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73화 (172/472)

173화. 스카우트 제의?

“거기 그만 보시고, 손 좀 펴 보세요.”

“어? 손!?”

“제가 선물 하나 드릴게요.”

“선물? 아니야. 괜찮아.”

“이거 아무한테나 주는 선물 아닌데……. 손 펴 보세요.”

한빛이는 주머니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 이동훈 손에 올려놓았다.

“자요!”

“아. 네 잎 클로버구나. 아저씨한테 행운 나눠 준 거야?”

“아니요. 그거 세 잎 클로버예요.”

정말이었다. 이동훈이 다시 보니 손안에 있는 건 납작한 투명 케이스에 든 세 잎 클로버였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래요. 아저씨가 행복하셨으면 해서요.”

“내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니?”

“네, 되게 힘들고 슬퍼 보였어요. 사실 아까 멀리서 계속 아저씨 보고 있었어요. 아저씨가 앉은 자리가 제가 산책 나올 때마다 앉는 자리거든요. 근데 세상 근심 다 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서 좀 지켜보다가 옆에 앉은 거예요.”

한빛이는 펼쳐진 이동훈의 손으로 세 잎 클로버를 감싸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 힘든 일 있어요?”

“응. 조금 힘드네.”

“그러면 행복한 일을 찾아보세요.”

“행복이 찾으면 찾을 수 있는 거야?”

“당연하죠. 생각보다 쉬워요.”

“그래? 넌 오늘 뭐가 행복했는데?”

“저요? 전 오늘 약을 한 번만 먹어서 행복했고, 반찬으로 고기가 나와서 행복했고 아프지 않아서 행복했어요.”

이동훈은 너무나 소박한 일상을 행복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이 딱하고 귀여웠다.

“행복이라고 거창할 거 없어요. 눈앞에 보이는 작은 행복을 찾다 보면 그게 모여서 큰 행복이 된다고 했거든요. 지금도 보세요. 아저씨랑 저는 이렇게 밖에 나와 멋진 하늘도 보고 이야기도 할 수 있잖아요. 이것도 행복이에요. 저기 병원 안에는 면역력 떨어질까 봐 밖으로 못 나오는 환자들도 있어요.”

“이 녀석아, 나도 알아. 아저씨 의사라니까.”

“그럼 더 잘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힘든 일보다는 행복한 일만 생각하세요.”

“한빛이 너 말을 진짜 잘하는구나? 그것도 형이 알려 준 거야?”

“아니요. 김태경 선생님이 해 준 말이에요.”

“누구?”

한빛이의 입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이름을 들은 이동훈이 되물었다.

“혹시 김태경 선생……. 이 선생님 말하는 거야?”

아이가 말한 태경이 그 태경인가 싶던 이동훈은 핸드폰으로 태경의 얼굴을 찾아 보여 줬다.

“네, 맞아요.”

“한빛아? 너, 김태경 선생님을 알아?”

“네, 우리 할머니 맹장 수술해 주신 선생님이세요. 할머니 수술한 뒤로 몇 번 보다가 친해졌어요.”

한빛이가 태경을 알고 있는 건 순전히 친할머니 때문이었다.

맹장 수술은 받은 할머니는 환자를 살뜰히 챙기는 태경을 보며 자기 손자를 만나 달라고 요청했다. 당연히 담당 의사가 따로 있었기에 의학적으로 무언가를 해 달라는 게 아니었다.

줄곤 의사에게 안 좋은 소리만 듣던 손자가 다시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의사로서 말 한마디를 해 주길 바라는 심정으로 한 부탁이었다.

아무리 환자에 대한 오지랖이 강한 태경이라도 담당 교수님들도 계셨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교수들끼리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한빛이의 사연을 들은 태경은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 아이를 만났다.

그렇게 태경이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 만난 두 사람은 친한 사이가 됐다.

“선생님도 태경 쌤 아세요?”

“나도 친한 사이야.”

“정말요? 신기하다. 이 세 잎 클로버도 태경 쌤이 선물로 준 거예요.”

“그래?”

“네, 태경 쌤이 그러는데 제가 하루하루 씩씩하게 행복하게 살아서 기적이 찾아온 거래요.”

“그러게. 김태경 선생님 말이 맞는 거 같네.”

“간호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의사 선생님들은 기적이란 말 안 좋아한다고 했거든요. 근데 저한테 힘들다고 한 선생님도 나중에는 지금 이렇게 사는 게 기적이라고 하셨어요.”

한빛이의 말이 맞았다.

의사들은 ‘기적’이란 말을 좋아하지도, 그 말을 쉽게 꺼내지도, 섣불리 환자한테 내뱉지도 않는다.

의학도 과학의 한 분야로서 학문을 연구해 진단하고 결과를 확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은 설명할 수 없고 근거가 없는 기적을 잘 믿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적이란 두 글자에 담긴 거대한 기대 심리와 절박함을 알기 때문에 감히 환자에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아저씨 이름이 이동훈이에요?”

지금까지 줄곧 아저씨라고만 지칭하던 한빛이가 알려 준 적도 없는 이름을 불렀다.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여기 쓰여 있잖아요.”

한빛이가 가방 안에 있는 명함을 가리켰다.

“아저씨가 무슨 일로 힘들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힘을 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저씨도 저도 내일이라는 선물이 있잖아요.”

“그래, 그럴게.”

“만약 그래도 힘들면 그땐 제가 준 선물을 보면서 저를 떠올리세요. 아셨죠?”

“하……!”

한빛이의 말을 듣고 있던 이동훈은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리고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었다. 그러자 작은 손이 들썩이는 어깨를 쓰다듬었다.

고작 초등학생 어린아이에게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은 이동훈은 쏟아지는 눈물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작은 몸으로 힘든 병을 이겨 내고 있는 아이게 위로를 받은 게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이동훈은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동훈이 안아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아이의 마음이 이동훈의 마음을 안아 준 것이다.

천사 같은 한빛이의 따뜻한 마음이 이동훈의 마음속 불안함과 두려움을 녹여 버렸다.

“아저씨 괜찮아요?”

“남자는 울면 안 되는데, 아저씨가 나이 먹고 한빛이 앞에서 울기나 하고 부끄럽네.”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남자도 힘들 땐 울어도 된대요. 그리고 제가 비밀로 해 드릴 테니까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럼 비밀 꼭 지켜 줘야 해.”

“그럼요.”

“한빛아?”

두 사람이 웃으며 대화를 하는 사이 저만치서 한빛이의 친할머니가 뛰어왔다.

“아이고, 훌륭하게 될 우리 강아지 또 여기 있네.”

“할머니!”

한빛이는 할머니 품에 와락 안겼다. 조금 전 의젓한 모습과 달리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언제 나온 거야?”

“할머니가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어서 먼저 나왔어.”

“그래도 말하고 가야지. 할미 놀랬잖아.”

“미안해요.”

“뭐 하고 있었어?”

“아저씨랑 이야기하고 있었어.”

“안녕하세요.”

옆에 있던 이동훈이 할머니와 눈치 마주치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아, 네 그런데 누구신지…….”

“나 수술할 때 마취해 주셨던 선생님이야.”

“그러시구나. 우리 강아지 수술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한빛이가 굉장히 똑똑하고 참 의젓하네요.”

“아파서 그런지 철이 일찍 들었어요. 요 어린 것이 얼마나 속이 꽉 찼는지 몰라요.”

“네, 정말 그런 거 같아요.”

“할머니 얼른 들어가자. 나 신기한 아파트 봐야 해.”

“그래, 알았어. 선생님께 인사하고 가야지.”

“한빛아, 잘 가! 씩씩하게 잘 지내.”

“네, 아저씨도요. 안녕히 가세요.”

한빛이는 힘차게 손을 흔들며 어린이 병원 건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이동훈도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무너지고 있던 자신의 하늘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준 한빛이가 너무나 고마웠다.

이동훈은 한동안 마음의 여운이 가실 때까지 벤치에 앉아 있었다.

Rrrrrrrrrrr

아이와 나눴던 대화를 다시 곱씹던 이동훈은 가방 안에서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어, 김 원장님.”

당연히 아내인 줄 알았던 발신인은 태경이었다.

-선배님, 왜 그냥 가셨어요?

“수술은 잘 끝난 거야?”

-아까 끝나고 환자 보느라 이제 시간이 났어요. 저 보고 가시지 그러셨어요.

“안 그래도 바쁜 사람인데 미안해서 그랬지.”

-선배님께 할 말이 있었거든요.

“할 말? 뭔데?”

-당장 급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전화로 할 말은 아니고.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그럼 내가 지금 갈게.”

-예? 지금요? 오늘 퇴원하셨는데 번거롭게 왜요. 다음에 오세요.

“아니야. 나도 우리 원장님께 할 말 있거든. 바로 갈게.”

안 그래도 내일 병원을 가서 태경을 만나려고 생각했던 이동훈은 전화를 끊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 * *

병원에 도착한 이동훈은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고 있었다.

“좀 더 기다리셔야 할 거 같은데 괜찮으세요?”

“저 시간도 많아서 괜찮아요.”

아무래도 진료를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환자들의 순서가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이제 들어가셔도 돼요.”

“벌써 제 차례가 됐나요?”

“네, 어서 들어가 보세요.”

“감사합니다.”

철컥-

“오래 기다리셨죠? 이 시간이 환자가 몰리는 시간이라 그래요. 앉으세요.”

“당연히 환자가 먼저지. 얼마 안 기다렸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근데 어디 마트 다녀오세요?”

마트 이름이 쓰인 큼지막한 가방을 보며 태경이 물었다.

“아! 이거? 나 신화대병원에서 사표 내고 오는 길이야.”

“괜찮으세요?”

“속이 후련한 게 아무렇지 않아. 나오면서 고 씨한테 똑바로 살라고 시원하게 한마디하고 왔어.”

“고 씨라면 고계득 원장이요?”

“원장은 무슨. 이제 내 상관도 아닌데 뭘.”

“잘하셨어요. 그나저나 피곤하실 텐데 뭐가 급해서 병원까지 오셨어요. 집에 가서 쉬시지.”

“태경아?”

“네. 선배님.”

“내가 수술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너무 내 병에 빠져 있다 보니까 정작 중요한 걸 잊고 있던 거 같아.”

이동훈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불철주야 신경 써 준 너한테도 고맙다는 말 한 번도 제대로 못 하고……. 이렇게 우울하고 불안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 그래서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나 앞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우리 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치료받기로 다짐했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마음에 변화가 생긴 이동훈에겐 꽤 중요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 결심을 주치의인 태경에게 오늘 꼭 전하고 싶었다.

“뭐든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잖아. 나, 좋은 마음만 먹기로 했다. 우리 김 원장님, 앞으로 잘 부탁해요.”

항암을 앞둔 환자가 소위 멘탈을 회복하는 건 생각보다 중요하고 또 좋은 변화다. 그렇기 때문에 태경도 옆에서 계속 이동훈의 마음을 응원했었다.

이런 긍정적인 모습은 태경 역시 바라던 바였고 좋았다.

다시 원래의 무한 긍정맨인 이동훈으로 돌아온 거 같았다. 그런데 반나절 만에 뭔가 호떡 뒤집듯 갑자기 확 바뀐 것만 같은 분위기가 신기했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선물 같은 삶을 감사히 살아야지. 안 그래? 하하하!”

“선배님…….”

“응?”

“혹시 술 드신 건 아니죠?”

급기야 태경은 이동훈이 술 한잔을 한 건 아닌지 하는 농담을 던졌다.

“당연하지. 나, 환자야. 그게 아니라 우연히 만난 어느 씩씩한 친구가 나한테 행복하게 긍정적으로 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살아 보려고 생각을 바꿨어.”

“그래요? 잘 생각하셨어요. 누군지 몰라도 참 고마운 친구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말이지 김 원장, 나 일해야 하거든. 나중에 우리 애들 결혼도 시켜야 하고, 나도 일 계속하고 싶어. 항암 하면서 일해도 되지?”

“선배님 컨디션에 따라 조율이 필요하긴 하지만 일하셔도 돼요.”

“나 이제 취준생이야. 나이 오십 넘어서 다시 취직하려니까 뭔가 기분이 묘하더라고. 맞다! 나한테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이동훈은 한참 떠들고 난 뒤에야 태경이 할 말이 있다고 한 사실이 떠올랐다.

“일자리 소개시켜 드릴까 해서요.”

“일자리라면……. 설마! 나한테 병원 소개해 주려고?”

“네, 누가 선배님을 좀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해서요.”

“스, 스카우트 제의? 나한테?”

그 소리에 놀란 이동훈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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