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명함 한 장
“이거 한 번만 봐 주세요.”
“목격자를 찾고 있어요.”
이수정은 오늘도 어김없이 목격자를 찾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한참을 돌리던 그녀는 바닥에 하나둘씩 떨어진 전단지를 회수하러 다녔다.
그냥 종이일 뿐인데 사람들의 발자국이 찍힌 전단지를 볼 때면 마치 자신의 마음이 밟힌 것처럼 속상했다.
길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를 전부 회수하고 쓰레기통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이수정이 쓰레기통을 확인하려던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도넛 가게 주인 여자가 문을 살짝 열고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얼마 전, 가게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전단지 일로 알게 된 두 사람은 첫 만남과는 달리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첫째와 둘째가 학업으로 바쁠 때면 이수정이 막내를 데리고 전단지를 돌리러 나오곤 했다.
가끔 막내에게 간식으로 도넛을 사 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주인 여자는 아이를 봐줄 테니까 편하게 전단지를 돌리라며 배려해 주곤 했다.
“그 안에 있던 전단지 내가 수거해서 모아 놨어요.”
“제가 하면 되는데 뭐 하러 그러셨어요?”
“주변 청소하는 김에 한 거라 괜찮아요.”
이수정은 전단지를 받으러 가게 안으로 향했다.
“사장님. 저 도넛 좀 포장해 주세요.”
이수정은 가게 주인이 마음을 써 주는 게 고마워,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씩 도넛을 사고 있었다.
“어머! 아니에요. 그러지 마세요.”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에요. 우리 애들이 여기 도넛을 정말 좋아해요. 막내가 어제도 먹고 싶다고 해서 제가 사 온다고 했어요.”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 준다니 제가 더 고맙네요. 늘 사 가는 걸로 담을까요?”
“네, 작은 상자로 담아 주세요.”
아르바이트생이 도넛을 담는 사이, 주인 여자는 쓰레기통에서 수거한 전단지를 들고나와 이수정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래도 요즘에는 버리는 사람들이 덜한 거 같아요. 이거 보세요.”
주인 여자가 말을 하며 여러 사람이 옆으로 함께 앉는 폭이 좁은 긴 테이블 위에 전단지를 올려놓은 그때였다.
“어제보다…….”
“컥!”
옆쪽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모자를 쓴 남자가 사레가 들렸는지 커피를 뿜었다.
“어머, 손님 괜찮으세요?”
“여기 휴지 있어요.”
옆 옆자리에 있던 이수정이 바로 앞에 있던 티슈를 꺼내 손을 뻗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망설이다 느릿한 손길로 티슈를 건네받았다.
“손님, 도넛이 커피에 젖었는데 제가 새로 바꿔 드릴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불편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남자가 완강하게 거절하자 주인 여자도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사장님, 도넛 나왔어요.”
“포장 다 됐습니다.”
주인은 계산대에서 알바생이 건넨 도넛 상자를 받아 이수정에게 건넸다.
“제가 쇼핑백 하나 더 드릴 테니까 여기에 전단지 넣어 가세요.”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수정이 가게를 나간 후 주인 여자는 계산대와 도넛 진열장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 알바생에게 다가갔다.
“보라야, 초콜릿이랑 딸기는 하나씩 더 담았지?”
“그럼요. 저번에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더 담으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사장님, 이거 한 장 남았는데요?”
알바생이 계산대 테이블에 있는 전단지를 가리켰다.
“그거 일부러 내가 한 장 빼놨어.”
“어! 왜요?”
“우리 가게 붙여 볼까 해서. 현준 엄마한테 말하면 괜히 미안해하면서 그러지 말라고 할 거 같아서.”
주인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이 목격자를 찾기 위해 나오는 이수정에게 자꾸 마음이 갔다.
아무래도 나이도 비슷하고 애들 나이도 비슷하다 보니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딱해 보였다. 그래서 전단지라도 가게 안에 붙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전단지 한 장 붙인다고 대단한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도넛을 사러 오는 사람 중에 근처 사람들도 많았기에 사고 소식이라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와! 우리 사장님 되게 멋지시다.”
“멋지긴 뭐가 멋져.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거기 테이프나 줘.”
“여기요.”
주인 여자는 알바생에게 건네받은 테이프를 전단지 끝에 살짝 붙여 테이블 앞에 있는 유리 벽 한쪽에 붙였다.
“에효!”
“저, 저기요……?”
붙인 전단지로 주인 여자의 한숨이 쏟아지던 그때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작은 소리로 불렀다.
“네, 손님. 뭐 필요하세요?”
주인 여자를 부른 사람은 조금 전, 커피를 먹다 사레가 들렸던 그 남자였다.
“도넛 바꿔 드릴까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 전단지 말입니다.”
남자의 시선이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진 유리 벽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향했다.
“뺑소니 사건인가요?”
“이거요? 네, 맞아요.”
전단지를 붙이자마자 손님이 관심을 보이자 주인 여자는 자기 일처럼 자세히 알려 줬다.
“말도 마세요. 사정이 얼마나 딱한지 몰라요. 운전자가 새벽까지 일하다가 요 앞에서 뺑소니를 당했다니까요.”
“다친 분은 아직 못 깨어났나요?”
“네, 수술은 잘됐다는데 아직 깨어나질 못하고 있대요. 병원비도 그렇고 가족들도 고생이 말도 못 해요. 하여간 남의 인생 망가뜨린 뺑소니범은 똑같이 당해…….”
딩동-
주인 여자가 열변을 토하던 그때 손님이 등장하는 바람에 대화가 끊어졌다.
“어서 오세요. 뭐 드릴까요?”
“슈크림 두 개 포장해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많이 파세요.”
“어! 보라야. 이 손님 간 거야?”
주인이 손님을 상대하고 난 뒤 자리를 비운 테이블 남자에 대해 물었다.
“네, 방금 가셨어요.”
“저 손님 도넛은 손에도 안 댔네.”
남자가 앉았던 테이블 위에는 정확히 반 정도 마신 커피와 멀쩡한 도넛이 그대로 있었다.
“아까 커피 뿜다가 젖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니야. 저 손님 올 때마다 도넛은 먹지도 않더라고.”
“사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매장 손님이잖아.”
주로 포장 손님이 대부분이었기에 매장에서 연속적으로 와서 먹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아까 그 남자는 3일 연속으로 와서 주인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제랑 그제는 밤에 오더니 오늘은 일찍 왔네? 상가 사람인가?”
“아니요. 사장님. 제가 보기에는 근처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지금 뭔가 느낌이 왔어요.”
“무슨 느낌?”
“먹지도 않은 도넛을 매번 시키고 커피도 계속 목만 축이고 있죠. 그리고 늘 밤에 오던 사람이 오늘은 일찍 왔단 말이에요. 이거는 딱 하나밖에 없어요.”
알바생은 뭔가 대단한 걸 말하려는 듯 표정까지 비장함 그 자체였다.
“그게 뭔데?”
“이건! 백퍼 불륜 잡으러 온 사람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여친 아니면 부인이 바람난 거 같아요. 그러니까…….”
“에이! 난 또 뭐라고. 보라 너 불륜 드라마 좀 그만 봐. 그러니까 자꾸 그런 생각하지.”
“사장님도 한 번 보세요.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됐어!”
주인 여자는 손사래를 치며 남자가 앉았던 자리를 정리했다.
* * *
“안녕하세요.”
이찬희는 활기찬 인사와 함께 병원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이 쌤.”
“주차장에 차 없네요?”
뒷문으로 들어온 이찬희는 전날 프로포폴로 소란을 피우던 여자의 외제 차의 관해 물었다.
“아까 오전에 견인차가 와서 끌고 갔어요.”
“밝을 때 차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근데 오늘 날씨 진짜 좋지 않아요?”
“그러게요. 드라이브 가고 싶네요.”
“드라이브 좋죠. 팔당대교를 쭉 달리며 바람을 만끽하고 그 근처에 진짜 유명한 칼국숫집이 있는데 거기서 국수 먹고 해물파전에 밤 막걸리 한잔하면 끝장이거든요.”
“끝장은 끝장이지. 음주운전으로 끝장!”
응급실에서 나온 최모나가 무심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야! 누가 음주운전 한댔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여간 최 쌤, 너는 낭만이 없어요. 낭만이…….”
“낭만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무슨 낭만이야. 그리도 이 선생 차도 없잖아?”
“있어!”
“어, 이 쌤 차 있었어요?”
“그럼요. 남자들은 누구나 가슴속에 드림 카 하나는 품고 산다고요.”
“드림 카는 있지만 현실 차 없는 건 맞네.”
“큭!”
“풋!”
현실적인 최모나가 연달아 팩폭을 날리자 접수처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가만 보면 이 쌤이랑 최 쌤은 진짜 친한 친구 같은 거 아세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니요. 전, 이렇게 야박한 친구는 사절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우리 이 쌤과 최 쌤은 사이가 좋네요. 그만하시고 저랑 진료실이나 가세요.”
임정숙 간호사가 다가와 두 사람의 어깨의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예? 진료실은 왜요?”
“선생님 호출입니까?”
임정숙 간호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과 함께 태경의 진료실로 향했다.
똑똑-
“이 선생, 최 선생. 어서 와.”
“안녕하세요.”
문을 열자 최 팀장도 태경과 함께 있었다.
“다른 게 아니라 몇 가지 전달 사항이 있어서 오라고 했어요. 당분간 내시경 하는 환자들은 특별히 더 신경 써서 봐 주세요.”
태경은 혹시라도 어제 이민휘와 같은 환자가 생기지 않도록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선생, 최 선생?”
“네, 선생님.”
“앞으로 술 취한 환자들 괜히 두 사람이 혼자서 진료 볼 생각하지 말고, 최 팀장님이나 장 요원님 대동하고 해.”
오늘 새벽에 태경이 응급 수술을 하는 사이 술집에서 싸우다 주먹다짐을 한 취객이 환자로 왔었다.
다행히 환자의 부상은 크지 않았지만, 만취 상태로 온 환자 때문에 꽤 애를 먹었다.
술에 취한 환자가 의료진을 계속 밀어 버리는 탓에 손등에 피부가 찢긴 2cm 상처를 봉합하는 데만 30분 넘게 걸렸다.
“난 환자가 중요한 만큼 의료진도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해. 그러니까 두 사람 다 무리하지 말라는 소리야.”
“네, 주의하겠습니다.”
“임 선생님이랑 최 팀장님이 다른 직원들에게도 전해 주세요.”
“네, 원장님.”
“이상입니다.”
전달 사항을 마친 태경은 진료실을 나온 뒤, 새벽에 수술한 환자의 입원실을 찾아 상태를 확인한 뒤 다시 내려왔다.
“응급실 갑니다.”
“선생님!”
병동에서 내려와 응급실로 향하는 태경을 임정숙 간호사가 불러 세웠다.
“외래 있어요.”
“그래요? 환자분 바로 안내해 주세요.”
“네.”
철컥-
“환자분 지금 들어가시면 돼요.”
임정숙 간호사가 태경이 진료실로 들어가자 접수처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 네. 감사합니다.”
진료를 봐야 하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에 앉아 있던 일행 세 명이 동시에 주르륵 일어나며 진료실로 향하는 남자를 쳐다봤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환자분 이쪽으로 앉으세요. 배가 불편하셔서 오셨다고요?”
“네, 선생님.”
“배가 어떻게 불편하세요?”
“그게 말이죠…….”
남자는 불편한 증상을 자세히 말했다. 태경은 남자를 촉진한 뒤 간단한 검사와 함께 잠시 뒤 결과를 알려줬다.
“심각한 건 아니고 배에 가스가 가득 찼네요.”
“가스요? 어쩐지 배가 더부룩하고 자꾸 방귀가 나오더라고요.”
“제가 약 처방해 드릴게요. 물이랑 식이섬유 풍부한 음식 많이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저기 선생님…….”
드르륵-
남자는 별안간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주머니에서 명함 케이스를 꺼냈다.
“실은 제가 이런 일 하는 사람이거든요.”
명함 한 장을 조심스럽게 내민 그의 태도는 간절하고 정중해 보였다.
“아, 네. 그런데 저한테 이걸 왜…….”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을 꼭 모시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저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