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72화 (171/472)

172화. 대가 없는 선물

심란한 마음과 함께 꼴 보기 싫은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이동훈은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이봐요! 고계득 씨?”

“……!”

순간 제 귀를 의심한 소리에 쫙 찢어진 뱀 눈이 파르르 흔들렸다.

이동훈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약을 올리러 내려왔던 고계득은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고계득 씨라니요? 이 선생님,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농담이요? 농담 아닌데요. 전 더 이상 신화대병원 소속 의사가 아닙니다. 그러니 굳이 원장님이란 호칭을 쓸 필요가 없죠.”

안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데 고계득을 보니 짜증이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어차피 이렇게 보는 것도 마지막일 텐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동훈은 시원하게 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 우리 이 선생님께서 저한테 서운한 게 많으셨나 봅니다.”

이따금 지나가는 환자들과 직원들의 시선 때문에 고계득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서운함이요? 대놓고 그만두게 했으면서 고작 서운함이라고 표현하는 건 너무 비양심적인 말씀이 아닐까요? 안 그런가요? 고계득 씨?”

“하하!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알고 오해하겠습니다.”

고계득은 어색한 웃음을 날리며 화제를 바꾸려고 했다.

“뭐, 그만두시는 입장이니 제가 어떤 말을 해도 기분이 안 좋으실 것 같군요.”

“그쪽 때문에 이 병원에서 미련 없이 나갈 수 있게 돼서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참! 우리 이 선생님께서 수술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쥐새끼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병원 소식에 능통한 고계득은 어느새 이동훈의 수술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수술은 잘되신 건가요?”

“덕분에 아주 잘됐습니다.”

“어떤 병명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병원에서 받지 그러셨어요.”

“어이구야,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무슨 사람 잡을 일 있습니까?”

이동훈은 버럭 소리를 높이며 말을 이었다.

“신화대병원에 제대로 된 써전이 있나요? 글쎄요……. 전 낙하산밖에 못 본 거 같아서요.”

“…….”

더 이상 눈치 볼 게 없는 이동훈은 거침없는 언변으로 고계득을 살살 긁었다.

“말씀이 좀 지나치시네요. 그리고 들어 보니 저한테 불만이 많으셨나 봅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세요. 아! 그런데 혹시 암은 아니시죠?”

고계득이 알고 말을 한 건지 그냥 때려 맞춘 건지 모르겠지만, 방금 그 말을 들은 이동훈의 심기는 상당히 안 좋았다.

“부디 건강관리 잘하세요.”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챙기니까 신경 꺼요.”

“당연히 알아서 잘하시겠죠. 모쪼록 우리 이 선생님 앞길에 좋은 일만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그쪽 응원 필요 없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는데 고계득 씨, 당신! 그렇게 살지 마. 그렇다 큰코다쳐. 알았어?”

속 시원하니 할 말을 다 한 이동훈은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저거, 저거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하긴 우리 병원에서 잘렸으니 화가 나겠지. 어디 갈 데도 없는 놈이 하여간 꼴좋다!’

고계득은 이동훈이 한 말을 듣고 혀를 차며 걸음을 옮겼다.

* * *

병원 건물 밖으로 나와 정문 쪽으로 걷던 이동훈은 잠시 벤치에 걸터앉았다.

벤치 주변으로는 온갖 나무들과 이름 모를 식물들이 길을 따라 잘 갖춰져 있었다.

이곳은 이동훈이 병원에서 일하다 지칠 때면 찾는 정원이었다.

돈을 바른 티가 팍팍 나는 정원은 병원 안이라는 것만 빼면 작은 식물원이라고 해도 될 만큼 훌륭했다.

이동훈이 정원을 찾은 건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무너진 마음도 멘탈도 많이 회복됐다. 무엇보다 태경의 도움이 컸다.

‘선배님 뭐 하세요?’

‘이 책 한 번 보시겠어요? 의사가 환자를 위해 쓴 책인데 환자들이 읽으면 도움이 된대요.’

‘날씨도 좋은데 마당 한번 걸으실래요?’

‘입맛 없어도 밥 잘 드셔야 합니다. 밥이 보약이에요.’

안 그래도 바쁜 사람이 밤낮없이 시간만 나면 병실로 찾아왔다. 정말 거짓말을 조금 보태 병실 문고리가 닳도록 찾아왔었다.

답답한 마음을 들어 주고 마음이 심해로 가라앉아 모든 게 다 짜증이 날 때도 옆에서 할 수 있다는 힘을 줬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경을 써 줬다.

이동훈은 자신이 환자가 되어 보니 예전에 신화대병원에서 왜 그렇게 환자들이 태경을 찾았는지 그 기분을 알 수 있었다.

동료 의사들은 오지랖에 꼴값 떤다고 뒤에서 흉을 보던 그 일들이 환자에게는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큰 힘이 된다.

이동훈 역시 그랬다.

그 덕분에 주체할 수 없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정리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은 공허함과 함께 암 환자라는 타이틀이 마음을 힘들게 했다.

‘부작용이 심하면 어떡하지?’

‘항암이 나랑 안 맞으면?’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들을 앞서 걱정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완치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전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계속 싸워야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도 이동훈의 마음을 숱하게 방망이질하는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죽음’이었다.

갑작스럽게 병이 악화되어 죽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일상을 좀먹는 것만 같았다.

“후우!”

이동훈은 가슴을 들썩이며 크게 심호흡했다.

‘아니야.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괜히 또 우울해하지 말자. 좋은 생각만 하자…….’

그렇게 눈을 질끈 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던 그때였다.

“아저씨? 수술방 아저씨죠?”

별안간 아이의 목소리가 복잡한 머릿속을 뚫고 들어왔다.

“너, 누구니?”

고개를 돌려 보니 아까는 아무도 없던 바로 옆 벤치에 웬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잘생겼다. 몇 살이야?”

“그건 비밀인데요. 그리고 요즘 같은 세상에 개인 정보 함부로 알려 주면 안 된다고 했어요.”

딱 봐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아이답지 않은 야무지고 뭔가 단단함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잘생겨서. 근데 나 아저씨 아니야.”

“알아요. 수술할 때 잠들게 하시는 마취 선생님이시잖아요. 저 기억 안 나세요?”

“어. 글쎄…….”

갑자기 자신을 모르냐는 뉘앙스로 물어본 아이의 말에 이동훈은 급하게 기억을 더듬었지만 생각나질 않았다.

“수술방에서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진료 보러 온 거야?”

“아니요. 저 여기 살아요.”

대답과 함께 아이가 손을 뻗은 정면에는 어린이 병원 건물이 존재했다. 이동훈이 앉아 있는 정원은 어린이 병원을 위한 곳이었기에 산책을 나온 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저기? 너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거야?”

“네.”

“…….”

당연하다는 아이의 답변에 이동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입원했다는 아이의 복장이 일반 사복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거요?”

이동훈의 궁금증을 눈치챈 아이는 자기 옷을 들치며 말을 이었다.

“안에 입원복 있어요. 가끔 기분 전환할 겸 겉에 사복을 덧입거든요.”

“그렇구나.”

“아저씨 그거 아세요? 저 수술할 때도 선생님이 마취해 줬어요.”

“미안. 워낙 환자가 많아서 기억이 잘 안 나네. 그게 언제니?”

“음. 언제요? 처음 수술은 오래돼서 잘 몰라요. 마지막은 넉 달 전인가 그럴걸요?”

오래전과 넉 달이라니 이동훈은 이게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이해하질 못했다.

“마지막이 넉 달이라고 해도 너무 오래됐는데……. 너 무슨 병이길래 아직도 여기 있니?”

“그러니까 말이에요.”

아이는 강 건넌 불구경하듯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웃으며 받아쳤다.

“그때 수술한 곳은 다 나았어요.”

“그런데 왜 아직…….”

“뭐, 사연이 좀 복잡해요.”

“야! 넌 아직 어린애가 사연이 복잡해 봤자 얼마나 복잡하다고 그래. 말해 봐.”

이동훈은 아이의 대답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저, 애 아니에요. 그리고 알 거 다 알거든요.”

“그래, 그래. 미안. 뭐가 그렇게 복잡한데?”

“사실 그렇게 복잡한 것도 없어요.”

“응?”

“제가 희귀병이래요. 뭐라고 하더라 수많은 사람 중에 소수만 걸리는 병이라던데……. 어려워서 이름도 잘 몰라요. 그래서 전 병원이 집이고 놀이터고 학교에요. 아마 앞으로도 쭉 여기서 지낼 거 같아요.”

“……!”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아이의 놀라운 소식에 숙연해진 이동훈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아저씨!”

“어, 그래. 우리 친구는 이름이 뭐야?”

“원래 이름 알려 주지 않는데. 특별히 알려 드릴게요. 한빛이요. 김한빛.”

“좋은 이름이네. 한빛아. 아저씨가 괜히 물어봐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괜찮다고? 괜찮을 리가 없잖아.”

“진짜 괜찮아요. 아니, 사실은 괜찮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죽는 것에 대해서는 괜찮고, 지금 부모님을 못 보는 건 슬퍼요.”

“왜? 부모님이 어디 가셨니?”

이동훈이 조심스럽게 묻자 아이가 하늘로 손을 뻗었다.

“저기 위에 계세요.”

“저런! 내가 또 괜한 걸 물어봤구나.”

“그게 아니라 저기 하늘 위에 비행기요.”

“어?”

이동훈이 고개를 들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에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빠는 조종사고 엄마는 승무원이시거든요. 비행 나가셔서 지금은 할머니랑 같이 있고요.”

“야, 이 녀석아, 어른 놀리면 못 써. 놀랬잖아.”

진심으로 놀란 이동훈을 보며 한빛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었다.

“근데 한빛아? 넌 죽는 게 괜찮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저도 처음에는 엄청나게 울고 아빠 엄마, 할머니한테 짜증 내고 심술부리고 그랬어요. 절 담당했던 선생님들이 부모님이랑 저한테 항상 하는 말이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였거든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동훈은 담당 의사 놈이 누군지 생각하며 속으로 욕을 했다.

‘염병할 놈, 애한테 할 소리가 따로 있지.’

“그런데 같은 병실에서 매일 책만 보던 중학생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그러더라고요.”

“뭐라고?”

“똑똑한 형인데 그 형이 그랬어요. 삶을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라고요.”

“선물?”

“그렇잖아요. 사실 우리는 우리에게 삶이 주어지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았고, 또 그에 따른 노력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삶 자체가 공짜로 받은 선물인 거죠.”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우리에게 누군가 준 것인지는 모르지만 선물을 줄 때 얼마나 더 줄지, 얼마나 덜 줄지보다는 그냥 준 것에 감사하는 게 맞지 않으냐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당연히 선물 더 받을 줄 알고 있었는데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섭섭하고 화가 나지 않을까?”

이동훈은 어느새 한빛이가 하는 말에 푹 빠져 진지하게 답하고 있었다.

“그렇죠. 섭섭할 수는 있죠. 그런데 화나고 절망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미 받은 선물들에 감사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

한빛이의 말에 이동훈은 말문이 막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작 아직 어린아이가 한 말에 마치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형이 매일 저한테 그 말을 해 줬었어요. 근데 계속 듣고 보니까 맞는 말 같고 그 뒤로는 이상하게 안 슬프더라고요.”

“그 말을 해 준 형이 굉장히 성숙하네. 그 형은 잘 지내고 있어? 같이 나오지 않고?”

“형은 작년에 저기로 갔어요.”

아까와 달리 한빛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장례식장을 가리켰다.

“……!”

잠시 적막과 함께 멍하니 장례식장을 보고 있던 이동훈 시야에 별안간 한빛이의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아저씨!”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빛이가 이동훈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응?”

“거기 그만 보시고, 손 좀 펴 보세요.”

“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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