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필요해요. 그것도 아주 많이
“무슨 검사를 하셨는데요?”
“간호사 선생님이 피검사 한다고 채혈해 갔거든요. 얼마나 걸릴까요? 제가 좀 급해서요.”
이찬희는 환자를 보느라 이민휘에 대한 정보를 전혀 듣지 못한 상태였다.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민휘요. 제가 좀 몸이 안 좋아서 기다리기가 힘들어서요.”
“나왔을 텐데…….”
“그래요?”
“제가 지금 바로 확인해 보고 안내해 드릴게요.”
“어머, 그래 주실래요?”
“네, 잠깐…….”
이찬희의 입에서 기다리라는 말이 나오려던 찰나,
“이 선생?”
“이 쌤!”
응급실로 들어온 최모나와 임정숙 간호사가 동시에 합창했다.
“아! 놀래라. 뭐에요? 무슨 일 있어요?”
“이 선생, 아까 결과 보던 환자 아무래도 다시 봐야 할 거 같은데.”
“……?”
“나도 놀란 거 아는데 일단 환자가 우선이니까 빨리하자.”
이찬희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최모나가 자연스럽게 어깨의 손을 올리며 스테이션으로 데려갔다.
“이민휘 환자분?”
그리고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자연스럽게 이민휘의 주의를 끌었다.
“결과 나왔어요.”
“그래요? 안 그래도 언제 나오나 저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있었거든요. 저 그러면 내시경 하는 건가요?”
“일단 검사를 위해서는 자리를 옮기실까요?”
“그럼요. 여기서 내시경을 받을 순 없죠.”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네.”
다행히 이민휘는 아무런 의심 없이 가방과 옷을 챙기며 임정숙 간호사를 따라갔다.
“그래서 방금 그랬던 거야.”
응급실을 나가는 임정숙 간호사와 환자를 보며 최모나가 이찬희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했다.
“그래? 와! 전혀 눈치 못 챘네. 그럼 지금 저 환자, 아니 저 여자는 선생님께 가는 거야?”
“선생님이 경찰 올 때까지 같이 있겠다고 하셨으니까 그렇겠지.”
“설득하시려나?”
“에이! 설득이라니요.”
스테이션 안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간호사가 말했다.
“설득해서 될 거였으면 애초에 중독자가 안 됐겠죠.”
간호사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 * *
“잠시만요?”
응급실을 나온 이민휘가 문 앞에 노크하려던 임정숙 간호사를 불렀다.
“내시경 검사 하러 가는 거 아니었나요?”
“맞아요.”
“여긴 진료실이잖아요.”
“검사 전에 원장님께서 검사 결과랑 수면마취제와 내시경 검사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고 해서요. 그냥 뭐, 통상적인 절차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 네. 알겠어요.”
똑똑-
“원장님, 이민휘 환자분 오셨어요.”
“네, 들어오세요.”
“환자분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철컥-
“환자분 이쪽으로 앉으세요.”
“선생님, 저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검사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어요.”
“네! 정상으로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과가 정상이라는 말에 좋아했겠지만, 이민휘는 아쉬움과 함께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확연히 드러났다.
“저 그러면 내시경 못 하나요?”
“사실 결과가 좋아서 당장 내시경은 필요가 없을 거 같습니다.”
“어머, 선생님 안 돼요. 저 진짜 몸이 아파요. 제가 피 토한 사진 보셨잖아요?”
태경의 눈에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는데 제가 환자분을 다른 쪽으로 도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환자분이 원하는 걸 해 드릴 수 있다는 말이죠.”
“제가 원하는 거요?”
“바로 이런 거라고 할까요.”
탁-
태경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리 준비해 둔 프로포폴 약병을 서랍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
약병을 보자마자 이민휘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경계심을 허물었다.
“환자분, 내시경이 아니라 이 약이 필요하신 거 아닌가요?”
꼴깍-
이민휘는 프로포폴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 모습이 마치 며칠을 굶고 먹잇감을 본 짐승의 눈빛과도 같았다. 영락없는 중독자의 눈빛 그 자체였다.
“제가 오늘 돌아다닌 병원만 열 군데가 넘거든요.”
이민휘는 여전히 프로포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이 떠들기 시작했다.
“보통 병원이 문을 여는 9시부터 조금 전까지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대부분 예약 없이 당일 내시경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녁부터는 응급실만 찾아갔어요.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제가 가는 곳마다 환자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기다리다가 검색해 보니까 마침 이 병원이 나오더라고요. 뭔가 느낌이 좋아서 왔는데 역시 오길 잘했네요.”
약병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이민휘는 고개를 들어 태경을 응시했다.
“맞아요. 선생님 저 이 약 필요해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프로포폴에 중독될 대로 중독된 이민휘는 오늘만 해도 벌써 몇 차례나 약물을 몸에 주사했다.
집에서, 차 안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소량을 직접 투입하며 밥을 먹지도 않았다. 배고픔은 못 느껴도 약에 대한 갈증은 항상 간절할 정도였다.
프로포폴을 처음 접한 건 성형외과에서였다.
직업 특성상 외적인 부분을 가꾸는 걸 멀리할 수 없었기에 이런저런 시술을 했다.
그럴 때마다 수면마취제를 사용했고, 그때마다 맑은 정신에 스스로가 놀랄 정도였다.
불면증이 있었기에 잠을 깊게 들지 못했던 이민휘에게는 수면마취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이 마치 신세계 같았다.
‘기분 탓인지 수면마취에서 깰 때마다 너무 상쾌한 거 있죠? 30분도 안 된 것 같은데 온종일 푹 잔 거 같고 기분도 좋네요.’
‘그렇죠? 그래서 생각보다 많이들 맞으러 와요.’
‘네? 주사만 맞는다고요?’
‘그럼요. 어떻게 관심 있으세요?’
이민휘는 그때부터 중독의 지름길로 빠져들었다. 실장의 말에 따르면 병원에는 프로포폴을 맞으러 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했다.
일반인은 물론 유명한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이민휘 역시 주사를 맞으러 오는 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나중에는 실장에게 돈을 주고 직접 투약했다. 그러다 병원의 잦은 프로포폴 투약이 걸렸고,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미 중독된 이민휘는 그때부터 불법으로 약을 구하러 다녔다. 하지만 더 이상 구할 수 없게 되자 내시경을 한다는 핑계로 병원을 돌며 주사를 맞고 있었다.
“선생님, 그럼 저 내시경 안 하고 주사만 맞을 수 있을 거죠?”
“네.”
“다행이다.”
“근데 아까 피부병 때문에 다리에서 채혈했다고 하던데?”
“아, 그건 팔을 보여 주면 오해할까 봐 그런 거죠.”
“그럼 팔에 맞을 수 있는 거죠?”
“그럼요. 자국이 좀 있기는 하지만…….”
혹시나 해서 던진 유도 질문에 이민휘는 말을 하다 말고 소매를 위로 올려 팔을 보여 줬다.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그래도 맞을 순 있죠?”
역시나 태경의 예상대로 팔에는 주사 자국이 가득했다.
‘하! 너무 많이 맞았다.’
얼마나 많은지 주사 자국을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장담하건대 반대쪽 팔에도 아마 주사 자국이 가득할 것이다.
“예, 가능하겠네요.”
태경은 순간 마음이 씁쓸했다. 자기 몸이 망가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오직 약에 정신 팔린 이민휘가 불쌍하기까지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하지 않았다.
이미 저 정도의 상태라면 주변에서 아무리 말을 한다 해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중독자는 혼자서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 본인의 노력은 물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약에 의한 중독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형이 중독자로 살았기에 태경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 부탁이 있는데요?”
“부탁이요?”
“네. 약 좀 더 주실 수 있으세요?”
“……!”
“물론 그냥 달라는 거 아니에요? 저 돈 많아요. 이거 보이시죠?”
태경이 잠시 침묵하자 돈 때문인 줄 착각한 이민휘는 가방에서 현금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돈과 함께 딸려 나온 주사기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이런 거 다들 현금으로 거래하니까 늘 준비해 다니거든요.”
“주사도 직접 놓을 줄 아세요?”
“당연하죠. 여기 맛들인 사람들, 저처럼 직접 주사하는 사람 꽤 있을걸요.”
“얼마나 필요한데요?”
“선생님 생각보다 말이 통하시는 분이네요. 많이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점점 갈수록 구하기도 어렵거든요.”
Rrrrrrrrrrr
그렇게 이민휘가 웃고 떠드는 사이 책상 위 전화벨이 울렸다.
“네, 그래요?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경찰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태경은 자연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주사 놔드릴 테니까 이만 일어나시죠? 주사실로 이동할게요.”
“네, 선생님.”
드르륵-
이민휘는 그 어떤 의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태경은 이민휘가 먼저 나갈 수 있도록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철컥-
“이민휘 씨?”
문을 열자마자 신고받고 도착한 경찰 두 명이 바로 진료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경찰이요? 겨, 경찰분들이 왜요?”
경찰이란 말을 듣자마자 놀란 이민휘는 살짝 말을 더듬었다.
“마약류 불법투약으로 신고가 들어와서요. 경찰서로 같이 가시죠?”
“네? 저 불법투약한 적 없어요. 누가 그래요? 누가 신고를……!”
딱 잡아떼며 아니라고 말하던 이민휘는 순간 자신의 옆쪽에 서 있던 태경과 눈이 마주치며 신고한 사람이 태경이라는 걸 직감했다.
“세상에! 이봐요! 그쪽이 나 신고한 거예요?”
경찰이 오기 직전까지 세상 친절하게 행동하던 이민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날카롭게 반응했다.
“예, 내가 이민휘 씨 신고했습니다.”
“뭐라고요? 내가 불법투약하는 거 봤어요? 당신이 봤냐고!”
“이민휘 씨, 당신 프로포폴 중독자예요. 누구보다 치료가 시급한 상태입니다. 계속 주사 맞다간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어요.”
“당신 아까 나한테 뭐라고 했어? 주사 맞게 해 준다며? 어! 내가 필요한 거 준다고 했잖아.”
이민휘는 자신을 걱정하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약물을 맞을 수 없는 지금 상황이 짜증 나고 화가 날 뿐이었다.
“의사가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거야! 주사 놔 준다고 했잖아!”
“진정하시고 그만 가시죠?”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경찰들은 양쪽에서 이민휘의 팔을 잡았다.
“뭐야, 당신들! 이거 안 놔? 어디서 범죄자 취급이야?”
이민휘는 몸을 양쪽으로 격하게 흔들며 저항했고 그 바람에 가방에 있던 물건들이 하나씩 바닥에 떨어졌다.
툭- 툭-
핸드폰과 지갑은 물론이고, 오만 원짜리 지폐 수십 장과 사용한 주사기와 프로포폴이 담겨있던 빈 약병도 있었다.
“이거 보세요? 이민휘 씨, 이런데도 안 했다고 할 거예요? 네!”
“아니에요. 이거 제가 한 거 아니에요. 저 모르는 거예요. 저 진짜 아픈 사람이라고요. 한 번만 봐주세요.”
이민휘는 결국 경찰들에게 끌려가며 병원을 나가야 했다.
“에휴! 젊고 예쁜 사람이 어쩌다 저렇게 된 건지……. 딱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안됐네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정숙 간호사와 최 팀장의 말대로 태경 역시 안타까웠다. 뭔가 마음이 착잡하고 쓰렸다.
“안녕하십니까?”
이민휘가 끌려가고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또 다른 경찰이 병원을 찾았다.
“oo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차 안에 있던 약병들과 주사기 등 주거 수집을 위해서였다.
“원장님이시죠?”
“네, 제가 우리병원 원장 김태경입니다.”
“자세한 설명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물론입니다.”
병원에서 있던 일을 설명한 태경은 경찰에게 놀라운 사실을 들었다.
“형사님? 이민휘 씨는 치료시설에 들어가는 겁니까?”
“아니요. 검찰에 넘겨져서 재판받을 텐데 이번에는 쉽지 않을걸요. 저 여자 처음이 아니에요.”
이민휘는 경찰에 걸린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게다가 프로포폴 불법투약은 물론 불법 유통까지 했기 때문에 형을 피하기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병원에 기록했던 이름과 인적 사항도 남의 것을 도용한 것은 물론, 유흥업소에서 알아주는 에이스라고 했다. 그래서 늘 현금이 많았다.
무엇보다 태경은 지금까지 프로포폴에 사용한 돈만 1억 원이 가까이 된다는 사실에 가장 크게 놀랐다.
“죗값 치르고 중독에서 벗어나서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네요.”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저런 경우 사실 출소해도 또 약에 손을 대거든요. 사람이 쉽게 안 변하더라고요. 차는 내일 견인해 갈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신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의사 선생님이시니까 잘 아시겠지만, 병원에서 직접 신고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거든요.”
“아닙니다.”
“선생님 같은 분들이 더 나왔으면 좋겠네요. 오늘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태경은 경찰의 마지막 말을 듣고 마음이 안 좋았다.
분명 지금 어딘가에도 이민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고 해도 멀쩡한 사람을 중독자로 만드는 이런 일이 더는 생기지 않길 바랐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지, 아프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히포크라테스 선서했을 때와 의사로서 첫발을 내디딜 때 때 느꼈던 환자를 향한 그 마음만은 변치 않은 의료인들이 많았으면 했다.
“하!”
태경은 답답한 마음을 새벽 공기 위로 쏟아내며 다시 응급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