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딱 이 표정이야
태경은 이동훈이 있는 회복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많이 아프시죠?”
“말도 마.”
이동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나 그동안 수술 깬 환자들이 마약 진통제 투여받고 있는데 아프다고 하면 뭐라고 했거든. 근데 마약을 달아도 너무 아프네. 앞으로는 절대 가볍게라도 뭐라고 하지 말아야겠어. 장난이 아니야.”
“그렇죠. 배를 열었는데 당연히 아프죠.”
“그런가? 하긴 그렇지. 김 선생…….”
이동훈은 말을 하다 말고 태경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의사의 본능으로 뭔가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네, 선생님.”
“나 안 좋지?”
수술 직후이기에 이동훈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나도 의사야. 솔직히……. 그냥 솔직히 말해 줘.”
“네. 소장에 종양이 있었는데 모양이 안 예뻐요.”
종양의 모양이 예쁘다, 안 예쁘다는 말로 상태가 어떤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안 예쁘다는 거네. 그럼 거기서 출혈이 난 거야?”
“네.”
“그렇다면 복강 내로 퍼졌겠네?”
“그럴 확률이 높아요.”
“…….”
그 말은 들은 이동훈은 입을 닫고 잠시 눈을 감았다. 마음은 착잡한 듯 보였다.
왜 아니겠는가. 저 답답하고 어지러운 마음은 안 겪어 본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선생님, 아직 병리 결과가 나와야 정확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크기는 어때?”
“8cm 정도였어요.”
“저런 크네……. 그랬구나.”
“선생님, 우선 새벽에 갑자기 수술받느라 정말 고생하셨어요.”
“아니야. 우리 김 선생이 고생했지. 정말 고마워.”
“깨어난 지 얼마 안 돼서 힘드실 거예요. 일단 회복하시는 데 집중하시고 병동에서 다시 찾아뵐게요.”
“저기……. 김 선생, 아니 태경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태경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던 이동훈이 별안간 이름을 불렀다.
“네, 선생님.”
“우리 말 놓자. 앞으로 내 주치의로 자주 볼 건데 불편해. 형이라고 불러 줘.”
“네? 선생님 그래도 그건 좀…….”
“괜찮아. 나 이제 신화대 교수도 아니야.”
“예?”
태경은 처음 듣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리세요?”
“그렇게 됐어. 아무튼 병동에서 만나면 형인 거다.”
“네. 오늘은 일단 푹 쉬세요.”
“수고했어. 고마워.”
아무래도 정확한 병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그런지 이동훈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여보세요. 구 선생?”
태경은 회복실을 나오며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기, 김태경 선생님?
휴대폰 너머 전화를 받은 상대는 꽤 놀란 목소리였다.
“어. 나 김태경이야. 구 선생 오랜만이네.”
태경이 전화를 건 사람은 신화대병원 당시 함께 일하던 후배 의사였다. 그동안 연락도 없이 갑자기 연락을 취한 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만둔다는 이동훈의 사정이 궁금해 참을 수 없었다.
“잘 지내지?”
-저야. 늘 똑같죠? 선생님 잘 계시죠?
“그럼 잘 지내고 있지.”
-잘 지내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제가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갑작스럽긴 했지만, 연락받은 후배는 진짜 반가워하며 안부를 물었다.
“아니야. 나도 연락 못 했는데 뭘. 갑자기 새벽에 전화해서 미안한데 혹시 잠깐 통화 가능해? 바쁜 거 아니야?”
-아니요. 날도 다 밝았는데요. 그리고 저 오늘 당직이고 환자 보고 들어오는 길이라 괜찮습니다.
“다른 게 아니고 마취과 이동훈 교수님 그만두셔?”
-선생님도 소식 들으신 거예요?
“나도 건너서 들은 건데 궁금해서 한 번 물어보려고 전화했어.”
-근데 이게 좀 웃겨요. 사실 스스로 그만두었다기보다는 등쌀에 못 견디셔서 그만두신 거라서요.
“등쌀에 못 견디셨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선생님이랑 관련 있는데…….
“나랑?”
이동훈이 병원을 관둔 게 자신과 관련 있다는 소리가 무슨 소린지 태경은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네. 자세한 사정은 모르세요?
“몰라.”
-제가 말씀드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내가 관련이 있으면 더 알아야지. 얼른 말해 봐.”
-그게, 선생님이랑 이 교수님이 친하니까 원장님이 부탁했었나 봐요.
그 뒤, 후배는 이동훈이 그만두게 된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동훈이 태경을 설득하러 온 날 분원 원장 자리 제안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려 했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었다.
이 모든 일에 고계득의 부탁이 있었다는 것도 태경은 전부 처음 듣는 소리였다.
“구 선생. 고마워. 그래. 수고해.”
전화를 끊은 태경은 이동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본인 때문에 잘 다니던 병원에서 나오게 된 건 아닌지 싶었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치사한 짓거리만 골라서 하지?’
고계득이 치졸한 건 알았지만 사람이 어쩜 이렇게까지 유치하고 아둔한지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진료실로 향하는 마음도 발걸음도 어쩐지 무거운 태경이었다.
* * *
서울의 한 식당.
이른 시간, 식당 안은 점심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내가 좀 늦었어요.”
활짝 웃는 얼굴로 들어선 중년 여성이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사장님이 늦을 때도 다 있고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요.”
“서방님 얼굴 보고 출근하려고 기다리다가 늦었어.”
“왜요? 어디 가셨어요?”
“우리 남편 낚시 갔어.”
“병원 일 하느라 바쁘지 않으세요?”
“낚시를 워낙 좋아하는데 병원 일 때문에 못 갔거든. 근데 휴가라고 갔다 온다고 해서 보내 줬더니 아침까지 안 오네.”
“원래 낚시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그게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겠어.”
“사장님, 핸드폰 왔어요.”
“알았어.”
채소를 손질하던 김순정은 홀에서 부르는 직원 소리에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 내며 주방을 나섰다.
“하여간 양반은 못 돼요.”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이동훈’이란 남편 이름을 본 김순정은 앞치마에 손을 쓱 닦으며 밝게 전화를 받았다.
“당신 왜 아직 안 와?”
-여보. 나 아직 낚시터야.
“그럴 줄 알았어. 고기 많이 잡았어?”
-아니, 오늘따라 고기가 안 잡히네.
와이프에게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이동훈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하루나 이틀 정도 더 있다 적어도 병리 결과가 나온 다음에 말할 생각이었다.
“뭘. 새삼스럽게. 당신 좋아하는 고등어랑 된장찌개 맛있게 해 놨어. 언제 올 거야?”
-여보, 나 오늘 못 들어갈 거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못 들어온다니?”
-며칠만 더 있다 갈까 해서.
“잠깐!”
한 이불을 덮고 몇십 년을 함께 산 부부였다. 남편이 뭔가 이상하다는 촉이 느껴졌다.
“당신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김순정은 집에 못 들어온다는 말보다 통화 초반부터 어딘지 이상한 이동훈의 목소리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내 목소리가 어때서. 그냥 오랜만에 낚시와서 밤을 새웠더니 피곤해서…….
이동훈이 어떻게든 핑계를 대려던 그때였다.
-이동훈 환자분? 어디 불편…….
병실을 찾은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자 당황한 이동훈이 재빨리 휴대폰을 껐지만 때는 늦었다.
이미 김순정이 그 말을 분명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여보!”
전화가 끊어진 걸 안 김순정은 급격하게 표정이 안 좋아지며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여보. 미안. 내가 잘못 눌렀어.
“당신 지금 어디야?”
-어디긴 이 사람아. 지금 낚시터지.
“거짓말할 생각하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 다 들었어.”
-듣긴 뭘 들었다고 그래.
“영상 통화할까? 아니면 나 지금 신화대병원 가서 물어봐? 어디 다친 거야?”
-…….
“여보! 대답 좀 해. 나 지금 간다?”
-순정아, 나 지금 병원이야.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이동훈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내가 지금 갈게. 어디? 우리병원?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전화를 끊은 김순정은 앞치마를 벗고 가방을 챙겼다.
“실장님, 미안한데 나 좀 나가야 해. 오늘 가게 못 올 거 같아.”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부탁할게.”
김순정은 서둘러 식당을 나갔다.
* * *
“선생님?”
“네.”
임정숙 간호사가 회진을 마치고 병동에서 내려오는 태경에게 다가갔다.
“응급 환자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이동훈 보호자께서 오셨는데 선생님을 뵙길 원하셔서요.”
“그럼요. 지금 어디 계세요?”
“진료실로 안내해 드렸어요.”
태경은 이동훈 보호자가 왔다는 소식에 곧장 진료실로 향했다.
철컥-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동훈 환자……. 어!”
인사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던 김순정은 태경의 얼굴을 보며 멈칫했다.
“김태경 선생님 맞으시죠?”
“저, 기억나세요?”
“그럼요.”
김순정은 이동훈이 친한 후배라며 몇 번 식당으로 데려와 밥을 먹던 태경의 얼굴을 기억했다.
“요즘도 가끔 남편이 선생님 얘기했어요.”
“그러셨군요. 보호자님 일단 앉으세요.”
“식당에서 전화 받자마자 필요한 것만 챙겨서 바로 왔어요. 선생님, 우리 남편 어떻게 된 거예요?”
김순정은 이동훈을 보러 병실로 가기 전에 태경에게 먼저 들렀다.
“선생님께서 수술을 받으셨어요.”
“……수술이요? 낚시터에 있던 사람이 수술이라니. 무슨 수술인데요?”
“새벽에 낚시터에 있다가 쓰러져서 직접 119 신고해서 우리 병원까지 오셨어요. 그 뒤 검사를 진행했고요.”
태경은 차분하게 밤새 있던 사실을 김순정에게 알려 줬다. 그리고 수술의 경과 또한 자세히 전달했다.
“일단 수술은 잘됐고 자세한 결과는 며칠 뒤에 나올 예정입니다.”
“세상에!”
설명을 전부 들은 김순정은 짧은 한마디를 남긴 채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보호자분? 괜……. 많이 놀라셨죠?”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하려던 태경은 서둘러 말을 바꿨다.
저 상황에서 보호자에게 그 말이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하루아침에 쓰러져 수술받았는데 어떻게 괜찮겠는가?
괜찮을 수 없는 게 정상이었다. 태경은 어설픈 위로 대신 도움이 되는 말을 하기로 했다.
“지금 많이 힘드시겠지만, 앞으로 우리 보호자분이 옆에서 힘을 많이 주셔야 해요.”
“그럼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순정이 별안간 고개를 들고 답했다.
“제가 갑자기 놀라서 마음에 진정이 좀 필요했어요. 후!”
울고 있는 건 아닌가 싶던 김순정은 다행히 울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 잘 알아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김순정을 식당에서 처음 봤을 때도 밝고 씩씩한 게 여자 이동훈을 보는 듯 부부가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태경은 순간 새벽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 와이프가 겉으로는 씩씩하고 밝고 그런데 은근히 속이 여려. 나 이렇게 된 거 알면 혼자 또 속상해할 거야. 그래서 며칠 있다 말하려고.’
이동훈이 했던 말과 부부의 비슷한 성격 때문에 애써 담담한 척하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됐다.
“보호자님 도움이 필요하시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한테 말해 주세요.”
“그런데요. 선생님. 요즘은 암도 잘 고치잖아요. 우리나라 의학 기술이 얼마나 좋은지 저도 알고 있어요. 사람은 믿는 대로 된다고 하잖아요. 우리 남편 꼭 이겨 낼 거예요.”
“제가 옆에서 잘 도와드릴게요.”
“남편이 신뢰하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든든하네요. 환자가 아프면 환자도 보호자도 의지하고 믿을 사람이 담당 의사뿐이더라고요.”
김순정은 맞잡은 두 손을 꾹꾹 누르며 침착한 표정으로 씩씩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본 태경은 김순정이 애써 씩씩한 척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 전, 건넸던 휴지가 맞잡은 두 손 안에서 조각조각 찢겨 있었다. 아마 지금 그녀의 마음이 저럴 것이다.
“어휴, 말이 좀 길었네요. 제가 선생님께 진짜 드리고 싶은 말은 우리 남편 잘 부탁드릴게요.”
“그럼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나온 김순정은 별안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기요?”
그러더니 복도를 지나고 있던 최 팀장을 불러 세웠다.
“죄송한데 여기 화장실이 어디 있나요?”
“화장실은 바로 저쪽에 있습니다.”
“어휴, 저기 있네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몰랐어요.”
바로 근처에 있던 화장실도 경황이 없다 보니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감사합니다.”
화장실 가장 안쪽 칸에 들어와 변기 위에 앉은 김순정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아무리 밝고 씩씩한 그녀도 갑작스러운 남편의 병에는 멀쩡할 수 없었다.
“흐흑! 흑!”
하나뿐인 남편이 너무 가엽고 불쌍했다.
힘들게 공부해서 의사가 되고 대학병원에서 일하느라 청춘을 다 받쳤고 자식들 뒷바라지까지 했다.
이제야 좀 편해지려는데 몸이 아프다고 하니 마음이 너무 속상해 견딜 수 없었다.
의사는 환자를 돌보기 위해서라도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며 열심히 건강을 챙겼던 남편이었다. 그래서인지 김순정은 이동훈이 처한 상황이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아!”
그렇게 한동안 울고 나온 김순정은 세면대에서 찬물로 몇 번이나 세수하며 충혈된 눈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래, 딱 이 표정이야. 좋은 모습만 보여 주자.”
그리고 거울을 보며 웃는 얼굴을 연습하더니 이동훈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