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정말 이런 게 도움이 될까요?
그 뒤 복부의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본 후에 결과를 말했다.
“복부는 초음파상 이상 없으니 치워 주세요.”
“네, 선생님.”
“환자 플라즈마 솔류션만으로 혈압 안정화될 경우 바로 CT 촬영 갈게요. 그리고 항생제 투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다행히 초음파상 바로 배를 열어야 할 정도의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바이탈도 잡혀가며 현재의 의식 상태를 볼 때 안정화되어간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복부에 외상은 없으니 다행이다.’
태경은 그제야 긴장한 얼굴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밖에 보호자 있나요?”
“환자분 가족분들이 제주도에 계셔서 여자 친구분이 왔다고 합니다.”
함께 온 팀원들은 이승희가 도착 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면담할게요.”
“저…….”
처치실을 나서는 태경의 허리춤을 누군가가 뒤에서 덥석 잡았다.
“선생님?”
지금까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던 도승원이 태경을 잡은 것이다. 마치 작정하고 입을 열지 않고 있던 그가 드디어 목소리를 냈다.
“네, 환자분 말씀하세요.”
태경은 도승원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제가 이런 상태라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저 가족한테도 알리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냥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환자분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미 동료분들한테 다 들었을 거예요.”
간절한 눈빛으로 말하는 도승원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다. 아까 살짝 임정숙 간호사에게 듣기로는 밖에 있는 여자 친구가 결혼할 사이라고 했다.
환자는 한순간에 없어진 자신의 오른쪽 종아리에 대한 변화를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충격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여자 친구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니 마음이 멀쩡할 리 없었다.
“환자분 비밀을 지켜 드릴 수는 있지만, 의료인으로서 거짓말을 할 순 없습니다.”
“그럼 부탁드리는데 긍정적이라고 앞으로 다 잘될 거라고 그렇게 만이라도 해 주세요.”
태경은 도승원의 말을 들으며 그가 굉장히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환자분 최선을 다할게요. 그리고 앞으로 긍정적인 상태가 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방금도 말씀드렸다시피 거짓이나 왜곡된 정보를 전달해 드릴 순 없습니다. 최대한 충격 받지 않게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태경은 최대한 환자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답했다.
“…….”
하지만 도승원은 그 말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마치 모든 걸 포기하고 놓아 버린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잡고 있던 옷자락을 놓아 버렸다.
그런 도승원의 모습을 본 태경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일단 처치실을 나왔다.
“저, 도승원 씨 보호자세요?”
“네, 제가 보호자예요. 오빠…….”
도승원이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렸던 이승희는 간신히 정신을 차린 후 병원으로 달려온 상태였다.
“우리 오빠 지금 어때요? 괜찮나요?”
“환자분 저쪽으로 가서 말씀드릴게요.”
태경은 처치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승희를 안내했다.
“우선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현재 혈압이나 심장박동수 모두 잘 유지되고 있고 CT를 촬영해 봐야 확실하겠지만, 현재의 증상으로 봤을 때 머리나 복부에 과다한 출혈을 야기할 만한 요인은 없어 보입니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하! 다행이다.”
숨을 죽이며 태경의 말에 경청하던 이승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하지만 다른 쪽에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쪽이요?”
“네. 혹시 들으신 거 있나요?”
“아니요. 오빠 동료분이 폭발 사고를 당했다고 그래서 부상이 좀 있다고만 했어요. 저도 정신이 없어서 일단 병원으로 바로 온 거예요.”
이승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도승원의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지금 환자분의 오른쪽 다리가 폭발로 인해 심각한 손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감염이나 출혈을 막기 위해 다른 곳에 손상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손상된 다리에 대한 수술적 치료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도승원의 상태를 전해 들은 이승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님 지금 다리라고 하셨어요?”
“네.”
“다리가……. 얼마나 심각한가요?”
“오른쪽 종아리 쪽 상태가 심각합니다. 다시 돌아오기가 힘드세요.”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다는 말씀이 그러니까…….”
이승희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말이 혹시 다리를 못 쓰게 된다는 건가요?”
“다리를 못 쓴다기보다 손상된 곳을 절단하셔야 합니다.”
“……!”
그 말을 들은 이승희는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 말문이 막히며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우,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떡해요. 아흑! 안 돼요. 흑! 오빠…….”
“보호자분 많이 놀라셨죠?”
태경은 혹시라도 울음소리가 처치실 안에 들릴까 싶어 이승희를 달래며 장소를 옮겼다.
“보호자분 조금 진정이 되셨나요?”
“……네.”
굵은 눈물을 쏟아 내던 이승희는 간신히 마음을 다잡으며 답했다.
지금 가장 힘든 건 자신보다 남자 친구였기에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지금은 그저 도승원을 도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많이 힘드시죠? 하지만 우선은 환자를 살리고 온전히 수술받고 회복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제가 환자분을 보면서 추측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환자분이 평소에 책임감이 강하고 보호자분을 많이 위하는 편인가요?”
“그럼요. 정말 말씀하신 그대로예요.”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두 분께서는 결혼하실 생각이신가요?”
“네, 결혼할 생각이에요.”
태경의 질문에 이승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지금 환자분께서 다리를 많이 다치셨는데 보호자분의 마음이 어떠세요?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현재 환자분이 다른 분들과 약간 달라서 그래요.”
“다르다니요?”
태경이 조금은 의아스러운 질문은 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게의 환자들은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절망해요. 하지만 자신의 통증이나 건강상의 안위를 초월해서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치료 과정 중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으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시는 분은 드물다는 말이에요.”
사실 태경은 도승원이 응급실에 들어올 때부터 상당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 없이 포기한 듯한 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이러한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은 앞으로 치료를 거부하거나 간혹 거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거친 행동이요? 그게 무슨 말씀하시는 건지…….”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나 이뤄야 할 것 혹은 지켜야 할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근데 이런 목표들이 자신의 상태로 인해 도달할 수 없다고 느끼면 모든 것에 절망하고 삶 자체를 놓으려고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요. 환자분이 치료 과정 중 보이시는 반응이 이러한 분들과 매우 흡사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게 뭔지 잘은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 저희가 결혼하려고 하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세요.”
“네…….”
“아마 그거랑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오빠가 평소에 마음을 많이 쓰고 있거든요.”
“사실 이럴 때 치료를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환자분과 보호자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보호자의 역할입니다.”
“네? 제 역할이요?”
“도승원 환자분 같은 분들의 특징이 자기가 아무리 무너져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견디거든요. 제가 볼 때 환자분의 목적은 바로 보호자분인 것 같아요.”
“아! 선생님,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이승희는 이제야 태경이 지금까지 설명했던 말들이 이해됐다. 더불어 사랑하는 남자 친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도울 생각이었다.
“제가 할게요. 혈액이 부족하면 제 피도 나눠줄게요. 오빠랑 저 같은 혈액형이거든요. 뭐든 할 수 있어요.”
도승원에게 이승희가 세상 전부이자 살아가는 이유이듯, 이승희에게도 도승원은 소중한 사람이었다.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다른 어떤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직 남자 친구의 상처받았을 마음만이 신경 쓰였다.
“만약 앞으로의 치료 중 환자분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무조건 잘한다고 응원해 주시고 설득해 주시면 돼요.”
“물론이죠.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힘드시겠지만, 환자분 앞에서는 밝은 척 별거 아닌 척해 주세요. 그러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겁니다.”
“아……. 근데 정말 이런 게 도움이 될까요?”
너무나 당연한 소리에 이승희는 조금 의아했다.
“그럼요. 분명히 도움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저희 오빠 잘 부탁드릴게요.”
이승희는 반신반의한 눈치로 답했다. 하지만 태경은 지금까지 여러 경험을 토대로 도승원 같은 환자를 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도승원이 검사를 받고 올라오고 있었다.
“환자 CT 촬영 끝났습니다.”
간호사가 도승원이 누워 있는 베드를 끌고 오면서 말했다.
“바로 확인할게요.”
그 소리에 태경은 모니터 앞에 앉아 환자의 복부와 머리의 CT를 천천히 꼼꼼하게 확인했다.
‘다른 곳은 괜찮구나.’
다행히 다리 외에 다른 병변은 없었다. 저렇게 다리가 망가질 정도의 폭발이었으면 다른 외상도 입을 법한데 정말이지 천만다행이었다.
CT 결과를 전부 확인한 태경은 도승원에게 다가갔다. 그는 아직도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아무 반응이 없었다.
“환자분?”
모든 걸 포기한 사람의 눈빛이 얼마나 건조하고 허망한지 실제로 그의 눈빛 안에는 살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도승원 환자분 지금 다치신 것 때문에 상심이 크시죠?”
“저 선생님…….”
“네, 환자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든지 편하게 말씀하세요.”
환자의 말에 태경은 적극적으로 응했다. 어떻게든 환자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염려했던 일이 환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저 그냥 죽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보통 갑작스러운 사고로 울분에 차올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죽겠다고 소리치는 그런 말투가 아니었다. 너무나 담백한 말투였다.
“그럴 순 없습니다.”
담백하게 자신의 끝을 말하는 도승원에게 태경은 단호하게 받아쳤다.
환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작은 상처에도 예민해지는 게 사람의 심리였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게 됐으니 그 심경이 절망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겠다는 환자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환자분 자리 털고 일어나셔야죠.”
“아닙니다. 선생님. 안 그래도 승희 부모님께서 절 반대하시는데 다리까지 이렇게 되면 아마도 더 반대가 심할 겁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저 때문에 승희가 힘들어하는 게 너무 싫어요. 그냥 다 포기하고 싶어요.”
“환자분 지금 다리 때문에 정말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다른 곳의 피해는 거의 없어요.”
“알아요. 저도 잘 아는데…….”
도승원 또한 알고 있었다.
소방대원으로 살면서 수많은 현장을 누볐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폭발 사고로 머리나 다른 곳이 다치지 않고 다리 하나 x신 된 게 얼마나 다행인 건지를. 하지만 지금은 수술이고 뭐고 다 부질없고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못하겠어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소방관 도승원과 인간 도승원으로 늘 의욕과 열정, 희망이 가득한 마음에 작은 티끌 하나조차 남아 있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