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54화 (153/472)

154화. 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

부부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이현웅의 손을 꼭 잡았다.

“……!”

그런데 부부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이현웅이 자신을 손을 쓱 빼더니 두 사람에게 아리송한 말을 던졌다.

“당신들 누구세요?”

그것도 상당히 난감한 표정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부에게 묻고 있었다.

“현웅아! 아빠 엄마잖아.”

“…….”

“현웅아?”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부부와 달리 이현웅은 두 눈을 깜빡거리며 여전히 두 사람을 응시한 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아들, 엄마랑 같이 가자. 응?”

탁-

중년 여자가 애절한 눈빛과 함께 이현웅의 지저분한 손을 다시 잡으려 했다. 그러자 이현웅은 그 손을 매몰차게 쳐 냈다.

‘거봐! 내 말이 맞았지? 그러니까 내가 아까 빨리 가라고 했잖아. 꼴좋다.’

“닥치라고 했다. 하!”

이현웅은 또다시 격한 말투로 혼잣말을 한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웅아, 이러지 마.”

“얼른 가자.”

“저기요? 정말 저한테 왜 이러세요? 네!”

답답한 듯 연신 한숨을 내쉬던 이현웅이 부부를 향해 정색했다.

“왜 자꾸 저한테 아들이라고 하세요? 내가 왜 당신들 아들이냐고? 모른다고. 나는 당신들을 모른다고 몇 번을 말해야 내 말을 이해할 거예요. 네?”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이현웅을 향한 부부의 표정과 언행을 보면 영락없이 자식을 대하는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특히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중년 여자의 눈빛은 엄마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이현웅의 모습도 부부 못지않았다. 두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진심으로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하고 있었다.

정말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인 듯 미치고 팔짝 뛰는 모습이 거짓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현웅의 지금 이 모습은 조현병의 증상은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치매 쪽인가? 아니면 조현병과 관련이 있나?’

태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와 장득칠도 그리고 주변에서 환자를 보고 있던 다른 의료진까지 황당한 모습에 다들 혼란스러웠다.

이쯤 되니 마치 부부와 이현웅 중에서 한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챠륵-

“선생님?”

별안간 베드의 커튼을 친 이현웅이 낮은 목소리로 태경을 부르더니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저 사람들 혹시 선생님이 데려온 거예요?”

“아니요. 그런데 현웅 씨, 밖에 저분들 부모님 아니세요?”

“부모님이라니요? 절대 아니에요. 제가 아까 말했죠? 절 쫓아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러고 보니 이현웅은 아까부터 누군가가 자신을 계속 쫓아온다고 했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저 사람들이에요. 저 사람들한테 잡히면 저 또 감금당해요.”

“저런, 그랬군요. 그런데 현웅 씨 밖에 계신 분들은 계속 부모님이라고 하시던데…….”

“저도 그것 때문에 미치겠어요. 처음에는 속을 뻔했어요. 근데 아니에요. 같지만 속은 전혀 달라요.”

“네? 그럼 현웅 씨 부모님은 어디 계시죠?”

“그걸 저도 모르겠어요. 어느 날 보니까 안 계세요. 갑자기 사라지고 저 사람들이 나타났다니까요.”

사라졌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태경은 밖에 있는 중년 부부의 말을 들어 보기로 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그래요. 현웅 씨, 아까 제가 팔 치료 더 한다고 했죠. 우리 자리 옮겨서 치료부터 받을까요?”

“네, 그럴게요. 여기서 벗어나는 게 좋겠어요.”

일단은 부부와 이현웅을 분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임 선생님?”

“네, 선생님.”

“이현웅 씨, 제 진료실에서 팔 치료 좀 해 주시겠어요?”

“그럼요.”

그 뒤 태경은 이현웅과 임정숙, 장득칠과 함께 진료실로 자리를 옮겼다.

“현웅 씨, 제가 잠깐 나갔다 올게요. 여기 선생님이 치료해 주실 건데 괜찮죠?”

“여기 이 선생님께서도 훌륭한 힐러입니다.”

옆에 있던 장득칠이 센스 있게 처음 이현웅이 말했던 게임 용어를 들먹였다.

“그래요? 그럼 괜찮아요.”

“장 요원님, 잘 봐주세요.”

“네, 원장님.”

태경은 장득칠에서 두 사람을 맡기며 진료실을 나와 부부에게 향했다.

“보호자분? 방금 보셨겠지만, 이현웅 씨는 잠시 진료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네, 봤어요. 우리 현웅이 치료 잘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실례지만 두 분께서 이현웅 씨와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희 아들이에요.”

부부는 여전히 이현웅이 자신들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 말투와 눈빛에 흔들림은 없었다.

“그런데 이현웅 씨는 계속 부모님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혹시 현웅이가 선생님께 도와 달라고 하지 않던가요?”

“우리 두 사람이 자신을 쫓아온다고도 했을 겁니다.”

아내와 남편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차례대로 이현웅이 했던 말을 똑같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렇게 말했어요.”

“선생님 이것 좀 봐 주시겠어요?”

여자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와 휴대폰 화면을 보여 줬다. 놀랍게도 여자가 보여 준 건 가족 관계 증명서와 이현웅과 부부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이걸로 세 사람이 가족이라는 사실은 확실해졌다.

“보시다시피 현웅이가 남편과 저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다 보니 의심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그래서 늘 이렇게 준비해서 다녀요.”

“그렇다면 이현웅 씨는 왜 계속 부모님이 아니라고 한 건가요?”

“그게…….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해요.”

“네?”

“선생님 짐작하셨을 수도 있지만, 우리 애가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 조현병)를 앓고 있어요.”

“네, 아까 경찰에 확인하는 과정에서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증상이 심하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 점점 심해지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가족들을 전혀 못 알아보더니 부정하기 시작했어요.”

“저와 집사람을 보면서 우리 엄마 아빠 어디 갔냐고 데려오라고 하는데, 저희도 처음에는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냥 순간적이겠지? 아니면 약의 부작용인가? 라는 별생각을 다 하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었어요. 그래서 검사를 했는데 현웅이한테 새로운 질환이 생겼더라고요.”

“새로운 질환이라면 혹시 치매 쪽인가요?”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부인하는 증상만 놓고 본다면 치매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아니요. 캡그래스 신드롬(Capgras syndrome, 캡그래스 증후군)이였어요.”

“캡그래스 신드롬이요?”

“네. 아마 생소하실 거예요. 캡그래스 심드롬은 쉽게 설명하면 가족이나 주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겉모습은 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 일종의 정신 질환이에요.”

“아니, 어떻게…….”

정말이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에 태경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가족이 아닌 타인으로 본다는 그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심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감히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혹시 조현병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네, 다른 질환에서도 유발되는 경우도 있지만,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자주 일어나고 있어요. 선생님 실은…….”

여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저도 의사예요.”

“아, 네. 그러셨군요.”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했어요.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선택했어요.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참 행복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제 아들이 환자가 되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가족을 환자로 대면했을 때 대부분의 의사는 힘들어한다. 일반 환자들을 대할 때처럼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치료하고 시간이 지나면 아물면서 새살이 나잖아요. 근데 우리 아들이 앓고 있는 병은 겉으로 보이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도 잘 아물지 않아요. 내가 전문가인데 아들 하나 못 고치면서 의사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해요.”

여자는 아들의 병이 본인 때문인 것처럼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만 뜨면 아들은 남편과 저를 보며 놀라다가 방에서 꿈쩍도 안 하거든요.”

두 사람은 이현웅이 집을 나간 사연을 자세히 전했다.

여자는 자신이 그쪽 분야의 전문가이기에 치료하면서 보호 관찰이 가능할 거라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새로운 질환까지 찾아온 아들의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고 했다.

결국 정신 병동에 입원시키는 문제로 부부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오늘도 그 고민을 이어 가던 중 아들이 자는 줄 알고 잠시 마음을 놓고 있던 사이, 이현웅이 그만 집을 나가게 된 거였다.

“입원시켜야 하는 걸 알면서도 막상 내 자식이니까 그 결심이 쉽게 서질 않더라고요.”

“여보……. 선생님 놀라시겠어. 그만 해요.”

“죄송해요. 제가 하도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하소연을 좀 했나 봐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현웅 씨를 데려가셔야 하는데 두 분께서 괜찮으시겠어요?”

이현웅의 태도가 워낙 완강했기에 태경은 부부가 괜찮을까 싶었다.

“현웅이가 불편한 거에 비하면 저희가 겪는 일은 불편한 것도 아닙니다.”

“네, 선생님 저희는 괜찮아요. 그리고 경찰에서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그 점은 다행이네요.”

그 후 태경은 두 사람과 함께 진료실로 향했다.

“선생님, 경찰분 오셨어요.”

“안녕하십니까? oo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때마침 경찰이 도착해 태경은 먼저 경찰과 진료실로 들어갔다.

“현웅 씨, 치료 잘 받았어요?”

“선생님? 저 이제 치료 다 끝났죠?”

태경이 진료실로 들어서자 임정숙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이현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치료받느라 수고했어요.”

“이 정도는 별거 아니죠. 저 이제 가도 되는 건가요?”

“그 전에 현웅 씨를 찾아온 분이 계신데 잠깐 만나 보실래요?”

“저를요?”

“안녕하세요. 경찰입니다.”

태경의 말이 끝나자 뒤쪽에 서 있던 경찰이 이현웅에게 다가왔다.

“이현웅 씨, 아까 oo 식당에 들어가신 적 있죠?”

“네, 맞아요. 제가 도움을 요청하러 갔었어요.”

경찰은 식당에서 신고가 들어왔기에 그에 따른 조사를 진행했다. 혹시라도 이현웅이 흥분하진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차분하게 응했다.

“조사는 다 끝났습니다.”

조사를 마친 경찰이 태경과 함께 뒤쪽으로 가서 잠시 대화를 이어 나갔다.

“CCTV를 보여 주니 이현웅 씨가 본인이 맞는다고 하네요.”

“혹시 이현웅 씨는 경찰서로 가야 하나요?”

“아니요. 고소 취하가 돼서 경찰서는 갈 필요가 없습니다.”

식당에 신고가 들어온 뒤 경찰에게 소식을 들은 부부는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부부가 사과와 함께 깨진 식기에 대해 변상을 하자 주인을 이현웅의 고소를 취하했다.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관이 현장 남은 채로 부부가 진료실로 들어와 다시 아들과 대면했다.

“현웅아, 이제 집에 가자.”

“아니, 이 사람들 아직도 안 갔어요?”

예상대로 이현웅은 자신의 부모님을 보자 또다시 언성을 높였다.

“선생님 이 사람들 내보내 달라니까요. 네?”

이현웅의 도움 요청에도 태경은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그저 세 사람이 처한 이 상황 자체가 안타까웠다.

“경찰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사람들 제 부모 아니에요. 저 사람들 잡아가세요. 제가 부탁할게요.”

“이현웅 씨, 일단 진정하세요.”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경찰 역시 이현웅의 도움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현웅 씨, 미안해요. 내가 잘 못 말했어요.”

아들이 점점 목소리를 높이자 이현웅의 어머니는 타인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아들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집에만 데려다줄게요. 우리랑 같이 가요.”

“하, 씨! 당신들이 왜 날 집에 데려다줘!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현웅은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저 인간들이 날 잡아가려 한다고. xx! 왜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어!”

부모였지만, 부모가 아닌 타인인 두 사람을 향한 이현웅의 짜증은 서서히 분노로 바뀌었다.

“제발!”

급기야 그는 주머니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 들며 돌발 행동을 보였다.

“제발 날 좀 내버려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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