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34화 (133/472)

134화. 2차 폭발

현장에 도착한 도승원은 건물 밖에서도 보이는 불길과 함께 다른 소방서의 차량을 보며 다시 한번 긴장했다.

지금은 화재 현장에 대한 두려움이나 긴장이 아니었다.

여자 친구 때문이었다.

오는 동안 몇 번이나 연락을 취했지만 여자 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들 정신 차리고 우린 건물 내부로 진입한다.”

미리 도착한 다른 소방서의 진압으로 다행히 불길은 빠르게 잡히고 있었다.

‘저곳에 승희가 있으면 어떡하지? 일하는 곳이 1층인가 아니면 2층?’

안 그래도 마음이 불안한데 여자 친구가 건물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칠 것만 같았다.

“……한다. 다들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승원아? 도승원?”

팀장이 평소와 다르게 집중하지 못하는 도승원을 큰 소리로 불렀다. 누구보다 늘 침착하고 현장에서 신중했기에 후배의 저런 모습이 이상했다.

“너 왜 그래? 아까 그 일 때문에 그런 거야?”

이승희의 직장이 이곳인 줄 몰랐던 팀장은 도승원이 결혼 반대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아닙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도승원, 여기 현장이야. 집중해.”

“알겠습니다.”

화재 현장은 아무리 많이 나갔어도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늘 신중하고 조심해야 했다.

특히나 오늘 같은 연구실 현장은 2차 폭발의 위험이 있기에 더욱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됐다.

“다들! 집중하고 들어간다.”

도승원은 마음을 다잡으며 팀원들과 함께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저곳에 승희가 있다면 목숨을 걸고 구할 생각이었다.

* * *

“어머, 언니 저기 좀 봐요?”

“왜?”

“저거 우리 연구실 건물 아니에요? 세상에. 불났나 봐요.”

차에서 내린 이승희는 동료 연구원의 말에 고개를 돌리며 깜짝 놀랐다.

“……!”

자신의 일터인 건물에서 엄청난 연기가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방차도 엄청나게 왔네. 다친 사람 없겠죠?”

‘소방차’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난 이승희는 도승원이 떠오르며 건물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떻게…….”

연구실 건물 앞은 소방차와 구급차는 물론이고 부상당해 실려 나온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저기 어떻게 된 거예요?”

이승희는 안전 라인 밖에 서서 옆 사람에게 물었다.

“폐기물 처리하다가 폭발이 났대요. 하! 폐기물 관리 좀 하라니까 위에서 미루다 사고 난 거 같아요.”

건물에서 연기를 본 순간 예상했는데 역시나 맞았다. 연구실에서 폐기물을 옮기는 과정에서 폭발이 생겨 화재로 번진 것이다.

이승희는 가방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오빠 전화했었네.’

이미 실험을 끝내고 오후에 외무 업무를 보던 이승희는 핸드폰을 진동 모드로 해 놨었다. 그 때문에 도승원의 연락이 온 것도 몰랐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거리상 여울 소방서가 올 확률이 높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이승희 시선에 익숙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동, 동호 씨?”

이승희가 안전 라인 밖에서 부른 사람은 여울 소방서 1팀의 구급대원으로 운전 담당이었다.

“아니, 승희 씨가 왜 여기에?”

“제 직장이 여기예요. 오빠도……. 우리 오빠도 같이 왔죠? 들어갔나요?”

“지금 팀원들과 같이 건물 안에 진압 들어갔어요.”

“동호 씨, 다친 사람은 없죠?”

폭발로 인한 화재이다 보니 다친 사람이 없기는 힘들었다.

폭발물 가까이에 있던 크게 다친 연구원들 몇몇이 화상을 입었다. 다행히 그들은 인근에서 가장 먼저 출동한 119에 의해 화상 전문 병원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하지만 이승희가 여기서 말하는 다친 사람은 대원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네, 현재까지 대원중에 크게 다친 사람은 아직 없었…….”

그렇게 구급대원의 말이 이어지던 찰나,

펑-

건물 내부에서 우려했던 2차 폭발이 일어났다.

“어머, 어떡해!”

“또 폭발했나 봐.”

모든 사람의 시선이 2차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승희 씨, 별일 없을 테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아요.”

-건물 내부에 대원이 부상…….

동료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전을 받고 팀원과 함께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불안한 생각이 커진 이승희는 잠시 후 아연실색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

동료들에 의해 건물 밖으로 실려 나오는 도승원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승희는 소방대원인 남자 친구가 늘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출퇴근하거나 외출 시 인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제발 작은 불씨기를,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화재 현장을 누비는 도승원의 걱정으로 애가 탔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이며 마음 아파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저 묵묵히 몸조심하고 잘 다녀오라는 말로 그를 응원할 뿐이었다.

그 응원에 화답하듯 남자 친구는 언제나 건강하게 현장에서 돌아왔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부상을 당했다.

‘오빠.’

안전 라인 밖에서 주저앉은 이승희는 너무 놀란 나머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발 큰 부상이 아니길…….’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다쳤는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우리 오빠 살려만 주세요. 살려만 주세요.’

이승희는 그저 생명에 지장이 없기를 빌고 또 빌었다.

* * *

출근한 태경은 외래환자를 보고 있었다.

“다 됐다. 깁스는 2주 정도 하고 있으면 될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무리하지 말고 다리 조심해.”

“네, 선생님.”

“그래도 부러진 게 아니라 정말 다행이네요.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네, 안녕히 가세요.”

축구를 하다 뼈에 금이 간 학생의 진료를 마친 태경은 응급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회 준비는 잘하셨어요?”

임정숙 간호사가 함께 응급실로 향하며 물었다.

“마무리 다 했고 이제 가서 발표만 잘하면 될 것 같아요.”

“가만 보면 선생님 참 대단하세요.”

“저기 선생님들…….”

대화하며 응급실로 향하는 두 사람을 누군가가 불렀다.

“안녕하세요.”

“우리 그이 여기 있나요?”

민망해하며 남편의 행방을 묻는 중년 여자는 인근 호프집 주인이었다.

“네, 응급실에 계세요.”

여자의 남편은 응급실 단골 환자였다. 호프집을 운영할 정도로 남편은 술을 좋아했지만, 문제는 술이 약한데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술을 조금만 마셔도 쉽게 취해 자잘하게 다치는 일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술에 취해 다치면 본인이 알아서 응급실로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병원에 올 때마다 주책을 부리는 남편 때문에 여자는 우리병원 직원들을 볼 때마다 죄송하고 민망했다.

“오늘은 또 어디가 다쳤어요? 많이 다쳤나요?”

“넘어지셨는지 손바닥 안쪽이 살짝 찢어져서 봉합해 드렸어요.”

“손바닥이면 백 프로 술 처먹고……. 아휴! 제가 흥분하다 보니까 말이 막 나오네요. 그거 넘어진 거 맞아요. 매번 죄송해요.”

“별말씀을요. 괜찮습니다.”

“언제 한번 다들 저희 호프집에 꼭 오세요. 제가 치맥 맛있게 대접해 드릴게요. 그럼 저는 남편 데리러 가 볼게요.”

“저기 보호자분?”

“네?”

임정숙 간호사가 돌아서는 호프집 주인 여자를 불러 세우더니 주머니에 있던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다.

“이거 가져가시라고요.”

“저도 있습니다.”

곧이어 태경도 지폐 한 장을 건넸는데, 만 원짜리였다.

“저희 남편이 또 돈을 드렸어요?”

“네. 전 치료해 드렸더니 만 원이나 주셨네요.”

“이게 진짜 무슨 망신이야. 나쁜 뜻으로 드린 건 아니에요.”

“알고 있어요. 저도 그렇고 직원들도 전부 웃으면서 넘기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죄송해서 그렇죠. 다음에 또 그러면 그땐 돌려주지 마세요. 가 볼게요.”

여자는 민망한 듯 빨리 응급실로 향했고, 두 사람도 뒤를 따랐다.

챠륵-

“아으! 인간아, 인간아!”

호프집 여자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가장 끝에 있는 베드에 커튼을 열며 남편을 깨웠다.

“내가 술 먹지 말랬지? 언제 마신 거야.”

“어! 어, 여보 왔어. 우리 마나님. 사랑하는 우리 영순 씨.”

살짝 술기운이 남은 남편은 여전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헛소리 그만하고 창피하니까 얼른 일어나. 언제 철들래?”

“아, 알았어. 일어날게. 사랑해요.”

“사랑이고 나발이고 빨리 일어나!”

쫙-

“아파.”

등짝 스매싱을 당한 남편은 아내에게 이끌려 나왔다.

“오늘도 제 목숨을 살려 주신 우리 원장님과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언제 우리 가게 꼭 놀러 오세요. 사랑합니다.”

“그만 좀 해. 죄송합니다. 가 볼게요.”

“영순 씨, 사랑해.”

“난 너 싫어해. 정신 차려.”

동갑내기 부부의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며 응급실 근무자들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저 두 분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보기 좋네요.”

“남편분이 술 먹을 때만 그렇지 두 사람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둘이 10년 연애하다 결혼했는데 서로 첫사랑이래요.”

“정말요? 대단하다.”

“왜요? 우리 이 쌤 부러운가 봐요.”

“부럽죠. 첫사랑이랑 결혼이 가능하구나. 말이 나온 김에 존경하는 선생님의 첫사랑은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유치한 질문에 태경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쳐다보자 그의 마음을 읽은 이찬희가 바로 주제를 바꿨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회진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빨리 가라.”

Rrrrrrrrrrrr

이찬희의 능청에 웃음이 터진 임정숙 간호사가 빠르게 울리는 스테이션 전화를 받았다.

“네, 우리병원 응급실입니다. 네? 네네. 잠시만요. 선생님?”

전화를 받은 임정숙 간호사의 얼굴에서 순간 웃음기가 사라졌다.

“119인데요. 30세 남자고 다리 앰퓨테이션(amputation, 절단) 환자 이송할 수 있냐고 문의 왔습니다.”

“네, 오라고 하고 환자 바이탈하고 출혈량, 기저 질환은 어떤지 물어봐 주세요.”

“네, 대원님. 오셔도 되고요. 환자 바이탈, 출혈량, 과거력은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오는 데 얼마나 걸리시죠? 알겠습니다.”

구급대원과 통화를 마친 임정숙 간호사는 곧장 태경에게 들은 걸 전달했다.

“15분 안으로 도착할 것 같고요, 바이탈은 안정적이며 출혈량은 현재 정확하지 않다고 하네요. 그리고 폭발이 원인이고 환자가 소방대원이라고 합니다.”

“소방대원이면 구조하다가 그랬을 텐데 마음이 안 좋네요.”

“그러니까요. 방금 전화 받는데 저도 마음이 좀 그렇더라고요.”

이 세상의 귀하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생명의 전선에서 삶과 죽음의 그 아찔한 경계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에게 모든 환자는 전부 다 소중하다. 하지만 가끔 마음이 가는 환자가 있었다.

그중 한 부류가 바로 소방대원들이다.

현장에서 나의 생명을 던져 남의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이니 아무래도 소방대원들이 다쳐서 병원에 오면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 준비합시다.”

태경의 눈빛이 스위치가 켜진 듯 순식간에 진지함이 차올랐다.

덩달아 의료진들의 표정도 진지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다친 소방대원의 정보를 토대로 태경의 일사불란한 오더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이탈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우리는 최악을 대비합시다. 인튜베이션(intubation, 기도삽관)하고 CV cath(중심정맥관) 개봉은 하지 마시고 옆에 꺼내만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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