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70화 (169/472)

170화. 25%

“하!”

병실로 올라와 누워 있던 이동훈은 신화대병원에 연락한 뒤 천장을 보며 연거푸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마약성 진통제를 달고 있어도 느껴지던 아픈 고통이 참을 만한 고통으로 줄어들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거 참! 괜히 입방정 떤 거 아닌가.”

간호사의 말이 통화 중에 들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아내에게 수술한 사실을 괜히 말한 것만 같았다.

가족끼리 그것도 부부 사이에 입원한 사실을 공유하는 게 뭐 이렇게 걱정일까 싶지만, 이동훈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장인어른이 투병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3년 가까이 생각보다 길게 했었다.

먼저 돌아가신 장모님을 대신해 투병 기간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신경 쓴 아내였다.

겉으로는 크게 티를 내지 않았어도 아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동훈은 자신의 상태를 말한 것이 상당히 미안했다.

똑똑-

“네!”

철컥-

멍하니 생각하던 이동훈이 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대답하자 바로 문이 열리며 김정순이 들어왔다.

“여보!”

“어! 당신 왔어?”

아내가 병원에 오는 걸 그렇게 걱정하던 이동훈은 그래도 김정순의 얼굴을 보자 표정이 한결 편해 보였다.

“오래 기다렸지?”

“오래 기다리긴 무슨……. 뭐 하러 왔어?”

“에이! 이 양반 말하는 거 보소. 남편이 수술받고 입원했는데 당연히 와 봐야지 그게 무슨 소리래.”

“괜히 고생하니까 그렇지…….”

“내가 고생은 무슨 고생이야.”

김정순은 입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담아 온 가방을 능숙하게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고생은 당신이 했지. 힘들지 않았어? 지금은 괜찮아?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마취는 다 풀린 거야?”

물건을 다 정리한 김정순은 이동훈의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가지런히 정리하고 이불 밖으로 나온 발을 주무른 뒤 덮어 줬다.

“참나!”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이동훈은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이 사람아, 숨넘어가겠다. 하나씩 천천히 물어봐.”

“마음은 급한데 궁금한 건 많으니까 그렇지. 괜찮아?”

“괜찮지 그럼.”

“우리 신랑 잘생긴 얼굴이 수술받느라 반쪽이 됐네.”

“별소리를 다 한다. 그 소리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욕해.”

“내 남편보고 잘생겼다고 하는데 누가 욕을 해.”

“왜? 언제는 곰같이 생겼다고 하더니.”

“곰이 어때서? 듬직하고 멋있고 좋잖아.”

“됐네요. 식당은?”

“실장님한테 부탁하고 왔어. 그런 걱정하지 말고 당신은 몸만 생각해.”

“정순아, 미안해.”

한참 대화를 주고받던 이동훈은 별안간 아내를 향해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얼레! 당신이 왜 미안하대.”

“그냥. 아버님도 병간호하느라 힘들었는데 나까지 이렇게 돼서 당신 또 힘들 것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하나도 안 힘들어. 그리고 당신하고 아빠는 다르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당신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김정순은 이동훈의 손을 꼭 잡으며 아주 열변을 쏟아냈다.

“사람은 뭐든지 마음먹기 달린 거고, 말이 씨가 되는 거야. ‘나는 낫는다. 반드시 낫는다.’라고 생각하면서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알았지?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하잖아. 계속 말을 하면 뇌가 주문처럼 자연히 그 긍정적인 신호를 따라간대.”

“누가 보면 당신이 의사인 줄 알겠네.”

“의사 아내로 산 세월이 얼만데? 내가 반은 의사야. 그리고 당신 거지 같은 병원 당장 그만둬!”

“……!”

병원을 그만둔다는 사실을 아직 아내에게 말하지 않은 이동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책상 위에 쓴 거 봤어.”

이동훈은 한동안 퇴근하면 서재에 들어가 병원들 그만둘지 계속 다닐지 고민했었다.

그때 당시 한창 책상 위에 있는 노트에 퇴사, 신화대병원, 고 원장 등 병원에 관련된 단어를 써 내려가며 시끄러운 속을 달랬다. 그러다 우연히 서재를 청소하던 김정순이 그가 쓴 낙서를 보며 이동훈의 퇴사 고민을 알게 된 것이었다.

“딱 보니까 병원장이란 사람이랑 뭔가 안 좋은 거 같던데……. 맞지?”

“사실 오래 다니기도 했고, 대학병원이 환자만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의사들끼리 정치하는 꼴도 이제 좀 보기 싫더라고. 그래서 그만두려고. 상의 없이 혼자 결정해서 미안해.”

“별것이 다 미안하네. 차라리 잘됐어. 당신 이참에 아주 그냥 푹 쉬면서 낚시 다니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김정순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남편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싶었다.

“그럴까? 나 진짜 쉴까?”

“나 농담으로 하는 소리 아니야. 놀러 다니고 가끔 심심하면 가게 나와서 카운터나 봐.”

“됐네. 이 사람아. 퇴원하면 슬슬 병원 알아봐야지. 그래도 난 내 일에 자부심 느껴.”

“내가 그걸 왜 몰라.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해. 맞다! 나 올라오기 전에 주치의 선생님 면담했어.”

“그래? 봤어?”

“응. 설명도 꼼꼼하게 잘해 주시고 사람이 뭔가 믿음이 가고 인상도 좋더라.”

“하긴. 우리 김 선생이 믿음직스럽긴 하지. 병실도 편하게 지내라고 1인실로 주고 신경 많이 써 줬어.”

“감사하네. 아무튼 당신은 입원해 있는 동안은 스트레스받지 말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잘 먹어.”

“알았어. 그래도 당신이 옆에 있으니까 좋네.”

“당연하지.”

이동훈은 아내 역시 힘들 텐데 내색하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응원해 주는 게 정말 고마웠다.

그런 아내의 모습 때문에 잠시나마 병에 대해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다음은 박주당 환자 보실 차례입니다.”

태경은 출근한 이찬희와 최모나와 함께 회진을 돌고 있었다.

“경과가 좋아서 오늘 아침에 일반 병실로 옮겼습니다.”

최모나의 설명과 함께 태경이 며칠 전 비장절제 수술을 받았던 박주당 환자의 병실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무슨 날이야? 쫄따구 선생들이 대장 선생님이랑 같이 다 오고 웬일이래.”

셋이 한꺼번에 들어오자 뉴스를 보고 있던 박주당이 신기한 듯 물었다.

“대장 선생님? 나 혹시 안 좋아졌어요?”

“아니요. 안 좋긴요.”

옆에 있던 이찬희가 양손을 격하게 흔들며 말을 이었다.

“회복 잘하고 계세요.”

“환자분 어디 안 좋으세요?”

태경이 수술 부위를 확인하며 물었다.

“아니, 안 좋긴. 컨디션도 좋아. 셋이 주르륵 들어오니까 괜히 물어본 거지. 근데 나 솔직히 몸 상태 안 좋아졌다고 해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그냥 다 좋아.”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박주당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심하게 좋아 보이는 게 평상시보다 훨씬 좋았다.

“킁킁!”

혹시나 싶은 이찬희가 코를 가까이 대며 박주당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냄새는 안 나는데……. 할아버지 혹시 몰래 술 마신 건 아니죠?”

“술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큰일 날 소리 하네.”

“환자분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역시 대장 선생님이 확실히 달라.”

기분 좋은 심정을 알아주길 바랐던 박주당은 태경의 말 한마디에 엄지를 추켜세우며 만족했다.

“우리 사위가 사업 준비하다 사기를 당했거든.”

“마음고생이 심하셨겠네요.”

“말도 마. 딸도 사위도 얼굴이 반쪽이 돼서 사방팔방 그놈 잡으러 다니고 그랬어. 근데 그놈이 잡혔대.”

박주당은 그동안 딸과 사위를 힘들게 했던 사기꾼이 잡히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다. 그러다 오늘 아침에 딸로부터 사기꾼이 잡혔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몸이 다 낫는 것만 같았다.

“정말 잘됐네요.”

“좋은 소식도 들으셨으니까 이제 환자분 잘 회복하는 것만 생각하세요.”

“선생님 말이 맞습니다. 건강하게 퇴원하셔서 앞으로 따님하고 더 좋은 시간 보내셔야 합니다.”

“그래야지. 마음은 벌써 다 나았어. 우리 대장 선생님도 그렇고 다들 고마워요.”

“다음 회진 때 뵐게요. 쉬고 계세요.”

병실을 나온 태경은 잠시 병동 스테이션에 모니터 앞에서 이동훈의 차트를 열었다.

조금 전에 나온 병리 결과를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다.

이미 머릿속에 다 들어간 내용이었지만, 혹시나 빠트린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선생님, 근데 이동훈 선생님 병실은 아직 안 가셨는데요?”

“지금 가야지.”

태경은 일부러 이동훈 병실을 제일 마지막에 들어가려고 안 가고 있었다.

“거긴 나 혼자 들어갈 테니까 이 선생, 최 선생은 그만 내려가 봐.”

“예? 저희도 같이…….”

오늘따라 눈치가 살짝 부족한 이찬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최모나가 그의 옆구리를 푹 찌르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태경은 그런 두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동훈 병실로 향했다.

똑똑-

“선배님?”

“아이고, 김 선생 선배는 무슨 선배야.”

이동훈은 병실로 들어온 태경을 보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냥 편하게 형님이라고 하라니까,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또 선배라고 하네.”

“아직 형님은 좀 어색해서요.”

“그래. 뭐 호칭은 차차 천천히 불러.”

“어디 가셨어요?”

“우리 와이프?”

“네.”

회진 돌 때마다 늘 함께 있던 이동훈의 아내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 동안 집도 식당도 못 가서 내가 다녀오라고 했어.”

전날 임정숙 간호사에게 물어서 결과가 오늘 나올지 알고 있던 이동훈은 일부러 아내를 집에 보냈다.

물론 아내에게 결과를 숨길 생각은 없다. 그저, 결과를 듣고 이것저것 편하게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아내가 함께 있으면 의학적으로 자세하게 물어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 결과 나왔지?”

“네, 병리 결과 나왔어요.”

“어. 그래……. 뭐야?”

“기스트(GIST, gastrointestinal stromal tumor, 위장관기질종양)로 나왔어요.”

“기스트? 근데 그거 예후가 어떻게 되지? 내가 전공자가 아니라서 잘 몰라.”

“NCCN(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 세계 암 치료 가이드라인 설정 기구) 가이드라인에 보면 위가 아닌 곳에서 발생, 그리고 크기가 8cm 등으로 볼 때 전이 가능성이 25% 정도로 위험도가 중증도이거든요.”

“25%……. 근데 그건 잘 잘랐을 때잖아. 그렇지?”

“네. 맞아요.”

“나는 이미 배 안에 피가 고였고, 그렇다는 건 퍼센트가 더 높겠네.”

“그렇기 때문에 항암도 반드시 하셔야 하고요.”

“그렇지. 그럼 생존율도 모르는 거네.”

“네. 그래서 아직 선배님의 경우 이것을 완벽한 전이로 확정할 수는 없었어요.”

“나도 알지. 전이됐다는 확정은 아니라 전이될 가능성이 큰 거잖아. 전이가 확인된 것은 아니니까.”

“기스트는 그래도 항암에 반응을 잘하는 편이에요. 너무 상심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선배님과 함께 최선을 다할게요.”

태경의 말이 사실이었다.

기스트는 개인 차이가 있긴 했지만, 다른 항암제에 비해 반응이 좋고 항암 치료도 많이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동훈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고마워. 근데 태경아, 이게 그렇지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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