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78, 79, 80.
“oo 병원입니다. 전원 문의…….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한참 동안 닥치는 대로 전화를 돌렸지만, 환자를 받아 줄 병원을 찾기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야! 찬희야. 인근 병원 싹 다 전화해 본 것 같은데.”
“시간 얼마나 지났지?”
“환자 발생 시부터 1시간은 된 것 같아.”
“미치겠네. 주변 도시로 전화 돌리자.”
“아, 시x!”
답답한 구동균의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니, 인터벤션(intervention) 되는 곳이 없다는 게 말이 돼?”
“그러게……. 안 되는 건지. 사람이 없는 건지. 아니면 일하기 싫은 건지 모르겠네.”
이찬희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화는 나중에 내고 일단 환자 생각해서 다시 전화 돌리자.”
세 사람은 다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네, 안녕하세요. 여기 oo 병원인데요. 스트록(stroke, 뇌졸중) 환자 전원 문의드리려고요. 네, 실례지만 워낙 응급이라서요. 제가 신경과 담당자분과 직접 통화할 수 있을까요?”
-어떡하죠. 좀 힘들 것 같아요.
“아니, 그게……. 여보세요? 잠시만요. 여보세요? 이런 xx.”
또다시 연속해서 거절 답변이 돌아오자 이찬희의 입에서도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동균아. 거기 중앙통제센터로 전화해 봐!”
“뭐? 중앙통제센터? 그게 뭔데?”
“그러게, 이래서 인턴을 해야 한다고. 야! 너 인턴 다시 해!”
“그 말을 여기서 왜 해!”
속에서 부아가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간신히 누른 이찬희는 곧장 중앙통제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중앙통제센터란 병원 간의 전원을 용이하게 해 주는 국가기관이었다. 지금처럼 하나하나 전원 전화하기 어려울 때 문의하면 매우 도움이 되는 기관이다.
-네. 중앙통제센터입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전원 문의하려고 하는데요. 현재 환자가…….”
이찬희는 휴대폰 너머 전화를 받은 직원에게 상황설명을 했다.
-저기 선생님. 그게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어렵다니요.”
뜻밖의 답변이 돌아오자 이찬희는 대놓고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무슨 말씀이시죠?”
-선생님이시라니까 아마 알고 계실 수도 있는데 저희는 응급실 환자만 담당해서요. 지금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라면 안타깝지만, 저희 업무가 아니에요.
“아니, 선생님 그게 말이 돼요?”
-죄송해요.
“지금 사람이 위급한 응급인데 응급실 환자가 아니라서 도와주실 수 없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죠.”
-근데 규정이 그래요. 그럼 수고하세요.
“하!”
이찬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황당함에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었다. 환자가 위급하다는데 그놈의 규정이 뭐 그리 대수라고.
가끔은 그냥 넘어가 주는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1시간 반이나 지나고 있었다. 전원까지 고려하면 이미 늦은 샘이다.
‘아! 어떡하지?’
계속해서 전원이 순조롭지 않자 이찬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동균아? 안 되겠다. oo에 있는 병원에 전화해 보자.”
“야, 거긴 너무 멀어.”
“그래도 뇌혈관 센터로 유명하잖아. 한번 시도는 해 봐야지.”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던 이찬희는 결국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oo 병원인데요. 환자 전원 문의드리려고요. 스트록(stroke, 뇌졸중) 환자고 발생 시간은 대략 한 시간 반 전입니다. 환자 과거력으로……. 네. 네. 아! 정말요?”
통화를 하고 있는 이찬희 얼굴이 광명을 찾은 사람처럼 순식간에 밝아 왔다.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야! 뭐래? 된 거야?”
“됐어! 전원 받아 준대.”
“정말 다행이네요.”
“전원 받아 준다는 말이 이렇게 기쁠 수가 있냐?”
구동균과 간호사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여기로 환자 빨리 보내자.”
“찬희야. 진짜 미치게 고맙다. 근데 무슨 차로 보내?”
“무슨 차라니? 여기 구급차 운영 안 해?”
“응.”
“아……. 그럼 사설 구급차 부르자. 사설 구급차 번호 좀.”
“번호는 내가 알아. 근데 사설 가려면 보호자 동승해야 하잖아?”
“내가 갈게.”
구동균의 말에 이찬희는 자신이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네가 간다고?”
“응.”
“무슨 소리야, 네가 왜 가? 넌 여기 근무자도 아니고 보호자는 더더욱 아니잖아.”
“보호자가 가면 안 돼. 그리고 보호자가 있더라도 내가 타고 가야하고.”
“그게 무슨 소리야.”
“저 환자 가다가 기관 삽관해야 하거나 BP 떨어지거나 바이탈 흔들리면 그땐 누가 처치할 건데?”
“그건…….”
“동균이 널 무시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으로서는 나밖에 없잖아. 그래서 내가 간다는 거야.”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네가 무슨 득이 된다고 그렇게까지 수고를 하나 싶어서.”
“나밖에 없으니까 내가 해야지. 의사잖아.”
“아이 자식, 놀러 와서 감동을 주네. 고맙다.”
“뭐래. 네가 왜 고마워. 널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를 위해서 당연한 거야.”
이찬희는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듯 말했지만, 사실은 당연한 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만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게 제일 당연한 사람은 태경이었다.
그렇게 태경 밑에서 보고 배운 게 자연스레 당연해진 것이다.
아무런 이득도 없이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몇 시간이고 환자에게 공헌하는 일이 후배인 이찬희에게도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이 돼 버렸다.
“과장님, 선생님? 사설 구급차 곧 있으면 도착한다고 연락 왔어요.”
“네, 그럼 환자 지금 바로 내려보내자.”
“어? 아니 퇴원 수속이랑 기타 과정이 필요한 영상은…….”
“동균아. 그건 네가 남아서 알아서 해 줘. 할 수 있지?”
“알았어, 내가 할게. 그리고 보호자한테는 내가 연락하고 전화할게.”
“그냥 내 번호 알려 줘도 괜찮아.”
“필요하면 그럴게. 우선 출발부터 해.”
지금까지 어쩔 줄 모르며 얼을 타던 구동균은 이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보였다.
드르륵-
환자가 누워 있는 이동식 베드를 밀고 바로 1층으로 내려가니 사설 구급차가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대원님. 잘 좀 부탁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뒷문을 열고 환자를 밀어 넣은 이찬희는 자연스럽게 차에 올라타 환자 옆에 자리했다.
“동균아, 이 환자는 나한테 맡겨.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는 안에 있는 환자들이나 신경 써. 간다.”
“알았어. 인마. 조심해.”
탁-
“짜식! 가면서까지 나보다 환자를 더 걱정하네.”
“과장님 친구분 정말 멋진 의사네요.”
“그러니까요. 진짜 멋진 놈이에요. 우리도 들어가서 나머지 준비하죠.”
“네, 과장님.”
구동균은 환자에게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간호사와 함께 병원으로 들어갔다.
이찬희가 탄 사설 구급차는 고속도로를 아주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전원 환자 도착했습니다.”
목적지인 대학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신속하게 시술까지 이어졌다. 확실히 뇌혈관 센터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 속도가 매우 신속했다. 그래도 이미 환자에게 늦은 편이었지만, 병원의 신속한 처우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다 끝난 건가요?”
“네, 이제 가 보셔도 됩니다.”
이찬희는 필요한 인계를 마무리하고 보호자가 올 때까지 나머지 환자 수속을 밟았다.
두 시간 뒤 보호자가 도착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보호자는 이야기를 나눌 정신이 아니었다.
“아이고!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세상에.”
보호자는 담당 의사와 대화를 한 뒤 시술이 끝난 환자 곁으로 가기 바빴다. 이찬희는 결국 가볍게 인사만 하고 병원을 나왔다.
“하! 결국 휴일 하루를 통으로 보냈구나. 이제 집에 가자.”
좁은 구급차에서 같은 자세로 있던 이찬희는 뻐근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78, 79, 80. 좋았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한 이찬희는 의국실 책상에 앉아 타이와 씨름 중이었다.
“앞으로 스무 개만 하면 완성이다.”
전날, 친구네 병원에서 환자 전원으로 정신이 없던 이찬희는 집에 돌아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분명 알람 맞췄지만,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10개가 넘는 알람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출근 직전까지 숙제와 타이 연습에 매달렸지만, 100개를 채우지 못해 나머지를 채우는 중이었다.
“근데 이 쌤은 아까부터 오자마자 뭘 저렇게 하는 거야? 아. 타이 연습하는 거야?”
최모나와 대화하고 있던 의진이 집중하고 있는 이찬희를 보며 말했다.
“자고로 의사의 자세란 항상 환자를 위하고 준비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전 오늘도 타이를 연습합니다. 환자를 위해서죠.”
“와! 말은 무슨 의학 드라마 대사인데 표정은 누가 봐도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이 쌤 저거 김 선생님 숙제입니다.”
최모나가 서랍에서 지렁이 젤리를 꺼내며 말했다.
“숙제?”
“요즘 불시에 타이를 시키시는데 어제 저랑 1:1로 하다 져서 100개 숙제 받았습니다.”
“아, 정말? 그럼 김 선생님이 진 사람한테 100개 해 오라고 한 거야?”
“그렇습니다.”
“난 퇴근하면 일적인 건 생각하기 힘들던데 대단하다.”
“그게 100개 못 채우면 50개 더 추가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역시 김 선생님답네. 무슨 숙제가 자비가 없어.”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우리 선생님 너무 자비가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미동도 없이 타이에 열중하던 이찬희는 별안간 실을 들고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사랑하는 내 친구 최모나 선생. 그리고 의사로서 제가 본받고 싶은 정의진 선생님.”
“하지 마라. 안 한다.”
최모나는 이찬희가 어떤 말을 할지 알고 있는 듯 단칼에 거절했다.
“미리 말하지만 난 안 도와준다.”
“왜? 몇 개 도와 달라고?”
“역시 제 마음을 알아주는 건 정 쌤뿐이십니다. 제가 실을 하도 잡고 있었더니 손끝도 좀 아리고……. 선생님 도와주세요.”
“어떡하지? 마음은 굴뚝같은데 숙제 도와준 거 알면 나도 선생님께 혼날 것 같아서. 미안.”
“절대 도와주면 안 됩니다. 선생님.”
“최모나 너, 너무한다.”
“그러게, 집에서 해 왔어야지. 오프였으면서 왜 안 해 왔대.”
“야, 최 쌤? 너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다.”
최모나 말에 타이와 씨름을 하던 이찬희는 매듭을 하던 실까지 내려놓고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어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들으면 우리 병원 직원들 아마 깜짝 놀랄 거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거 보니까 이 쌤 어제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 보네.”
“정 쌤은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이찬희 너 말장난 그만하고 빨리해. 시간 얼마 없다.”
“친구야, 내가 어제 한 환자를 위해서 얼마나…….”
순간 어제 그 긴박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 이찬희가 설명하려던 그때였다.
철컥-
“이찬희!”
별안간 의국실 문이 열리며 태경이 등장했다.
“서, 선생님!”
태경을 보자마자 흠칫 놀란 이찬희는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아직 저에게는 시간이 남았습니다.”
“뭐라는 거야? 이 선생 왜 이래?”
“그게 도둑이 제 발 저린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닙니다. 제가 잠시 헛소리를 했습니다. 하하!”
숙제 때문에 제 발이 저렸던 이찬희는 태경이 아무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자 빠르게 태세 전환을 했다.
“이 쌤이 잠이 덜 깼나 봐요.”
“잠 덜 깼으며 가서 세수 좀 하고 일단 빨리 마당에 좀 가 봐.”
“마당에는 갑자기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