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31화 (130/472)

131화. 버, 벌레가 너무…….

“수녀님 여기 앉아 보시겠어요. CT 사진 익숙하시죠?”

“외국 나가 그쪽에 오래 있다 보니까 이제 가물가물해요. 제가 있던 산골은 이런 기기가 없었어요. 시설이 아주 열악했거든요.”

“제가 설명 좀 해 드릴게요. 보시면 기억나실 거예요. 여기 보이는 게 위고요. 그 아래 따라가시면 십이지장 그리고 소장으로 연결됩니다. 그 길을 잘 따라가다 보면 여기가 대장 쪽에 가까운 소장 끝인데요. 여기 소장 내부에 무언가 가득 차 있는 게 보이세요?”

태경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모니터를 따라가던 김예븐 수녀의 시선이 문제의 소장 끝에 도착했다.

“네. 엄청 많네요. 이게 뭐예요? 무슨 면 같은데 아까 먹은 짜장면 아닌가요?”

“여기는 소장 끝부분이어서 음식물이 소화 안 되고 그냥 내려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워요. 그리고 여기 피 검사 결과를 보시면 백혈구 수치는 정상이어서 염증은 없는데 호산구 수치가 매우 높으세요.”

“그럼 도대체 이게 뭐죠?”

“그게 기생충입니다.”

“……!”

기생충이란 말에 김예븐 수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간호사라서 아시겠지만, 이러한 기생충은 대부분 피컬 오랄(fecal-oral, 분변 경구) 감염이라고 해서 항문에서 입으로 전파가 됩니다. 동남아에 계실 때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는 문화와 수녀님 같은 경우 원래부터 그곳에 사셨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생충에 대한 저항이 약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이고 있어요.”

“이론은 이해가 되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가 이렇게 많아요? 아! 그러면 제가 그동안 아무리 먹어도 기운이 없고 살이 찌지 않은 게 이것들 때문인가요?”

“상당히 관계가 있을 거 같아요.”

“어……. 그럼 이거 어떻게 하죠? 구충제 먹으면 되죠?”

“지금은 기생충이 너무 많아서 이럴 때 약을 먹으면 죽은 사체로 인해 염증이 발생할 수 있어요.”

“그럼요?”

“수술해서 우선 다 빼내도록 할게요.”

“수술이요?”

“네. 갑자기 수술이라고 해서 놀라셨겠지만, 소장의 일부분을 잘라서 안에 있는 기생충들을 빼내는 간단한 수술이에요.”

“위험할까요?”

수술이란 말에 김예븐 수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모든 수술이 위험성이 있지만, 다른 수술에 비해서 그렇게 큰 수술은 아니에요.”

“그래도 갑자기 수술이라니 겁이 나네요.”

“그럼요. 당연히 그러실 수 있죠.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이 상태로 그냥 두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알겠어요. 수술받을게요. 겁은 나는데 제가 눈으로 직접 보니까 수술을 안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CT를 안 봤으면 모를까, 소장 안에 득실거리는 기생충을 본 이상 수술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수술 동의서와 설명은 우리 이찬희 선생이 설명드릴 거고요. 수술 전 금식 시간 때문에 4시간 후에 수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선생님 잘 부탁드릴게요.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꺼내 주세요.”

“그럼요. 그럼 전 이따 뵐게요.”

“안녕하세요. 환자분 제가 수술 전 안내 사항을 설명해 드릴게요.”

이찬희가 김예븐 수녀를 데려가 수술 동의서와 나머지 설명을 이어 갔다.

태경의 시선이 다시 CT를 향했다.

“정말 엄청나네.”

지금까지 수많은 환자를 경험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사실 환자와 다른 의료진 앞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던 태경도 속으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진짜 지금까지 아무 일 없던 게 다행이다.”

“김예븐 환자 CT예요?”

수술 전 마취에 관해 환자 평가를 하기 위해 내려온 의진이 다가와 모니터를 보며 물었다.

“정 선생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지?”

“아니요. 이 녀석들 딱 보니 회충이네요. 그렇죠?”

당연히 놀랄 거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의진의 반응은 태연하다 못해 회충을 대번에 알아봤다.

“본 적 있어?”

“그럼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건 선배보다 더 봤을걸요?”

“어떻게?”

“저 외국에 있을 때요.”

“아, 맞다!”

의진이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했던 걸 잠시 깜빡했다.

“제가 있던 곳도 환경이 아주 열악한 곳이라서 꽤 있었어요. 저도 처음 기생충 환자 봤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니까요.”

“그 정도야?”

“네, 이따 수술방에서 다들 꽤 놀랄 수도 있어요. 저 환자한테 가 볼게요. 수술방에서 봐요.”

“그래, 이따 봐.”

태경의 시선이 다시 한번 모니터 속 기생충에게 향했다.

* * *

4시간 후-

수술 준비를 마친 태경이 김예븐 수녀 앞에 서 있었다.

“마취 확인했습니다.”

꼼꼼히 마취 상태를 확인한 의진이 환자를 체크하며 말했다.

“그럼,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주세요.”

메스를 건네받은 태경이 배꼽 위에서부터 배꼽의 한쪽 면을 타고 그 아래도 다시 절개한다.

“환자분이 워낙 마른 체구라……. 모스키토(mosquito, 작은 가위 형식의 집게로 끝이 약간 굽어 있음) 주세요.”

태경이 파샤(fascia, 근막)를 모스키토로 잡아서 이찬희에게 줬다.

“보비(bovie, 전기칼) 주세요.”

보비로 근막을 가르자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며 피부를 절개할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올라왔다.

15cm 정도 배를 연 직후 태경은 환자의 배 속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소장의 한 묶음을 꺼냈다.

“젖은 거즈 주시고 환자 아랫배에 펼쳐요.”

젖은 거즈 위에 소장을 올려놓은 태경은 다시 보비를 잡았다.

“다시 보비 주세요.”

태경이 소장을 잡고서 소장의 한 면에다가 보비를 갖다 대자 수술방에 있는 사람들이 살짝 긴장하며 소장에 집중했다. 그리고 2cm 정도 절개를 한 그때였다.

“으!”

“어!”

“어머나, 세상에!”

처음 본 광경에 의료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짧은소리를 내뱉었다.

이미 비슷한 환자를 본 경험이 있던 의진조차 익숙해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릇!”

태경도 짐짓 놀란 목소리로 다급함을 토로하며 소리쳤다.

“그거 일단 받을 것 빨리 줘요.”

투둑- 투두둑- 투두두둑-

소장의 가른 면으로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좀 더 작은 크기의 둘레와 20cm 정도 되는 길이를 가진 벌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버, 벌레가 너무 많은데요.”

스스로 비위가 강하다고 생각한 이찬희 또한 정신없이 쏟아지는 벌레들로 인해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릇 잘 잡아.”

“알겠습니다.”

멀리서 살짝 보며 가락국수처럼 보였지만, 자기들끼리 움직이고 꿈틀대며 몸부림치는 것이 누가 봐도 징그러운 벌레였다.

“와, 진짜 어쩜 이렇게 많죠?”

“그러게요. CT로 볼 때보다 실제로 보니까 그 느낌이 어마어마하네요.”

의진과 임정숙 간호사는 여전히 꿈틀거리는 벌레 떼를 보며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CT를 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눈앞에서 기생충을 직접 보고 있는 태경은 김예븐 수녀가 복통 외적으로 크게 아프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만큼 수가 많았다.

“선생님, 소장에 벌레들이 남아 있습니다.”

소장의 자른 면으로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입의 빨판으로 소장에 붙어 있는 녀석들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켈리(kelly, 모양은 모스키토랑 유사하나 두 배 이상 큰 기구) 주세요.”

태경이 켈리를 이용해서 소장에 붙어 있는 벌레들을 하나하나 몸통을 잡고 조심스럽게 잡아 뜯었다.

후두두둑-

얼핏 보아도 열댓 마리의 벌레들이 꿈틀대면서 철로 된 통 위로 연이어 떨어졌다. 떨어지고 나서도 꿈틀거리는 모양이 너무나 괴기스러웠다.

“아직 더 남았어.”

문제는 이러한 벌레들이 지금 소장에 가득 있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수술과 징그러운 모습들을 많이 봤던 태경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찬희. 소장 한쪽을 잡고서 들어 봐 봐.”

“네, 선생님.”

태경이 가른 소장의 구멍으로 기구를 깊게 집어넣고 벌레들을 잡아 뜯어냈다.

후두두둑-

그러자 또다시 벌레들이 쏟아졌다. 이제부터는 이 작업의 반복이었다. 켈리를 집어넣고 빼고를 반복했다.

중간중간 기생충 빨판에 의해 소장에서 아주 미세한 출혈이 있긴 했다. 하지만 유의미하지 않은 출혈이었으며 압박만으로 지혈이 됐다.

“징그러운 놈들 진짜 많네.”

어느새 철로 된 양동이에 벌레들이 반 이상 가득 찼다.

“한 놈도 남으면 안 되니까 한 번 더 확인할게요.”

태경도 소장을 이리저리 만져 가면서 꼼꼼하게 살폈다.

소장 안에 붙어 있던 것들을 말끔히 제거하자 김예븐 수녀에게서 나던 암모니아 냄새도 확실하게 잦아들었다.

“다 정리된 것 같은데? 이제 없네.”

“어으! 이것들 계속 움직이네요.”

임정숙 간호사가 몸서리를 쳤다.

“이제 배 닫을게요. 바이크릴(vicryl, 체내에서 녹는 실 종류) 주세요.”

태경은 소장의 자른 면과 5mm 정도 간격을 두고서 바늘로 양쪽의 소장을 맞닿게 봉합한다.

“디태치(detach, 녹는 실로서 힘을 주면 바늘이 떨어지도록 연결된 봉합 실. 근막을 닫을 때 사용될 수 있음) 여러 개 주세요.”

태경이 근막을 1cm 간격으로 꼼꼼하게 봉합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손으로 매듭을 지어서 층과 층이 맞도록 또다시 봉합을 했다.

“나머지 피부는 이찬희 선생이 마무리하고, 환자 알벤다졸 하나 주고 Lab은 오전 7에 나가 줘요.”

“네, 선생님.”

“그리고 빈혈 있으면 수혈도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안 보여 주실 거죠?”

임정숙 간호사가 여전히 꿈틀거리는 벌레들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덩달아 태경의 시선도 같은 곳을 향했다.

“저놈들이요?”

“네.”

“아무래도…….”

환자가 수술한 경우 몸에 있던 질병을 제거하면 보호자나 수술 후 환자에게 보여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당연히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안 보여 주는 게 좋겠어요.”

꿈틀대는 벌레를 환자에게 보여 줬다가 괜히 충격을 받을까 싶었다.

실제로 저런 게 몸에서 나왔다면 누구라도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환자를 위해 보여 주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다들 구충제 약 언제 드셨어요? 아으! 아직도 꿈틀거리네.”

스크럽 간호사의 말에 태경을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벌레가 담긴 통으로 향했다.

“저걸 봐서 그런지 집에 가면 구충제 약 사다 가족 전부 먹어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구충제 먹은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네.”

“저도요. 재작년인가? 한 번 먹었는데, 작년이랑 올해는 안 먹었네요. 이 쌤이랑 선생님은요?”

“전 구충제를 따로 챙겨 먹진 않았는데요.”

“나도 그런데.”

이찬희의 말에 태경이 공감했다. 구충제는 1년에 한 번씩 먹는 걸 권장하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건 아니었다.

과거에는 나라에서 기생충을 박멸한다고 구충제를 때마다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더 이상 사람들의 몸에서 기생충이 발견되지 않아 그때처럼 반드시 구충제를 먹지 않는다.

보통은 개인적으로 구충제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복용하는 편이었다.

“사람 심리가 참 이상해요. 지금까지 구충제 먹어야겠다고 생각조차 안 했거든요. 근데 저것 때문인지 저도 약을 사고 싶어지네요.”

“저도요.”

임정숙 간호사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오늘 다들 저 벌레 때문에 놀랐을 텐데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태경은 수술방을 나온 뒤, 조금 이따 마취에서 깨어나 입원실로 옮긴 김예븐 수녀를 보러 갔다.

“수녀님,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수술은 아주 잘됐어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럼 제 몸에 더 이상 기생충은 없는 거죠?”

“소장 안에 있는 건 전부 확인하고 제거했습니다.”

“저기 근데 선생님?”

“네.”

“제 배 속에 기생충이 그렇게 많았나요?”

정말 궁금한 듯 물은 김예븐 수녀의 말에 태경은 소장 안에서 쏟아지던 기생충이 떠올랐다.

“소장을 막을 정도로 있었어요. 수술하길 잘하셨어요.”

“그래요? 정말 감사하네요. 선생님 아니었다면 또 그냥 넘어갔을 거예요.”

“별말씀을요. 그럼 좀 쉬고 계세요.”

“네. 수고하세요.”

태경은 입원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며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앞으로 볼일 보고 더 열심히 손 잘 닦아야겠다.”

원래도 손을 잘 닦았지만, 더 격렬하게 잘 닦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갈까 말까?”

핸드폰 시계를 보며 집으로 갈지 말지 고민하던 태경은 일단 응급실 상황을 보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응급실은 크게 붐비지 않았다.

응급실 스테이션에 앉아 모니터로 환자 현황을 확인하고 고개를 든 태경의 시선에 최모나의 모습이 들어왔다.

“뭐지?”

그런데 최모나의 모습이 어딘가 조금 달랐다.

“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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