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아주 중요한 환자
“저기요?”
아이들에게 받은 쪽지를 가방에 넣고 일어나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이수정은 얼른 뒤를 돌아봤다. 뒤를 돌아보자 웬 중년 여자가 서 있었다.
“이거 그쪽 거 맞죠?”
여자는 이수정이 나눠 주던 전단지를 들고 서 있었다.
“아, 네. 제가 나눠 준 거 맞아요. 뭐 때문에 그러세요?”
설마 혹시나 목격자가 아닐까 싶은 작은 희망은 곧이어 들려온 말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제가 이 전단지 때문에 미치겠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직접 보고 설명해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저 좀 잠깐 따라오시겠어요? 잠깐이면 돼요.”
뭔가 단단히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태도에 이수정은 일단 여자를 따라갔다.
앞서가던 여자는 전단지를 나눠준 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이거 보이시죠?”
여자가 가리킨 손끝에는 가게 앞 도롯가에 있는 쓰레기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쓰레기통에는 조금 전까지 이수정이 나눠 주던 전단지가 쌓여 있었다.
“제가 여기 가게 주인이에요. 이 쓰레기통은 저희 가게 거고요. 저도 전단지 봤어요. 딱한 사정에 얼른 목격자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저희 쓰레기통에 전단지 버리고 가도 내가 치우자 그랬거든요.”
가게 주인은 들고 있는 전단지를 흔들면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같이 이러니까 저도 사람이라 좀 짜증이 나더라고요. 처음에는 몇 장이라서 괜찮았는데 이거 보세요. 쓰레기통에 쌓이는 거뿐만 아니라 남의 집 가게 앞에도 막 버리고 가는데, 제가 기분이 안 나쁘고 배기겠어요?”
“죄송합니다.”
전단지를 받아 간 사람들이 조금 떨어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갔던 걸 이수정은 알지 못했다.
“제가 알았으면 신경 썼을 텐데 저도 정신이 없다 보니 잘 몰랐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수정은 고개를 숙여 사과를 전했다. 당연히 속이 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남편의 사고 소식이 남들에게는 그냥 한 번 듣고 끝나는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그렇듯 관심조차 없었다.
“앞으로 제가 전단지 돌리고 여기 와서 다 수거해 갈게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이수정은 재빨리 가게 앞에 떨어진 전단지와 쓰레기통 입구를 막은 전단지를 꺼내 정리했고, 그사이 주인 여자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탁- 탁-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던 전단지에 묻은 더러운 먼지를 털고 있는 이수정 시야에 노랑 리본으로 포장된 상자 하나가 들어왔다.
“……!”
“이거 가져가세요. 제가 직접 만든 도넛이에요.”
주인 여자는 자신이 팔고 있는 도넛을 상자에 포장해 들고나왔다.
“아니요. 괜찮아요.”
“저도 그 또래 아이들이 있어요.”
“네?”
“저번 주말에 애들이랑 같이 전단지 돌리는 거 봤어요.”
“아…….”
“사실 가게 차린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그러다 보니 전단지니 쓰레기니 이런 게 신경 쓰였어요. 그래서 참다가 오늘은 말해야지 하고 말씀드린 건데, 막상 말하고 나니까 제 기분이 좋지 않네요.”
“아니에요. 제가 불편하게 한 게 맞아요.”
“아까 날카롭게 말해서 미안해요. 우리 집 도넛 맛있어요. 애들 갖다주세요.”
주인 여자는 선뜻 받지 않은 이수정 손에 상자를 쥐여 줬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이수정은 주인 여자에게 인사를 한 뒤 남편을 보기 위해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 * *
신화대학병원-
오늘도 면회시간이 되자 기다리던 보호자들이 TICU(외상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수정도 그 무리 속에 섞여 안으로 들어갔다.
“여보. 나 왔어.”
조금 전까지 지쳐있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남편을 면회할 때면 일부러 더 밝은 모습을 보였다.
“여보 잘 잤어? 세상에 우리 자기, 어제보다 더 멋있네? 사실 나, 자기 얼굴 보고 반한 거 모르지? 우리 소개팅 때 당신이 커피 숍에 들어오는 데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나 속으로 그날 엄청나게 떨었다.”
남편이 사고를 당하고 병상에 누운 뒤로 이수정은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예전 일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것까지 모든 걸 남편에게 말하는 거였다.
그동안 못 했던 말과 애들 이야기 그리고 어떤 반찬을 먹을지까지도 전부 다 말했다.
남편이 입원하고 며칠 뒤, 같은 구역에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로부터 의식이 없는 환자들도 청각은 반응한다고 들었다.
그 말은 들은 이수정은 그때부터 더 많이 떠들었다.
비록 어떤 말을 해도 반응은 없었지만, 분명 남편도 듣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 맞다. 여보, 이거 보여?”
남편의 다리를 주무르던 이수정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 줬다.
“현미가 미술 대회 나가서 상을 타왔어. 현준이도 그렇고 우리 막둥이도 그렇고 애들이 당신 닮아 재주도 많고 머리가 좋은가 봐.”
이수정은 아이들이 받은 상장을 보여 주며 남편에게 자랑했다.
“우리 애들 참 기특하지? 내가 어제는 아빠 일어나면 뭐 하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뭐라고 했는지 알아? 첫째는 낚시 가고 싶다고 했고 둘째는 당신이랑 영화관 가고 싶다 하고 막내는 축구하고 싶대. 그리고 여보 나는…….”
당신이랑 손잡고 걷고 싶어. 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울음이 터졌다.
사고가 나고 혼자서 많이 울었지만, 남편 앞에서 운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여보……. 나 사실 있잖아. 조금 힘들어. 그리고 무서워. 당신 이대로 영……. 하아!”
이수정은 감정이 복받친 듯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아니야. 내가 미쳤지! 지금 당신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꼭 깨어날 거야.”
몇몇 사람들은 지금까지 깨어나지 않는 남편을 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수정은 그때마다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반드시 깨어날 거야.”
사실 차대한이 깨어나지 않는 직접적인 원인이 명확하지 않았다. 고비가 있었지만 수술은 잘됐다.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담당 의사도 깨어날 거라고 했다. 아니 했었다.
시간이 꽤 지나긴 했지만, 이수정은 여전히 남편이 깨어날 거라고 믿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차대한 환자 보호자분?”
살짝 차오른 눈물을 닦던 이수정은 자신을 부르는 남자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마치 방금 꺼내 입은 것 같은 깨끗한 가운 위로 ‘원장 고계득’이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신화대병원 원장입니다.”
이수정은 지금까지 병원을 수없이 왔었다. 그런데 원장을 본 건 처음이었다.
“외상 중환자실 환자분들을 보러 왔다가 마침 면회 시간이 맞아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아, 네…….”
“차대한 환자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분명 꼭 일어나실 겁니다. 우리 보호자께서도 희망 잃지 마시고 기운 내시길 바랍니다.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일부러 면회 시간에 맞춰 찾아온 고계득은 짧은 인사와 함께 이수정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주변 다른 보호자들에게도 똑같이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갔다.
“벌써 시간 다 됐네. 이상하게 면회만 오면 시간이 빨리 가는 거 같아.”
고계득이 나간 뒤 이수정은 남편에게 인사를 전했다.
“여보, 나 또 올게. 내 생각 우리 애들 생각 많이 하고 내 꿈에 자주 나와 줘. 알았지? 내일 봐.”
Rrrrrrrrrrr
외상 중환자실을 나와 병원 정문을 향해 걸어가던 이수정은 가방 속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핸드폰에 온 문자를 확인한 이수정은 정문을 향하던 발걸음을 1층 정산 창구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네, 저기 외상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차대한 환자 보호자인데요. 아직 날짜가 안 된 걸로 아는데 중간 정산 연락이 와서요.”
“그러세요? 제가 확인 도와드릴게요. 환자분 성함이랑 생년월일 부탁드릴게요.”
“차대한이고요. 생년월일은…….”
“어! 그러네요.”
모니터로 확인하던 직원도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죄송합니다. 연락이 잘못 간 거 같아요. 차대한 환자 아직 정산 날짜 안 됐습니다.”
“그렇죠?”
“네, 이게 왜 연락이 갔지? 이상하네.”
“저 혹시 다음 중간 정산 금액이 얼만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아직 날짜가 안 됐기 때문에 지금 정산이 안 돼서 힘들 거 같아요.”
“혹시 저번이랑 비슷하게 나올까요?”
“그것도 현재로서 알 수 없어서요.”
“아,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별안간 이수정이 정산 연락을 받은 건 모두 고계득이 꾸민 일이었다.
병원 안에서 연락받으면 자연스레 창구에 가서 문의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면 머릿속에는 또 한 번 병원비로 인한 부담과 걱정이 쌓이게 된다.
고계득은 이수정이 돈에 대한 압박을 느끼게 하려고 이 점을 노린 것이다.
“저런! 뒷모습이 아주 힘이 없네.”
이수정이 병원을 나서자 먼발치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고계득도 자리를 떠났다.
* * *
“이 선생. 오늘은 출근이 빠르네.”
“안녕하세요.”
이찬희가 장득칠에게 출근 인사를 건네며 병원으로 들어섰다.
“최 쌤, 일찍 왔네.”
의국실에서 가운으로 갈아입은 이찬희는 응급실로 향했다.
“나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혹시 선생님 못 봤어?”
“어! 아까 여기 계셨는데 안 보이시네.”
“그래? 병동에 계시나…….”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이찬희는 응급실을 나와 병동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이 쌤 오셨네요.”
“이 쌤 안녕.”
병동에 올라간 이찬희는 스테이션에서 대화를 하는 임정숙 간호사와 의진에게 향했다.
“두 분 혹시 선생님 보셨어요?”
“응급실에 안 계셔?”
“응급실에도 안 계시고 진료실에도 안 계세요. 오늘따라 숨바꼭질하는 것도 아니고 이상하게 가는 곳마다 안 계시네요.”
“근데 출근하자마자 선생님은 왜 찾는 거야?”
“이실직고하려고요. 제가 혼날 일을 했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시니까 마음이 영 찜찜해서요.”
어제 박주당 환자의 수술이 끝나고 이찬희는 태경에게 한바탕 혼이 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라면 이미 불호령이 떨어졌을 텐데 아무런 소식이 없자 불안해진 것이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깔끔하게 혼나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럼 계실 곳이 딴 한 군데뿐인데?”
“어디……. 아하!”
의진에 말에 질문하려던 이찬희는 별안간 태경이 있는 곳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정 쌤, 감사합니다. 저 먼저 가 볼게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한 이찬희는 곧장 ICU(중환자실)로 향했다.
‘왜, ICU를 생각 못 했지? 저기 계시네.’
중환자실로 들어가자 박주당 환자 옆에 있는 태경이 보였다.
“우리 쫄따구 선생 왔네.”
이찬희가 베드로 다가가자 박주당이 웃으며 반겼다. 오전에 면회 온 딸은 본 뒤라 더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여기 대장 선생님이랑 쫄따구 선생이 수술 잘해 준 덕분에 좋아.”
박주당은 수술 부위와 폐렴을 보기 위해 진행한 CT와 흉부 촬영 결과도 좋았다.
“정말 다행이네요. 앞으로는 절대 술 먹고 자전거 타지 마세요. 그리고 술도 좀 줄이시고요. 어! 할아버지 잠시만요.”
이찬희는 옆에 있던 태경이 나가자 말을 하다 말고 뒤따라 나왔다.
“선생님? 왜 그냥 가세요?”
“무슨 소리야. 회진 끝났으니까 가야지.”
“그게 아니라요. 왜 지금까지 아무 말씀이 없으신가 해서요.”
“숙제 잘했던데?”
“숙제 말고요.”
“뭐, 박주당 환자?”
“……네.”
“그거 때문에 자진해서 혼나려고 출근하자마자 나 찾아온 거야?”
“네.”
“이미 충분히 혼났잖아.”
“예? 언제…….”
“보호자한테.”
태경은 박주당 딸과 이찬희가 나눈 대화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 보호자랑 몇 마디 나눈 게 아마 더 깊은 깨달음이 있었을 거야.”
사실이었다. 어제 보호자와 대화 후 퇴근하고 집에 가는 동안에도 환자를 대하는 것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더 잘하겠습니다.”
“이찬희?”
“네?”
“너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태경은 이찬희의 어깨를 다독이며 힘을 줬다.
“선생님…….”
“됐다. 징그러우니까 감동한 표정 짓지 말고.”
“진심으로 감동한 건데요? 선생님은 제 마음을 너무 모르십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들어가 봐. 할아버지 이 선생 언제 오냐고 묻더라.”
“네.”
이찬희를 중환자실로 들여보낸 태경은 응급실을 들렀다 바로 진료실로 향했다. 아주 중요한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컥-
진료실로 들어간 순간,
“선생님!”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밝은 목소리로 태경에게 다가와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