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59화 (158/472)

159화. 의미 없는 도돌이표

-코드블루~ 코드블루 외과 병동.

환자의 다급함을 알리는 원내 방송이 의국실에 울렸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외과 병동.

“……!”

‘코드블루’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태경은 머리보다 몸이 본능적으로 먼저 반응했다.

아무리 몸이 피곤하고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어도 수술방이 아닌 이상 코드블루라는 단어가 들리면 무조건 뛰어갈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당탕- 탁- 탁-

“어머!”

이제 겨우 막 한 입 먹은 햄버거를 책상 위에 떨어뜨린 태경은 의국실을 나가다가 낮은 테이블에 정강이를 부딪었다.

“선배, 괜찮아요?”

의진이 괜찮은지 물었지만, 태경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생각보다 세게 부딪혔지만 코드블루 때문에 아픈 줄도 몰랐다.

“조심히 가세요.”

철컥-

의국식을 나온 태경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누구지?’

뛰어가는 동안 머릿속으로 병동에 있는 환자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생각하며 2층으로 향하던 그때였다.

“……!”

한동안 병동에서 자취를 감쳤던 강한 냄새가 후각을 강타했다.

‘포르말린이잖아!’

마치 댐을 범람하는 물처럼 4단계 냄새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선생님?”

병동에서 일을 보고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올라오는 태경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75세 박주당 환자예요.”

코드블루가 온 환자는 자전거 음주운전으로 복통을 호소하던 박주당 노인이었다.

“술 마시고 자전거를 타다 다쳐서 응급실로 왔어요. 그리고…….”

임정숙 간호사는 환자에 대한 브리핑을 빠르게 전달했다.

“바이탈 모두 다 체크해 주세요.”

2층 병동 복도 끝에 몰려 있는 의료진들 사이로 태경이 들어가며 말했다.

바닥에는 박주당이 쓰러진 채로 누워 있었다.

“환자 박동은 있습니다.”

“방금 복도에서 쓰러져서 방송했지만, 환자 의식만 없고 박동은 있는 상태입니다.”

“심전도 연결하고 우선 수액부터 걸어요. H/S(하트만 솔루션) 500ml bolus(볼루스, 조절 장치를 다 연 상태로 투여하는 것)로 주고 지금 응급 full lab이랑 ABGA(동맥혈 가스분석, 산소포화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음) 나가 주세요.”

“네, 선생님.”

“그리고 초음파 빨리 갖다줘요. 처치하는 것과 동시에 복부 초음파 바로 진행합니다.”

“알겠습니다.”

태경의 오더가 쏟아짐과 동시에 근무자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잠자리에 든 환자들로 고요하던 병동이 순식간에 분주한 전쟁터가 된 듯했다.

“바이탈! 바이탈 어때요?”

태경이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BP90/50이고 HR:155, 체온 정상입니다.”

“ABGA 해 줘요. 빨리!”

“네.”

“ABGB 결과 나왔습니다.”

오더를 내고 일어나는 태경에게 간호사가 동맥혈 가스분석 검사 결과지를 건네줬다.

“아! 젠장!”

결과지를 받은 태경의 입에서 짜증이 튀어나왔다.

“너무 안 좋다.”

결과 수치가 상당히 안 좋았다.

‘산소포화도는 낮고 이산화탄소는 높고 락테이트(lactate,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시 상승하는 수치로 환자 예후에 절대적인 수치)도 높다.’

수치가 말해 주듯 박주당의 다섯 번째 바이탈 또한 강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결과를 본 태경은 여기서 처치를 할 게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원장님, 지금 초음파 왔습니다.”

“아니에요. 미안한데 다시 갖고 가고 바로 수술방으로 갑니다. 환자 바로 배 열어야 해요. 이 상태면 안에서 출혈이 있다는 건데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요.”

“정 쌤한테 연락할게요.”

태경의 판단을 읽은 임정숙 간호사가 준비를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수술방 바로 열라고 하세요. 그리고 산소 공급해 주면서 바로 들어갑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기! 안 되지 않을까요?”

모든 의료진이 정신없이 움직이던 그때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직원의 패기 넘치는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환자 금식 시간도 아직 충분하지 않은데요?”

“지금 그게 문제야!”

그 질문에 태경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높였다. 아무리 경험이 없어 모른다지만 지금은 진짜 그런 거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물론 수술 전에 충분한 금식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도 태경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환자의 생명이 심하게 흔들릴 때는 그걸 따질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점은 지금 박주당을 둘러싼 모든 의료진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태경의 말에 수긍하고 각자 본인들이 할 일들에 충실할 뿐이었다.

여기 모인 7명의 의료진 전부 태경이 내린 결정에 동의하고 합당하다고 여긴 것이다.

“자! 환자 빨리 옮겨요.”

“네, 선생님.”

이동 베드에 옮겨진 박주당과 함께 태경이 빠른 속도로 수술방으로 향했다.

“지금은 환자가 더 우선이라 그래.”

“아, 네……. 제가 수업 시간에 배운 게 생각나서 의욕만 앞섰나 봐요.”

“아니야. 처음이라 그럴 수 있어. 그리고 원래 이론과 실전은 많이 달라. 괜찮아.”

스테이션 간호사가 민망해하는 신입에게 따뜻하게 위로를 건넸다.

* * *

인천의 한 아파트.

띠리릭-

철컥-

“선영이니?”

“네, 어머님 저 왔어요.”

박주당의 딸인 박선영이 옆 동에 사는 시부모님 집에 들어왔다.

“엄마 왔어?”

“세상에! 너희 이 시간에 영화 보는 거야? 학습지 숙제는 다 한 거야?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 힘드시게 하지 말라고 했지?”

늦은 시간에 만화 영화를 보고 있는 두 아이를 보자 박선영은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그냥 둬. 내가 보라고 했다.”

시아버지가 안방에서 나오며 손자들을 두둔했다.

“애들 학습지 숙제도 다 하고 책도 한 권씩 다 읽어서 내가 기특해서 보여 줬어.”

“진영이 진솔이 너희 숙제 진짜 다 했어?”

“응. 다 했지.”

“오빠 말 맞아. 우리 엄마가 내준 숙제까지 다 했어.”

“조금 있으면 끝나니까 그냥 다 보고 가. 고생했다. 밥은 먹었고? 밥 차려줄게.”

“아니에요. 어머님. 저 그이랑 김밥 먹어서 생각 없어요,”

박선영은 남편과 함께 사기꾼을 잡기 위해 잠복하다 먼저 들어오는 길이었다.

남편이 친구 셋과 사업을 준비하던 중 친구 한 놈이 돈을 갖고 도망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알고 보니 처음부터 사기를 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접근한 거였다.

그 때문에 남편은 몇 년 동안 모은 돈을 전부 날렸다. 경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친구와 도망간 친구를 일주일째 찾는 중이었다.

이런 사정이 있다 보니 박선영은 아까 병원에서 아버지의 일로 전화가 왔을 때도 제대로 통화를 할 정신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술을 마시면 병원에 가서 습관처럼 수액을 맞는 아버지였기에 솔직히 크게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됐어? 아범은 오늘도 밤새운다니?”

“네, 어머님. 오늘은 집에 같이 오려고 했는데 담당 형사님이 파주 쪽에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연락이 와서 현중 씨랑 같이 그리 갔어요.”

“어휴! 경찰이 갔는데 뭐 하러 거길 가. 미련하게 그냥 집에 오지.”

“저도 말렸는데 도저히 가만 못 있겠다고 해서요. 아마 그 사람이 제일 답답할 거예요.”

“아범이 사업한다고 할 때 너라도 좀 나서서 말리지 그랬니. 한두 푼도 아니고 그 돈을 다 어쩔 거야…….”

시어머니의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박선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대꾸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꼭두새벽부터 나가서 온종일 돌아다녔더니 몸도 마음도 다 지쳐 있는 상태였다.

“어허! 이 사람아 지금 누구한테 화풀이하는 거야? 화는 아들한테 내야지 왜 잘못 없는 애한테 그래.”

“어휴! 속이 하도 답답해서 그렇죠. 선영아, 미안하다.”

“아니에요. 어머님. 괜찮아요. 진영아, 진솔아 그만 집에 가자.”

“아! 엄마 이거 다 보고 가면 안 돼?”

“맞아. 곧 끝난단 말이야.”

아직 어린아이들은 집안의 심각한 상황을 몰랐다. 그렇기에 속상한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했고, 당장에 보고 있던 영화가 더 중요했다.

“너도 피곤할 텐데 애들 그냥 여기서 재워라.”

“아니에요. 아버님 어머님 쉬셔야죠. 그리고 애들도 내일 학교도 가려면 얼른 재워야……. 네, 여보세요?”

아이들 물건을 챙기며 집에 갈 준비를 하던 박선영은 가방에서 울리는 휴대폰을 얼른 받았다.

“아범이니?”

남편의 전화인지 묻는 시어머니의 말을 듣지 못하고 돌아서던 박선영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네? 수술이요? 많이 안 좋으신가요? 알겠습니다. 저기……. 제가 지금 갈게요. 혹시 제 폰으로 주소 좀 보내 주시겠어요? 네.”

“수술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가? 아범이 다쳤다니?”

“아니요. 그이가 아니라 아ㅂ…….”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박선영은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을 두들겼다.

“아버지께서 쓰러지셔서 지금 응급 수술 들어가셨대요.”

“뭐라고?”

“사돈어른께서 쓰러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실은 아까 병원에서 전화가 왔었어요. 아버지가 입원부터 하고 검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의사가 설득해 달라고 했는데 제가…….”

안 그래도 지쳐 있는 상태에서 접한 아버지 소식은 박선영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머님, 아버님. 죄송하지만 애들 좀 봐주시겠어요? 저 바로 병원에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당연하지. 애들 걱정은 하지 마.”

아들 소식에 심란해하던 시어머니는 박선영의 등을 쓸어내리며 위로했다.

“아가, 내 차 타고 가라. 내가 데려다줄게.”

박주당의 수술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시아버지는 벌써 현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래, 아버지 차 타고 가.”

“아니에요. 시간 꽤 걸릴 텐데 택시 타고 갈게요.”

“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밤에 여자 혼자 택시 타는 거 위험해서 안 돼. 애들 걱정하지 말고 얼른 아버지 쫓아가. 내가 학교도 잘 보낼게.”

“감사해요. 어머님.”

“감사는 무슨……. 얼른 가.”

“진영아 진솔아, 엄마 잠깐 외할아버지한테 갔다 올게. 할머니 말 잘 듣고 있어.”

“엄마. 외할아버지 아프셔?”

“조금 편찮으셔서 엄마가 가야 해. 진영아 진솔이랑 싸우지 말고 있어.”

“응. 걱정하지 마. 나 오빠잖아. 사이좋게 있을게. 엄마 외할아버지 괜찮을 거야. 내가 기도할게.”

9살 큰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박선영을 꼭 안아 준 뒤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버님, 지금 가시면 내일 일 나가기 힘드실 텐데 죄송해서 어떡해요.”

박선영은 개인택시를 하는 시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내일 출근에 지장이 생길까 봐 미안했다.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이참에 시아버지 노릇도 하고 하루 쉰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아가?”

“네, 아버님.”

“지금은 다른 생각 말고 사돈어른 생각만 해.”

“네. 감사……합니다.”

시아버지는 아버지 걱정에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박선영에게 휴지를 건네며 속도를 높였다.

* * *

“하! 미친놈.”

이찬희는 분노의 스크럽을 하면서 온갖 욕을 본인한테 쏟아 내는 중이었다.

“돌겠다. 진짜.”

원래는 최모나가 어시로 들어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환자를 진료하느라 코드블루의 주인공이 박주당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이찬희의 부탁으로 어시가 바뀐 것이다.

“나는 진짜 미친놈이야.”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긴 했지만, 설마 입원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겠나 싶었다.

‘병은 기다려 주지 않는데……. 의심됐으면 더 설득할걸.’

온갖 욕을 먹고 싸우더라고 박주당의 검사를 바로 했어야 했다는 의미 없는 후회가 도돌이표처럼 계속 생각났다. 게다가 쓰러진 타이밍이 검사를 하려고 입원실을 나오다가 그랬다니 속이 더 쓰릴 수밖에 없었다.

스크럽을 끝낸 이찬희는 빠르게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지잉-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까 확실하게…….”

“이찬희!”

들어올 때부터 죄인인 듯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이찬희의 말을 태경이 단번에 잘랐다.

“한마디도 하지 마. 수술! 지금부터는 수술에 집중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환자였기에 수술 외적인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았다. 백날 미안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만큼 환자를 살리는 데 모든 신경을 쏟아붓는 게 더 중요했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환자 마취됐습니다.”

의진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마취가 됐음을 알렸다. 다행히 마취는 별일 없이 잘 진행됐다.

“환자 이름 박주당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환자 상세 미상의 복부 외상으로 익스플로라토리 라파로토미(Exploratory laparotomy, 개복하여 원인을 찾는 수술법) 시행 예정입니다.”

오늘 응급 수술과 예정된 수술로 수술방을 계속 들락거렸던 태경의 눈빛은 오늘 처음 수술방을 찾은 사람처럼 진지했다.

“수술 도구와 영상 준비됐습니까?”

“네, 선생님. 준비됐습니다.”

수술방 특유에 차가운 공기조차 오늘따라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럼 수술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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