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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이탈-152화 (151/472)

152화. 의문의 남자와 혼잣말

여울동 문화거리-

이곳은 언제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통기타를 들고 버스킹을 하는 사람, 음악에 맞춰 현란한 춤을 선보이는 사람, 카페에 앉아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까지.

사람들은 식당, 카페 거리 등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마다 즐거워 보이는 표정의 사람들 사이에서 벤치에 앉아 있는 20대 젊은 남자만 사람들과 달랐다.

“아니, 아니지. 그렇게 가면 우리가 당한다고. 그럼. 안 돼!”

“하하하! 알지. 그래 그거 내가 한 거라니까. 큭큭!”

그는 꽤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아! 웃겨! 진짜 미치겠다.”

그런데 그 남자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시선이 어쩐지 이상했다.

“자기야? 봤어?”

“어. 자기도?”

우연히 벤치 앞을 지나가던 한 커플은 서로 놀란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응. 아무래도 저 사람 좀 이상한 것 같아.”

“그러게. 아무도 없는데…….”

“난 처음에 전화하고 있는 줄 알았다니까.”

“요즘은 그냥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조심하는 게 좋아. 얼른 가자.”

“알았어.”

커플이 말한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는 그 어떤 상대도 없이 혼잣말하고 있던 거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생생한지 마치 꼭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심해! 곧 그 사람들이 널 잡으러 올 거야.’

“안 돼. 이번에 잡히면 진짜 가만두지 않을 텐데…….”

‘죽어! 너 같은 인간은 답도 없어.’

“시x! 닥쳐! 함부로 지껄이지 마.”

심각한 말을 내뱉은 남자는 별안간 울리는 휴대폰 진동을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것 봐. 넌 이제 독 안에 든 쥐새끼 꼴이야.’

“웃기지 마. 절대 안 잡혀.”

그러더니 마치 누구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주변을 경계하며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는 위대한 마법사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과 달라.”

한동안 골목에서 서성이던 남자는 또다시 의미를 알 수 없는 특이한 말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이내 맞은편에 있는 식당 몇 곳을 번갈아 보고 이윽고 한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러분 피하세요. 네? 다들 피해야 합니다.”

“꺄악!”

“이 사람 왜 이래.”

5분 뒤, 사람이 많은 식당 안에서는 비명이 들려왔다.

“야! 너 뭐야? 어!”

“이 새끼 이거 미친놈 아니야?”

“사장님 여기 경찰에 신고 좀 해 주세요.”

“뭘 봐! 너희들이 뭘 안다고 떠들어!”

“이봐요! 혹시 술 취했으면 집에서 가서 잠이나 쳐 자.”

몇몇 사람과 시비가 붙은 남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다 식당을 뛰쳐나갔다.

“치료……. 치료를 해야 해. 이대로는 위험해. 빨리 서두르자.”

식당에서 나온 남자는 자신의 팔을 보며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 * *

“아고. 아휴 힘들다!”

이찬희가 허리를 두드리며 응급실 스테이션 의자에 털썩 앉자 엎드렸다.

“이 쌤? 회진 갔다 온 거 아니에요?”

“회진 다녀왔죠.”

“근데 왜 이렇게 오래 있었어요.”

평소보다 한참이나 걸린 회진 시간에 임정숙 간호사가 궁금한 듯 물었다.

“201호 금자 할머니께 잡혔어요.”

“아…….”

금자 할머니란 말에 임정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금자 할머니는 압빼(Appendicitis, 충수염) 수술을 받은 환자로, 밝고 좋은 분이셨지만 말이 지나치게 많다는 게 조금 힘들었다.

“수 쌤? 저 혹시 귀에서 피 안 나죠?”

“아으. 엄살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회진 다 돌고 내려오는데 잠시 부르셔서 콜 올 때까지만 들어 드리자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따라 콜이 안 오더라고요.”

“우리 이 쌤이 금자 할머니 말벗해 드리라고 콜도 안 갔나 보네요.”

“하! 말씀도 워낙 빠르셔서 아무튼 보통이 아니세요.”

“나이 들면 말할 사람이 줄어서 아마 더 그러셨을 거예요. 잘하셨어요.”

“그나저나 선생님 오시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아까 출발하신다고 연락 왔으니까 오래 걸리실 것 같진 않은데요.”

“더 늦게 오시면 좋을 텐데.”

“왜요?”

“선생님이 병원에 계시면 이상하게 환자가 더 몰리는 거 같아서요.”

“에이, 그거야 선생님을 찾는 환자가 많아서 그렇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의 친구 개모나, 아니 최 쌤아. 뭐하니? 누가 보면 공부하는 줄 알겠네.”

“논문 찾는 중이시래요.”

태블릿에 열중하고 있는 최모나 대신 임정숙 간호사가 대신 답했다.

“갑자기 웬 논문?”

“뭐, 그냥. 선생님 논문 보는데 흥미로워서.”

“뭐냐! 최 쌤. 너 그 논문을 이해했어? 주제만 들어도 어지럽던데.”

“당연히 물어봤지. 근데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니까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

“난 아직 논문과 친해지고 싶지 않다.”

“12번 베드 신환이요.”

잠시 대화가 오가던 사이 새로운 환자가 왔음을 알렸다.

“제가 가겠습니다.”

“오! 최 쌤 땡큐. 고맙다.”

“이 쌤도 할 일 있는데. 3번 베드 환자 검사 나왔으니까 확인하세요.”

“네, 확인할게요.”

잠깐 한숨을 돌리던 최모나와 이찬희는 각자 환자에게 향했다.

챠륵-

“안녕하십니…….”

씩씩하게 12번 베드 커튼을 열며 인사하던 최모나는 뜻밖에 상황에 당황하며 말끝을 흐렸다.

“하! 자기야 나한테 혹시 이상 있으면…….”

“그런 소리 하지도 마. 우리 자기 아무 일 없을 거야.”

“아니야. 여보도 봤잖아. 나 힘들 거 같아.”

젊은 남녀 두 명이 베드 위에 살짝 걸터앉은 채 서로의 얼굴을 부여잡고 애틋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에 둘만 있는 듯 사이좋은 두 사람은 최모나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자기야 선생님 오셨다.”

“어머! 죄송해요. 저희가 정신이 없다 보니까 선생님께서 오신 줄도 몰랐어요.”

“괜찮습니다. 근데 어느 분이 환자분이신지…….”

“제, 제가 환자……. 흑!”

최모나의 말에 손을 들던 여자는 별안간 또 눈물이 터지려는 듯 감정이 끓어올랐다.

“자기야, 왜 그래. 선생님 놀라시겠다.”

“죄송해요. 환자라는 말을 들으니까 계속 안 좋은 생각이 나서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여자를 위로하는 남자의 말과 달리 최모나는 놀라지 않았다.

다만 환자가 많이 안 좋은가 싶은 생각에 빨리 진료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자분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습니까?”

“선생님 제가요. 며칠 전부터 변을 보는데 피가 나와요.”

“혈변 말씀이십니까?”

“네……. 선생님 저 심각한 건가요? 제가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건강했던 사람이 혈변을 보면 안 좋다고…….”

“그게 대장암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저희 둘 다 많이 걱정하고 있거든요.”

“선생님 저 결혼도 해야 하는데……. 흑! 이 사람 혼자 두고 못 떠나요.”

“자기 또 그 소리 할래? 자기가 가긴 어디를 가. 실은 저희가 한 달 뒤에 결혼하거든요.”

깨가 쏟아지는 예비부부는 갑작스러운 혈변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 저 대장암은 아니겠죠?”

“혈변 증상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대장암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혈변도 다양한 병에 한 가지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일단 검사부터 진행하겠습니다.”

“네.”

“선생님 이 사람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 뒤 최모나는 여자에게 검사를 시행했고, 환자가 밀린 상태가 아니었기에 결과는 빠르게 나왔다.

“최 쌤? 12번 결과 나왔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스테이션 모니터로 검사 결과를 확인하던 최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한 뒤 환자에게 향했다.

“결과가 이렇다면 원인은 하나뿐이네.”

챠륵-

“환자분?”

“네, 선생님 어떻게 결과는 나왔나요? 저 안 좋은 거예요?”

“아닙니다. 검사 결과에서 안 좋게 나온 건 없습니다.”

“그래요? 정말이죠? 감사합니다.”

“내 말 맞지? 내가 안 좋은 거 아닐 거라고 했잖아.”

“그럼 혈변은 왜 나온 거예요?”

“그 원인을 알기 위해서 한 가지 검사를 더 해야 하는데, 우선 보호자분께서 잠시 밖으로 나가 주시겠습니까?”

“저요? 저희 결혼할 사이라 괜찮아요. 그치 자기야?”

“네. 이 사람 있어도 상관없어요.”

“그게 환자분 항문을 봐야 하는 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하, 항문이요?”

“그럼요. 괜찮죠. 이미 혼인 신고도 해서…….”

“괜찮긴! 자기 빨리 나가!”

아무렇지 않은 예비 신랑과 달리 항문이란 말에 그동안 다소곳하게 말을 하던 예비 신부는 펄쩍 뛰며 남자의 등을 떠밀었다.

“자기야 우리 사이에 부끄러워하는 거야? 난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시끄럽고 빨리 나가!”

“알았어. 귀엽기는!”

“얼른 나가!”

챠륵-

“저기 선생님, 죄송한데 거기를 꼭 봐야 할까요?”

아무리 같은 여자고 의사라고 할지라도 항문을 보여 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지금 환자처럼 처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실제로 환자들은 처음 항문을 진료받을 때 아픔보다는 수치심을 더 느낀다고 말할 정도였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면 그냥 가면 안 될까요?”

“지금 가시면 환자분께서 혈변을 보는 이유를 알고 그에 따른 처치를 할 수 없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도 병원까지 왔는데 진료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망설이는 환자를 최모나는 차분하게 설득했다.

“그렇겠죠?”

“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럼 알겠어요. 볼게요.”

응급실까지 왔는데 찜찜한 기분으로 갈 수 없었던 여자는 결국 최모나가 시키는 대로 자세를 잡았다.

“침대 위에 옆으로 누우신 다음 새우 자세를 취해 주시면 됩니다.”

“이, 이렇게요?”

“네, 맞습니다. ‘아’소리 내면서 힘을 빼 주셔야 합니다.”

“아~~”

“놀라지 마시고 최대한 힘을 빼 주십시오.”

장갑을 착용한 최모나는 손가락에 젤을 발랐다.

“다시 한번.”

“아~~아아악! 윽!”

일정하게 울려 퍼지던 환자의 음성이 순식간에 고음으로 올라가고 검사는 금방 끝났다.

“네, 다 끝났습니다.”

“벌써요?”

“자기야 끝났어?”

“응. 들어와.”

챠륵-

“선생님 이유가 뭐예요?”

“환자분께서 혈변을 본 이유는 치열 때문이었습니다.”

“치열? 치열이라면 그 치질의 일종이요?”

“네, 맞습니다.”

대장암까지 의심하며 울며불며 걱정했던 여자의 병명은 항문과 부위가 찢어지며 생기는 에이날 피셔(anal fissure, 치열)였다.

“혹시 최근에 단단한 변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 네. 있어요. 결혼식 때문에 다이어트를 심하게 했더니 변비가 좀 왔거든요.”

“변비로 무리하게 변을 보다가 항문 주변에 찢어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지금 상태가 심하지 않으니 따뜻한 물에 좌욕하시고 물도 자주 드시고, 무엇보다 무리한 다이어트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납하시고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걱정하던 예비부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기를 되찾으며 응급실을 나섰다.

다정하게 손을 꼭 잡고 가는 예비부부를 보던 최모나가 스테이션으로 걸어가던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치료!”

외부와 바로 연결된 응급실 문이 별안간 열리더니 웬 젊은 남자가 실내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나는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베드에 있는 모든 환자는 물론이고 의료진까지 전부 깜짝 놀랐다.

“으아앙!”

그뿐만 아니라 치료받고 간신히 잠들었던 어린아이는 놀라서 울음이 터지기까지 했다.

‘병x! 말하는 그거 하나 똑바로 못 하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지금부터 넌 가만히 있어. 알았어?”

‘지랄한다. 네가 나 없이 뭘 할 수 있는 게 있긴 하냐?’

“닥치라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소리를 지르던 남자는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듯 격한 말투를 내뱉었다.

그는 문화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바로 그 남자였다.

모두가 남자의 알 수 없는 언행에 의아해하던 그때, 제일 가까이 있던 최모나가 남자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

누군가 최모나의 어깨의 손을 올려 걸음을 멈춰 세웠다.

“선생님?”

“저 환자 내가 볼게. 최 선생은 다른 환자 봐.”

어깨의 손을 올린 사람은 다름 아닌 태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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