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너무나 지저분한 상태
“바이탈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우리는 최악을 대비합시다. 인튜베이션(intubation, 기도삽관)하고 CV cath(중심정맥관) 개봉은 하지 마시고 옆에 꺼내만 놓으세요.”
“네, 선생님.”
“인튜베이션(기도삽관), CV cath 준비됐습니다.”
“그리고 박동 뜨면 바로 잡을 거니까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혈관수축제)이랑 플라즈마 솔류션(plasma solution, 수액의 한 종류로 체액의 비율과 흡사한 전해질 비율이 배합됨) 2L짜리 3개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오자마자 바로 타조박탐(tazobactam, 항생제) 주시고 풀 랩(full lab, 혈액검사) 나갈 겁니다. 그 같이 오는 동료들은 원무과 접수 바로 하라고 해 주세요.”
“네, 선생님.”
“아니, 그 접수는 제가 전화할게요.”
“선생님께서 직접요?”
“네.”
원무과 접수를 자처한 태경이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김태경입니다.”
-네, 원장님.
“이따 앰퓨테이션(절단 환자) 오는데요. 지금 미상으로 우선 환자 등록해 주시고 이따 정정하는 게 가능할까요? 네, 미리 오더 내리게요. 감사합니다.”
환자의 치료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기 위해 태경이 직접 원무과에 전화한 것이다.
“15분 동안 우리는 최선을 다합시다.”
“알겠습니다.”
“네, 선생님.”
앰퓨테이션으로 출혈 과다가 오고 더 심해져서 다친 부위를 통해 감염이 발생한다면 그땐 상황이 정말 심각해진다. 그러므로 항상 경계하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현재 일손 남는 분들은 외상 처치실 근처에 바로 대기해 주세요.”
태경은 언제나 그렇듯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아마 고용된 의사가 저렇게 자원을 과다 투여하면 고용주가 싫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태경의 위치가 책임자이기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환자만 생각하며 자원을 투입할 수 있었다.
“이찬희 선생 연락해서 응급실 오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폭발이라고 하면 머리에도 손상이 있을 수 있어요. CT실에도 근무자 대기하라고 하고 외상 초음파 꺼내 놓으세요.”
“선생님, 혹시 심정지도 대비할까요?”
“아니요. 그건 괜찮아요. 발생 가능성 있으면 그때 오더할게요.”
“네.”
“그리고 출혈량 많을 거 대비해서 포 여러 개 준비하고 토니켓(tourniquet, 사지 등을 압박해서 출혈을 차단하는 기구) 준비해요.”
“알겠습니다.”
드르륵-
탁- 탁-
태경을 중심으로 분주하게 오가는 의료진들이 기구를 세팅하며 환자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근무자 한 분은 밖에 나가서 자동문 다 열어 놓으세요. 그냥 응급실 입구에다가 주차하게 안내하고 현재 응급실 입구 근처에 일반 차량 있으면 바로 빼 달라고 미리 전화도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모든 근무자가 태경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럴 때마다 근무자들은 태경의 꼼꼼함과 완벽한 준비에 다시 한번 놀란다.
“오늘도 우리 원장님 꼼꼼함이 끝판왕이시네요.”
“하루 이틀 겪어?”
“이렇게 해야 바로바로 환자를 케어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건 맞아요. 참 한결같은 분이세요.”
태경은 환자가 한 명 한 명 올 때마다 다른 근무자들은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것까지 환자를 위해서 준비한다.
그것이 다른 어떠한 이유도 아니고 오직 환자만을 위해서 그렇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근무자들은 진심으로 그의 지시를 믿고 따른다.
Rrrrrrrrrrr
“응급실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앰퓨테이션 5분이면 도착한답니다.”
임정숙 간호사의 외침을 들은 태경은 처치실 베드 머리맡으로 향했다. 그리고 초음파 기계를 작동시키고 인튜베이션(기도삽관) 도구들을 점검한다.
환자가 오면 지시를 세세하게 내릴 준비를 하며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상황을 시뮬레이션한다.
긴장하거나 걱정돼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환자를 최선을 다해 살리고 싶다는 생각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렇게 5분의 시간이 지나고 기다리던 환자가 도착했다.
“119 왔습니다.”
“환자 도착했습니다.”
“베드 채 들어갑니다.”
드르륵-
119 차량이 멈추고 굉장히 빠른 속도록 베드 채 환자를 내렸다. 그리고 평소보다도 많은 4명 정도의 대원들이 환자를 후송해서 빠르게 외상 처치실로 들어간다.
119 소방대원의 복장을 하고 있는 환자의 모습이 머리부터 차례대로 태경의 시야에 들어왔다.
응급실을 들어올 때부터 풍겨 왔던 다섯 번째 바이탈인 3단계 냄새가 강하게 처치실 안을 가득 메웠다. 3단계를 상 중 하로 나누었을 때 상에 속하는 강한 냄새였다.
이럴 경우 환자의 상태에 따라 바로 4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자, 환자 옮길게요. 하나, 둘, 셋!”
“옷부터 잘라요. 가슴하고 다 잘라요.”
서걱- 서걱-
태경의 지시에 의료진이 대원의 옷을 잘랐다.
“대원님, 인계해 주세요.”
“네, 선생님 그러니까 저희가 현장에 있었는데요. 화재 진압하고 들어갔는데 연구실에서 2차 폭발이 발생해서 이렇게……. 어 이렇게 됐습니다.”
함께 들어온 대원의 모습이 이상했다.
“그리고 이 친구가 출혈이 좀 많았습니다. 진압하고 나오던 와중에 다리 쪽에서 폭발이……. 선생님? 승원이……. 승원이 이 자식이……! 하!”
“네, 대원님 잠시 나가 계실게요. 고생하셨어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구급대원이 환자를 데리고 오면 정말 정확하게 환자 상태를 인계해 준다.
지금까지 어떠한 치료를 했고 발견 시 상황은 어땠는지 등을 하나도 빠짐없이 의료진에게 전달해 주곤 한다.
하지만 방금 모습은 가족이 다쳤을 때 보호자들의 반응과 같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가족과 진배없는 동료가 눈앞에서 다쳤으니 정신이 없을 것이다.
태경은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조용히 나가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함께 온 도승원의 팀장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승원이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처치실 입구에 서 있던 다른 대원들 또한 잔뜩 걱정하는 표정과 함께 큰 소리로 부탁했다.
그들의 말에 태경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묵직한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팀장님 승원이 어떡해요?”
처치실 문이 닫히고 남겨진 대원들은 하나같이 착잡한 표정으로 도승원을 걱정했다.
“승원이 형 다친 거 여자 친구분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알고 있어. 사고 난 건물이 승희 씨 직장이래. 아마 오고 있을 거야. 내가 병원 알려 줬어.”
팀의 막내 대원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다른 동료가 답했다.
“뭐야! 그게 사실이야?”
그 말에 팀장이 자리에서 놀라며 되물었다.
“네, 아까 건물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승희 씨 봤는데 직접 말해 줬어요.”
“그래서 아까 승원이 표정이……. 여자 친구가 안에 있을까 봐 이 자식이 전전긍긍한 거였어.”
여울 소방서 팀장은 그제야 도승원이 진압 직전 이상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승원이 형 여자 친구 집에 인사드리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다리……. 저렇게 부상당해서 어떡해요.”
“하! 불쌍한 자식.”
팀원들은 쉽게 말을 잇지 못하며 자기 일처럼 속상해했다.
* * *
처치실-
“환자분! 환자분! 여기 어딘지 아시겠어요?”
분명히 눈은 떠 있고 사지에 미약하게 힘도 있으나 도승원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환자분, 지금 아무 말을 못 하시는 거예요? 환자분!”
답답한 마음에 이찬희가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그사이 의료진들에 의해 옷이 잘린 도승원의 환부가 드러났다.
모두의 시선에 처참해진 그의 오른쪽 다리가 들어왔다.
“……!”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 종아리 부분이 없어졌다.
‘이런!’
도승원의 오른쪽 다리는 정말이지 걸레가 되어 있었다.
환자가 아파하는 곳을 두고 걸레라고 표현하는 것은 경우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친 곳을 눈으로 본다면 그 표현이 가장 정확했다.
옷가지들과 근처에 있었던 건물 잔해 그리고 살과 근육들이 폭발의 여파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너무나 지저분한 상태였다.
“환부 위로 네, 거기요. 거기다가 토니켓(사지 등을 압박해서 출혈을 차단하는 기구) 감을게요. 지금부터 토니켓 시간도 매번 확인해 주세요.”
의료진들은 태경의 지시를 잘 따르며 본인들이 할 일을 정확하게 분담했다.
한쪽은 환자의 바이탈을 검사하기 위한 장치들을 환자에게 붙였으며, 다른 쪽에서는 사타구니를 만지면서 동맥혈을 채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경은 혈압 수치를 듣기도 전에 환자의 환부를 보더니 CV cath(중심정맥관)을 잡기 위해 멸균 장갑을 착용했다.
“환자 BP(혈압) 95/75, HR(심박동) 85입니다.”
“중심정맥관 잡을게요. 산소포화도 켜 주시고 동맥혈 채혈했나요?”
“네, 선생님.”
이찬희가 빠르게 답변을 이어 갔다.
“채혈했고 지금 기계 돌리러 갔습니다.”
태경은 포비돈 용액에 적신 솜을 들더니 환자의 오른쪽 쇄골을 폭넓게 소독했다. 그리고 15cm 정도 되는 기다란 바늘을 환자의 쇄골 중간 지점에서부터 찔렀다. 그러자 아무런 반응이 없던 도승원이 인상을 찌푸린다.
“으!”
그의 반응을 보니 의식도 있고 다 말할 수 있는데 망연자실한 모양이었다. 지금 환자의 심경은 아마도 자신의 다리만큼이나 처참할 것이다.
태경이 찌른 바늘 손잡이에 있는 주사기로 피가 맺혔다. 이후 간호사가 캐스(cath, 혈관에서부터 피부 밖까지 거치되는 삽입관)를 건네주고 태경은 그것을 바늘을 따라 절차적으로 삽입했다.
“캐스로 plasma 1L bolus(조절 장치를 완전히 열어서 투여)로 주세요.”
태경이 중심정맥관을 잡는 사이 간호사들이 도승원의 팔에서 검사를 위한 채혈을 진행했다. 동시에 태경은 초음파 기기를 켜서 환자의 복부에다가 기기의 프로브(probe, 초음파를 보기 위해서 환부에 갖다 대는 부분으로 손바닥 크기 정도이며 유선으로 본체와 연결되어 있음)를 댔다.
‘복부도 확인하자.’
폭발 현장에 직접 있었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복부 외상이 있을 수도 있었다.
태경은 초음파 기계와 연결된 모니터를 뚫어질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며 복부 상태를 유심히 지켜봤다.
“이 선생님 여기요.”
간호사가 뛰어오더니 이찬희에게 종이를 건넸다.
“동맥혈 결과 나왔습니다. pH 7.3, pCO2 50, pO2 80, O2SAT 91입니다.”
종이를 확인한 이찬희가 보고 후 지시를 내렸다.
“nasal로 5L 틀겠습니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태경이 귀로 보고를 들으면서 동의한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복부의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본 후에 결과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