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41화 (140/472)

141화. 환자에 대한 책임감

똑똑-

“네.”

“정의진 선생님.”

병실로 올라가 도승원을 보고 온 태경은 저녁을 먹고 의진의 진료실을 찾았다.

“커피 한잔합시다.”

“좋죠.”

“음. 맛있다. 이거 원두 여사님이 직접 볶는 거 몰랐죠?”

“정말?”

“네, 원두 사다가 집에서 로스팅하신대요.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으시잖아요.”

“나이도 있으신데 그 열정이 참 대단하시네.”

“그러니까요. 근데 선배 오늘은 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오셨어요.”

“너 그렇게 말하면 서운하다. 우리 사이에 무슨 꼭 할 말이 있어야만 보는 건 아니잖아.”

의진이 의심스러운 표정과 함께 눈을 가늘게 뜨자 태경이 솔직히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 하려고.”

“갑자기요? 혹시 아까 이승희 보호자 건 때문에 그러세요?”

“어떻게 알았어?”

“척하면 척이죠. 아까 저녁 먹을 때도 선배가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는데 사람들 오는 바람에 못 한 거 같았거든요. 느낌이 보호자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어요.”

“눈치 구 단이 아니라 백 단이네. 아까 미안했어.”

환자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방법이긴 했지만, 태경은 마취과 의사인 의진과 상의도 없이 내린 결정이 미안했다.

솔직히 말해 다른 마취 의사였다면 끝까지 반대했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의진이기 때문에 허락해 준 걸 잘 알고 있었다.

“대뜸 보호자 데려와서 수술한다고 해서 당황했을 텐데 허락해 줘서 고마워.”

“사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그 짧은 찰나에 머릿속에서는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런데 선배니까 저렇게까지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수긍이 가더라고요.”

“이야. 이거 뭔가 감동의 물결이 밀려오네.”

“근데 선배?”

“응?”

“왜 그렇게까지 한 거예요?”

모든 의사가 아까 같은 상황에서 태경처럼 적극적으로 환자를 위해 행동하지는 않는다.

물론 설득은 하겠지만,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보호자를 수술방까지 데려오는 엄청난 생각을 하는 의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냥 책임감 때문인 거 같아.”

“책임감이요?”

“응. 환자에 대한 책임감. 환자의 상태가 아무리 위증하고 힘들더라도 나한테 온 환자는 끝까지 책임지자는 생각이 있거든. 내가 환자를 포기하면 그 환자는 내가 아닌 다른 의사와 진료하더라도 의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가 있으니까.”

“선배 이야기 들으니까 아까 수술방에서 이 선생이 한 말이 떠오르네요.”

“의사 안 됐으면 뭐 됐을까 하는 말?”

“네. 선배가 의사가 아닌 건 상상하기 힘든 거 같아요.”

“나? 아마 수의사 하지 않았을까?”

“결국 의사잖아요.”

“그러네.”

“전 사실 아까 수술방에서 이승희 씨 보는데 사람이 얼마나 크고 단단해 보이는지……. 대단한 사람 같아요.”

“수술방을 선뜻 들어온다고 한 것도 그렇고 수술 진행되는 동안 환자 옆에서 계속 격려한 것만 봐도 대단하지.”

“속으로 본인도 힘들 텐데 전혀 내색도 하지 않더라고요.”

의사나 간호사처럼 훈련되지 않은 일반인이 익숙하지 않은 수술방에 들어온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소리가 공포로 느껴질 수도 있는 절단 수술에 들어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수술 진행하는 동안 두 사람을 봤는데, 환자분에 대한 이승희 씨의 사랑이 얼마나 진심이고 깊은지 느껴지는 거 있죠?”

의진의 말대로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결혼할 거라고 하더라.”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러지 않고서야 저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두 사람 잘됐으면 좋겠다.”

“저도요. 아마 슬기롭게 잘할 거 같아요.”

태경과 의진은 진심으로 두 사람을 응원했다.

* * *

“팀장님 잠시만요. 잠시만……. 다리가 떨려서 못 들어가겠어요.”

“저도요 부장님. 형 얼굴 보려니까 왜 이렇게 다리도 마음도 덜덜거리는지 모르겠네요.”

도승원의 동료인 여울 소방서 1팀은 우리병원 정문을 코앞에 두고 마당 벤치에 잠시 멈춰 섰다.

근무가 끝나고 면회를 왔지만, 이들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여울 소방서 1팀의 첫 부상자였기에 팀원들의 분위기가 더 침울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승희 씨가 그러는데 수술을 안 받겠다고 했다면서요?”

“그랬대. 수술 안 받고 죽겠다고 했다나 봐. 그럴 녀석이 아닌데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그랬겠어.”

“우리 승원이 얼굴 어떻게 봐요.”

“그래서 안 볼 거야? 이대로 돌아가자고?”

팀장은 축 처진 팀원들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너희들 다 표정 풀지 못해? 하나 같이 다들 죽겠다는 표정들이야?”

“팀장님도 아시면서 승원이 때문에 그렇죠. 그놈 생각하니까 마음이 안 좋아서.”

“정말 너무한 것 같습니다.”

심각한 얼굴로 한숨만 푹푹 쉬는 팀원들 사이로 별안간 막내 팀원이 화는 내며 짜증을 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다쳤는데 실수한 게 없는지 확인해 보라는 게 말입니까?”

막내 팀원의 말에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할 말이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팀장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현장에서 복귀한 후 팀장은 윗선에 부상자인 도승원의 이야기를 알렸다. 하지만 제일 먼저 돌아온 대답은 그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높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 소방대원 지침대로 한 거 맞아? 실수한 거 아니야? 하! 이거 또 골치 아프게 생겼네.’

‘네? 지금 사람이 다쳤습니다. 다시는 예전처럼 걸을 수도 없이 사람이 다쳤다고요. 그게 할 말입니까?’

그 말에 팀장은 계급이 높은 사람에게 처음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적어도 ‘얼마나 다쳤냐?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라는 대답을 기대한 자신이 비참해지기까지 했다.

“승원이 형도 그렇지만 저도 어릴 적부터 꿈이 소방대원이었거든요. 근데 솔직히 현실이 이렇게 씁쓸할지는 몰랐습니다.”

막내의 말이 사실이었다.

아직도 하루 3교대로 일하는 소방서도 있었고, 위험수당은 몇 년째 1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여전히 인상만 추진 중이었다.

이럴 때마다 생명을 위협하는 화마보다 소방대원을 대하는 현실이 더 무서웠다.

“작년 세계 소방대회에서 만난 시애틀에서 온 소방대원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자기네 주는 시장보다 연봉이 높은 게 소방대원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전국에서 일하는 모든 소방대원이 돈을 벌기 위해 소방대원을 선택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현저하게 떨어지는 대한민국의 소방대원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어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막내 너는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는 꺼내서 기분 더 가라앉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부장님. 너무 속상해서 그랬어요.”

“다들 그만해. 지금 가장 마음이 안 좋은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승원이야. 근데 우리가 지금 이런 분위기로 들어가면 승원이 기분이 어떻겠어? 안 그래도 힘든 애한테 축 처진 모습 보일래?”

가뜩이나 마음이 심란할 도승원을 위해 팀장은 팀원들의 마음을 다잡았다.

“너희들 승원이가 누군지 몰라? 그놈 우직하고 누구보다 근성이 강한 놈이야. 이런 일로 절대 좌절하거나 무너지지 않아. 그러니까 들어가서 쓸데없는 소리 하거나 행여 눈물이라도 보이는 놈 있으면 나한테 혼날 줄 알아.”

팀장은 오랜 시간 소방대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사이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지만, 모든 날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현장을 누비는 동안 부상당한 동료들이나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하늘나라로 간 동료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누구보다 마음 아팠던 날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부상을 당한 후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무조건 좋은 이야기, 긍정적인 이야기만 해. 알았어?”

“알겠습니다.”

“네, 팀장님.”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괜찮냐는 질문이나 부상에 관한 직접적인 질문은 하지 마.”

“왜요?”

“그걸 몰라서 물어?”

막내의 질문에 팀장 대신 부장이 답했다.

“안 그래도 부상을 신경 쓸 텐데 우리가 이야기를 꺼내면 승원이가 더 신경 쓸 거 아니야.”

“아……. 네.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당연히 안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승원이 여자 친구 집에 인사드리러 가기로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속상하네요.”

“걱정 그만하고 이제 들어가자. 다들 밝은 얼굴로 들어가.”

“네.”

“팀장님?”

팀원들이랑 함께 병원으로 들어가는 팀장을 이승희가 불렀다.

“다들 오셨어요?”

“아니, 승희 씨. 왜 나왔어요?”

“도착할 때가 지났는데 혹시 못 찾으시나 하고 나와 봤어요.”

“승희 씨가 고생이 많네요.”

“아니에요. 제가 고생할 게 뭐가 있어요.”

팀원들은 몇 시간 전 연락을 했을 때와 달리 씩씩한 이승희를 보며 일부러 힘을 내는 거라 생각했다.

“승원이는 좀 어때요?”

팀장은 도승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괜찮아요. 다들 오빠 때문에 걱정하고 계셨죠?”

“아무래도 그렇죠.”

“이제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

웃는 얼굴로 답하는 이승희를 보며 팀원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망설였다.

“오빠 괜찮아요. 물론 사고 나기 전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이제 더 이상 힘들어하지는 않아요. 얼른 올라가 보세요.”

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승희를 따라 2층에 있는 도승원의 병실로 향했다.

“승원아?”

“우리 왔어.”

“다들 오셨어요?”

걱정했던 팀원들은 밝은 얼굴로 맞아 주는 도승원을 보며 한시름 놓았다.

“미안하다.”

팀장은 붕대에 감겨 있는 도승원의 다리를 보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아이, 팀장님 아까 들어오기 전에 밝은 분위기로 가자고 하시더니 왜 그러세요.”

“그러게 말입니다.”

“속상해서 그런다. 이놈들아.”

“팀장님이 미안해하실 일 아니에요. 제 결정이었고 제 선택이었어요. 저 괜찮습니다.”

“역시 승원이 형은 멋있습니다.”

“맞다! 현장은 잘 마무리됐어요?”

“야! 네가 지금 현장 걱정할 때야? 현장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그딴 거 생각하지 말고 당분간 네 걱정만 해.”

태연하게 현장 소식을 묻는 도승원에게 부장이 손사래를 쳤다.

“팀장님, 승원이 이 녀석 다쳐서도 현장 걱정하는 거 보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네요.”

“현장은 잘 마무리됐어. 그나저나 수술받느라 고생했지?”

“척추 마취로 수술했는데 저보다 승희가 고생했어요. 저 수술받게 하느라 승희가 수술실에 들어와서 같이 있었거든요.”

“뭐라고?”

“승희 씨가 수술실에?”

“아니, 그게 말이 돼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팀원들은 모두 이승희를 쳐다봤다.

“오빠 말이 맞아요. 오빠 수술하는 동안 제가 옆에 있었어요.”

도승원이 팀원들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승희 씨 정말 대단하네요.”

“승원아, 너 평생 여왕처럼 모시고 살아라. 어?”

“안 그래도 그러려고 합니다.”

팀원들은 도승원이 기운을 차린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오빠 갔다 올게.”

“조심히 갔다 와.”

“승희 씨, 또 봐요.”

도승원이 팀원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 이승희는 인사를 하며 병실을 나왔다.

“저기 203호 도승원 환자 보호자인데요. 집에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 외출 시간이 있나요?”

“아니요. 보호자분들은 따로 없어요.”

“네, 감사합니다.”

이승희는 도승원의 집에 들러 속옷과 필요한 것을 챙기고 자신도 집에 들러야 했기에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께 남자 친구의 이야기를 해야 했기에 집에 꼭 가야 했다.

-승희야 아빤데 오늘 저녁 약속 있니? 할 말이 있으니까 늦게 들어오지 마. 수고해. 우리 딸.

이승희는 급하게 병원을 오느라 답장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메시지를 보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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