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37화 (136/472)

137화. 삐- 삐- 삐-

“못 하겠어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소방관 도승원과 인간 도승원으로 늘 의욕과 열정, 희망이 가득한 마음에 작은 티끌 하나조차 남아 있질 않았다.

자신이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큰 기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만 같았다. 절망적인 단어밖에는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저……. 그냥 안 살아도 될 것 같아요. 아까 간호사분이 수술해야 한다고 하던데 수술 안 하겠습니다.”

“환자분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수술 빨리 하셔야 해요. 안 그러면 감염이 될 수도 있고 출혈을 못 잡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장치로 출혈을 막고 있지만 저 장치를 무한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태경은 어떻게든 위로하며 설득하려 했지만, 절망적인 도승원에게는 소용이 없어 보였다.

“아니에요. 다 필요 없습니다. 저……. 수술 안 할래요.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세요.”

목소리를 전혀 높이지 않고 차분하게 내뱉는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음이 점점 더 안 좋아진 태경의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였다.

“오빠!!”

이승희가 버럭 목소리를 높이며 처치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빠 자꾸 그럴 거야?”

“어, 어! 보호자분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다른 의료진들이 이승희를 제지하려 했다. 그러자 평소 같으면 보호자의 처치실 출입을 허락하지 않던 태경이 눈빛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승, 승희야?”

갑자기 들어온 이승희를 본 도승원의 표정이 바뀌었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던 눈빛이 여자 친구를 향하자 사고가 나기 전으로 돌아간 듯 편안함이 느껴졌다.

“오빠!”

이승희는 붕대로 칭칭 감겨 있는 도승원의 다리를 보고 순간 표정이 어두웠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먹고 최대한 밝은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오빠 자꾸 치료 안 받겠다는 이상한 소리 하고 그럴 거야?”

“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우리 앞으로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잖아.”

“그런 소리 안 했어.”

이승희의 물음에 도승원은 순한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오빠가 그런 약한 소리를 하면 내가 누구를 믿고 살겠어.”

“당연히 승희는 오빠만 믿으면 돼.”

“난 어떤 순간에도 오빠 믿어. 그러니까 수술받아. 알았지?”

“근데 승희야. 수술은 있잖아. 그게 조금 이따가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왜냐하면…….”

“아니. 받아!”

이승희는 부드러운 표정과 달리 확고하게 말했고, 도승원은 난감한 듯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빠? 수술받아야지. 받자. 응?”

“……그래.”

자신을 간절하게 쳐다보는 이승희의 시선을 애써 피한 도승원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정말이지? 잘 생각했어.”

“환자분 고마워요. 그러면 잠깐 수술 동의서부터 받을게요.”

“네, 여보세요? 잠시만요.”

도승원의 상태를 걱정하는 소방서 팀장의 전화를 받은 이승희가 잠시 처치실을 나갔다.

* * *

“팀장님, 말씀하셔도 돼요. 오빠랑 같이 있어서 잠시 밖으로 나왔어요. 다른 분들은 다들 괜찮으신 거죠?”

-다들 괜찮아요. 현장에서 마무리 작업하고 있어요. 그보다 승원인 좀 어때요?

팀장은 도승원이 걱정되어 현장에서 잠시 전화를 걸었다.

“그게…….”

-하!

휴대폰 너머로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이승희의 답변에 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가 다 포기한 사람처럼 굴고 있어요.”

-그 녀석 그럴 것 같았어요.

평소 도승원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팀장은 안 그래도 우려했던 일이 생겨 더욱 걱정됐다.

누구보다 밝고 씩씩하고 자기 일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팀원들이 한 번씩 직업에 관해 고민할 때도 도승원은 자신의 힘까지 나눠주며 옆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팀장은 일이나 여자 친구 문제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후배가 보기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완벽하게 하려는 그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승원아, 천천히 해. 천천히. 네가 지치지 않게.’

‘그럼요. 팀장님. 저 도승원입니다. 걱정 마세요.’

그런데 하필이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타격을 받는 일이 한 번에 터진 것이다.

분명 괜찮을 리가 없었다. 아끼는 후배에게 생긴 이번 사고가 화가 나고 속이 상했다.

차라리 자신이 다쳤으면 속이 더 편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아까 사고 현장에서 더 심하게 다그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팀장님. 오빠 어쩌다가 다친 거예요?”

이승희가 팀장에게 도승원이 다친 이유를 몰랐다.

조금 전, 사고 현장-

‘더 이상 사람들 없는 것 확인했으니까 이만 철수하자.’

‘팀장님? 승원이가 아직 안 나왔습니다.’

건물 복도를 걸어가던 팀원은 도승원이 보이지 않음을 알렸다.

‘뭐야! 승원아? 너 왜 안 나와?’

팀장은 복도에서 무전을 하며 도승원을 불렀다.

‘안쪽 연구실에 있습니다. 팀장님 저 여기 한 번만 더 확인하고 갈게요.’

‘거기 2차 폭발이 있어서 빨리 나오라고 했잖아. 거길 왜 또 들어갔어?’

‘혹시나 해서요.’

이유를 캐묻는 팀장에게 도승원은 여자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

‘외부 상황실에서도 인원 파악 끝났어. 빨리 나와.’

이미 건물 내부에 있던 연구원들의 인원 파악이 끝났지만, 도승원은 쉽사리 발을 뗄 수 없었다.

‘너희들 먼저 내려가!’

평소 현장에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팀장은 직접 도승원을 데려올 생각이었다.

‘내가 승원이 데려올…….’

펑-

하필이면 팀장이 데려오려고 하던 그때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저를 찾다가 그런 거였네요.”

도승원이 다친 이유를 정확히 몰랐던 이승희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승희 씨, 미안해요.

“아니요. 팀장님이 왜요. 미안해할 사람은 저예요. 그런 말씀 마세요.”

-승원이 잘 좀 다독여 주세요.

“걱정 마세요. 어떻게든 오빠 기운 차리게 할 거예요. 팀장님 저 오빠한테 가 볼게요.”

-그래요. 다시 연락해요.

“네, 다들 조심하세요.”

이승희는 도승원이 걱정돼 빨리 전화를 끊고 처치실로 들어갔다.

* * *

그사이 태경은 이때다 싶어서 준비한 수술 동의서를 꺼냈다. 그리고 수술 예상 시간과 과거력, 가족력, 복용 중인 약과 지병, 마취, 알레르기 등 수술에 관한 것들을 꼼꼼하고 빠르게 설명했다.

“설명은 다 드렸고요. 혹시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말씀하세요.”

“없습니다.”

“그럼, 여기 사인하시면 됩니다.”

“선생님 아무래도 저, 솔직히 수술 안 받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오빠? 동의서 사인했지?”

도승원이 또다시 수술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말하던 찰나 짧은 통화를 마친 이승희가 다시 처치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 지금 하려고 했어.”

도승원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동의서의 사인을 했다.

이승희의 도움으로 사인을 받은 태경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시라도 빨리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데 도승원이 또다시 수술을 거부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최대한 빨리 수술을 진행할게요. 그리고 우리 환자분은 잠깐 보호자분과 함께 있을게요.”

다른 근무자들은 평소와 다른 태경의 결정이 의아했다. 하지만 수술까지 시간이 오래 남은 것도 아니고 보호자가 곁에 없다면 도승원이 금방 말을 바꿀 것 같았기에 극약처방으로 이승희를 곁에 두기로 했다.

“이 선생은 지금 정 선생한테 말해서 최대한 수술방 빨리 열어 달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이찬희는 처치실을 나서는 태경을 따라가며 그를 불렀다.

“왜?”

“수술은 어느 분이 하십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당연히 내가 하지.”

“선생님, 도승원 환자는 절단술인데요…….”

이찬희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말이었다. 태경이 OS(정형외과) 보드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복부 관련 수술 위주로 했었고, 다른 수술도 아닌 절단술이기에 아주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이찬희?”

그런데 걱정이 무색할 만한 시원한 답변이 돌아왔다.

“걱정 마. 나 잘해.”

이찬희는 되돌아온 답변에 한마디도 반문할 수가 없었다.

태경이 본인 입으로 잘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입에 발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저 말을 한 사람이 김태경이기에 그만큼 확신할 수 있었다.

태경의 뛰어난 실력을 워낙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고, 평소 저런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저 정도로 말을 할 정도면 그만큼 진심이란 소리였다.

‘내가 지금 누구한테 질문한 거야.’

도승원 때문에 정신이 없던 이찬희는 그제야 자신이 쓸데없는 질문을 했음을 깨달았다.

“수술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정 선생한테 빨리 알려 주고. 그리고 임 선생님?”

“네, 선생님.”

태경은 이찬희가 재빨리 응급실을 나가자 임정숙 간호사를 불렀다.

“마취과에서 한 시간 내로 연락이 올 거예요. 그러면 그냥 바로 환자 올리세요. NPO(수술 전 치료한 금식 유지 시간)도 충분한 것 같으니 빠르게 진행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 뒤, 수술을 위한 모든 진행이 끝나고 도승원은 수술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이승희에 인사를 받았다.

“오빠.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수술 잘 받고 와. 알았지?”

“응. 알았어.”

“한숨 자고 온다고 생각하고 좋은 생각만 해.”

“그래.”

도승원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짧게 대답하며 수술방으로 향했다.

수술방 베드에 누워 있는 도승원은 방금까지 이승희와 있을 때랑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또다시 처음처럼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자 친구에게 수술을 받으라고 다짐을 받아서 그런지 더 이상 수술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멍하게 있을 뿐이었다.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의진이 마취 전 확인을 위한 타임아웃을 했지만, 여전히 아무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환자분 성함이 도승원 씨 맞나요?”

“…….”

“도승원 씨 맞으시죠?”

재차 이름을 확인하는 물음에 도승원은 무의미한 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까딱거렸다.

간신히 확인을 마친 의진은 마취를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환자 손가락의 산소포화도 측정을 위한 장치를 끼우고 팔꿈치 위쪽 부근에 혈압 측정기를 착용한다. 그 뒤 심전도를 가슴에 붙이고 마취가 잘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BIS 모니터를 설치했다.

“도승원 환자분 마취할게요. 천천히 심호흡하세요. 곧 잠드실 거예요.”

정맥주사로 프로포폴이 들어가자 곧이어 도승원은 잠이 들었다. 잠든 걸 확인한 의진은 근육이완제를 정맥으로 주사했다.

그리고 기도삽관을 위한 블레이드(blade, 기도삽관을 하기 위해 입속에 넣어서 기도의 시작하는 부분을 보이게 하는 기구로 낫과 같은 모양임)를 손에 들었다.

의진은 익숙하게 도승원의 입에 블레이드를 집어넣고서 기도를 들어 올리고 삽관했다.

“기도삽관 시행합니다. 23cm에 고정할게요.”

그 뒤 수천 번도 더 한 과정을 꼼꼼히 진행한 뒤 모니터를 보며 몇 가지 설정했다.

“선생님, 환자 좀 내리실 거죠?”

“환자 내릴 건…….”

마취가 막 끝나고 의진에 물음에 태경이 대답을 하던 바로 그때였다.

삐- 삐-

순간 모니터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수술방 안에 있는 모든 의료진의 고개가 모니터를 향했다.

삐- 삐-

전신마취를 위한 기계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정확히는 도승원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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