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멍
다음 날-
간밤에 고계득을 만난 뒤 잠을 설친 이수정은 전단지를 돌린 뒤, 남편을 면회하러 왔다.
“여보…….”
평소처럼 남편의 얼굴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 주고 팔다리를 정성껏 주물러 준 뒤, 남편의 손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었다.
“나 있잖아. 내가 한 선택이 옳은 선택인지 잘 모르겠어. 아마 법 없어도 살 당신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엄청 뭐라고 하겠지?”
이수정은 두 손으로 감싼 남편의 손을 입가에 댄 채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해. 당신 아내가 이런 사람이라 미안해. 근데 여보, 사실 나 좀 막막했어.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답답하고 복잡한 심경을 위로받으려는 듯 이수정은 남편에게 쉬지 않고 속삭였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꼭 일어날 거라고 믿어.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양말 뒤집어 놓는다고 잔소리 안 할게. 수건 아무 데나 둔다고도 잔소리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라. 나도 애들도 당신이 너무 필요해. 여보! 얼른 일어나……. 사랑해.”
남편의 손을 볼에 갖다 대고 조용히 마음을 전하던 이수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면회 시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수정 보호자님, 정말 정성이시네요.”
이수정이 면회를 마치고 나간 뒤, 일하던 차대한의 담당 간호사가 동료에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아직 젊은 분인데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사실 저렇게 매일 찾아오는 거 쉽지 않잖아요.”
“그럼요. 병간호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죠.”
병원에서 근무하며 여러 환자와 보호자들을 본 간호사들조차 이수정의 정성은 인정할 정도였다. 남편이 아파서 병간호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장기 입원 환자를 매일 빠지지 않고 면회하러 온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환자가 장기 입원으로 이어지면 보호자들도 덩달아 힘이 든다. 그러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치고 처음처럼 병간호를 적극적으로 하기 쉽지 않았다.
“왜, 꼭 열심히 사는 사람들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누가 아니래요. 망할 놈의 뺑소니범이나 빨리 잡혔으면 좋겠네요.”
담당 간호사는 차대한의 이불을 정리해 주며 다른 환자를 체크하기 위해 베드를 벗어났다.
삐삐- 삐삐-
365일 24시간 환자들을 관리하는 모니터에는 오늘도 일정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그 기계음들 사이에서 차대한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것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그의 베드 위를 지나는 여러 선 가운데 손 근처에 있던 선 하나가 작은 움직임을 보였다.
담당 간호사도 곁에 없었고, 다른 의료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선을 움직였던 건, 차대한의 오른쪽 손이었다. 아주 순식간에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분명 차대한의 손이 움직인 것이다.
넓은 외상 중환자실 안에서 이 놀랄 만한 소식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 시각-
남편을 면회하고 돌아온 이수정은 저녁 준비를 마치고 우리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준아, 간식 다 먹었어?”
“응. 다 먹었어.”
“그럼 양치하고 옷 갈아입자.”
“엄마? 오늘 우리 놀러 가?”
막내아들은 오랜만에 엄마랑 외출할 생각에 잔뜩 들떠 있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바람과 달리 놀러 가는 게 아니었기에 이수정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현준아, 미안한데 오늘은 놀러 가는 게 아니야. 나중에 형이랑 누나랑 같이 놀러 가자.”
“아빠도?”
“그럼. 아빠도 같이 가지.”
오늘은 막내가 학교에서 일찍 끝나는 날인데다가 둘째도 학원에 가는 날이었다. 그래서 막내만 집에 혼자 둘 수 없었기에 병원에 같이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럼 오늘 어디 가?”
“병원 갈 거야.”
“병원이면 아빠 보러 가?”
외상 중환자실은 모든 가족이 면회할 수 없었기에 아이들은 아빠를 못 본 지 꽤 됐었다. 주로 이수정이 찍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아빠의 모습을 보곤 했다.
“아니. 아빠 병원 말고 다른 병원. 엄마가 병원 갈 일이 있어서.”
“엄마 어디 아파?”
“아니. 안 아파. 그냥 일 보러 가는 거야.”
“근데 엄마?”
“응?”
“그래도 엄마랑 같이 외출한다니까 기분 좋아.”
건조한 이수정의 표정과는 달리 어린 아들의 표정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서둘러 준비를 마친 이수정은 아들과 집을 나와 우리병원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하아!”
불안한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듯 이수정은 저도 모르게 자꾸만 한숨을 토해냈다.
“슈웅!”
옆자리에 앉은 막내 현준이는 그저 신이 나는 듯 집에서 가져온 작은 비행기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
“비행기 날아갑니다. 슝!”
손으로 움직이던 비행기로 엄마의 손과 다리를 옮기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엄마 이것 봐. 비행기 멋지지?”
“현준아, 미안한데 우리 조금만 조용히 갈까? 버스 안에서 조용히 가는 게 좋아. 응?”
“응. 알았어…….”
현준이는 주의를 받을 만큼 크게 떠들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목소리와 함께 손을 움직일 때도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수정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아이의 장난에 장단을 맞춰 줬겠지만, 오늘은 마음이 예민해져 작은 소리도 크게 느껴졌다.
‘그냥 진료만 보면 돼. 진료만 보고 인터뷰만 하면 끝이야.’
마음이 불안한 이수정은 속으로 자기 자신을 달래듯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괜찮아. 진료만 보면 돼.’
한 정거장 두 정거장, 버스가 우리병원과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점점 두근거렸다.
이수정은 핸드폰을 꺼내 가는 길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얼마나 남았는지 정류장을 세어 본 뒤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창밖을 쳐다봤다.
* * *
우리병원-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수고가 많으시네요. 이거 드시면서 일 보세요. 하하!”
봉지에서 비타민 음료를 꺼낸 이동훈이 장득칠에게 건네며 아주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이동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예. 장득칠이라고 합니다.”
“제가 앞으로 우리병원에서 일하게 될 이동훈이라고 합니다.”
“네, 원장님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하하하!”
태경의 예상대로 역시나 이동훈은 병원에 나왔다. 아직 출근까지 3주나 더 남았기에 그 시간 동안 푹 쉬라고 했는데, 활동적인 그는 집에만 있질 않았다.
“득칠 씨는 덩치가 참 좋으시네요. 운동하시나 봐요.”
“그냥 헬스 다니고 있습니다.”
“아, 어쩐지…….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병동에서 내려온 태경이 그 모습을 보며 웃더니 이동훈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어! 원장님. 우리 원장님도……어!”
자연스럽게 비타민 음료를 꺼내는 이동훈을 태경이 진료실로 데려갔다.
철컥-
“진짜 이러실 거예요?”
“왜? 뭐 잘못됐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모르겠다는 얼굴을 보며 태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집에서 푹 쉬라고 했는데 병원에 나오면 어떡해요? 안 그래도 선배님 병원에 나오시지 않을까 했는데, 안 오시길래 잘됐다 했거든요.”
“나 그동안 잘 쉬었어. 얼마나 잘 쉬었는지 수술받은 사람 얼굴 혈색 좋은 것 좀 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이동훈의 혈색은 그의 기분만큼이나 좋아 보였다.
“사실 나도 우리 김 원장이 말한 대로 집에서 잘 먹고 잘 쉬려고 했거든? 근데 잘 먹는 건 되는데 잘 쉬는 게 어려워.”
“아무것도 안 하려니까 이상하시죠?”
“그렇다니까. 좀이 쑤셔.”
말 그대로 이동훈은 온몸에 좀이 쑤시는 것 같았다. 수술 후에 몸이 회복돼서 컨디션도 참 좋았다. 그런데 가만히 집에 있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평생 병원에서 환자 보고 일만 하던 사람이 집에만 있으려니 고욕이야. 밥 먹고 쉬고 운동해도 시간이 남아돌아.”
“원래 쉴 때 시간이 더 잘 가잖아요?”
“난 아니더라니까. 노는 것도 해 본 사람들이 잘 놀지. 오죽하면 병원 그 특유의 냄새까지 그립더라고.”
결국 이동훈은 참다 참다 병원에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병원 오시니까 좀 살 만하세요?”
“좋아! 이게 뭔가 새로운 곳으로 출근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까 기분도 설레고 내 몸에 엔도르핀이 도는 거 같다니까. 이게 다 내가 우리병원에 애착이 많아서 그런 거라니까.”
“알았어요.”
이동훈이 저렇게까지 좋아하는데 태경도 더 이상 말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일을 하려고 하진 마시고 분위기나 익힌다고 생각하세요.”
“당연하지. 그냥 출근 전까지 오늘처럼 와서 직원들이랑 인사하고 적당히 있다 갈게. 자! 그럼 우리 원장님은 오늘도 힘내시고 난 이만…….”
드르륵-
이동훈이 책상 위에 비타민 음료를 올려놓으며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시려고요?”
“아니, 나 지금 식당 가 봐야 해.”
“식당이라면……. 병원 식당이요?”
“어. 여사님 콩나물 다듬는다고 해서 내가 도와주기로 했거든. 내가 또 요리를 좋아해서 그런 거 잘해.”
사교성이 끝내주는 이동훈은 이미 오계순과 친해진 것 같았다.
“원장님 수고해요.”
철컥-
“선생님?”
이동훈이 나가자마자 임정숙 간호사가 들어왔다.
“응급실 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알겠어요.”
임정숙 간호사의 표정을 보니 환자 일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태경은 빠르게 응급실로 향했다.
이찬희는 아직 출근 전이었고, 당직인 최모나는 다른 환자를 진료 중이었다.
“24세 여자분이고 119를 구급대원분과 같이 왔어요. 12번 베드에 있어요. 현재…….”
임정숙은 응급실로 향하면서 환자 정보를 전했다.
챠륵-
커튼을 열자마자 3단계 분뇨 냄새가 익숙하게 다가와 환자보다 빠르게 태경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네, 안녕하세요.”
젊은 여자는 태경을 보자마자 베드에서 일어섰다.
“멍 때문에 오셨다고요?”
“네, 맞아요. 제가 이틀 전에 시술받았는데요. 그런데…….”
여자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를 돌더니 입고 있던 상의를 훌렁 벗어 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가 뭐라 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여자 가 바지까지 벗으려 하자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가 급히 말했다.
“환자분! 잠시만요.”
“먼저 상황 설명부터 해 주세요.”
“아! 내 정신 좀 봐. 제가 마음이 급해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여자는 손가락으로 자기 몸을 가리켰지만, 태경은 아까부터 여자의 몸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건 임정숙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이상한 뜻으로 쳐다본 것이 전혀 아니었다.
사실 여자가 상의를 벗을 때 가장 놀랐던 건 그녀가 옷을 벗는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피멍이 가득하다.’
몸에 퍼져 있는 멍 때문이었다.
여자의 상체에는 눈에 띄는 피멍이 곳곳에 말도 못 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멍은 상체뿐만 아니라 하체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었다.
“이거 보이시죠! 선생님 저 정말 미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