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42화 (141/472)

142화. 어떡해. 어떡할 거야.

여울동의 한 편의점-

한 손님이 이것저것 물건을 고른 뒤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할게요.”

“…….”

“저기…….”

“여보, 계산해 드려.”

“어머!”

남편의 말에 포스기 앞에 있던 부인이 놀라며 손님이 온 걸 알았다.

“아고, 죄송해요. 계산해 드릴게요. 전부 다 해서 6,300원입니다. 할인 카드 있으세요?”

“아니요. 그냥 계산해 주세요.”

“결제됐습니다. 카드 빼 주세요. 영수증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수고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당신 무슨 일 있어?”

물건을 정리하던 이용현이 아내에게 물었다.

누구보다 손님에게 적극적인 아내가 아침부터 자꾸만 딴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였다.

“내가 일이 있을 게 뭐가 있어요.”

“힘들어서 그런 거면 창고에 들어가서 좀 쉬어.”

“힘들긴. 금방 알바생 오면 집에 갈 텐데 괜찮아요.”

남편에게 아무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고순애는 고민이 있었다. 바로 딸인 이승희에 대한 고민이었다.

‘엄마, 오빠 집에 저녁 먹으러 올 때 결혼 이야기할 건데 엄마는 오빠 사위로 어때? 아빠가 많이 반대하는데 엄마가 말 좀 잘해 주면 안 될까?’

딸이 사귀고 있는 도승원과 결혼을 생각하고 있으니 반대하는 남편을 설득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지금까지 딸에게 한 번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고순애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남편만큼 명확히 반대의 뜻을 내비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승낙하기도 쉽지 않았다.

도승원이란 사람 자체만 보면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가 하나뿐인 자신의 딸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옆에서 보면 엄마로서 흐뭇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직업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집에 오면 진지하게 이야기해 봐야겠네.’

고민하던 고순애는 며칠 뒤 도승원이 집에 오면 가족끼리 다 함께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당신 아까 어디 갔다 온 거예요?”

“그냥 옆에 김 씨네 다녀왔어.”

“반찬을 뭐 해야 할지 모르겠네.”

“반찬은 무슨. 아침에 먹다 남은 청국장 있잖아. 그거 해서 저녁 먹으면 되지. 뭘 또 하려고 그래.”

“당신도 참. 누가 우리 먹을 거 말했어요? 손님 먹을 거 말이에요?”

“손님? 저녁에 누가 와?”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승희 남자 친구요. 그 친구 며칠 뒤 우리 집에 저녁 먹으러 오기로 했잖아요.”

고순애의 말을 들은 이용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더니 아내를 불렀다.

“여보? 안 올 거야.”

“뭐가 안 와요?”

“도승원 그 친구 우리 집에 저녁 먹으러 안 올 거라고.”

“왜요? 일이 생겼나? 승희가 그래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직접 말했어. 나 사실 아까 그 친구 만나고 왔어. 내가 소방서 찾아가서 승희랑 결혼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도 했고.”

“여보!”

“결혼은 반대한다고 말했어.”

“승희는요? 승희가 알아요?”

“모르지. 그냥 나 혼자 결정하고 찾아간 건데 어떻게 알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승희랑 상의도 없이 불쑥 직장을 찾아가면 어떡해요.”

고순애는 처음 듣는 사실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친구 소방대원이잖아요. 불 끄는 화재 현장 드나드는 사람한테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떡해요. 마음 심란하게. 가뜩이나 현장 나갈 때마다 승희가 얼마나 걱정하는데 당신 왜 그랬어요.”

“집에 오기 전에 말을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 찾아갔어.”

“당신은 끝까지 반대할 거예요?”

“그럼 당신은 찬성이야?”

“전 솔직히 모르겠어요. 사람이 너무 바르고 인성도 좋고 우리 딸을 그렇게 사랑해 주는데 직업 때문에 반대를 한다는 게 맞나 싶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그걸 몰라? 내가 나 좋다고 이러는 거 아니잖아. 이따 승희한테도 확실하게…….”

“안녕하세요.”

부부의 심각한 대화가 한창 고조될 때 즈음, 손님 한 명이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형님, 형수님. 저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반가운 얼굴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 사람은 편의점 옆에 있는 식당 주인이었다.

편의점과 식당의 오픈 시기가 비슷하여 부부끼리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오늘은 좀 늦었네.”

식당 주인은 아내와 저녁 장사 교대하기 전 늘 편의점에 와서 커피를 뽑아 갔다.

“어휴! 말도 마세요. 사고가 나서 도로가 아주 꽉 막혔었잖아요.”

“왜? 어디 또 사고 났어?”

“저기 큰 마트 뒤에 있는 사거리. 거기 근방에 있는 oo 대학교에서 불났잖아요.”

“뭐! oo 대학교?”

식당 주인이 말한 대학교는 딸이 일하는 학교였다. 부부는 지금까지 사고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예. 뭐라더라 거기 연구하는 건물에서 폭발 사고가 났다고 하던데……. 아무튼 그래서 교통순경까지 나와서 차 정리했다니까요.”

부부는 식당 주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딸의 연락이 없었기에 더 걱정됐다.

고순애와 이용현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엄마.

고순애의 휴대폰 너머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희야 괜찮아? 학교 사고 났다면서? 너 지금 어디야. 그래? 다행이다. 알았어.”

“뭐래?”

“승희는 괜찮대요. 방금 집에 왔다고 하네요.”

딸과 통화가 된 고순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들 그러세요?”

“우리 딸이 그 대학교에서 일하거든. 다행히 별일 없다고 하네.”

“그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그 후 이용현과 고순애는 알바생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집으로 향했다.

* * *

“승희야? 승희야?”

“너 정말 괜찮…….”

주차하자마자 정신없이 뛰어온 부부는 큰 가방을 든 채 방에서 나온 이승희와 마주쳤다.

“나 괜찮아. 우리 건물에 화재가 났는데 나는 그 시간에 외부 일 보느라 밖에 있었어.”

“근데 승희 너 어디 가니?”

“뭔 가방을 그렇게 챙겼어?”

“나 아빠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요. 여기 좀 앉아 보세요.”

“왜 그래? 너 무슨 일 있어?”

고순애와 이용현은 딸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뭔데 그래? 얼른 말해 봐.”

부부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일하면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저 병원 가 봐야 해요.”

“병원?”

“갑자기 병원은 왜? 어디 아파?”

“아빠, 엄마. 오늘 사고 소식 들으셨죠?”

“그래, 집에 오기 전에 옆집 식당 아저씨한테 들었어.”

“연구실에서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불이 났어요. 주변에 있는 여러 소방서에서 충돌했고, 승원 씨가 있는 여울 소방서에서도 출동했어요. 승원 씨는 혹여 제가 안에 있는 줄 알고 현장을 확인하던 중 2차 폭발이 났고 그 사람이 다쳤어요.”

“얼마나? 많이 다친 거야?”

“그게…….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병원에서 절단 수술을 받았고 지금까지 병원에 있다 왔어요.”

“……!”

갑작스럽게 들려온 충격적인 말에 부부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오늘 도승원을 만나고 온 이용현의 충격은 아내보다 더했다.

“아빠가 승원 씨의 직업 때문에 우리 결혼을 반대하신다는 걸 알아요. 아빠? 제가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해요. 처음 만났을 때, 소개팅으로 만났다고 했지만 실은 오피스텔 건물에서 불이 났던 날 승원 씨가 절 구해 주면서 인연이 닿았어요. 그때도 지금도 승원 씨는 저를 구해 주는 일에 주저 없이 뛰어든 사람이에요.”

차분하게 두 사람을 설득하고 있는 이승희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부모님처럼 날 사랑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나를 구해 줘서 미안함 때문에 덜컥 내린 결정도 아니고 오래전부터 신중하게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에요. 그저 겉모습이 조금 달라졌을 뿐 승원 씨는 여전히 저에게 같은 모습이에요. 이제 제가 그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요. 제가 함께 걸어가게 해 주세요. 승원 씨와 결혼하고 싶어요.”

“승희야…….”

딸을 바라보는 고순애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축복받아야 할 결혼 이야기를 이렇게 꺼내서 두 분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려 죄송해요. 아빠 엄마 실망시켜 드려 정말 죄송해요.”

“승희야……. 아고, 우리 딸. 불쌍해서 어떡하니…….”

고순애는 맞은편으로 걸어가 이승희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너도 승원이도 딱해서 어떡해. 어떡할 거야. 이 일을……. 흑!”

차분하고 덤덤하게 마음을 고백하는 딸의 이야기를 들은 고순애는 두 사람이 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목숨을 걸고 딸을 두 번이나 구해 준 도승원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왜 하필 이런 일이…….”

다만, 하나뿐인 외동딸이 다른 부부처럼 평범하게 시작할 수 없는 사정에 가슴이 아려 왔다.

아무리 마음을 먹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지언정, 두 사람이 앞으로 겪을 현실이 따뜻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흐흑! 아니야. 엄마……. 나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동안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왔던 이승희도 엄마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도승원 앞에서도 굉음이 들리던 수술방에서도 항상 씩씩하던 이승희도 사실은 힘이 들었다.

따뜻한 품에서 자신을 위로하는 엄마 때문에 단단히 부여잡던 마음이 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부둥켜안고 눈물을 훔치던 두 모녀는 한참 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아내와 딸이 눈물을 흘리는 동안 이용현은 석상처럼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혼을 부탁한 이승희에게 화를 내지도,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많은 생각이 공존한 듯 복잡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모녀의 뒤에 걸린 가족사진을 계속 응시할 뿐이었다.

가족사진 속 웃고 있는 딸의 얼굴을 보던 그의 시선이 천천히 옆에 있는 선반 위, 작은 액자로 향했다.

‘그 친구랑 찍은 사진을 왜 거기에 올려놔.’

‘우리 승희가 예쁘게 나왔으니까 그렇죠. 행복해하는 얼굴 보니까 나까지 덩달아 기분 좋은데요 뭘.’

‘누가 보면 결혼한 줄 알잖아.’

‘그냥 사진이잖아요. 당신이 너무 예민한 거예요.’

도승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놓는 아내에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가족사진 속 딸의 표정과 도승원과 함께 찍은 사진 속 딸의 표정이 똑같았다.

둘 다 아주 행복한 얼굴로 사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엄마 나, 갈게. 아빠 저 가 볼게요.”

한참을 울던 이승희는 마음을 추스르고 갈 준비를 서둘렀다.

“이거 가져가.”

주방에서 급히 나온 고순애는 현관으로 걸어가는 이승희에게 쇼핑백을 건넸다.

“이게 뭐야?”

“저녁도 안 먹었을 거 아니야. 너 먹을 샌드위치랑 반찬. 병원 밥이 원래 맛이 없잖아. 집에 있는 반찬 몇 가지 급하게 챙겼어.”

“괜찮아. 거기 밥 잘 나와. 웬만한 식당보다 맛있어.”

“그래도. 너도 같이 먹을 거 아니야. 가져가. 응?”

“알았어. 고마워. 엄마.”

“여보, 승희 병원에 좀 데려다줘요.”

고순애는 아직까지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아 있는 이용현에게 말했다.

“아니야. 엄마 아빠도 일하고 왔잖아. 아빠 나 괜찮…….”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용현은 이승희에 손이 들린 짐을 들고 차 키를 챙겨 집을 나갔다.

“나와.”

철컥-

“엄마 전화할게.”

“그래. 아빠가 많이 속상할 거야. 가다가 혹시 뭐라고 하셔도 가만히 듣고 있어. 알았지?”

“알지.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 갈게요.”

엄마와 인사를 한 이승희는 이용현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승희는 가는 동안 아빠가 분명 무슨 말이라도 할 것 같았지만, 예상과 달리 이용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병원에 도착했다.

“아빠 감사해요. 저 가 볼게요.”

탁-

이승희가 차에서 내린 뒤에도 그의 차는 병원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시동을 끈 채 한동안 생각에 잠긴 그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한 바퀴를 돌아 우리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진료 보러 오셨나요?”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 원장님 진료 볼 수 있나요?”

이용현은 접수처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수술은 잘된 거야?’

‘응. 원장님이 신경 써서 잘해 주셨어.’

조금 전, 아내의 물음에 답했던 이승희의 말을 떠올린 그는 태경을 찾았다.

“예. 가능하세요. 원장님께 진료 보시려고요?”

“네.”

“처음이시면 여기 성함이랑 생년월일 적으시고 잠시만 앉아 계세요.”

접수를 마친 이용현은 의자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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