
“하…….”
이찬희의 말이 끝나자 환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이고! 아이고 이 화상아!”
보호자는 한심한 표정으로 아들에게 타박했다.
“너 진짜 언제 사람 될래? 어! 널 낳고 미역국 먹은 네 엄마한테 내가 미안하다. 왜 그러고 살아 왜!”
“그러니까 나 공장일 하기 싫다고 했잖아. 아부지가 억지로 일을 시키니까…….”
“너 입 싹 다물어. 어! 뭘 잘했다고. 창피한 줄 알아 이놈아!”
“아! 아, 아부지. 이것 좀 놔요.”
“안 그래도 환자들 보느라 바쁘실 텐데 제 아들놈이 폐를 끼쳤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보호자는 아들의 귀를 잡아끌며 원무과로 향했다.
“아부지? 아파요.”
“너, 입 다물고 따라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한 청년은 공장 일이 하기 싫어 잔꾀를 냈던 것 같다.
응급실이 한창 바쁠 때 저런 환자가 왔다면 솔직히 화가 났겠지만, 아직 그렇게 바쁘지 않았기에 유쾌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아픈 곳 없으면 됐지 뭐.”
어쨌든 이찬희는 환자가 진짜로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