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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이탈-156화 (155/472)

156화. 세계 3대 거짓말

그런 그에게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담배를 매우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이귀남은 심각한 골초였다.

“아니, 선생님 제가 지금 설마 담배를 피우러 간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태경은 입을 다문 채 여전히 내민 손끝을 까닥거리며 담배의 행방을 원했다.

“아니, 선생님 절 어찌 보시고. 진짜 담배 없어요.”

이귀남은 누명이라도 뒤집어쓴 사람처럼 온몸으로 담배가 없음을 어필했다.

“제가 미친놈도 아니고 암 수술을 받았는데 설마 담배를 피우겠습니까?”

“전적이 있으시잖아요.”

이틀 전 저녁, 병원 마당 구석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던 이귀남은 순찰을 하던 장득칠에게 현장을 딱 걸렸었다.

“그, 그거야 그날 불알친구 놈이 문병을 왔는데, 아 글쎄 그 친구 놈이 담배를 너무 맛있게 피워서…….”

“그래도 피우지 마셨어야죠. 빨리 담배 주세요.”

“정말 없습니다. 제가 그때 선생님께 혼난 뒤로는 담배의 디귿도 쳐다보지 않는다니까요.”

지금까지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를 만난 태경은 언제나 환자들의 말을 신뢰하고 믿었다.

그렇지만 잘 믿지 않은 부류가 있었으니, 하나는 알코올 중독자 환자였고 두 번째는 골초 환자의 말이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중독자 환자들은 의사의 갖은 충고와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술과 담배에 다시 손을 대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분, 세계 3대 거짓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그게 뭔 줄 아세요?”

“3대 거짓말……? 그게 뭔데요?”

“첫째, 마약중독자에 약을 끊었다는 말. 둘째, 알코올 중독자에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는 말. 셋째.”

“그 셋째는 말씀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데요. 골초들이 담배를 끊었다거나 피우지 않았다는 말 아닌가요?”

“네, 잘 아시네요. 그래서 우리 환자분은 현재 담배가 없다는 거죠?”

“그렇다니까요.”

“그럼 제가 확인해 봅니다.”

“물론입니다. 저도 억울하니까 얼마든지 확인하세요.”

이귀남은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처럼 결백을 주장했다. 태경이 그에게 다가가 환자복 주머니를 만져 봤다.

“……!”

어라! 이게 아닌데. 그런데 정말로 담배가 없었다.

“환자분 팔 한번 보여 주시겠어요?”

“자! 보십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매를 걷어 올렸지만, 담배는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골초 환자가 담배를 팔에 숨겼던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이 나서 확인해 봤지만 담배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사실 이귀남이 골초고 전적이 있기에 의심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조금 전 인사를 할 때 아주 미세한 담배 냄새가 그의 몸에서 났기 때문에 나름 합리적 의심을 한 것이었다.

탁- 탁-

“그거 보세요. 없죠?”

이귀남은 자신의 가슴팍과 몸을 양손으로 두드리며 보란 듯이 담배가 없음을 강조했다.

“선생님 정말 서운합니다. 왜 제 말을 안 믿으세요.”

“그래요. 제가 환자분을 괜히 의심한 것 같네요.”

뭔가 화장실을 갔다가 뒤처리가 깨끗하지 않은 상태로 나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태경은 찜찜했지만, 담배가 없었기에 이귀남의 말을 믿기로 했다.

“환자분 정말 담배 피시면 안 돼요? 아셨죠?”

“정말 안 펴요. 폈다가 괜히 걸리면 우리 불독한테 쥐어뜯길 수도 있거든요.”

“불독이요?”

“그게 우리 마누라 별명인데요. 제가 담배 피우다 걸리…….”

그렇게 이귀남이 말을 이어 가던 그때였다.

“야! 이귀남?”

복도 저 끝 편에서 강한 사자후가 들려오더니 이귀남의 말허리가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당신, 어머! 선생님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회진 돌고 계시나 봐요.”

“네, 안녕하세요.”

“마침 잘됐네. 선생님 이 사람 담배 좀 못 피우게 혼 좀 내 주세요. 이틀 전에 담배 피우다 걸린 것도 전 몰랐어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니까요.”

“아니, 무슨 소리야. 누가 담배를 피운다고 그래.”

“하이고. 목소리 높아지는 거 보니까 또 거짓말하네. 지금 담배 피우러 가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아내는 이귀남의 말을 단 1%도 믿고 있지 않았다.

“큰 애한테 전화 와서 휴게실에 통화하러 간 사이에 내가 숨긴 담배 당신이 가져갔잖아.”

“잠깐 바람 쐬러 가는 사람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바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어. 당신한테 30년 가까이 속고 살았잖아. 여러 말 하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으면 좋은 말 할 때 내놔.”

“아! 진짜 선생님 앞에서 창피하게 그만해. 진짜 없다니이……. 으아! 이 여자가 어디다 손을……. 여보!”

끝까지 당당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던 이귀남의 목소리가 별안간 땅에 떨어지듯 작아지며 절규했다.

“당신은 내 손바닥 안이야.”

그의 아내가 갑자기 환자복 하의 허벅지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야! 이 여편네야 이게 무슨 짓이야 얼른 손 빼!”

이귀남이 길길이 날뛰며 아내의 손을 빼내자 놀랍게도 아내의 손안에는 테이프가 붙어 있는 담배가 들려 있었다.

“참나! 이래도 담배가 없어? 어? 귀신을 속여라.”

“아니, 그게 언제 거기 들어갔지? 담배가 왜 거기서 나온대…….”

수술한 뒤로 어쩔 수 없이 강제로 금연 중이던 이귀남은 금단 현상에 손까지 떨릴 정도였다.

도저히 참다 참다 담배 생각이 간절한 그는 아내가 딸과 통화를 하러 나간 사이, 스카치테이프로 담배를 허벅지에 붙여 숨긴 것이었다.

“담배에 발이 달렸니?”

“바, 발이 달렸나 보네.”

“이 화상아! 언제 사람 될래? 어! 당신 이것 때문에 암 걸려서 수술해 놓고 또 담배를 피우려고 하면 어떡하자는 거야. 당신 아버님 못 봤어?”

“아니, 무슨 담배 때문에 위암에 걸려.”

아내가 이토록 심하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귀남의 아버지가 담배로 인한 폐암에 걸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담배로 인해 생긴 폐암이 위를 비롯한 다른 장기에 전이가 된 이귀남의 아버지는 힘든 투병 생활을 했었다.

행여 아들이 본인과 똑같은 전철을 밟을까 봐 걱정돼 담배를 끊으라는 말까지 남겼다.

“아버지랑 나는 다르지. 폐는 멀쩡하잖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멀쩡하긴 뭐가 멀쩡해! 숨차서 예전처럼 잘 뛰지도 못하잖아.”

“그거야 나이 들어서 그렇지.”

아내는 철딱서니 없이 말하는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하고 화가 났다.

“선생님 때문에 초기에 발견한 것도 천운인 거 몰라? 안 그랬으면 당신 죽었어. 양심이 있으면 담배 끊을 생각을 해야지.”

“담배 갖고 잔소리 한번 요란하게 하네. 귀에 딱지 생기겠다. 그만 좀 해.”

“당신 그러다 정말 뒤져. 야! 이귀남 너 진짜 죽고 싶어서 그래.”

“이 여자가 근데 선생님도 앞에 계시는데 뒤지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험하게 해.”

“아니요. 환자분. 그러다 정말 뒤집니다.”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된 이귀남을 향해 태경이 격하게 말했다.

늘 환자들에게 매너 좋은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심각함을 모르는 환자 뻔뻔한 태도에 태경도 화가 났기 때문이다.

“……예?”

“그렇게 담배 계속 피우면 뒤진다고요. 분명 아까 제가 여러 번 물어봤을 때도 뭐라고 하셨어요? 담배 없다고 했죠?”

“예, 뭐……. 그랬습니다.”

“그런데 왜 거짓말하셨어요?”

“그거야 담배가 너무 피우고 싶으니까요.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 모금만 피우고 끊으려고 했습니다. 진짜예요.”

“그걸 지금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하!”

태경도 아내도 어이가 없었다.

“제가 보기에 환자분은 담배를 끊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요. 정말 담배를 끊고 싶은 생각이 있기는 하세요?”

“…….”

정곡을 찌른 태경의 말에 이귀남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환자분 담배 때문에 위암에 걸린 건 아니라고 하셨는데, 아닙니다. 사람들이 담배는 폐암이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데, 폐암뿐만 아니라 위암을 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사실이었다. 심지어 국제암연구소에서는 흡연이 과학적으로 위암의 원인이라고 강조할 정도였다.

“환자분 혹시 고기를 구워 드시다가 고기가 타면 그 고기를 그대로 먹나요? 안 먹나요?”

“그거야 당연히 안 먹죠. 탄 게 몸에 해롭잖아요. 뭐라더라 그 발암물질 나온다고 하던데요.”

“맞아요. 근데 담배는 모든 장기에 악영향을 주며 심지어 1급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환자분은 지금까지 계속 돈을 주고 몸에 안 좋은 걸 넣고 있는 겁니다.”

“선생님께서 정색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괜히 겁이 나네요.”

“겁을 좀 드시라고 드린 말인데 당연히 겁이 나야죠.”

“……!”

지나가는 환자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아내가 보는 가운데 제대로 혼이 난 이귀남은 민망한 듯 허공을 쳐다봤다.

“이귀남 환자분? 저 좀 보세요.”

“네.”

“아까 보호자분의 말대로 암을 초기에 발견한 건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지금처럼 계속 담배를 또 피우면 그땐 다른 곳에 암이 생길 수도 있고, 위에 재발할 수도 있어요.”

“내 말이 그 말이에요. 당신 선생님 말씀 새겨들어.”

마음이 답답한 아내는 태경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듯이 환자도 본인 건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담배 반드시 끊어야 해요.”

“네. 저도 알고는 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보니…….”

“쉽지 않기는 뭐가 쉽지 않아. 당신 살면서 담배 끊어 본 적도 없잖아.”

“결혼 전에 한 번 시도는 해 봤어.”

“자랑이다. 자랑이야!”

“두 분 진정하시고요. 우리 환자분은 앞으로 죽을 각오로 담배 끊으세요. 손이 떨리면 운동을 시작하고 입이 심심하면 무설탕 사탕을 먹고 혼자서 힘들면 금연 학교도 찾아가세요.”

이귀남이 담배를 꼭 끊어야 했기에 태경은 몇 번을 강조하며 경각심을 심어 줬다.

“겉으로 드러나는 병이 없을 뿐이지 환자분이 담배 피울 때마다 몸속 장기들이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거랑 똑같아요. 이제 아셨어요?”

“네.”

아니다. 대답은 했지만 이귀남의 표정은 아니었다. 그냥 태경의 긴 잔소리가 얼른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사실 이귀남뿐만 아니라 골초 환자들을 설득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말을 해도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환자분, 이거 좀 보시겠어요?”

태경은 재빨리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찾더니 이귀남에게 화면을 돌렸다.

“이게 뭔가요? 꼭 고기 도축한 거 같은데……. 한쪽은 꼭 탄 거 같네.”

“우리 몸속에 있는 위와 폐입니다.”

시각만큼 사람에게 깊은 잔상을 남기는 건 없었다. 태경은 적나라한 장기 사진을 보여 주기로 한 것이다.

“폐요?”

“네. 정확히 말하면 첫 번째 사진은 건강한 위와 위암에 걸린 사진이고 두 번째 사진은 건강한 폐고 한쪽은 흡연자의 폐입니다.”

“잠시만요. 이게 폐암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 흡연자에 폐라고요?”

이귀남은 위 사진보다 흡연자의 폐를 보고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홍색과 붉은색이 도는 건강한 폐와 달리 흡연자의 폐는 한눈에 보기에도 정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폐의 상당 부분이 검게 변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불에 탄 모습 같았으며,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아픔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 이 사람 괜히 이러는 거예요. 담배에 붙어 있는 저런 사진 숱하게 봤으면서 새삼스럽게.”

“이 사람아. 내가 사는 담배는 저런 사진은 없어.”

이귀남의 말을 들은 아내가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확인했다. 그의 말대로 사람 얼굴과 문구가 있을 뿐 장기 사진은 아니었다.

“저기 선생님, 설마 제 폐도 이럴까요?”

“그럴 가능성이 상당하죠. 저 사진만 해도 실제 흡연자를 부검했을 때 나온 폐니까요.”

뒤이어 태경은 더 심각한 짧은 영상까지 보여 줬다. 담배가 얼마나 장기에 안 좋은지 노골적으로 실험한 영상이었다.

“상당히 끔찍하네요.”

적나라한 사진과 영상 때문인지 이귀남의 태도가 조금 전과 달랐다.

“그런데 이렇게 끔찍한 자료를 보여 드려도 우리 환자분처럼 암 수술해도 피울 사람은 담배를 또 피우더라고요. 결국 담배를 끊는 건 환자분의 의지예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았습니다.”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 말고 확실히 말해.”

“그런 거 아니야. 저 사진 보니까 나도 느끼는 게 많아. 진짜 끊을 거야. 이 자리에서 약속할게.”

“환자분 진짜 끊으실 거죠?”

“네, 꼭 끊겠습니다.”

이귀남은 주먹을 불끈 쥐며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제가 이제부터 담배를 피우면 전 사람 새끼가 아니라 개새끼입니다.”

“좋아요. 일단 퇴원할 때까지는 무조건 금연하는 겁니다. 환자분 위암 수술해서 꼭 끊어야 해요. 아셨죠?”

“네, 선생님. 무조건 금연합니다. 내 위랑 폐를 위해서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담배 피우다 걸리면 보호자분께 5만 원씩 주세요.”

“예? 좋습니다. 그까짓 것 하죠. 합니다.”

“당신 진짜지? 난 돈보다 당신 금연이 더 중요해. 할 거지?”

아내는 돈보다 금연한다는 소리가 훨씬 좋았다.

“그럼. 나 마음먹었어. 믿어 봐.”

이귀남의 건강을 위해 금연시키려 했던 태경은 그의 강한 의지를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랑 선생님께서 이렇게까지 이야기하고 무엇보다 제 몸을 생각해서 금연하라는 건데 저도 사람이면 말을 들어야죠.”

“환자분 잘 생각하셨어요.”

“저 같은 골초의 마음을 돌리시다니 선생님…….”

툭-

태경도 아내도 이귀남의 의지가 빈말이 아니라도 생각하던 그때 복도 바닥에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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