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변사체
“좀 이상한데…….”
그냥 보기에는 평소 모습 대로지만 표정도 그렇고 분위기가 묘하게 이상했다.
“수녀님 보고 오세요?”
임정숙 간호사가 최모나를 주시하는 태경에게 물었다.
“네.”
“맞다! 선생님 퇴근은요? 학회 준비하신다고 집에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물론 원래 일정은 그랬지만, 김예븐 수녀의 수술을 하면서 일정이 틀어졌다.
“자료 때문에 가긴 해야 하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고민입니다. 근데 최 선생 무슨 일 있었나요?”
“최 쌤이요?”
“어머, 원장님 어떻게 아셨어요?”
덩달아 궁금해하는 임정숙 간호사의 말 뒤로 스테이션에서 업무를 보던 간호사가 말을 이었다.
“표정이랑 분위기가 좀 다른데?”
평소 최모나와 이찬희를 많이 생각하는 태경은 후배들의 사소한 변화도 금방 눈치챘다.
“왜? 최 쌤한테 뭔 일 있었어?”
“네. 수 쌤. 보호자랑 대판 할 뻔했다고나 할까요?”
“보호자랑 대판이라니? 싸운 거야?”
“싸운 건 아니고……. 어휴! 진짜 어이가 없어서.”
간호사는 별안간 어이없는 표정으로도 모자라 분을 삭이며 말을 하다 말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 인간은 진짜 후레자식이에요.”
“후, 후레자식?”
“수 쌤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어지간히 응급실 짬밥이 꽤 있는데 하다 하다 이런 인간은 처음 봤다니까요.”
응급실에서 근무한 의료인이라면 별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건 이미 일상이요 이골이 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간호사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할 정도면 진짜 이상한 사람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아까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요…….”
* * *
한 시간 전. 응급실 상황.
태경이 김예븐 수녀의 수술을 진행하고 있을 때, 최모나는 한 차례 회진을 돌고 외래 환자의 초음파 진료를 본 뒤 응급실로 들어왔다.
“초음파 다 하셨어요?”
“네. 저기 15번 베드 환자 30분 뒤에 드레싱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네. 맞다! 최 쌤 줄 선물 있는데?”
“제 선물 말입니까?”
간호사가 스테이션 모니터 의자에 앉은 최모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 쌤 선물이요.”
생일은 아직 멀었고, 그렇다고 딱히 선물을 받을만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최모나에게 간호사가 작은 종이봉투를 건넸다.
“이거예요.”
“이게 뭡니까?”
“한 번 보세요.”
“와……!”
바스락거리며 종이봉투 안을 확인하던 최모나의 표정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이걸 진짜 저 주시는 겁니까?”
봉투 안에는 최모나가 그토록 좋아하는 젤리 브랜드의 30주년 한정판 젤리가 들어 있었다. 아쉽게 한국에서는 출시가 되지 않았고 해외 직구로도 구하기 힘든 상품이었다.
젤리 덕후인 최모나에게는 상당히 귀한 선물이었다.
“네, 동생이 미국 여행 갔다 오면서 사 왔는데 최 쌤 생각이 나서 가져왔어요. 전 원래 젤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런 귀한 걸 주시고 정말 복 받으실 겁니다.”
“최 쌤 좋아하니까 선물한 나도 기분 좋네요.”
“저는 뭘 드려야 할지?”
“주긴 뭘 줘요. 됐어요. 어! 잠시만요. 네, 우리병원 응급실입니다.”
대화를 이어 가던 간호사는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여기 oo서 경찰인데요.
“네. 잠시만요. 제가 선생님께 여쭤보고 바로 알려드릴게요.”
“응급 환자입니까?”
잠시 수화기를 귀에서 내린 간호사에게 최모나가 물었다.
“아니요. 경찰인데요. 변사체가 발견되었다고 해서요.”
“아…….”
“돌아가신 지 이틀 정도 되어 보이고 할머니 시신이라고 하네요. 자택에서 발견되었고요. 여기로 와서 사망 선고 등 필요 절차 밟고 싶다고 하는데 오라고 할까요?”
“네, 지금 그렇게 분주하지 않으니까 와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 연락을 받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변사체와 함께 응급실에 도착했다.
“최 쌤, 경찰분들 오셨어요.”
“네.”
“안녕하세요. 연락드렸던 경찰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최모나라고 합니다. 행정절차 때문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변사체 신고가 들어와서요.”
경찰들이 변사체를 발견하면 이처럼 응급실 의사에게 와서 사망진단서 등의 관련 행정 업무를 하게 된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있으며 대부분 독거노인분이나 노숙자의 시신이 많았다.
최모나와 응급실 근무자들 또한 오늘 들어온 변사체 역시 독거노인일 거라 생각했다.
“선생님 이제 다 끝난 건가요?”
“네, 전부 끝났습니다.”
경찰은 최모나의 도움으로 변사체 관련 행정 업무를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고인께서 어쩌다 이렇게 되신 거예요?”
옆에 있던 간호사가 사연이 궁금한 듯 경찰에게 넌지시 물었다.
“고인이 반지하에 세 들어 사시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발견했어요. 고인께서 살아생전 파지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하더라고요.”
경찰의 설명을 들으면서 최모나의 시선이 시신으로 옮겨졌다.
작고 아담한 키에 정갈하게 묶은 백발의 머리카락을 한 고인의 열 손가락 끝부분이 전부 갈라지고 패여 있었다.
거친 손을 보니 한두 해 파지를 주운 게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 파지를 주운 것 같았다.
“늘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손수레를 끌고 나가는데 이틀 동안 기척이 없어서 들어가 봤더니 숨진 상태였다고 하네요.”
고인은 옷을 입고 손에 장갑을 착용한 모습으로 미뤄 보아 아마도 일을 나가다가 변고를 당한 것 같았다.
“너무 안 되셨네요. 참! 딱하시다. 가족분들은 안 계신 거예요?”
“아들이 있었다는 말에 수소문하고는 있는데 연락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독거노인을 볼 때마다 근무자들의 마음은 안 좋았다.
“아무튼 저희는 또 사건이 있어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경찰이 맡은 일을 끝내고 응급실을 나간 뒤 최모나는 스테이션에서 문구용 가위를 하나 들고 왔다.
“최 쌤 가위는 왜 들고 온 거예요?”
“이것 좀 자르려고 갖고 왔습니다.”
“실 풀린 거요?”
“네.”
최모나는 고인이 손에 착용하고 있는 장갑에서 풀린 실을 가리켰다. 파지를 줍기 편하게 손가락 부분을 자른 장갑 끝부분에서 풀린 실 한 올이 고인의 손가락에 엉켜 있었다.
최모나는 아까부터 저 엉킨 실이 신경 쓰였다.
“선생님, 시신 옮길까요?”
“네, 옮겨야죠.”
보통 변사체는 국과수에서 시신을 가져간다. 대부분 국과수 담당자가 그날 안으로 오기 때문에 처치실에 보관 후 인계한다.
“선생님?”
응급실에 막내 간호사가 최모나에게 다가오면 말했다.
“방금 병원 왔다 갔던 경찰분이 연락이 왔는데 고인 아들분이 온대요.”
“그거 잘됐다. 근데 아들분 오면 많이 놀랄 텐데…….”
“일단 처치실로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아들이 온다는 소식과 함께 시신을 처치실로 옮긴 최모나와 간호사들은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그렇게 20분이 지나고 웬 남자 한 명이 응급실을 분주하게 오가는 간호사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네, 진료받으러 오셨나요?”
“그건 아니고, 이귀남이라고 그 양반 여기 있죠?”
웨이브 컬이 있는 단발머리에 목 옆 부분에 타투를 한 남자는 3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은 변사체로 온 할머니였다.
“실례지만 관계가 어떻게 되죠?”
“아들인데. 경찰이 여기 있다고 해서 왔거든요.”
“담당 선생님 불러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최모나를 부르기 위해 돌아선 간호사는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순간 멈칫했다.
“하여간 노인네. 늦게도…….”
얼핏 들려온 소리에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간호사는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담당의입니다. 혹시 아드님 되십니까?”
“네, 맞수다.”
“우선 어머님께서 발견 당시 이미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셨습니다. 저희가 볼 때 사망 원인은…….”
“어디 있습니까?”
남자는 최모나의 말을 다 들을 생각이 없는 듯 중간에 끊고 어머니를 찾았다.
‘그래. 지금 설명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지.’
너무 태연한 표정과 행동이 마음에 걸렸지만, 충격을 받아 그런가 보다 했다.
“이쪽 처치실에 계십니다.”
그렇게 고인을 안내하며 돌아서는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과 함께 남자가 말도 안 되는 행동으로 최모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아! 이런 망할 노친네.”
아들이란 인간이 고인이 된 어머니의 시신을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 숨긴 거야. 젠장!”
처치실 입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최모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다가온 간호사 역시 어안이 벙벙하긴 마찬가지였다.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가끔 인간이길 포기한 환자나 보호자를 보는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랬다. 아니, 가장 심한 경우였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보호자분 실례지만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속삭이며 작게 읊조린 간호사의 말을 뒤로한 채 최모나가 처치실 안으로 들어가 남자에게 물었다.
“뭐가요?”
“지금 뭐 하시는 건지 물었습니다.”
“체크카드랑 통장 찾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지금 고인이 되신 어머니한테서 카드랑 통장을 찾는다는 겁니까?”
“예, 그것만 갖고 갈게요. 나머지는 알아서 해 주세요. 하! 어디 있다는……. 어! 찾았다.”
고인이 입고 있는 조끼 안쪽 주머니에서 카드와 통장을 찾은 남자의 표정은 밝았다.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는 무관심하던 사람이 돈에는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남자는 어머니의 죽음보다 돈이 더 중요한 듯 보였다.
“일, 십, 백, 천, 만……. 오호! 1500만 원이네.”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봤지만 이런 패륜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거 보십시오! 보호자분 지금 행동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보다 못한 최모나가 처치실을 나서는 남자에게 한마디 건넸다. 고인과 남자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었다.
“너무요? 이보쇼. 의사 선생님. 내가 이 노인네랑 의절하고 산 세월이 20년이 넘어요. 그게 뭔 소리겠습니까. 사이가 안 좋다는 소리요. 근데 노인네가 본인 죽을 걸 알았는지 몇 달 전부터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자기 죽으면 돈 모은 거 가져가라고 해서 찾으러 온 겁니다. 됐수?”
“그래도 어머니인데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예의요?”
“잘 가시라고……. 잘 가시라는 한마디 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돌아가신 분한테 이런 행동하는 게 너무하다는 생각 안 듭니까?”
“안 드는데요. 예의는 많이 배운 의사 선생님이나 지키세요. 웬 미친놈 한 명 왔다 갔다고 생각해요. 그럼 수고하세요.”
남자는 최모나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끝까지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빠른 걸음으로 응급실을 나갔다.
워낙 걸음을 재촉하며 뒤도 보지 않고 나갔기에 더 이상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니, 선생님 우리가 지금 뭘 본 거죠?”
“뭐 저런 후레자식이 다 있어요.”
“어떻게 자식이란 사람이 인두겁을 쓰고 돌아가신 모친 앞에서 저럴 수 있을까요?”
“세상이 갈수록 흉흉해지는 것 같아요.”
이 상황을 함께 본 근무자들은 기가 찬 표정으로 한마디씩 쏟아 냈다.
“저런 인간은 욕도 아까운 사람입니다.”
최모나는 처치실로 들어가 흐트러진 고인의 옷매무새를 조용히 정리했다.
아마 남자가 가져간 저 돈은 고인이 파지를 주워 모은 돈일 것이다. 그런 귀한 돈을 저런 아들을 위해 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했다.
“할머님,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편안히 가세요.”
삐뚤게 채워진 단추를 다시 채운 최모나는 눈을 감고 있는 고인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 * *
“최 선생?”
변사체의 사연을 전부 들은 태경은 환자 처치를 끝내고 스테이션으로 다가오는 최모나를 불렀다.
“네, 선생님.”
“괜찮아?”
“지금은 괜찮습니다. 아까는 저도 흥분해서……. 과했던 것 같습니다.”
“과하지 않았어.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야. 나였으면 더 버럭 했을 거야. 그리고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
“예?”
“회진이랑 특정 환자 보는 거 그만해.”
그동안 최모나는 야간 회진이랑 노인과 어린이 환자를 전담하고 있었다.
환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를 바라며 태경이 시킨 일이었다.
물론 환자가 많거나 혼자 응급실을 지킬 때는 모든 환자를 봤지만, 태경과 이찬희가 있을 때는 노인과 어린이 환자가 오면 그 환자들은 진료했었다.
“정말이십니까?”
“내가 보기엔 이제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은데. 아니야?”
“선생님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은 이해가 됩니다.”
최모나는 지금까지 태경과 함께 일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 변해 있었다.
“전혀 아닌 것과 조금은 아주 큰 차이야. 그리고 그 기준을 나로 정하지는 마. 내가 정답은 아니니까 너 자신을 스스로 기준으로 삼아. 기억나? 최 선생 나한테 절대 안 변할 거라고 했던 말.”
“기억납니다.”
“근데 지금 봐 봐. 본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느끼잖아.”
가끔 의사라는 직업을 대단한 사명감으로 선택할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사명감과 함께 환자를 살리기 위해 오는 이들도 있지만 전부가 그렇지는 않다.
부모님의 권유나 돈을 보고 또는 병원을 물려받기 위해서나 그냥 성적이 맞아서 의대를 진학하여 의사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의사가 어떤 목적으로 의사가 됐든 태경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만, 앞으로 병원을 성장시키고 함께 일하는 의사라면 적어도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있었으면 했다. 특히 그게 후배들이라면 더욱 그랬다.
그래서 그동안 최모나를 다그치기도 하고 싫은 일을 맡기기도 했었다.
최모나의 마음이 달라진 과정에 도움을 주었을지도 몰라도 결국 스스로 깨닫고 변한 건 최모나 자신이었다.
태경은 그런 후배가 기특했다.
“최모나?”
“네.”
“잘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최모나는 태경의 칭찬 한마디가 듣기 좋았다. 살면서 저렇게 진심이 담긴 칭찬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 지금 퇴근하니까 이 선생이랑 수고 좀 해. 내일 봐.”
“네, 내일 뵙겠습니다.”
고민하던 태경은 학회 준비로 인해 퇴근하기로 했고 흐뭇한 표정으로 응급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