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혈중알코올농도 0.03%
툭-
태경도 아내도 이귀남의 의지가 빈말이 아니라도 생각하던 그때 복도 바닥에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
떨어진 것은 어이없게도 담배였다.
“…….”
순간 세 사람의 동공이 흔들리고 바닥에 떨어진 담배로 향하며 3초간 정적이 찾아왔다.
“어!”
때마침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던 도승원과 이승희 커플이 그 옆을 지나고 있었다.
“오빠, 잠시만.”
얼음처럼 굳어 버린 세 사람 앞에 떨어진 테이프가 붙은 담배를 집어 든 이승희는 아주 친절하게 이귀남에게 담배를 건넸다.
“저기, 아저씨?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나요?”
“네.”
“아……. 잘못 본 거 같은데. 옆에 남자분이 떨어뜨리신 거 아닌가?”
“아닌데요? 우리 오빠 담배 안 피워요. 아저씨 환자복 안에서 떨어지는 거, 제가 봤어요.”
“……!”
“근데 입원 중이시면 건강 생각해서라도 담배 끊으시는 게 좋아요.”
“승희야?”
해맑게 팩폭을 날리는 이승희와 달리 분위기를 파악한 도승원이 안절부절못하며 그녀를 불렀다.
“하하! 승희야 빨리 병실로 들어가자. 선생님, 수고하세요.”
“왜? 담배가 얼마나 몸에 해로운데. 우리 아빠는 옛날에 담배 피우는 남자랑은 무조건 만나지도 말라고 했어.”
“그래. 알았어. 근데 우리 승희 그만 조용하자.”
“근데 저 아저씨 담배 숨기다가 걸리셨나 봐.”
“쉿! 승희 그만!”
도승원은 이승희와 함께 빨리 병실로 향했다.
“야! 이귀남 너 이거 뭐냐?”
“내, 내가 다 설명할게.”
순간 눈빛이 변한 아내에게 움찔한 이귀남은 어쩔 줄 몰라 했다.
“하! 환자분, 제가 그렇게 설명해 드렸는데 이건 아니죠.”
거기에 실망한 태경의 표정까지 더해지자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여보! 선생님! 그게 아니라요.”
마음이 급한 이귀남은 마치 래퍼처럼 쉴 틈 없이 말을 쏟아 냈다.
“이게 제가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사실 허벅지 말고 옆구리에도 담배를 하나 더 숨겼는데 말하려고 했어요. 근데 그거 아시죠? 워낙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말할 타이밍을 놓쳤어요.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진 그런 거라니까요. 여보? 선생님 믿어 주세요.”
“뭐? 믿어 주세요? 그랬으면 바로 말을 했어야지. 어디서 거짓말이야!”
“아니, 여보! 여보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내는 급기야 이귀남의 귀를 잡아끌기 시작했다.
“사람이 어쩜 이래?”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근데 진짜 병실 가서 꺼내려고 했어. 진짜야!”
“입 다물어.”
“으아! 아파.”
체격도 키도 비슷했지만, 이귀남은 아내의 손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
“어머! 보호자분 진정하세요.”
“그래, 여보 나 암 환자잖아. 나는 아직 안정이 필요한 상태라고.”
“그런 인간이 담배를 피우려고 그랬어? 조용히 따라와.”
“보호자분? 일단 이거 놓고…….”
“아니요. 선생님. 두세요.”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가 아내에게 다가가자 태경이 간호사를 말렸다.
“네? 그래도 환자인데 괜찮을까요?”
“이귀남 환자분은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어요. 안 그러면 진짜 담배 못 끊을지 몰라요.”
“그건 그런데 진짜 보고만 있어요?”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이귀남은 아내의 다정한 손길에 강제로 병실로 향하며 소리쳤다.
“보호자분이 말이 험하셔서 그렇지 큰일은 없을 거예요. 계속 큰 소리 나면 장 요원님 콜 하세요.”
“네, 원장님. 알겠습니다.”
이귀남의 말대로 진짜 타이밍을 놓친 걸지도 모르지만 태경은 이참에 한 번 크게 혼나고 정신을 차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놈의 담배가 문제네.”
태경은 이귀남이 병실로 가면서 복도에 떨어뜨린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나머지 회진을 돌았다.
* * *
이찬희는 응급실의 폭풍 같은 사이클을 보낸 뒤 늦은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이 쌤, 식사 지금 하신 거예요?”
접수처 직원이 대기실을 지나는 이찬희에게 물었다.
“아까 보니까 응급실 아주 난리던데? 최 쌤도 식사 늦게 하시던데.”
“네. 오늘 차대차(차끼리 충돌한 교통사고를 뜻하는 말) 환자들이 꽤 있어서 좀 정신이 없었어요.”
“다들 애쓰셨네요.”
“뭐, 그래도 크게 다치신 분이 없어서 괜찮았어요. 아! 두 분 이거 드세요.”
이찬희는 불룩해진 가운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접수처 데스크 위에 올려놓았다.
“어머! 웬 눈깔사탕?”
“그러게. 이거 옛날에 우리 할머니 집에 가면 많았는데 추억 돋는다.”
“그러게요. 색깔도 참 예쁘다.”
“치료받은 환자분이 주고 가셨어요.”
“하여간. 우리 이 쌤이 은근히 다정하다니까.”
“맞아요.”
“제가 또 우리병원에 스윗남 아닙니까. 맞다! 아까 이귀남 환자 결말 어떻게 됐어요?”
한바탕 난리가 났던 이귀남 소식은 병원 직원 사이에 금방 퍼졌다.
“보호자분이 화가 단단히 나서 병동 쌤들이 말리느라 고생 좀 하셨대요.”
“아내분이 한 포스 하시던데.”
“이 쌤 모르셨구나? 이귀남 환자랑 아내분 유도학과 선후배 사이잖아요.”
“그래요?”
“네, 심지어 아내분이 선배인데 화나면 어마어마하대요. 아무튼 각서 쓰고 지장까지 찍고 이귀남 환자가 금연하는 걸로 좋게 마무리됐어요.”
“암 수술까지 하셨는데 담배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죠. 그럼 수고들 하세요.”
“네, 이 쌤도 수고하세요.”
“사탕 잘 먹을게요.”
접수처 직원들과 대화를 마친 이찬희는 커피를 들고 정문 쪽에서 순찰 중인 장득칠에게 향했다.
“장 요원님? 여기 부탁하신 커피 왔습니다.”
“고마워 이 선생. 크윽! 좋다.”
“아니, 무슨 커피를 술처럼 마셔요.”
“난 커피만 마시면 소리가 나더라고. 사실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던 사람이거든.”
“정말요?”
“쌉쌀한 맛이 느껴지는 게 뭔가 쌍화탕 먹는 기분이라 별로였어.”
“무슨 쌍화탕이에요.”
“진짜야. 근데 처음에 잠 깨려고 한 잔씩 먹다 보니까 고소하니 맛있어.”
“그게 커피 매력이죠. 장 요원님은 일하기 힘들진 않으세요?”
“힘들긴.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 속에 섞여서 열심히 일하니까 즐거워. 내가 요즘 얼마나 행복한 지 이 선생은 모를 거야.”
“아니, 누가 들으면 뒷골목 양아치가 개과천선하고 일하는 거 같잖아요.”
이찬희가 손뼉을 치며 큰 소리로 웃었지만, 옆에 있던 장득칠은 무표정으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
순간 미세한 소름이 돋은 이찬희는 자기가 입을 잘못 놀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장 요원님 혹시 전에 하시던 일이……?”
“나? 그냥 작은 금융업에 있었어.”
“정말이요? 뭔가 매치가 잘 안 되는데……. 아무 말도 안 하셔서 저 순간 쫄았잖아요.”
“남자가 뭘 그런 걸로 쫄아. 다 옛날 일이야.”
“예? 옛날 일이요?”
Rrrrrrrrrr
“이 선생 콜 온다. 얼른 전화 받아.”
이찬희는 장득칠에게 다시 물어보려 했지만, 때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네. 이찬희입니다.”
-이 쌤, 신환 왔는데 지금 최 쌤 다른 환자 처치 중이라서요.
“바로 갈게요. 장 요원님 저 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뭘 나중에 다시 얘기해. 얼른 가서 환자 봐. 커피 잘 마실게.”
“수고하세요.”
이찬희는 반쯤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들이마시며 곧장 응급실로 향했다.
“몇 번이에요?”
“스웩 할아버지고 18번 베드에 계세요”
“스웨액!!”
스테이션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쪽에서 쩌렁쩌렁한 울림이 들려왔다.
“들리시죠?”
“이놈들아 스웩 놔 달라니까!”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 오셨어요.”
“오늘도 만만치 않겠네요.”
“제 생각도 그래요. 힘내세요.”
“약 가져오라고!”
응급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높이고 있는 인물은 의료진들 사이에서 일명 ‘스웩 할아버지’로 불리는 노인이었다.
165cm 키에 75세, 본명은 박주당으로 병원 근처에 사는 인물이다.
평소 말이 없고 점잖은 그는 술만 먹으면 응급실에 와서 수액을 놓아 달라고 소리를 높였다.
술에 취해 발음이 살짝 꼬이다 보니 수액 발음을 스웩으로 말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거기에 고집은 얼마나 센지 다른 검사는 일절 못 하게 하면서 오직 수액만 원했다.
챠륵-
“아이고 우리 주당 할아버지 오셨네. 오늘도 술 한잔 거하게 걸치셨나 보다.”
워낙 응급실에 자주 오다 보니 고운 정, 미운 정이 들어서 친근했다.
“오늘은 쫄따구 선생이네. 대장 어디 갔어?”
“우리 대장님 지금 수술 중이십니다.”
“잘됐네. 대장 선생은 너무 까다로워.”
“환자분들에게 워낙 꼼꼼하셔서 그래요. 그나저나 할아버지 술 많이 드셨어요?”
“아냐. 오늘은 술 많이 안 마셨어.”
“어!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평소와 달리 박주당에게서 소주 냄새가 크게 나지 않았다.
“술 냄새도 안 나시고 웬일이세요.”
“자전거 타고 가다가 벽에 부딪혀서 살짝 굴렀는데 좀 아파. 쫄따구 선생이 좀 안 아프게 해 줘 봐.”
“네!? 할아버지 그거 음주운전이잖아요. 제가 위험하다고 몇 번을 말씀드려요.”
“시끄러. 무슨 음주운전이야!”
술 먹고 자전거 타는 게 무슨 음주운전이냐고 했지만 사실이다. 혈중알코올농도가 0.03%가 이상이면 단속 대상이며 범칙금이 부과된다.
“그거 범죄예요.”
“무슨 집 앞에서 조금 이동했는데 그게 뭔 범죄야. 의사 선생은 그런 것도 안 해?”
“당연히 안 하죠. 술 먹고 운전을 왜 해요. 할아버지 정말 그러다 큰일 나니까 하지 마세요.”
“됐어. 눈꼽 이나 떼고 말해!”
“눈꼽이 아니라 눈곱이에요.”
“그거나 저거나 똑같지 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아프니까 빨리 약이나 줘!”
“어디가 아프신데요?”
“여기! 여기가 아파.”
박주당은 복부를 가리켰다.
“배가 아프다고요?”
“응!”
웃으며 이야기하던 이찬희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혹시 박주당 할아버지 술 먹고 자전거 타다 넘어지거나 어디 부딪혀서 왔을 때는 특별히 잘 살펴봐. 절대 그냥 보내지 말고.’
평소 태경이 이찬희와 최모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아무리 자전거라고 할지라도 술기운에 본인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기계에 의한 충격은 아무리 작아도 큰 외상으로 직결될 수 있었기에 잘 살펴봐야 했다.
‘배가 아프다고?’
게다가 박주당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상은 없었지만, 복부 통증을 호소했다.
“할아버지 여기 침대 위에 누워 보시고 무릎 한 번 구부려 보세요.”
“귀찮게스리.”
박주당은 툴툴거리면서 베드 위에 누웠다.
“어디가 아프세요?”
“전반적으로 다 아파.”
“여기는요?”
이찬희가 배를 눌러보자 박주당은 누르는 곳마다 통증을 호소했다.
“거기도 좀 아파.”
“지금부터 어디가 제일 아픈지 말씀해 주세요.”
“알았어.”
“여기는 어떠세요?”
“아이고! 거기! 거기가 젤로 아파.”
이찬희의 손이 떨어지기도 전에 박주당이 목소리를 높이며 아파했다.
‘여긴 LLQ잖아.’
그가 아픔을 호소한 곳은 LLQ(Left Upper Quadrant, 왼쪽 상복부)였다.
그냥 단순히 넘길 곳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지금 왼쪽 상복부를 많이 아파하셔서 검사를 해 봐야 해요.”
“검사?”
“네, 영상하고 피검사를 해서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어……!”
진지했던 이찬희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더해졌다. 갑자기 박주당이 돌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아니,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