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40분 내내
소장에 연결된 장간막 사이로 피가 쪼르륵 흐르고 있던 거였다.
“맞네. 여기야.”
태경이 소장을 한 움큼 잡고 그대로 들어 올리던 그때였다.
“어!?”
순간 태경의 눈빛이 흔들리며 시야에 그것이 보였다.
피가 흐르는 쪽의 소장을 들어 올리면 자연스럽게 거기에 커튼처럼 연결된 장간막이 딸려 올라온다.
그곳에 혈관들이 연결되어 있고 소장을 고정해 주는 역할인지라 10cm 정도 드는 것이 다지만, 들어 올리던 그 순간 분명하게 보였다.
너무나도 흉측한 모양의 종양이 보인 것이다.
“선생님, 여기 소…….”
어시를 하던 이찬희가 태경에게 말하다 말고 말문을 급히 닫아 버렸다.
‘지금 말하면 괜히 흐름 깨뜨릴 거 같다. 입 다물자.’
매섭게 집중하고 있는 눈빛에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장의 벽에 볼록하게 종양이 달려 있고 거기에서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태경이 놀란 것은 그 위치와 모양과 그리고 상태 때문이다.
소장이라는 위치가 좋지도 않았고 지금 보이는 종괴의 모양도 불규칙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그 종양에서 피가 터져 나온 것이다.
종양이 악성일 경우 다른 세포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혈관이 잘 발달한다.
만약에 이것이 악성이라면, 아마 십중팔구는 악성으로 보이지만, 이미 배 속에 암세포들이 퍼진 모양인 것이다.
혈관이 터지면서 배에 암세포들이 노출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미 육안으로 보아도 암세포들이 복강 내 공간에 노출되어 있었다.
정확한 병리 결과가 나와 봐야 하겠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한 건 분명했다.
“라잇 앵글(right angle, 끝이 90도로 되어 있는 가위형 기구로 끝이 뭉툭함) 주세요.”
태경은 출혈 부위 주변의 동맥들을 라잇 앵글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집어 나갔다.
드르륵-
“하나 더 주세요.”
“네, 선생님.”
“하나만 더 주세요. 타이도 주시고요.”
태경이 모스키토(mosquito, 끝이 약간 굽어진 작은 포셉) 끝에 물려 전달된 검은 실을 들었다. 그러자 이찬희가 태경이 잡고 있던 라잇 앵글을 같은 자세로 들었다.
태경은 모스키토 기구로 라잇 앵글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리면서 실이 끝에 잡은 혈관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조작한다.
이제 혈관과 교차해서 걸린 실의 길이를 조절하고서 모스키토를 풀고 빠르게 타이를 했다.
“더 갑니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네 번의 타이가 들어갔다.
“하나 더 갈게요.”
그렇게 방금 했던 절차를 한 번 더 반복하고서야 라잇 앵글을 풀었다.
“메젠바움 시저(metzenbaum scissors, 자르는 날은 있으나 끝이 뭉툭하여 다른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는 가위) 주세요.”
태경은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 결찰된 동맥과 매듭 후 남은 실을 잘랐다.
이후 공급된 동맥을 모두 결찰한 뒤 이제 소장 주변의 장간막을 하나씩 잘라서 종양과 함께 소장을 자를 준비를 한다.
악성인지 양성인지 아직 모르는 종괴를 중심으로 20cm 정도의 소장을 장간막으로부터 분리하고, 종양을 중심으로 각각 10cm 정도 떨어진 곳에 전기소작기로 구멍을 낸다.
“GI(1cm 두께의 긴 기구로 끝에 검지와 중지 정도 길이의 집게가 있으며 이 안에 촘촘한 스테이플러가 있음) 주세요.”
간호사가 기계를 건네주자 태경이 검지만 한 굵기의 기계를 구멍 낸 소장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맞닿아 있는 다른 소장의 구멍에도 나머지 짝이 되는 기계를 밀어 넣었다.
그 뒤 양쪽 기계를 맞닿게 한 다음 경계가 완전히 밀착되도록 힘을 주었다.
“하나, 둘, 셋, 넷……. 열. 이 선생?”
“네.”
“지금 뭐 하는 건지 물어보려고 했지?”
태경이 묻자 안 그래도 바로 물어보려던 이찬희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이 선생 표정에 딱 그랬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소장을 자르면 부어서 경계가 안 좋을 수 있어서 기계로 자르기 전에 압박해서 부기를 빼는 거야.”
“아, 그렇구나.”
“잘 보고 머릿속에 집어넣고 잊지 마.”
“네, 선생님.”
각각의 소장에 기계를 밀어 넣어 맞닿게 한 부분에 힘을 충분히 주었다고 판단한 태경은 장치를 가동한 뒤, ‘딸깍’ 소리와 함께 기계의 끝에서 끝까지 단추를 이동시켰다.
따다다닥- 따닥-
기계 소리와 함께 기계가 맞닿은 면 안에 있는 2개의 소장 벽은 절개되면서 하나의 통로가 형성된다.
원래 20cm가 떨어져 있는 소장 서로 간의 구멍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스테이플러로 인해 그 통로 주변은 자동 봉합이 됐다.
“좋아.”
태경은 안쪽을 유심히 보면서 출혈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시 주세요.”
이제 연결된 통로 밑으로 기계를 교차하여 소장 일부와 종양이 같이 떨어져 나오게 한다.
따다다닥-
다시 기계를 작동한 태경이 잘라 낸 것들을 쇠로 된 그릇에 옮겨 담았다.
“이거 생검 나가 주세요. 검체는 소장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이리게이션(irrigation, 식염수 등으로 세척하는 행위) 할게요.”
이찬희가 말하자 태경이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냥 하지 말자.”
“지금 이리게이션 하지 말자고 하신 거예요?”
“그래.”
“왜요?”
갑자기 이리게이션을 왜 하지 말자는 건지 이찬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안에 안 그래도 혈액으로 암세포가 퍼졌을 텐데 여기다가 물을 부으면 안 그래도 퍼진 암을 복강 내 여기저기 퍼지게 하는 꼴이잖아. 아직 악성인지 모르지만, 저 모양으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클 것 같아.”
“아……. 네, 알겠습니다.”
“그냥 석션하고 마른 거즈로 문지르지 말고 갖다 대고서 시야 확보하자.”
“네, 선생님.”
태경은 이제 출혈 원인이 더 없는지 장들을 들춰 보면서 하나하나 확인해 나갔다.
꼼꼼하게 소장에서부터 끝까지 그리고 대장, 간과 모든 복강 내 장기에 출혈 원인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오늘따라 엄청나게 보시네.’
‘정말, 이 잡듯이 확인하시는구나.’
‘선생님 성격에 저러고도 남지.’
이찬희와 의진을 비롯한 의료진들이 저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평소에도 수술방에서 꼼꼼하기로 소문난 태경은 오늘따라 그 정도가 더했다.
베드 위에 누워 있는 환자가 친한 동료 선생님이니 다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다.
어찌나 세세하게 보던지 이 과정만 40분이 걸렸다.
“없네……. 없어. 없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마치 본인 자신에게 더 이상 없으니 넘어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40분 내내 숙여 있던 고개가 드디어 펴졌다.
“자! 이제 닫자. detach(바늘 하나당 실이 연결되어서 힘을 주면 분리되는 봉합 실) 주세요.”
이찬희가 기구를 이용하여 파샤(fascia, 근막)가 보이게 시야를 확보하자 태경이 하나하나 파샤끼리 봉합해 나갔다. 그리고 피부밑 조직과 피부까지 빠르게 봉합이 마무리됐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하나둘씩 들려오는 수술 종료 인사에 태경은 잠시 이동훈의 얼굴을 쳐다봤다.
코끝에 진동하는 포르말린 냄새는 떼어 낸 종양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 냄새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단계가 내려갔을 뿐 아직 이동훈의 다섯 번째 바이탈은 존재했다.
“오늘도 다들 수고했어요. 이찬희?”
“네, 선생님.”
“환자 깨우고 회복실에 가면 전화 줘.”
“네, 알겠습니다.”
태경은 수술 가운을 벗으며 수술방을 나갔다.
분명 수술은 군더더기 없이 잘됐다. 하지만 종양의 모양 때문에 마음이 안 좋았다.
당사자인 이동훈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싶어 뭐라고 전달해야 할지 고민됐다.
“하!”
진료실에 돌아온 태경은 의자에 풀썩 앉으며 긴 숨을 내쉬었다.
똑똑-
이동훈 생각을 이리저리 하는 와중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계세요?”
의진의 소리였다.
“들어와.”
철컥-
“여기 계실 줄 알았어요. 자요!”
의진은 손에 들고 있던 머그잔을 태경의 손에 쥐여 줬다.
“따뜻한 레몬티 한잔하세요.”
“향 좋은데? 근데 갑자기 웬 레몬티야?”
“그냥요. 선배 피로 회복하시라고요. 레몬티가 피로 회복에 좋거든요.”
“그래. 잘 마실게.”
“이동훈 선생님 때문에 그러시죠?”
수술은 잘됐지만, 태경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의진은 눈치채고 있었다.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혹시라도 선생님이 심적으로 힘들어하진 않을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아까 잠깐 봤는데도 참 밝은 분이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진짜 밝은 분이지. 그래서 더 고민이고.”
태경이 이토록 고민하는 이유는 비단 가깝고 친한 사람이 수술받아서만은 아니었다.
그 상대가 이동훈이기 때문이었다.
이동훈이란 이름 앞에서는 한 가지 수식어가 있는데 바로 ‘무한 긍정맨’이다.
늘 웃고 긍정적인 그의 성격 때문에 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성격 때문에 태경은 고민이었다.
물론 긍정적인 사람들이 병을 잘 이겨 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병원에서 환자를 만나고 진료하다 보면 생각보다 그 반대인 경우가 있다.
평소 유난히 잘 웃고 긍정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오히려 큰 병에 대해 말했을 때 무너지는 경우가 꽤 된다.
나는 긍정적으로 잘 살았는데 왜 내게 이런 병이 찾아온 거지?
‘왜 하필 난데?’라는 의구심과 함께 심적으로 힘들어한다. 그러면 치료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멘탈 관리도 중요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밝은 이동훈이었다. 태경은 그런 그가 크게 상심하진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저도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응?”
“인턴 때 제일 친했던 동기가 아파서 수술했거든요. 교수님 오시기 전까지 저랑 같이 있어서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전 최대한 긍정적인 쪽으로 말을 했는데 나중에 교수님께 엄청 깨졌어요.”
“혼날 만했네.”
“그러니까요. 인턴 때라 제가 잘 몰랐죠.”
태경은 혼낸 교수의 마음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환자한테는 병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 전해야 한다.
환자를 위한답시고 일부러 긍정적인 이야기만 앞세우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사실 태경이 가장 잘 알고 있고 지금까지도 쭉 그래 왔었다.
환자 개개인의 성격이 어떠하든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친한 분이시라 괜히 걱정이 많은 거 아니에요?”
의진의 말이 맞았다.
이동훈을 위한답시고 평소보다 더 걱정하고 있었다. 걱정은 생각의 꼬리만 늘릴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평소처럼 하세요. 선배만큼 라뽀(Rapport, 의사와 환자 간의 믿음과 신뢰, 유대 관계)좋은 의사 드물어요.”
“내가?”
“그거 아세요? 잘난 사람이 너무 겸손하면 별로예요.”
“그래? 그럼 좀 별로겠네.”
“아니요.”
“고맙다. 의진아.”
“별말씀을요.”
Rrrrrrrrrr
“어. 깨어났어? 지금 갈게.”
드르륵-
이찬희에게 전화를 받은 태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자 보러 가시려고요?”
“가야지.”
“참, 아까 그 친구는 어떻게 됐어?”
“암이었는데 완치돼서 지금 산부인과 선생님으로 아기들 잘 받고 있어요.”
“다행이네.”
이동훈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태경의 태도는 하나였다.
늘 그렇듯이 환자를 끝까지 잘 치료하고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곁에서 그 방향을 잘 이끌어 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