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또 한 명의 피해자
“제발!”
급기야 그는 주머니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 들며 돌발 행동을 보였다.
“제발 날 좀 내버려 둬!”
갑작스러운 상황에 태경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놀라며 진료실 안에는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더 이상 이현웅을 자극하면 안 되겠어.’
옆에 있던 태경이 이현웅의 손에 들린 물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위험한 물건은 아닌 끝이 살짝 다듬어진 나무젓가락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안심하긴 일렀다. 나무젓가락도 자칫 위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내 말을 안 믿어! 왜! 경찰도 다 한패지?”
이현웅은 아무도 자기 말을 믿지 않는다며 답답함과 함께 분노했다.
“우리 부모님이 어디 갔냐고! 왜 나보고 이상하대. 왜? 멀쩡한 사람을 병신 만들어. 저 사람들 다 가짜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거야.”
“믿어요.”
지금 가장 급한 건 이현웅을 진정시키는 일이었다.
“믿어요. 난 현웅 씨, 말 전부 믿어요.”
태경은 조금씩 이현웅 앞으로 몸을 돌리며 그를 설득해 나갔다.
그사이, 경찰은 부부에게 천천히 진료실을 나가라는 사인을 보내고 그들을 보호한 채 일단 함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부도 아들이 본인들 때문에 흥분하는 걸 알고 있었기에 경찰 지시에 따랐다.
“미안해요. 내가 현웅 씨를 믿을게요.”
태경이 서서히 이현웅와 거리를 좁히며 계속해서 그를 설득했다.
“선생님이 절 믿는다고요?”
“그럼요. 믿어요.”
“정말이세요?”
“정말이에요. 약속할게요. 현웅 씨 우리 같이 심호흡해 볼까요. 후!”
한쪽 손을 가슴에 얹은 태경은 이현웅을 마주 보며 크게 심호흡했다.
“후우!”
“후!”
“한 번 더요. 후우!”
이현웅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태경은 부드럽고 차분한 말투로 일관했다.
“잘했어요. 잘하고 있어요. 현웅 씨, 손에 있는 물건 나 줄 수 있어요?”
“이거요? 이거 나 지키려고 갖고 다닌 거예요. 날 지켜야 하니까요.”
“여기서는 괜찮아요. 모두 다 현웅 씨 편이에요. 그러니까 그거 나 줘요. 다치면 안 되잖아요.”
태경은 나무젓가락을 움켜쥐고 있던 이현웅의 손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손의 있는 나무젓가락을 빠르게 빼내 얼른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잘했어요. 고마워요. 현웅 씨.”
태경은 이현웅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를 달랬다.
“이현웅 씨 미안해요.”
밖에 나가 부부를 진정시켰던 경찰이 들어와 사과를 전했다.
“나도 현웅 씨 말, 믿어요.”
“아닙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다행히 이현웅의 흥분한 감정은 잦아들며 공격적인 성향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런데 저 이만 가고 싶은데요. 선생님 저 이제 가도 될까요?”
“네. 그럼요. 현웅 씨 집 갈 수 있겠어요?”
“버스 타고 가면 돼요.”
“돈은요? 돈 있어요?”
“아니요.”
“그럼 내 차 타고 가요.”
옆에 있던 경찰이 이때다 싶어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래요. 여기 경찰 아저씨 차 타고 가면 안전하게 갈 수 있어요.”
“안전하게요?”
“물론이죠. 내가 안전하게 잘 데려다줄게요.”
“알았어요. 저기……. 선생님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치료 잘 받아 줘서 고마워요.”
“선생님은 좋은 의사이십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현웅은 태경에게 90도로 인사를 한 뒤 주차장으로 가서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경찰차에 탑승했다.
자칫 위험한 사고로 번질 수 있었던 상항은 다행히 잘 마무리되었다.
“감사해요.”
이현웅이 나간 뒤 부부는 태경에게 다가와 고마움을 전했다.
“원장님 덕분에 큰일 없이 잘 넘어갔습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이대로 집에 가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그게……. 집으로 안 가려고요.”
그새 눈시울이 붉어진 이현웅의 어머니가 답했다.
“병원에 입원시키려고요. 계속 이러다가 현웅이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 일단 입원해서 집중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결심이 선 듯 덤덤하게 말했지만, 아들을 정신 병동에 입원시키는 그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아까 같은 일이 며칠 전에도 있었어요. 그때는 그래도 집이라서 괜찮았는데 오늘처럼 밖에서 있던 건 처음이거든요.”
“그래서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어려운 결정을 하셨네요. 분명 현웅 씨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네, 저랑 남편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희 이만 가 볼게요. 오늘 정말 감사하고 죄송했습니다.”
“저기 선생님?”
태경이 인사를 하고 가려는 이현웅의 어머니를 불러 세웠다.
“네?”
“현웅 씨의 병 때문에 의사로서 선생님을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안 보이지만, 분명 현웅 씨의 상처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아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됐건 지금 이현웅을 보호하는 가족은 두 사람이었다.
치료의 끝이 정해지지 않은 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특히나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 자신들의 존재를 매 순간 부정하고 있으니 부부의 고통은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태경은 보호자로서 두 사람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기에 저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주고 싶었다.
“오늘 잠깐 뵙지만, 선생님께서 환자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현웅 씨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의사로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두 분께서 지치지 마시고 잘 이겨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하! 감사…….”
생각지 못한 위로를 받은 이현웅의 어머니는 울컥한 마음의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제가 위로받는 법을 잊고 있었나 봐요. 정신과 의사인 저를 선생님이 위로하시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선생님이 해 주신 말 잊지 않을게요.”
“감사했습니다.”
두 사람은 인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향한 뒤 곧장 차에 올랐다.
이현웅은 차 안에서 태경에게 손을 흔들었고 경찰차는 부부의 차를 따라 병원을 벗어났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태경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병으로 인한 또 한 명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 질환 환자들을 마주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오늘처럼 그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안 좋았다. 수술로 병을 고치는 태경에게는 가장 대하기 어렵고 가슴 아픈 환자들이었다.
그저 세 사람이 지금보다는 마음이 편해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마음이 씁쓸하네요.”
뒷문으로 들어오는 태경에게 임정숙 간호사가 말했다.
“저는 그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사정을 알고 나서 그런지 이현웅 씨도 부모님도 참 안됐네요.”
“그러게요. 현웅 씨에게 차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원장님! 원장니임?”
무슨 일인지 최 팀장이 놀란 얼굴로 다가와 태경의 주위를 돌며 살폈다.
“우리 팀장님께서 왜 또 이러실까? 왜요, 이번에도 또 무슨 국회의원이 찾아왔어요?”
“임 선생,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소식 들었어요. 환자분이 흉기를 들었다던데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친 곳은 없고요?”
도대체 어디서 듣고 왔길래 흉기라는 단어가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최 팀장은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
“우리병원의 기둥이신 원장님께서 다치기라고 한다면 저 정말 속상합니다.”
최 팀장은 항상 한 박자씩 늦고 살짝 오버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태경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건 사실이었다.
“흉기는 무슨 흉기예요. 나무젓가락이었어요.”
“그래요? 아무튼 원장님은 괜찮으신 거죠?”
“그럼요. 전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근데 아무리 나무젓가락이어도 아까 같은 상황에서는 조심하시는 게 좋아요. 저 아까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럼요. 조심해야죠. 그런데 이현웅 씨가 경찰도 못 믿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공격할 거 같지는 않았어요.”
“그걸 어떻게 아셨는데요?”
“나무젓가락 방향이요.”
“무슨 얘기인지 나도 좀 압시다.”
“잠시만요. 팀장님. 방향이 왜요?”
“다듬어진 나무젓가락 끝을 자기 자신을 향해서 들고 있더라고요.”
태경 또한 무턱대고 이현웅에게 다가간 것은 아니었다.
이현웅은 꺼내든 나무젓가락 끝을 다른 사람이 아닌 점점 더 본인에게 가까이 당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일종의 자기방어와 함께 자해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차분하게 설득해 나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나무젓가락 방향까지 확인하시고 대단하세요. 전 정말 몰랐어요.”
“우리 원장님이야 늘 대단하시죠.”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별말씀이라니요. 이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민망합니다. 참! 오늘 외래가 꽤 있죠?”
“꽤가 아니라 오늘은 저녁 진료 예약도 많고 일반 외래도 많은 날이잖아요.”
“그럼, 회진 돌고 와서 외래 바로 시작하죠.”
“네, 알겠습니다.”
칭찬에 민망해진 태경은 얼른 화제를 돌리며 회진을 위해 병동으로 향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병동에 들어서자 중년 남자 환자가 복도를 지나가며 태경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오늘은 속이 더부룩한 것도 없고 밥도 잘 먹었다니까요.”
“잘하셨어요. 혹시 불편한 곳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
“네, 그럼.”
“저기, 환자분? 잠시만요?”
남자가 꾸벅 인사를 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려 하자 태경이 곧장 뒤를 따라가며 환자를 불렀다.
“네, 선생님.”
“환자분 뭐, 하실 말씀 없으세요?”
“할 말이요? 아니요. 선생님께 딱히 드릴 말씀이 없는데요.”
“그러세요?”
할 말이 없다는 환자의 말에 태경이 쓱 웃어 보였다.
“선생님께서 저한테 하실 말씀 있으세요?”
“전 없는데 우리 환자분께서 있는 것 같아서요.”
“제가요? 아닌데……. 하하하!”
아니라고 말한 환자는 겸연쩍은 웃음과 함께 슬며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이귀남 환자분?”
“……네?”
“왜 자꾸 도망가시려고 하세요.”
“제가요? 아닌데요. 저 가만히 서 있는 중인데…….”
“제가 안 된다고 했죠?”
“선생님 저 정말 아니에요. 안 했어요.”
주어가 빠진 말에 철석같이 알아들은 환자는 급기야 손사래를 치며 무언가를 강하게 부정했다.
“좋은 말씀으로 할 때 얼른 저 주세요.”
“아니, 드릴 게 있어야 드리죠. 저 정말 아니에요. 자꾸 뭘 달라고 하시는 건지 원…….”
“담배요.”
“네?”
“얼른 담배 주세요.”
태경은 남자를 향해 손을 내밀며 빨리 달라는 손짓을 보였다.
50대 중반의 이귀남은 며칠 전 암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우연히 진료를 보러 왔다가 태경이 다섯 번째 바이탈을 감지했고, 검사를 통해 위암을 찾은 케이스였다.
다행스럽게도 완전 초기였기에 이귀남과 가족들은 태경에게 상당히 고마워했었다.
처음 병원에 내원했을 때부터 의료진의 말도 잘 듣고 시원시원하고 화끈한 성격에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담배를 매우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이귀남은 심각한 골초였다.
“아니, 선생님 제가 지금 설마 담배를 피우러 간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