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53화 (152/472)

153화. 당신들 누구세요?

“……!”

누군가 최모나의 어깨에 손을 올려 걸음을 멈춰 세웠다.

“선생님?”

“저 환자 내가 볼게. 최 선생은 다른 환자 봐.”

어깨에 손을 올린 사람은 다름 아닌 태경이었다.

조금 전에 병원에 도착한 태경은 진료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응급실에 오다 소리치는 남자를 본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최모나가 스테이션으로 간 뒤 태경은 문제의 그 남자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장득칠이 따라가고 있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태경이 장득칠을 호출한 것이었다.

“환자분, 안녕하세요.”

태경은 남자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일단 겉으로 살피기에 다섯 번째 바이탈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

그는 가만히 서서 태경을 위아래로 한번 훑어본 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전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디 불편하셔서 오셨어요?”

“저는 탱커이자 마법사입니다. 국가 공인 힐러분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네!? 뭐라고요? 히, 힐러요?”

힐러라니. 도통 처음 듣는 단어에 태경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장득칠이 조용히 귓속말로 다가왔다.

“게임 용어입니다.”

“게임이요?”

태경이 입을 살짝 가리며 작은 소리로 반문했다.

“적을 앞에서 막는 것을 탱커라고 하고 치료해 주는 마법사를 힐러라고 합니다.”

게임에는 전혀 문외한인 태경과 달리 장득칠은 게임을 상당히 즐기고 잘하는 고수였다.

“아! 그래서 저한테 힐러라고 한 거군요. 알겠어요.”

남자의 갑작스러운 단어 선택에 태경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런 표현을 쓰는 사람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응급실에서 쓸 법한 표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환자가 이상했다. 처음 등장도 평범하진 않았고 자세히 보니 확실히 다른 환자와는 달랐다.

멀리서 봤을 때는 덩치가 조금 있고 멀끔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옷에 자잘한 먼지가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손톱이 상당히 지저분한 걸 보니 아마 안 씻은 듯했다. 그런데 그에 반해서 얼굴과 헤어는 매우 깔끔했다.

‘저건……?’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장 놀란 것은 남자가 입고 있는 상의 소매 끝에 피가 묻어 있었다.

저 피가 남자의 것인지 다른 사람의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환자 쉽게 보내면 안 되겠어.’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이 남자를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장 요원님?”

태경이 장득칠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입을 가리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네, 원장님.”

“저 환자분이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하더라도 의료진이나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은 이상 자극하거나 과격하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아셨죠?”

“그럼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저 남자가 얼핏 보인 언행으로 태경이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일단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조심하는 게 좋기 때문에 장득칠에게 주의 사항을 전달한 것이다.

“환자, 아니 탱커분을 뵙게 돼서 저도 반갑습니다. 혹시 어쩐 일로 오셨나요?”

“그런데 진짜 힐러 맞으시죠? 의사도 맞고요?”

“그럼요. 믿으셔도 됩니다. 국가에서 부여한 면허가 있는 정식 의사입니다.”

태경은 우선 남자를 자극하지 않고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그렇군요. 제가 치료받아야 해서 왔는데, 제 옆에 있는 제 동료가 확인하라고 해서 여쭤봤습니다. 이 친구 말을 함부로 거역하면 안 되거든요.”

여전히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태경은 이 남자를 잡아 두기 위해 그럴듯한 말을 생각했다.

“우리 탱커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네, 저는 이현웅이라고 합니다.”

“현웅 씨, 제가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남자는 아까 식당에서 소란을 피울 때와는 달리 기분이 좋은 듯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일단 이쪽으로 좀 앉아 볼까요?”

“네, 좋습니다.”

챠륵-

태경은 가장 가까운 베드로 이현웅을 데려가 베드 위에 앉혔다.

“검사하기 전에 현웅 씨 팔을 좀 볼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얼마든지요.”

태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현웅은 소매를 걷어 자기 팔을 내밀었다.

‘열상이네.’

이현웅의 팔 양쪽으로 피부가 찢긴 상처인 열상이 있었다.

다행히 상처가 심각하진 않았다. 한쪽은 간단한 소독과 약으로 치료할 수 있었고, 나머지 한쪽 상처가 크진 않았지만 세 바늘 정도 봉합이 필요한 상태였다.

“저기…….”

그렇게 태경이 상처 치료에 대해 말을 하려던 찰나,

“안 된다고!”

별안간 이현웅이 짜증 가득한 눈빛과 함께 소리를 높였다.

‘나가! 여기서 나가야 해. 나가라고. 이 사람도 한패라고.’

“야! 시x.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넌 가만히 있어.”

마치 누군가와 싸우는 듯 욕설까지 섞어 가며 흥분하자 장득칠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에 이현웅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현웅 씨, 괜찮으세요?”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 옆에 있는 놈이 자꾸 나가라고 해서 제가 소리를 좀 질렀습니다. 죄송해요.”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이제 한동안은 조용할 거예요. 제 상처는 어떤가요?”

“지금 팔에 상처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해요. 특히 왼쪽 상처는 현재 봉합이 필요한 상태예요.”

“봉합이면 혹시 마취하시나요?”

“네, 마취를 하고 할 거예요. 피부에 살짝만 주사 놓을게요.”

“네, 할게요.”

혹시라도 거부하면 어떻게 설득할까 했던 태경의 염려와 달리 이현웅은 기꺼이 치료하겠다고 했다.

그 뒤 빠르게 치료와 봉합을 마친 뒤 이현웅의 검사가 진행됐다.

“여기, 검사 좀 진행해 주세요.”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간호사가 이현웅의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장득칠은 이현웅 가까이에 있었다.

“원장님! 원장님? 저 환자 말입니다.”

특이한 환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까부터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최 팀장이 스테이션으로 온 태경의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저 환자 아무래도 정상인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최 팀장은 곁눈질로 환자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 보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환자를 그냥 보내면 안 되죠.”

“그거야 당연한 말씀이시지만, 저 남자 소매에 묻은 피도 그렇고 어쩐지 눈빛에 초점도 없는 게 영 꺼림칙합니다. 게다가…….”

“뭐가 또 꺼림칙해요.”

다른 환자 처치하고 온 임정숙 간호사가 최 팀장의 의견에 반대했다.

“이상해 보이면 더욱 그냥 보내면 안 되죠. 만약 그냥 보냈다가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요.”

“임 선생도 참. 나야 괜히 환자들도 있는 응급실에서 난동 피우다가 무슨 일이라도 날까 봐 그렇지.”

“아휴, 괜히 일어나지도 않은 말은 하지도 마세요. 그나저나 선생님, 저 환자분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어 보이죠?”

“관련 과에서 정확한 진단이 이뤄져야 알겠지만 아마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일 가능성이 큰 거 같아요.”

태경은 이현웅을 처음 보고 진료하면서 점점 더 스키조프레니아일 거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저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선생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스키조프레니아가 뭔가요?”

의학 용어를 알아듣지 못한 최 팀장이 상당히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으로 조현병이라고 하죠.”

“아…….”

태경의 말에 최 팀장도 예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현병은 환청과 환각, 망상과 충동적인 행동과 와해한 언행 등을 보이는 정신 질환이다. 100명 중 1명이 걸리는 비교적 흔한 질병이며 치료와 약을 통해 정상적으로 지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직 그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태경은 예전에 조현병이 있는 환자를 수술한 적이 있었는데, 이현웅이 그 당시 환자가 보였던 양상과 비슷한 면을 보였다.

“혹시 모르니까 일단 경찰에 연락하세요. 그리고 보호자한테도 빨리 연락하세요.”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소매에 핏자국이 있었기 때문에 경찰에게 연락할 필요성이 있었다. 핏자국이 이현웅의 열상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팀장님은 경찰 오면 저한테 알려 주세요.”

“네, 원장님.”

“선생님, 19번 베드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바로 확인할게요.”

간호사의 말에 태경은 스테이션 모니터로 이현웅의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다행히 LAB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리고 곧장 이현웅이 있는 베드로 향했다.

“이현웅 씨,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네. 전혀 없어요.”

검사 결과가 정상이었지만, 아직 이현웅에게 그 사실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경찰이나 보호자와 연락이 닿은 이후에 보내 줘야 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미리 말했다가 이현웅이 간다고 할 수도 있었기에 일단은 시간을 끌어야 했다.

“근데 우리 탱커 이현웅 씨는 어쩌다가 팔을 다쳤어요?”

태경은 이현웅이 관심 가질 만한 단어를 사용하며 자연스럽게 상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사람들한테 도와 달라고 했는데 절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라고요.”

“도움이요?”

“네, 자꾸 절 쫓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그 사람들로부터 도망 중이거든요.”

순간 이현웅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더니 그는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왜요?”

“그게…….”

별안간 커튼 밖으로 주변을 유심히 살핀 그는 아리송한 대답을 했다.

“그 이유를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아주 답답해서 미치겠다니까요.”

대화하면 할수록 태경은 어딘가 모르게 묘한 기분에 휩싸이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 잠시만요. 이것 좀 확인해 주세요.”

임정숙 간호사가 커튼 안으로 살짝 들어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화면을 보여줬다.

-아까 연락한 경찰서에서 방금 연락이 왔는데 이현웅 씨 조현병 환자 맞대요. 식당에 갑자기 들어가서 난동이 있었나 봐요.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었대요. 죄송하지만 좀 붙잡아 달라고 하더라고요. 가족들이 지금 병원으로 오는 중이래요. 경찰분도 오고 있고요.

“알겠어요. 그렇게 진행할게요.”

태경이 화면에 쓰인 내용을 전부 확인하자 임정숙 간호사가 태블릿을 들고 커튼 밖으로 나갔다.

“선생님, 저 가야 하는데 치료 다 끝난 건가요?”

환자를 붙잡아 달라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이현웅이 치료 여부의 관해 물었다.

“아니요. 아직 치료가 안 끝났어요. 팔에 약을 더 발라야 하거든요.”

“저 아프지 않은데요?”

“아프지 않아도 상처가 덧날 수 있으니까 약은 바르는 게 좋아요.”

“뭐, 알겠어요.”

이현웅을 붙잡아 두기 위한 핑계였을 뿐 상처 치료는 이미 충분했다.

그 뒤로도 태경은 보호자와 경찰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 * *

중년 부부가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급하게 내렸다.

탁-

“여보, 여기 맞는 거 같아요.”

차에서 내린 여자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운전석에서 내리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기 맞아. 애가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얼른 들어가자고. 맞다! 당신 서류 다 챙겼지?”

“그럼요. 당연히 다 챙겼지.”

“그리고 당신 마음 단단히 먹어.”

“이제 나도 많이 단단해졌어요. 들어가요.”

두 사람은 서둘러 병원 안으로 들어가 접수처로 향했다.

“여기 응급실이 어디 있나요?”

“진료 보시러 오셨어요?”

“아니요. 우리 애가 여기 있다는 연락 받고 왔어요.”

“저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응급실로 들어온 부부는 스테이션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에게 향했다.

“실례합니다. 이현웅 환자 지금 여기 있죠?”

“혹시 어떻게 되시나요? 보호자세요?”

“네, 저희 아들입니다. 경찰에서 연락받고 급하게 왔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부부는 임정숙 간호사를 따라 이현웅이 있는 베드로 향했다.

“선생님? 보호자분들 오셨어요.”

챠륵-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태경이 커튼을 열고 보호자에게 인사를 하자 부부는 짧은 인사와 함께 아들에게 눈을 돌렸다.

“현웅아, 괜찮아?”

“선생님, 우리 현웅이 괜찮나요?”

“양쪽 팔에 열상이 있었고 한쪽은 세 바늘 정도 봉합한 상태입니다. 상처가 크진 않으니 잘 아물 겁니다.”

“감사합니다.”

“현웅아, 대체 어디를 갔던 거야?”

“엄마랑 아빠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부부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이현웅의 손을 꼭 잡았다.

“……!”

그런데 부부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이현웅이 자신을 손을 쓱 빼더니 두 사람에게 아리송한 말을 던졌다.

“당신들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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