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감성적이고 쓸데없는 오지랖
“고마워. 근데 태경아, 이게 그렇지가 않아…….”
처음 수술 직후 회복실에서 태경에게 이야기를 들은 이동훈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직업이 의사였기에 사실 다른 환자보다 더 괜찮을 줄 알았다.
병에 대해 훨씬 많이 알고, 치료 과정이나 환자의 멘탈 관리 등 모든 면에서 더 잘 이해하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환자를 옆에서 보면서 간접경험을 했다. 그렇기에 다른 암 환자들이 겪는 정신적인 힘든 부분은 피해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결과를 들으니 마음도 멘탈도 멀쩡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고생하며 본과를 마치고 의사국가고시를 치른 뒤 첫 인턴을 한 날과 같았다. 머릿속에 이론은 가득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금이 정말 딱 그랬다.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겠는데, 마음이 따라 주질 않았다.
나름 다른 사람들보다 긍정적이고 멘탈도 좋다고 스스로 자부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만 같았다.
“내가 환자로서 직접 수술을 받아 보니까 알 거 같아.”
이동훈의 눈빛에는 어쩐지 생기가 없었다.
“NCCN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는 나도 잘 알지. 왜 모르겠어. 막말로 거기 있는 사람들 밥 먹고 하는 일이 암 치료 기준을 내리는 곳이잖아. 그들이 내는 확률? 통계? 당연히 중요하지. 그 확률 아주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하지만 확률이 낮아도 나한테 발생하면 그냥 100%인 거잖아. 그 수치가 아무리 낮아도 위로가 안 돼. 하루하루가 너무 불안해.”
결과가 나오기 전 요 며칠 회진을 돌 때마다 마주친 이동훈이 사실 조금 불안했었다. 평소보다 더 밝은 척과 함께 너무나도 침착하게 구는 모습 때문이었다.
결국 결과를 들은 이동훈은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태경이 예상했던 일이 기어코 벌어지고 만 것이다.
“선배님…….”
“내가 힘을 내야 한다는 거 나도 당연히 알지. 당장 나보다 힘든 환자들도 많고 수술이 잘된 사실에도 감사해야 하는데……. 근데 단 1%라도 죽을 확률이 있다는 건 전혀 다른 의미잖아.”
감정이 복잡해진 이동훈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평생 처음 경험해 보는 거라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매일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마다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기분이야.”
그 뒤로도 이야기는 50분 가까이 계속됐다.
허허실실 사람 좋은 이동훈은 이날 살면서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가감 없이 전부 털어놨다.
태경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묵묵히 들어 줬다.
“우울하게 해서 미안해. 근데 내가 아무한테도 이런 말을 못 해. 와이프 앞에서는 밝은 척해야 해서……. 우리 김 원장님 아니면 말할 곳이 없어.”
“아니에요. 선배님. 잘 말씀하셨어요. 답답하거나 속이 상할 때 언제든지 저한테 말해 주세요.”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별말씀을요. 그리고 혹시 불안감이 심하시면 정신과 진료 한 번 보시는 건 어떠세요?”
“그것도 좋은데 아직은 가고 싶지 않아. 내가 좀 더 고민해 보고 필요하면 말할게.”
“네, 그렇게 하세요.”
“난 좀 이만 누워야겠다.”
“그래요. 좀 쉬시고 소독할 때 또 뵐게요.”
“응. 고마워.”
철컥-
병실을 나온 태경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오늘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저 상황을 직접 겪어 본 사람으로서 지금 이동훈의 기분이 어떨지는 누구보다 공감하고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태경 역시 교통사고 후 다시 살아나기 전 병에 걸렸었다. 그것도 지금 이동훈보다 더 심한 케이스였다.
그렇기에 저 상황을 직접 겪어 본 사람으로서 지금 그의 기분이 어떨지 100%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환자 스스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시기였다.
자신의 상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위로도 조언도 들어오는 법이었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능변가를 데리고 와서 따뜻한 위로를 한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도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세상에 나만 혼자 남은 것 같고, 모든 게 귀찮고 원망스러우며 괜한 짜증이 불쑥불쑥 튀어 올라오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환자의 말을 들어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방을 청소할 때 먼지를 내보내기 위해 환기를 하듯이 사람의 마음도 환기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나 환자의 마음은 더욱 그렇다.
환기라고 해서 거창할 건 없었다. 그저 답답함을 말하고 누군가가 진심으로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환기는 이뤄지는 거였다.
태경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동훈이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계속해서 공감하고 이해하고 소통할 생각이다.
“악!”
병실 복도를 걸으며 이동훈에 관한 생각을 이어 가던 태경은 스테이션 쪽에서 들려온 외마디 소리에 집중이 깨졌다.
“어머! 이 쌤, 괜찮으세요?”
그 소리에 놀란 간호사들이 비명의 주인공인 이찬희에게 물었다.
“아뇨. 아파서 죽을 거 같아요. 너무 아픈데요?”
호출받고 환자를 본 후 병실에서 나오던 이찬희가 급하게 나오다 자기 다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아고. 조심하지 그러셨어요?”
“그러니까요. 장난 아니게 아픈데 뼈 부러진 건 아니겠죠?”
“안 부러졌어.”
태경이 무릎과 정강이를 미친 듯이 문지르는 이찬희 옆을 쓱 지나며 태연하게 한 마디 툭 던졌다.
“혹시, 이동훈 환자나 보호자가 저 찾는 일 있으면 시간 상관하지 말고 콜해 줘요.”
“네, 원장님.”
“선생님? 같이 가요. 아! 아파.”
스테이션에 들려 전달 사항을 마친 태경이 계단을 내려가자 이찬희가 벌떡 일어나 뒤따라왔다.
“이동훈 선생님 병실에서 이제 나오시는 거예요?”
“이야기하다 보니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응급 환자 없었지?”
“네, 근데 어제도 보니까 표정이 좀 안 좋으시던데……. 좀 괜찮으세요?”
“괜찮았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하네. 아무래도 상심이 큰 거 같아.”
“하긴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전 조금 이해가 안 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동훈 선생님이요. 기스트(위장관기질종양)잖아요.”
“근데?”
“아니, 솔직히 기스트는 다른 암에 비해서는 그렇게 속상해하실 필요는 없는 거 같아서요. 게다가 직업도 의사시고…….”
“이찬희?”
태경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이찬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눈썹이 살짝 들썩이는 게 어째 분위기가 묘했다.
“다리는 괜찮아?”
“네?”
“방금 넘어진 다리 말이야.”
“지금도 살짝 아프긴 한데 괜찮아요. 근데 아까는 어찌나 아프던지 거짓말 아니라 순간 뼈 부러진 건가 싶으면서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정말 죽을 듯이 아팠어?”
“그럼요. 선생님 저 엄살 아니에요. 그때는 그 정도로 아팠어요.”
“그러면 더더욱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잠깐 넘어진 것만으로도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하면서 환자를 두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안 그래?”
“……!”
이찬희는 그제야 자신이 조금 전 이동훈 이야기를 하면서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기나 장염같이 누구나 쉽게 걸릴 수 있는 건 나도 이 선생도 그 아픔의 척도를 알고 있지만, 암은 아니잖아.”
“네…….”
“병과 치료 과정에 대해 우리가 환자보다 더 잘 알겠지.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통증에 대해서는 이론과 통계로만 알뿐이지 실제로는 몰라. 겪어 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어.”
태경은 지인인 이동훈을 두고 말을 해서 충고한 게 아니었다.
다른 어느 환자를 두고 말했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찬희를 아끼기 때문에 알려 주려는 것이었다.
의사는 환자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결코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
후배에게 그걸 알려 주려는 것이다. 평생 써전으로 살아야 하는 외과의는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병과 환자에게도 익숙해져 기계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순간이 온다.
그게 잘못됐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태경은 적어도 자신에게 배운 후배가 그런 의사로 성장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힘들고 지칠지언정, 남들은 감성적이고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할지언정 그래도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의사로 성장했으면 했다.
“환자가 믿고 기댈 사람은 의사뿐이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그들을 이해해야지.”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안 좋은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지만, 이찬희는 자신의 발언이 가벼웠다는 걸 인지했다.
“나한테 죄송할 게 뭐 있어? 환자한테 죄송해야지. 근데 정말 죄송해?”
“그럼요.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반성하고 있으면 반성문을 써야지.”
“……!”
“오랜만에 복기 노트 어때?”
“예? 아, 아니요. 선생님.”
한동안 태경이 숙제를 내지 않았기에 퇴근 후 꿀맛 같던 휴식을 취하던 이찬희는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제가 더 열심히! 환자를 더! 생각하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아주 좋은 자세야. 그런 마음으로 이 선생님 수술 복기해 와. 알았지?”
“아니, 선생님. 이미 며칠이 지난 수술이라 기억도 안 나는데요.”
“잘 생각해 보면 분명 기억날 거야.”
“선생님!! 전혀 안 납니다.”
이찬희의 간절한 외침에도 태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진료실로 향했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이동훈이 수술을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나 퇴원하는 날이 되었다.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어요.”
이동훈의 아내 김정순은 임정숙 간호사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별말씀을요. 환자분과 보호자분이 수고하셨죠.”
“원장님부터 간호사 선생님들 직원분들까지 다들 잘 챙겨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가시려고요? 원장님 조금 있으면 끝나는데 뵙고 가시는 게 어떠세요? 원장님이 저한테 꼭 보고 가시라고 하셨거든요.”
몇 시간 전, 119로 실려 온 환자의 응급 수술 때문에 태경은 현재 수술방에 있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이 사람이 일이 있어서요.”
“아까 이찬희 선생님께서 추후 일정에 대해서도 다 설명해 주셨고, 어차피 앞으로 자주 볼 텐데요.”
옆에 서 있던 이동훈이 아내 말이 끝나자 이어 말했다.
“그래도 보고 가시지…….”
“저 대신 원장님께 감사하다고 꼭 좀 전해 주세요.”
“그럴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수고들 하세요.”
임정숙 간호사와 인사를 나눈 뒤, 병원을 나온 이동훈은 아내와 함께 신화대병원으로 향했다.
“당신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병원 앞에서 이동훈을 내려 준 아내는 차창을 열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내가 애야? 당연히 괜찮지. 남편 사직서 내러 가는데 당신이 쫓아가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당신 사무실에서 짐 챙겨 와야 하는데 무거울까 봐 그렇지.”
“짐도 별로 없어.”
신화대를 온 이유는 사직서를 내기 위해서였다. 병가를 내면서 그만둔다고 말했기에 병원에서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굳이 퇴원 날 찾아온 이유는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할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집에 가는 방향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동훈은 빨리 사직서를 내고 신화대병원과 관계를 끊어 버리고 싶었다.
“기다릴까?”
“됐어. 동료들하고 인사도 해야 하고 택시 타고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가 봐.”
“알았어요. 무리하지 말고 꼭 택시 타.”
병원으로 들어와 빠르게 일처리를 한 이동훈은 마취과 동료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아니, 이 교수님. 그래도 그렇지 너무 급하게 그만두시는 거 아닌가요?”
“위에서 찍어 누르는데 내가 힘이 있나. 그리고 나도 이게 마음이 편해.”
“이해합니다. 그나저나 병가 내시고 수술받으셨다고 들었는데 어디 많이 안 좋으신 건 아니죠?”
병가를 낼 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동료는 이동훈의 건강 상태를 궁금해했다.
“아니야. 그냥 간단한 수술 받았어. 김 선생 나 그만 가 볼게. 나중에 밖에서 밥이나 한 끼 하자고.”
“네, 교수님.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동료와 인사를 마친 이동훈은 사무실에 있는 자신의 물건을 챙겨 나왔다.
“선생님,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다들 잘 지내요.”
마지막으로 마취과 간호사들과 인사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그때,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이고, 이 선생님. 이제 가시는 건가요?”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고계득이었다.
“제가 조금만 늦었으면 인사도 못 드릴 뻔했습니다.”
꼴 보기 싫은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이동훈은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이봐요! 고계득 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