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60화 (159/472)

160화. 피바다

“수술 도구와 영상 준비됐습니까?”

“네, 선생님. 준비됐습니다.”

수술방 특유에 차가운 공기조차 오늘따라 긴장감이 감돌았다.

“수술 시작합니다.”

메스를 건네받은 태경이 환자 복부에 갖다 댔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길게 배를 가른다.

원래대로라면 피가 나는 곳을 지혈해 가면서 하는 것이 태경의 스타일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일단 배를 열어야 했다.

우선 빠르게 배를 열고 안을 살피면서 출혈 원인을 잡아야 한다.

날카로운 메스 끝으로 복부가 열리자마자 피가 흥건하게 수술 필드 옆으로 빠르게 흘러내려 순식간에 피바다를 이뤘다.

흘러내리 피는 의료진 발에 묻고 바닥 위로 떨어졌다.

“승압제랑 혈관수축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혈액과 수액도 볼루스(조절 장치를 다 연 상태로 투여하는 것)로 주고 있고 혈압은 80입니다.”

다섯 번째 바이탈은 태경을 농락하듯 냄새가 진해졌고, 그의 미간은 안 좋은 상황에 점점 내 천 자가 그려지고 있었다.

‘이런! 젠장 너무 많잖아!’

시간이 없고 출혈도 많다. 시야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출혈량이 너무 많았다.

마치 칠흑 같은 터널을 그 어떤 불빛도 없이 운전하는 것만 같았다.

“석션 서둘러. 시야 확보하자.”

“네, 선생님.”

슈욱-

한참 석션을 하자 다행히 출혈의 원인이 보였다. 위의 뒤쪽에서 피가 계속해서 나고 있었다.

‘판크리아스(pancreas, 췌장)는 안 돼.’

태경은 제발 췌장 쪽은 아니길 바랐다. 만약 췌장에 문제가 있다면 출혈을 잡기도 어렵고 그 이후에도 너무 많은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석션!”

머리로는 생각하고 손은 본능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태경이 별안간 소리를 높였다.

“똑바로 해!”

“죄송합니다. 선생님.”

“여기 안 보이잖아.”

“똑바로 하겠습니다.”

태경의 호통에 이찬희가 움찔하며 셕션을 다시 움켜잡았다.

이찬희가 딴생각을 하거나 집중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환자에 대한 걱정으로 따진다면 아마 이 수술방에서 제일 많이 하고 있을 사람이었다.

오히려 너무 걱정하고 있는 게 문제였다.

박주당의 복부에 가득한 피를 보니 자꾸만 본인 때문인 거 같은 자책감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손이 움직여 실수가 생겼다.

‘정신 차리자! 선생님이 수술하시고 있으니까 분명 괜찮을 거야.’

환자의 테이블 데스를 쉽게 용납하지 않는 태경이 집도의지 않은가.

이찬희가 늘 생각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병원에 출근하는 순간 자기 자신보다 더 믿는 사람이 바로 태경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 수술도 언제나 그렇듯이 태경을 믿으면 된다.

이찬희는 자책감을 비롯한 머릿속 잡생각을 지우며 오롯이 어시에만 신경 쓰기로 했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석션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마침내 뒤 배벽이 보이고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이찬희? 여기 보이지? 출혈이 어디서 나는 거야?”

“스플린입니다.”

“맞아.”

그렇다. 바로 스플린(spleen, 비장)에서 계속 피가 나고 있던 것이다.

코드블루를 듣고 박주당에게 갔을 때 임정숙 간호사가 처음 촉진할 때 환자가 좌상 복부 통증을 강하게 호소한다는 소리를 했었다.

박주당이 보였던 좌상복부 통증대로 비장이 손상되어 있었다.

“젠장! 스플린이 너무 망가졌어.”

말 그대로였다.

췌장이 아닌 건 다행이었지만, 대신 비장이 마치 으깨 놓은 것처럼 심히 손상되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선생님, 스플린 손상이 너무 심한 거 같습니다.”

이찬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게. 살리기 힘들 거 같다. 켈리(Kelly, 끝이 휘어져 있으면서 뭉툭하여 집을 수 있는 기구) 주세요.”

비장의 손상 부위를 지혈할 수 없다고 판단한 태경은 아예 비장으로 가는 동맥 전체를 기구로 집어서 차단해 버렸다.

업도미널 에올타(abdominal aorta, 복부대동맥)에서 바로 비장으로 가는 혈관인 스플레닉 아테리(splenic artery, 비장동맥)였다.

드르륵-

“하나 더 주세요.”

곧이어 동맥과 정맥의 양옆을 하나씩 기구로 집었다.

“수처(suture, 봉합) 타이 주세요.”

태경은 켈리로 집은 혈관을 실로 동그랗게 묶으면서 매듭을 묶었다.

힘이 정확히 묶는 곳에 들어가서 원하는 결찰을 위해 매듭을 혈관 위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있는 힘껏 실을 당겼다. 그렇게 반복해서 동맥과 정맥을 묶은 후 켈리와 켈리 사이를 자른다.

“조명 좀 맞춰 봐요. 그리고 여기 절단 부위 출혈 없는지 보여 주세요.”

“선생님, 다행히 출혈은 잡힌 것 같습니다.”

“아직 속단하긴 일러.”

수술방 전체를 제집처럼 돌아다니던 4단계 냄새도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지만, 태경은 이찬희의 말에 수긍하지 않았다. 확실한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더 꼼꼼하게 살펴야 해.”

복부를 비추는 조명과 함께 태경은 소장을 여기저기로 움직이며 다른 출혈 부위가 없는지 확인했다. 그다음 차례대로 췌장, 십이지장, 간 등에 다른 출혈은 없는지도 자세히 들여다봤다.

“휴우!”

5분 정도 샅샅이 장기들을 살핀 뒤 다른 출혈 원인이 없는 것을 확인한 태경은 그때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네. 환자 혈압은 어때요?”

“빠르게 잡혀가서 수축기 90 이상을 보이고 HR(heart rate, 박동 수)도 110대로 낮아졌습니다.”

서서히 빠지던 독한 포르말린 냄새도 빠르게 단계가 내려가고 있었다.

“보비(전기 소작기) 주시고 여기 비장 들어 주세요.”

“네, 선생님.”

출혈 원인이 확실하게 잡혔기에 태경은 빠르게 비장 주변 구조물들을 정리해 나갔다.

꺼내기 위해 위와 연결된 인대들과 배벽 뒤에 붙어 있는 구조물들을 전기 소작기로 하나하나 잘라 낸다.

“비장 받아 주세요.”

“진검과로 바이옵시(biopsy, 생검. 병소 일부를 떼어 내서 병리학적으로 검사하는 방법) 나가겠습니다.”

“이제 배 안을 이리게이션(irrigation, 식염수 등으로 오염된 수술 부위를 세척하는 과정)할게요. 식염수 주세요.”

“얼마나 하실 건가요?”

“우선 10L 준비해 주세요.”

수술방 간호사가 쇠로 된 통에다가 식염수를 붓는다. 한 통을 다 붓고 다른 통을 마저 부으려던 그때였다.

“잠깐! 그거 먼저 줘 보세요.”

태경이 간호사의 행동을 급히 멈추며 통 안의 있는 식염수 온도를 확인했다.

“네, 선생님. 여기 있습니다.”

“이거 안 돼요. 너무 차가워요. 따뜻한 걸로 주세요. 안 그래도 출혈 많은 환자인데 이 상태로 하면 저체온 될 수 있어요. 빨리 섞어서 주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간호사가 따뜻한 식염수와 일반 식염수를 섞어서 적당한 온도의 물을 만든다. 그리고 스포이트로 통 안의 식염수를 담아서 태경에게 건넸다.

“이거 말고요. 저 식염수 담긴 통을 그냥 다 주세요.”

“통을요? 아! 네 알겠습니다.”

태경은 통 안에 가득 담긴 식염수를 환자의 배에다가 천천히 부으면서 그 물에 소장과 다른 장기 등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그러자 식염수로 가득 찬 배 안에서 소장이 둥둥 뜨고 다시 식염수를 석션한다.

“조금 더요.”

“더 주세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할게요.”

그렇게 총 3번 정도 쏟아붓고 나서야 태경은 만족한 듯 배를 닫기 시작한다.

긴박했던 수술실의 사투가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환자 배벽 다 닫으면 바로 ICU(중환자실) 가 주시고요. 좀 안정되면 흉부와 복부 CT 촬영할게요.”

“네, 선생님.”

“환자 O2 mask 5L만 주고 바로 중환자실로 갈게요.”

의진의 말이 끝나자 박주당을 중환자실로 옮기기 위한 넓은 베드가 수술방 안으로 들어왔다.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했어요.”

“환자 보호자 도착했나요?”

“네, 선생님. 보호자 대기실에 있다고 했어요.”

태경은 땀으로 흥건해진 수술 가운을 벗고 보호자를 보기 위해 수술방을 나갔다.

* * *

“아가?”

보호자 대기실에서 두 손을 부여잡고 있던 박선영에게 시아버지가 자판기에서 뽑은 생수를 건넸다.

“갈증 날 것 같아서 하나 사 왔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박선영은 벌겋게 충혈된 눈과 함께 걱정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사돈어른 강하고 단단하신 분이야. 별일 없을 거다. 수술도 끝났다니 곧 선생님 오실 거야.”

“네.”

박선영 역시 대기실 모니터에 수술이 끝났다는 문구를 봤지만, 여전히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았다. 아무래도 의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떨리는 마음이 그나마 진정될 것 같았다.

“박주당 환자 보호자분?”

“여기요. 아가, 선생님 오셨다.”

눈을 감고 기도하던 박선영은 재빨리 일어나 태경에게 걸어갔다.

“제가 딸이에요. 아버지 괜찮으신가요?”

“네. 비장이 손상돼서 출혈이 있었는데, 다행히 출혈은 잘 잡혔고 수술도 잘 끝났습니다.”

“세상에 다행이다.”

“연세가 있으셔서 중환자실에서 봐야 하지만, 좋아지시리라 봅니다. 보호자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박선영과 시아버지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혹시 아버지 잠깐 볼 수 있을까요?”

“네, 여기 선생님께서 알려 주실 거예요. 저는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태경이 보호자 대기실을 나간 뒤 박선영은 임정숙 간호사를 따라 중환자실로 향했다.

“중환자실은 하루 한 번 정해진 시간에 보호자 한 분만 면회 가능하세요. 지금은 수술 끝나고 잠시 보시는 건데 어느 분이 들어가실 건가요?”

“저요. 제가 딸이에요. 아버님, 저 들어갔다 올게요.”

“그래, 얼른 가 봐.”

“이쪽으로 저 따라오세요.”

박선영은 안내를 받으며 이제 막 중환자실로 옮긴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환자분께서 좀 더 있어야 깨어나실 거고요, 아까 설명 들으신 대로 수술은 잘됐어요. 잠시 자리 비켜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박선영은 떨리는 손끝을 아버지의 손을 향해 뻗었지만 잡을 수는 없었다.

박주당에 손에는 바늘과 링거 줄, 그리고 여러 의료 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흐윽! 우리 아빠 왜 이렇게 늙었지?”

얼굴만 보면 마치 곤히 자는 것만 같은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던 박선영이 흐느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사는 게 바빠 한동안 찾아오지 못한 아버지는 그새 더 늙은 것만 같았다.

“내가 더 신경 쓸 걸……. 죄송해요.”

이 모든 것이 마치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아버지가 전보다 술을 자주 드시는 것도 외로워서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가만히 있던 자신이 죄스러웠다.

“아빠 살아 주셔서 감사해요.”

‘살아 계실 때 잘하자’라는 그 말이 또 한 번 절실하게 와 닿는 순간이었다.

“내일 면회 때 올게요.”

박선영은 박주당의 얼굴을 한동안 눈에 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선생님, 저희 아버지 좀 잘 부탁드릴게요.”

“제가 중환자실 선생님께 잘 말씀드렸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럼 또 뵐게요.”

“네, 감사합니다.”

“아가?”

임정숙 간호사와 대화를 마치 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박선영을 시아버지가 불렀다.

“아버님, 어디 갔다 오셨어요?”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왔다. 사돈어른은 잘 봤고?”

“네, 아직 안 깨어나셔서 내일 면회 때 와서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럼 집에 갔다 내일 일찍 오자.”

“아니요. 아버님, 알아보니까 근처에 찜질방 있던데 저 거기서 잘게요. 아버님은 얼른 집에 가세요.”

박선영은 아버지를 중환자실에 혼자 두고 편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무슨 소리냐? 네가 안 가면 나도 안 간다. 찜질방에서 어떻게 자려고? 너 마음 시끄러워서 그러는 거 아는데 그래도 일단 집에 가자. 한 시간을 자더라도 집에서 편하게 쉬다 나와. 괜히 너까지 몸살 난다. 응? 선영아, 일단 집에 가자.”

“……네, 그럴게요.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해요.”

“그리고 이거 받아라.”

시아버지는 잔뜩 꾸겨진 채 묶인 검은 색 비닐봉지를 내밀며 천천히 걸어갔다.

“……?”

부스럭 소리와 함께 봉지 안을 확인하던 박선영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재빨리 봉지를 묶고 저만치 가고 있는 시아버지에게 뛰어갔다.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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