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30화 (129/472)

130화. 소장 내부에 가득한

사실 김예븐 수녀와 처음 인사했을 때부터 약한 냄새가 나긴 했었다. 하지만 2단계는 일반인도 컨디션이 안 좋거나 가볍게 몸 상태가 안 좋을 때 날 수 있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너무 진해졌는데?’

그런데 냄새가 별안간 진해지거나 그 양상이 달라졌을 땐 이야기가 달랐다.

“수녀님. 혹시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세요?”

“저요? 아니요. 과식하다 보니 늘 밥 먹고 나면 배 아픈 거 말고는 딱히 없어요.”

혹시나 해 물어보는 태경의 말에 김예븐 수녀는 지극히 멀쩡한 표정으로 답했다.

“배 아픈 건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이 정도 복통은 있은 지 꽤 됐어요. 제가 좀 말라서 그렇지 저 생각보다 건강해요. 그러니까 봉사도 오래 했죠.”

아무렇지 않은 김예븐 수녀의 모습을 보며 태경은 일단 주의 깊게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 선생님도 팀장님도 우리 수녀님도 정말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우리 마을 어른들이 진료를 잘 받았습니다.”

이장이 세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마을 회관으로 내려왔다.

“이거 마을에서 수확한 건데 가져가세요.”

이장은 마을에서 준비한 쌀을 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태경과 최 팀장, 김예븐 수녀는 이장과 인사를 나눈 뒤 마을을 떠났다.

세 사람이 탄 차는 어두운 산길을 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늘 시내까지 가서 버스 타고 갔는데 태워 주셔서 감사해요.”

“어차피 가는 길인데요. 수녀님도 오늘 고생하셨는데 제가 편하게 모셔다 드릴게요.”

“네, 팀장님. 감사합니다.”

김예븐 수녀는 최 팀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그 뒤로 입을 열지 않았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계속 대화를 주고받았던 그녀의 말수가 없어진 것이다.

안 그래도 김예븐 수녀한테서 나는 냄새가 조금씩 진해지고 있었기에 태경은 당연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아…….”

“수녀님 어디 아프세요?”

김예븐 수녀는 차창에 머리를 살짝 기대 채 한쪽 손을 복부에 올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원래 밥 먹고 나면 늘 복통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더 많이 먹어서 그런지 좀 심하네요.”

보조석에 앉은 태경이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앉은 김예븐 수녀의 안색을 살폈다.

‘이런!’

표정이 안 좋은 얼굴 위에는 약간의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수녀님, 지금 엄청 아프신 거 같아 보이세요. 잠시 멈췄다 가는 게 좋겠어요.”

아무래도 차를 세워서 김예븐 수녀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팀장님, 죄송하지만 휴게소나 졸음 쉼터에 차 좀 세워 주세요. 수녀님 좀 제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금방 갑니다. 조금만 참아 주세요.”

“아니요. 차 세우지 마세요. 저 괜찮아요. 복통은 오래 앓고 지내서 제가 잘 알아요. 이러다가 늘 멈췄어요.”

“그러시면 잠시 응급실에 들러서 진료만 빠르게 보고 가세요.”

김예븐 수녀도 우리병원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기에 병원에 들렀다 가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응급실이라니요. 진료 안 봐도 돼요.”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김예븐 수녀는 계속해서 병원행을 거절하고 있었다.

“수녀님, 물론 수녀님의 몸이니까 결정은 본인이 하시는 게 맞아요. 하지만 통증이 있을 때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를 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 또 하나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수녀님이 건강하셔야 행복해하시는 의료 봉사도 계속하실 수 있잖아요. 대신 시간이 아까우시면 제가 최대한 빠르게 해 드릴게요.”

“수녀님. 그러지 마시고 원장님 말씀대로 병원 들렀다 가세요. 네?”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을 하고 있던 최 팀장까지 거들었다.

“두 분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별수가 없네요.”

김예븐 수녀는 살짝 웃음을 보이며 태경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참 잘하시네요.”

“그렇죠? 우리 원장님 말솜씨가 아주 보통이 아니십니다.”

“실은 죄송해서 그랬어요.”

“죄송이요? 수녀님이 죄송할 일이 뭐가 있다고요.”

“오늘 봉사하시면서 너무 고생하셨는데, 괜히 저까지 보태고 싶지 않았거든요.”

“무슨 말씀이세요. 전혀 아닙니다.”

“안 그래도 시간 나면 재단 병원에 가려고 생각은 했었어요. 저도 간호사잖아요. 아프면 당연히 진료를 봐야 한다는 거 아는데 시간 지나면 나아져서 크게 필요성을 못 느꼈나 봐요.”

“당연히 그러실 수 있어요. 어쨌든 진료 보시기로 하신 건 잘하신 겁니다.”

“네. 그런데 두 분이 걱정을 해 주셔서 그런지 벌써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은데요?”

“그래도 병원 가기로 결정하셨으니까 검사 한 번 받아 보세요.”

“네, 알겠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최 팀장의 차가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탁-

태경이 김예븐 수녀와 함께 먼저 차에서 내렸다.

“병원이 생각보다 크네요. 이렇게 큰 병원 원장님이시라니 대단하신데요?”

“아닙니다. 그보다 증상은 좀 어떠세요?”

“지금은 좀 괜찮아요.”

확실히 식은땀도 흘리지 않았고 김예븐 수녀의 안색도 아까보다 훨씬 나아졌다. 게다가 냄새의 강도 역시 조금은 약해져 있었다.

“수녀님 들어가세요.”

태경은 김예븐 수녀를 병원으로 안내했다.

* * *

“선생님? 이 시간에 왜 병원에…….”

태경이 예고 없이 응급실에 들어서자 임정숙 간호사가 의아해하며 다가왔다.

“수녀님?”

환자를 진료하던 이찬희와 최모나도 수녀님과 함께 온 태경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오늘 의료 봉사를 도와주셨던 수녀님이신데 진료 때문에 왔어요. 안내 좀 해 주세요.”

“아, 네. 수녀님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잠시 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베드에 앉아 있는 김예븐 수녀에게 태경이 다가왔다.

“수녀님. 검사를 진행할 거예요. 원래는 혈액검사 다음에 CT를 촬영하지만, 바쁘시니까 같이 진행할게요. 평소 앓고 계신 질환은 없으시죠?”

“네, 과거력 없고 조영제 알레르기도 없어요. 저도 간호사라서 조심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면 금방 진행할게요.”

식은땀이 날 정도의 복통과 식사 직후 강하게 났던 냄새로 걱정은 됐지만, 금방 통증이 사라졌기에 태경은 큰 병을 의심하진 않았다.

“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

스테이션으로 향하는 태경에게 이찬희가 다가오며 물었다.

“오늘 봉사로 힐링하시고 곧장 퇴근하시는 거 아니셨어요?”

“힐링은 무슨. 열심히 일하고 왔다. 일단 저 환자분 NaK1-10DW를 주고 위산 억제제 투여해. 그리고 금식하고.”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임정숙 간호사가 태경에게 말했다.

“벌써요? 빨리 올라왔네요.”

“급하다고 하니까 바로 해 주셨어요. 일단 CBC(complete blood cell count, 혈액에 있는 세포 수를 세는 검사로 통상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에 대한 분석이 나옴)만 나왔어요.”

“바로 확인할게요.”

태경은 마우스를 급히 움직이며 모니터를 주시했다.

“보자. 백혈구 수치도 정상이고 혈액검사도 다 정상이네. 근데 호산구 수치가 매우 높네. 자가 면역 질환인가? 호산구?”

모니터를 보며 혼잣말을 하던 태경은 순간 무언가 생각났다.

‘현재로서는 그게 가능성이 커.’

김예븐 수녀의 상황과 증상, 지금까지 검사를 토대로 한 가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라 곧장 환자에게 향했다.

“수녀님. 그 식사 후에 복통이 언제부터 있으셨나요?”

“복통이라면 꽤 오래됐어요.”

“오래면 혹시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부터 그랬나요?”

“네, 맞아요. 한 4년 전부터 서서히 아프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왜 그러세요? 선생님이 그렇게 물어보시니까 약간 걱정이 되네요.”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제가 CT까지 보고 말씀드릴게요.”

30분 뒤, 태경은 이찬희, 최모나와 함께 CT 결과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 선생, 최 선생은 이게 무엇으로 보여?”

태경이 CT 결과 속 소장 내부를 가리키며 물었다. 소장 내부에는 얇고도 긴 것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찬희와 최모나는 그것에 집중했다.

“이찬희?”

“모습은 혈관 같기도 한데 양쪽이 막혀 있고 너무 많네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찬희의 말대로 얼핏 혈관 같기도 했지만 아니었다.

“최모나?”

“혹시 소화 안 된 음식물입니까?”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던 최모나가 답했다.

“하긴 음식물 같지? 면 같기도 하고 콩나물에 머리만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콩나물이라고 하니까 꼭 숙주나물 같기도 한데요?”

CT 결과를 보며 이찬희와 최모나가 답을 찾고 있었다.

“이게 뭐야?”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 봐도 소장 내부에 가득 찬 것들이 뭔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봐 봐. 여기는 소장의 끝에 가까운 부위지? 그럼 어떻겠어?”

“음식물이 소화 안 될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이건 음식물이 아니야.”

“그럼. 뭔가요?”

“패러사이트(Parasite).”

태경이 소장 속 문제의 주인공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기, 기생충이요?”

“기생충 말입니까?”

두 사람이 합창하듯 되물었다.

“그래. 기생충이야.”

“하지만 선생님, 지금 대한민국에서 저렇게 배 안에 기생충이 저 정도로 가득 찬다는 게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저도 최 선생과 같은 생각입니다. 환자조차 없는데 어떻게 기생충이 저렇게 가득…….”

두 사람의 이런 반응은 무리가 아니었다. CBC 결과를 보지 않고 바로 CT만 봤으니 더욱 유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외국에는 아직도 이런 사례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김예븐 수녀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어쩌다 대장 내시경 검사 시 한두 마리는 발견될 수도 있지만, 눈을 의심할 정도로 저 정도의 양은 확실히 보기 힘들었다.

“그게 이렇게 된 이유가 있어.”

“이유요?”

“저 환자분은 동남아에 오래 계셨어. 거기서는 한 손으로 밥을 먹고 나머지 손으로는 변을 닦는다고 하더라. 그 생활을 8년 정도 하셨대.”

“8년! 아…….”

“그렇군요.”

태경의 설명이 이어지자 두 사람은 기생충이 왜 생겼는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게 아무래도 회충(기생충의 한 종류인 회충으로 지렁이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몸길이가 30cm 가 넘는 것도 있다.)이니까 알벤다졸(albendazole, 구충제) 등으로 간단하게 치료가 될 거야.”

“저렇게 양이 많은데 약으로 가능할까요?”

“아니, 안 되지. 그거야 몇 마리 안 될 때 얘기고 저 정도면 수술해서 긁어내야지.”

“어후! 정말 CT상에 가득합니다.”

정말 누가 봐도 그 개체 수가 상당히 많았다. 득실득실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내가 설명할게. 마취과 정 선생한테 연락 좀 해 주고 환자분 이리 안내 좀 해 줘.”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CT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김예븐 수녀가 결과를 궁금해하며 모니터 앞에 있는 태경에게 다가왔다.

“수녀님 여기 앉아 보시겠어요. CT 사진 익숙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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