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45화 (144/472)

145화. 뭐! 30분?

“그 선생님은 막 수술할 때도 뭔가…….”

Rrrrrrrrrr

그렇게 한참 재미있는 대화를 이어 가던 그때 책상 위에 있던 구동균의 핸드폰이 두 사람을 방해하듯 격하게 요동쳤다.

“네.”

-선생님. 환자분이 좀 이상해요.

“왜요? 네. 우선 혈압하고 맥박 수는 어때요? 아. 네. 알겠어요. 대기시키세요. 곧 갈게요.”

“왜?”

이찬희가 전화를 끊은 구동균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환자한테 무슨 일 있대?”

“별일 아니야.”

“곧 간다고 했잖아? 급한 거 아니야?”

“아니, 환자가 이상하다고 와 보라고는 하는데 바이탈은 괜찮아서 이따 가 보려고. 그러지 말고 아까 그 선생님 얘기나 더 해 봐.”

구동균은 간호사의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환자들의 콜은 매일 있는 일이었고, 막상 가 보면 늘 별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 흐름이 끊기는 게 싫었다.

“환자 증상이 어떤데?”

“뭔가 좀 이상하다네. 한쪽 팔이 들기 힘들다고 하고 시선이 이상하다고 하다는데. 아, 몰라 이따 가 보지 뭐.”

턱-

“친구야, 가야 해.”

환자 상태를 들은 이찬희가 구동균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가자.”

“어? 뭐 그렇게 진지해. 큰일이야 있겠어?”

“기분 탓일 수도 있는데 지금 의심되는 병이 있어서 그래. 우선 환자한테 가자. 그게 맞는 거 같아.”

이찬희는 의사로서 태경에게 모든 면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이 환자에 대한 관심이었다.

회진할 때나 진료할 때 태경은 그냥 지나갈 수 있는 환자의 말이나 작은 증상을 한 번도 허투루 들은 적이 없었다.

저렇게까지 꼼꼼하게 신경을 쓰나 싶었지만, 결국 그 꼼꼼함이 환자의 증상을 빨리 파악하거나 살리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곤 했다.

그런 태경의 밑에서 함께하다 보니 구동균이 말한 환자의 증상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의심되는 병이 있다고?”

“그래. 그리고 그 환자도 몸이 이상하니까 간호사가 이 시간에 너한테 연락한 거잖아.”

“내가 여기서 일한 지 몇 달째인데 이렇게 전화 와서 가 보면 꼭 아무 일도 아니었거든.”

“아무 일도 아니면 다행이지. 얼른 쓱 갔다 오면 되잖아.”

“알았다. 바로 아래층이야. 같이 가자.”

구동균은 별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찬희와 함께 환자가 있는 3층으로 향했다.

“과장님?”

비상계단으로 문을 열고 나오자 간호사가 구동균을 불렀다.

“아까 전화한 환자 어디 있어요?”

“이쪽이요. 그게 환자분이 좀 이상하셔서 처치실로 빼놨어요.”

“환자분?”

구동균과 함께 처치실로 들어온 이찬희가 저도 모르게 환자를 살피며 불렀다.

“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

한 번 더 큰 소리로 불렀지만, 환자는 아무 반응 없이 눈을 뜨고만 있었다.

“이 환자분 언제부터 이랬나요?”

“네!? 누구시죠?”

처치실에 있던 간호사가 사복 차림의 이찬희를 보며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요.”

남의 병원에 와서 누군지 알리지도 않고 다짜고짜 환자에 대해 묻기만 했으니 간호사의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이 사람 제 친구예요. 외과 의사입니다. 괜찮으니까 말해 주세요.”

구동균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이찬희는 핸드폰에 있던 우리병원 명찰을 보여 줬다.

“저 의사 맞아요.”

병원 이름과 함께 얼굴 사진이 있는 명찰을 보자 간호사도 안심했다.

이찬희는 얼마 전 진료실에서 병원 명찰을 휴대폰으로 사진 찍고 있는 태경을 본 적이 있었다.

‘갑자기 명찰은 왜 찍으세요?’

‘나 처음 왔을 때 3중 추돌 교통사고 현장 기억나?’

‘당연하죠. 그 사건을 어떻게 잊어요.’

‘그때 응급 환자 앞에 두고 의사가 맞는 거냐고 실랑이 벌이던 사람 있었잖아.’

‘아, 그 살짝 술에 취해 있던 사람이요? 그 사람 때문에 좀 곤욕스럽긴 했어요.’

‘물론 당시에는 그랬는데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보호자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의사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으니까 불안했겠지. 일전에 김건형 회장 때도 비슷한 일을 겪다 보니까 내가 의사라는 신분증을 갖고 다녀야 밖에서 갑자기 누군가를 처치할 일이 생겨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할 수 있겠더라고.’

그렇게 태경의 말을 듣고 난 이찬희 역시 그때부터 병원 명찰을 휴대폰에 저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57세 여자분이고요. 다른 병원에서 TA(traffic accident,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가 우리 병원 오신 지 이틀 정도 됐어요. 사고 당시 골절이나 외상은 없었고 다른 곳도 크게 다친 곳이 없던 환자예요. 오늘도 평소처럼 물리치료 잘 받으셨는데 그러다가 10분 전부터 이러세요.”

간호사는 차분하게 환자의 상태를 알렸다.

“그전에 의사소통에는 문제없었나요?”

“네, 문제없었어요.”

“동균아, 라이트 좀?”

“어. 여기.”

이찬희가 구동균에게 의료용 랜턴을 건네받아 환자 눈에 불빛을 비춰 봤다. 그리고 환자복 상의를 벗기고 몸을 유심히 바라봤다.

환자의 오른쪽 손을 들고서 다시 놓아 본 뒤 왼쪽 손을 들더니 얼굴 위에서 손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왼쪽 손이 아무 힘없이 환자 얼굴에 풀썩 부딪혔다.

“야, 찬희야 왜 그래?”

심각해져 가는 이찬희의 표정을 본 구동균의 얼굴 위로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 환자분 아무래도 뇌의 문제인 것 같아.”

“뭐? 뇌!?”

“뇌요?”

구동균과 간호사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뇌라고? 그럼 어떡해? 뭘 해야 해?”

“여기 MRI 촬영 가능해?”

“아니요. MRI는 안 되고 CT는 가능해요.”

옆에 있던 간호사가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과장님? 원장님께 연락할까요?”

“원장님 다른 지역에 사셔서 자택에서 오시려면 한참 걸릴 거예요.”

“지금 누구 기다릴 시간 없어. 늦어. 뇌잖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찬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김 과장님은 병원 근처 사시잖아요.”

“김 과장님은 어제부터 휴가라서 가족 여행 가셨어요.”

“아, 그러네요.”

“하! 젠장. 찬희야, 이 일을 어떡해야 하냐.”

간호사와 대책을 간구하던 구동균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찬희를 쳐다봤다.

“여기 안지오(angio, angiography의 준말로 혈관을 더 자세히 촬영하는 CT 기법)는 가능해?”

“몰라. 내가 한 번 물어볼게.”

“저, 간호사 선생님. 여기 혈전 용해제 있어요? 아무거나.”

“네? 여기 약물은 저희가 다 알고 있지는 않아서요.”

“그럼. 약물 보관하는 곳 어디예요? 제가 찾아볼게요.”

“야! 찬희야?”

잠시 처치실을 나갔던 구동균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시 들어왔다.

“그거 안지오 된대. 바로 촬영할까?”

“그래. 너 환자분이랑 같이 가. 같이 가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줘. 나도 곧 갈게.”

“알았어.”

구동균과 간호사는 환자와 함께 처치실을 나서고 이찬희는 간호사가 안내해 준 방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갔다.

가로세로 20cm 정도 되는 투명한 서랍이 여기저기 가득히 있었다.

“꽤 많네.”

한눈에 봐도 상당히 많은 약제였다. 이찬희는 급하게 하나하나 열어 보고 이름을 확인했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야.”

양손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며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급해졌다.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이찬희 여전히 손으로 혈전 용해제를 찾으며 핸드폰을 꺼내 스피커폰으로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수술 중이시면 어쩌지?’

전화를 안 받으면 어쩌나 싶던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 시간에? 술 먹고 잘 못 전화한 거 아니야?

전화를 받은 사람은 태경이었다. 태경은 조금 전 수술을 마친 뒤였다.

휴대폰 화면에 이찬희 이름이 뜨자 전화를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쉬는 날 전화를 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요. 술 안 마셨습니다.”

이찬희는 통화하면서도 쉴 새 없이 약통을 열고 닫았다.

-이찬희? 너 다쳤어?

눈치 빠른 태경은 이찬희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전 안 다쳤는데 환자가 이상합니다.”

“환자라니?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지금 친구가 일하는 병원에 왔는데 여기 입원해 있는 환자가 좀 이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환자 증상이 딱 뇌병변인 것 같아요.”

“증상이 어떤데?”

“그게…….”

이찬희는 빠르게 증상에 관해 설명했다.

“선생님 이거 뇌병변 맞죠? 우선 이럴 때 무슨 약을 써야 할까요? 뇌출혈인지 아니면 뇌 혈전으로 혈관이 막힌 건지 분명하지 않아서요. 지금 제 친구가 CT 안지오 촬영하러 가서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선생님 어떤 약을 써야 할까요?”

-지금 시간 얼마나 지났어?

“30분 가까이 되고 있습니다.”

-뭐! 30분?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30분 가까이 지났다는 말에 태경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었다.

-우선 혈전에 막혔으면 혈전 용해제를 써야 하는데 그것보다 우선 뚫어야 해. 빨리 뚫어. 딴것보다 그게 중요해. 거기서 가능해?

“아니요. 선생님. 여기선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혈전 용해제 아무거나 찾아. 그 약물 찾아서 나한테 사진 찍어 보내. 투여 방법 보내 줄게. 그러니까 일단 찾아! 빨리. 약부터 찾고 CT 영상 보면서 환자한테 달아 줘. 뇌출혈이면 바로 전화 주고.

태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약을 찾는 이찬희의 손은 더욱더 분주해졌다.

“선생님? 잠시만요. 하나! 하나 있습니다. 이거 성분 보내 드릴게요.”

탁- 탁- 드르륵-

몇 번 정도 다른 약통을 확인하던 이찬희는 약 한 통을 꺼내 들고서 사진을 찍어 태경에게 전송했다.

“이거 달고 그다음에는 어떡할까요?”

-이찬희! 정신 차려. 너 환자 골로 보낼래?

마음 급한 이찬희에 질문에 태경이 별안간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선 CT 영상부터 확인하고 그러고 나서 다는 거야. 무턱대고 달면 안 돼. 뇌출혈이면 오히려 환자 말 그대로 골로 보내는 거야.

“죄송합니다. 그다음은요?”

-보내야지. 최대한 빨리 보내야지. 대신, 아무 곳이나 보내면 안 되고 뇌에 인터벤션(intervention, 말초혈관 등을 통해 뇌나 심장의 혈관 병변을 시술하는 것) 가능한 곳으로 빨리 보내야 해. 이미 늦은 감이 있으니까 최대한 서둘러. 모르는 거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찬희는 사진을 찍었던 그 약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야! 찬희야 여기.”

다행히 빠르게 CT 촬영을 마친 구동균이 스테이션에서 영상을 켜고 화면을 내리며 이찬희에게 외쳤다.

“영상 올라왔어. 이거 봐 봐!”

“여기!”

모니터를 뚫어 버릴 기세로 확인하던 이찬희가 손가락으로 모니터 한 곳을 가리켰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서는 밝게 연속되던 뇌혈관에서 어두운 부분이 있었다.

그사이 태경에게 투여 방법이 문자로 왔다.

“혈전이야. 우선 이거부터 달아. 보호자는? 이 환자분 보호자 없어?”

“있어. 지금 오고 있는데 시간이 좀 걸린대.”

“일단 이 약부터 달고. 동균아, 이제부터 너랑 나는 빨리 전화 돌려야 해.”

“전화? 119 말고?”

“저 환자 바로 전원 보내야 돼. 그것도 인터벤션(intervention) 되는 곳으로 최대한 빨리 보내야 해. 시간 없어. 안 그러면 평생 후유증 남아.”

“후, 후유증? 근데 어디로 보내야 하는데?”

“뇌혈관 센터 있는 곳으로. 그리고 가자마자 바로 시술 가능해야 하니까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전화 돌려. 우선 응급실로 전화하면 될 거야.”

“알았어.”

“선생님도 도와주세요.”

“그럼요.”

구동균은 스테이션 한쪽에 있던 노트북으로 인근 응급실 번호가 나오게 검색했다.

“이거 보고 전화 돌리면 되겠다.”

“빨리하자.”

그때부터 이찬희와 구동균 그리고 간호사까지. 세 사람은 미친 듯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oo 병원인데요. 전원 문의하려고요. 50대 여성인데 뇌혈전이 있어서요. 인터벤션 가능한지……. 아, 네. 그래요.”

“안녕하세요. oo 병원인데 전원 문의…….”

“oo 병원입니다. 전원 문의…….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한참 동안 닥치는 대로 전화를 돌렸지만, 환자를 받아 줄 병원을 찾기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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