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40화 (139/472)

140화. 의사와 소방대원

드르륵-

그때 켈리를 고정하는 소리와 함께 당겨진 구조물이 근육 밖으로 나왔다.

새끼손가락 정도의 굵기를 갖는 신경 다발이었다. 굵은 신경 다발은 다리 위에서부터 발까지 가운데로 지나간다.

지금 그 신경 다발을 찾아서 당긴 것이다. 이 신경 처리는 이후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했다.

“이 선생?”

“네?”

“이걸 처리하는 게 지금 같은 절단술에서 중요한데 왜 그럴까?”

태경이 한참을 집중하고 있던 이찬희에게 기습 질문을 던졌다.

“그,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굵은 신경의 잘린 끝은 처리를 잘해야 해. 안 그러면 뉴로마(neuroma, 신경에서 기원한 종양) 생길 수가 있어.”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태경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경을 잡아당긴 후 두 개의 타이(tie, 외과적 매듭으로 혈관이나 신경의 절단이나 지혈 시 사용)로 신경 끝을 빠르게 결찰해 나갔다. 그리고 최대한 근육을 파고들어서 잘랐다.

“신경은 조금만 압박을 받아도 상당한 통증이 있을 수 있고 또 압박 부위에서도 뉴로마가 생길 수 있어.”

태경은 환자의 다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이따가 근육 닫을 때 압박받지 않게끔 안쪽에서 해 줘야 해.”

“네, 선생님.”

“서지컬 타이(surgical tie) 주세요.”

오더를 들은 간호사가 언제나 그렇듯이 [⌒] 모양의 외과 바늘과 연결된 긴 실을 태경에게 건넸다.

다리에는 굵은 신경도 있지만, 당연히 굵은 혈관들도 있다. 절단술에서는 이 구조물들을 정확히 매듭지어 주는 것도 중요했다.

중앙에 있는 굵은 동맥과 정맥을 하나하나 기구로 확인한 태경은 혈관의 가운데로 바늘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아주 빠르지만 정확한 힘과 정확한 경로를 통해 혈관 주변으로 실을 돌린 후 외과적 매듭을 했다.

‘1초 2초 3초.’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이 단 3초 만에 이뤄졌다. 수술방 시계를 보며 함께 초를 센 이찬희의 눈이 커졌다.

‘이러니까 선생님께서 그렇게 자신 있어 하셨지. 선생님은 의사가 천직이야.’

태경은 굵은 혈관들을 모두 합쳐서 20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절단술에 필요한 혈관 처리를 마무리한 것이다.

“컷!”

“네?”

매듭을 지어서 길게 늘어져 있는 실을 위로 들어 올린 태경이 고개를 들며 말하자 수술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팔렸던 이찬희가 잠시 당황하며 답했다.

“네, 컷.”

그 뒤 자리에서 일어난 태경이 도승원의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환자분 수술은 거의 다 마무리되어 가고 있어요. 불편한 곳은 없어요?”

“전혀 없습니다.”

“이제 뼈를 다듬을 거예요. 톱날 소리가 들리고 좀 많이 시끄러울 텐데, 두 분 다 제가 아까 말했던 귀마개를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선생님 저희는 진짜 괜찮은데 꼭 해야 할까요?”

잠시 이승희와 눈빛을 교환한 도승원이 답했다.

“그럼 이렇게 하세요. 제가 이 중 귀마개를 준비했으니까 작은 귀마개만이라도 하는 걸로 하죠. 귀마개를 아예 안 하면 소리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힘들 수가 있어요.”

“그러면 할게요. 오빠, 선생님 말씀대로 작은 귀마개 하자.”

“네, 알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자분과 보호자분 귀마개 준비해 주세요.”

“네, 선생님.”

두 사람이 귀마개를 착용하자 다시 자리에 앉은 태경에게 간호사가 총 모양의 톱을 건네줬다.

“그럼 시작할게요.”

끝에는 톱날이 달려 있는 20cm 정도 되는 긴 톱이었다.

-위잉

버튼을 누르자 괴상한 굉음이 수술방에 울려 퍼지며 톱날의 끝이 기구의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위이이잉이이잉

태경은 자를 대어 가며 이후 봉합할 근육과 뼈가 서로 영향을 줘서 손상당하거나 통증을 야기하는 일이 없도록 끝을 자르면서 다듬었다.

생각보다 크게 울리는 톱 소리는 귀마개를 착용한 두 사람에게도 전달됐다. 그 소리에 이승희가 살짝 움찔했다.

“승희야 괜찮아?”

귀마개를 착용해 목소리가 작게 들리긴 했지만, 두 사람이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응. 소리 때문에 잠깐 놀라서 그래. 괜찮아. 오빠야말로 괜찮아?”

“나야 괜찮지.”

“눈썹 떨리는 거 보니까 아닌 거 같은데? 오빠 무섭구나?”

이승희는 일부러 도승원이 소리에 신경 쓰지 못하도록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니, 전혀. 현장에서 이것보다 더한 소리도 많이 들어서 괜찮아.”

“정말?”

“그럼. 불길에 구조물이 떨어질 때도, 화마가 기세등등하게 그 영역을 확장할 때도 그 특유의 소리가 있거든. 이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오빠 대단하네.”

염려와 달리 두 사람은 톱 소리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서로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그사이, 태경은 길게 삐져나온 뼈를 수직으로 자른 후 덮을 근육의 면을 따라서 뼈의 뾰족한 부분을 다듬었다.

탁- 탁- 탁-

잘린 뼛조각들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이찬희는 태경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고 뼛조각이 눈에 튀지 않도록 투명한 가림막을 눈앞에 갖다 댔다.

“후우!”

한참을 자르던 태경이 마스크 안으로 긴 호흡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이리게이션(irrigation, 식염수 등으로 세척하는 행위) 해 주시고 끝나면 한 번 더 토니켓 풀어 볼게요.”

그 후 세척이 끝나고 토니켓을 풀어서 환자의 출혈 여부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꼼꼼하게 확인했다.

여기서 아무런 출혈이 없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압력을 낮추자 적은 양의 출혈이 조금씩 흘러내렸지만 전기 칼을 사용할 정도로 출혈량이 많지는 않았다.

“네, 닫을게요. 바이크릴(vicryl, 녹는 실) 3-0 주세요.”

태경은 실을 받아 들고서 자른 근육들을 맞춰 보고 그 경계가 잘 어우러지도록 잡아당겨도 봤다.

그 경계를 기억한 뒤 이찬희가 경계가 맞도록 당겨 주고 태경이 봉합을 시작했다.

봉합은 이으려고 하는 두 근육에 일정한 간격과 일정한 강도로 잇는다. 빠르면서도 어느 것 하나 특이하거나 다르지 않게 진행한다. 그 봉합을 떠가는 깊이와 간격이 아주 일정했다.

“이제 피부와 그 아래 한 번에 갑니다. 나일론(nylon, 녹지 않는 실) 3-0랑 4-0 두 개 주세요.”

“네, 선생님.”

대부분 절단술의 마무리는 한 개의 큰 봉합실로 진행한다. 하지만 태경은 수술 시 좀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 힘을 받을 큰 봉합실과 그 사이사이 조금 더 꼼꼼하게 피부와 피부를 연결시켜 줄 봉합을 진행한다. 이것은 그간의 수술 경험을 통한 태경만의 노하우였다.

“여기, 컷.”

“컷.”

그 뒤, 태경이 마무리 봉합을 끝내고서 두 개의 실을 번쩍 들어 보이고 이찬희가 컷을 함으로써 수술이 마무리되었다.

‘냄새가 금방 내려가네.’

수술이 끝나자 도승원을 감싸던 다섯 번째 바이탈은 빠른 속도로 2단계로 내려갔다.

처음부터 생명에 지장이 없었고, 단계가 높지 않은 3단계였기에 수술이 잘 끝나자 다섯 번째 바이탈이 바로 안정권으로 내려간 것이다.

이 모든 절단 수술 과정이 불과 한 시간이 좀 넘는 시간 안에 끝이 났다.

“1시간 15분…….”

의진이 수술방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수술을 정말 금방 하셨네요.”

“그러니까요.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진짜 의사 안 하셨으면 뭐 하셨을지 상상이 안 간다니까요.”

“이찬희, 오버하지 마.”

“오버 아닌데요? 요즘은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선생님처럼 될 수 있을까 싶다니까요.”

“노력하면 다 돼.”

“이 쌤이 선생님 수술에 아주 감동했나 보네요.”

임정숙 간호사의 말을 뒤로한 채 태경은 환자와 보호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도승원 환자분, 고생하셨어요. 보호자분도 고생하셨고요. 수술은 잘됐고 이제 잘 붙는 일만 남았습니다.”

“저희가 뭐 한 게 있나요. 선생님들이 애쓰셨죠.”

“오빠 말이 맞아요. 여기 계신 분들 다들 너무 애쓰셨어요.”

“두 분이 애쓰셨죠. 수술받기까지 몇 시간이 며칠 같이 느껴졌을 것 같아요.”

“네. 정말이지 제정신도 아니었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병동 올라가실 거예요. 제가 또 찾아뵐게요.”

“네, 선생님.”

“보호자분은 잠시 나가서 수술방 앞에서 기다려 주세요. 금방 정리하고 환자분하고 같이 병동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네, 선생님. 저희 오빠를 위해 애써 주시고 수술도 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고생하셨어요.”

“오빠, 나 앞에 있을게.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이승희는 의료진에게 인사를 하며 수술방을 먼저 나갔다.

태경이 환자에게 설명하는 동안 의진은 척추 마취의 대한 주의 사항을 설명했고, 이찬희와 다른 근무자들은 수술 부위에 붕대를 감았다.

“다들 수고했어요.”

태경이 언제나 그렇듯이 나가기 전 수술 가운을 잡아 뜯으며 함께 수고한 의료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정 선생. 고마워. 수고했어.”

“수고하셨어요.”

“저기, 선생님?”

마지막으로 의진과 인사를 주고받고 나가려는 태경을 도승원이 불러 세웠다.

“네, 환자분.”

“죄송합니다.”

“환자분이 왜요?”

“바보같이 굴어서 죄송합니다.”

도승원은 태경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전하고 싶었다.

수술 전 사과의 마음을 전하긴 했지만, 그때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진짜 사과를 하고 싶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가림막 너머로 태경을 비롯한 의료진의 얼굴이 이따금 보였었다.

모든 의료진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며 수술에 임하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수술을 주도하는 태경의 눈빛이 인상 깊었다.

진심이 느껴지는 그 눈빛을 보고 낯설지 않았다.

자신과 동료들이 화재 현장으로 뛰어들 때 눈빛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의사와 소방대원.

전혀 다른 분야였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두 분야 모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술하는 의료진이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그 심정이 깊이 와닿았다.

그러다 보니 죽겠다고 거짓말까지 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 한없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는 게 얼마나 값지고 귀한 일인지 알면서 제가 선생님께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런 못난 환자를 끝까지 수술받도록 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환자분의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그런데 어떻게 절 그렇게 잘 아셨어요?”

“네?”

“아니, 승희를 수술실에 데려와서 제 옆에 있게 할 생각을 어떻게 하셨을까 해서요. 제가 승희 앞에서는 고집을 피울 수가 없거든요.”

“비슷한 거 같았어요.”

“비슷……. 저랑 선생님이요?”

“네, 환자분을 보는데 뭔가 저랑 비슷한 성향인 거 같아서 내가 환자분이라면 어떻게 설득시킬까 하다가 떠올랐어요.”

“그러셨군요. 저한테 이렇게까지 마음 써 주셨다는 걸 아니까 더 감사하네요.”

도승원의 표정은 응급실에 실려 올 때와는 전혀 달랐다.

수술이 잘 끝나서 그런지 아니면 수술하는 동안 여자 친구와 대화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얼굴 가득 느껴지던 절망한 기색이 더는 없었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심적 고통으로 힘들어하던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살짝 웃음까지 비쳤다.

저 표정이야말로 태경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귀한 보상이었다. 의사에게 있어 환자는 힘을 주는 존재였다.

“환자분, 앞으로도 지금 그 마음 변치 말고 긍정적인 생각만 하면서 씩씩하게 털고 일어나시길 응원할게요. 고생하셨어요.”

“그럼요. 마음 단단히 먹었습니다.”

“전 이따 또 뵐게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태경은 도승원을 따라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수술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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