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꼬인 부분
의자에 앉아 초음파 기계를 잡은 태경이 별안간 하던 말을 뚝 끊더니 다시 급하게 말했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이수정의 손끝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괜찮아요.”
이수정은 긴장감에 떨리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진정시켰다.
“조금 차갑습니다.”
임정숙 간호사가 초음파에 젤을 묻히고 곧장 검진이 시작됐다.
태경은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하고 손으로는 초음파 기계를 움직이며 확인했다.
검진하는 동안에는 환자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긴장을 풀어 주며 꼼꼼히 살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검진이 끝났다.
“환자분 수고하셨어요.”
검진하는 짧은 시간이 이수정에게는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초음파상에는 이상이 없네요. 정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어! 괜찮으세요?”
베드에서 내려오다 다리에 힘이 풀린 이수정이 바닥에 주저앉자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가 양쪽에서 붙잡아 줬다.
“아, 네.”
“임 선생님, 탈의실까지 같이 가주세요.”
“네, 선생님.”
탈의실까지 걸어가는 이수정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조용히 거절 의사를 밝힌 이수정은 탈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검진받는 동안 고계득의 말이 사실을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꼼꼼한 진료와 환자에게 따뜻한 태경의 모습을 보니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일이 잘못된 것만 같았다.
‘제가 시키는 대로 인터뷰만 해 주시면 됩니다.’
아무리 자신이 처한 상황이 급하다고는 해도 도저히 거짓으로 인터뷰를 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하! 미치겠다. 정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결국 뾰족한 수 없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탈의실을 나왔다.
그 뒤 태경이 검진 결과를 자세히 알려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딴생각이 가득한 이수정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납하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대충 인사를 마친 이수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임정숙 간호사가 설명과 함께 진료실 문을 열었다.
“……!”
그런데 그 순간 이수정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던 태경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진료실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드르륵-
그 즉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태경이 곧장 밖으로 나가더니 진료실 대기 의자에 앉아 있던 현웅이에게 다가갔다.
“우리 친구 이름이 뭐야?”
“현웅이요. 차현웅.”
“현웅아 너, 혹시 어디 아프니?”
“……네.”
힘없는 목소리와 함께 현웅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금 전,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가 문을 열기 전 이수정에게 아이에 관한 질문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확 번지는 분뇨 냄새에 이끌려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몇 시간 전 대기실에서 이찬희가 뭘 그렇게 쳐다보냐고 했을 때 태경의 시선이 머문 곳도 현웅이었다.
‘아까보다 더 진해졌어.’
다섯 번째 바이탈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때는 2단계인 연한 암모니아 냄새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까보다 그 냄새의 강도가 확 짙어졌다.
아이에게서 나는 냄새의 강도가 짙어졌다는 건 뭔가 응급으로 갈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기에 살펴보는 게 맞았다.
태경의 눈빛이 아이를 살폈다.
꼭 쥐고 있던 주먹을 만져 보자 손바닥이 축축했다. 손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의 통증인 것이다.
“현웅아! 너 아파?”
진료실에서 나온 이수정이 이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어, 엄마 나 아파.”
그 순간 다른 곳에 팔렸던 정신이 돌아오며 흩어졌던 집중력이 아들에게 향했다.
아이가 그 좋아하던 핸드폰 게임도 하지 않고 표정도 안 좋았다. 그러고 보니 현웅이가 진료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뭔가를 말하려고 했던 게 기억났다.
“현웅아. 너 아까 엄마 들어갈 때도 아팠어?”
“응.”
“근데 왜 말 안 했어?”
“엄마가 아까 바쁘다고 조용히 있으라고 해서 말 못 했어.”
“그래도 엄마한테 말을 했어야지.”
아이에게 신경 쓰지 못한 속상한 마음에 이수정의 목소리가 높아진 사이, 태경의 별안간 현웅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어머니, 죄송하지만 대화는 조금 이따가 하고요. 일단 아이 좀 볼게요.”
현웅이에게서 나던 3단계 냄새가 미세하지만, 포르말린 냄새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상태가 응급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거저거 따질 때가 아니라 아이가 우선이었다.
“현웅아. 아픈 곳이 어디야?”
태경이 아이를 조심스럽게 베드에 눕히며 물었다.
“아랫배요.”
“우리 무릎 좀 구부려 볼까? 여기야?”
현웅이가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자 태경이 손을 더 아래로 가져갔다.
“그럼, 여기야?”
아이의 고개가 또 한 번 좌우로 흔들렸다. 그러자 뭔가 눈치챈 태경이 아이에게 허락을 구하고 바지를 내려 보았다.
“현웅아. 선생님이 바지 좀 잠깐 내려도 될까?”
“네.”
바지를 내리고 속옷을 조심스럽게 내리자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이의 한쪽 고환이 부어 있었다.
“어머! 세상에!”
현웅이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이수정이 상당히 놀란 얼굴로 태경을 쳐다봤다.
“선생님, 우리 현웅이 왜 이래요?”
“현웅이 나이 또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우선 염증이 생긴 것일 수도 있고요. 다른 하나는 고환이 뒤틀린 것일 수도 있어요.”
“네!? 고환이 뒤틀려요?”
“네.”
“선생님, 그럼 어떡해야 하나요?”
이수정은 놀란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평소라며 아이의 작은 반응도 바로 알았을 텐데,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아이가 아픈 줄도 몰랐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선생님. 우리 현웅이 수술해야 하나요?”
“우선 고환염전이고 뒤틀린 상태로 시간이 지체되면 피가 안 통해서 괴사가 될 수도 있어요.”
“괴사라면…… 설마?”
“조금 과격한 표현이지만 쉽게 생각해서 썩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네!?”
고환이 썩을 수도 있다는 말에 충격받은 이수정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지금 급하니까 현웅이부터 빨리 볼게요.”
“선생님, 우리 현웅이 좀 치료해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당연히 할 겁니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임정숙 간호사가 놀란 이수정은 진정시키는 사이 태경은 손으로 현웅이의 고환을 들어 올리며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어때, 현웅아? 지금도 똑같이 아파? 아니면 조금 덜 아파?”
“똑같은 거 같아요.”
“그래. 초음파 다시 줘 보세요.”
“네, 선생님.”
임정숙 간호사가 빠르게 초음파 기계에 젤을 짜서 건네자 태경이 초음파로 고환을 살펴봤다.
화면 위에 흑백으로 타원형의 고환이 보인다.
기계를 조작하자 화면 이곳저곳에 붉고 파란 것들이 나타났다.
‘역시 Torsion of testis였네.’
태경이 속으로 예상했던 대로 현웅이의 통증의 원인은 토션 오브 테스티스(Torsion of testis, 고환염전)였다.
고환염전은 정삭이 꼬이면서 고환에 혈액순환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응급 질환이다.
꼬인 상태로 계속 있으면 고환에 혈액이 통하지 않아 괴사가 진행되어 고환을 제거할 수도 있으며, 자칫 불임이 될 수도 있기에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어머니. 여기 좀 보시겠어요? 여기 보시면 지금이 붉은 것과 파란 것이 혈액의 흐름을 뜻하거든요. 보시면 지금 정체가 되어 있는데, 이게 꼬일 때 이렇게 나타나는 거예요.”
“흑! 선생님 제발 우리 현웅이 좀 잘 치료해 주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아이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싶은 불안감과 걱정이 폭발한 이수정은 기어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부모는 아이가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내 아이에게 작은 상처라도 생기면 그 속상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중요한 신체 부위가 잘못됐다는 사실에 눈앞이 아득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게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아 스스로가 너무 미웠다.
“선생님, 우리 현웅이 좀 꼭 고쳐 주세요.”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모은 이수정은 태경에게 빌다시피 아이를 부탁했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모습이 얼마나 절절한지 태경은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사실 태경은 이수정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올 때부터 뭔지 모르게 딱딱한 이수정의 태도와 대기실에서 아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모습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를 향한 걱정하는 모습은 누구보다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머니 고환염전은 응급이지만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치료가 가능한 거죠? 수술을 해야 하나요?”
“수술이 필요하긴 해요. 다시 꼬일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 전에 우선 꼬인 걸 풀면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리고 꼭 비뇨의학과에 들리셔서 수술 상담받으세요.”
“현웅이의 꼬인 부분을 풀 수 있다는 거죠?”
“네. 여기 고환 뒤로 하나의 끈이 있거든요. 거기가 이렇게 회전하면서 꼬인 거예요. 그러면 반대로 돌려서 풀어 주면 됩니다.”
태경이 현웅이의 상태를 확인하며 설명했지만, 경황이 없는 이수정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아이와 태경을 번갈아 쳐다봤다.
“현웅아, 선생님이 아프지 않게 고쳐 줄게.”
“……네.”
태경이 현웅이의 꼬인 고환을 풀기 위해 신중하게 처치에 들어갔다.
사실 지금 아이의 고환이 어느 방향으로 꼬였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아이의 오른쪽 고환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꼬이곤 한다. 그러므로 반대로 돌려서 풀어 주면 될 것이다.
고환염전은 정확히 비뇨의학과 쪽 질환이었다. 우리병원에도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있었지만, 지금 당장 부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파하는 아이를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점점 더 고환에 피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태경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고환을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고 한 바퀴를 다 돌리기 전에 멈추고 아이에게 물어봤다.
“현웅아, 어때? 아픈 게 덜하니?”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조금만 더 있어 보자.”
“선생님……?”
상황을 조금 지켜보려고 하던 그때 현웅이가 태경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덜 아파요.”
아이의 말을 들은 태경은 같은 방향으로 고환을 조금 더 돌렸다. 그러자 현웅이와 어울리지 않던 포르말린 냄새가 급격히 다운되더니 다섯 번째 바이탈의 단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태경은 그 즉시 초음파를 보면서 혈액의 흐름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게 초음파로 상태를 몇 번 보고 나더니 화면상 고환의 혈액 흐름이 확연히 달라진 게 보였다.
“이제 됐네요. 여기 보시면 아까랑 다르죠? 혈액 흐름이 돌아왔어요.”
전문가가 아닌 이수정이 보기에도 조금 전 초음파 화면과 지금 화면이 다른 걸 알 수 있었다.
“현웅아, 지금은 어때?”
“아직 조금 아픈데, 아까보다는 훨씬 덜 아픈 거 같고 점점 괜찮은 거 같아요.”
현웅이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통증으로 일그러졌던 얼굴에서 더 이상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 현웅아!”
옆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마음을 졸이던 이수정은 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미안함을 전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 괜찮아. 나 이제 안 아파.”
현웅이는 놀란 엄마를 위로하듯이 괜찮다며 웃어 보였지만, 이수정은 그 모습에 가슴이 더 아팠다.
“어머니, 많이 놀라셨죠?”
이수정이 진정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던 태경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해요.”
“현웅이 이제 괜찮아요. 그래도 비뇨의학과 진료는 꼭 보셔야 해요. 혹시 저희 외래로 잡아 드릴까요?”
“아니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집 근처로 가겠습니다.”
이수정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태경에게 진료를 봤던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기에 더 고마웠다. 하지만 그만큼 미안함과 민망함이 가득했기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고계득과의 약속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일단 빨리 집으로 가서 현웅이를 쉬게 해 주고 싶었다.
“네. 그렇게 하셔도 돼요. 현웅이 약 처방해 드릴게요.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병원 꼭 가시고 혹시라도 그 전에 같은 상황이 생기면 무조건 가까운 응급실로 가세요.”
“네,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아니요. 보호자께서 왜 죄송해요. 별말씀을요. 현웅아, 고생했어.”
“선생님 감사해요.”
“그래, 현웅이 잘 가. 보호자분 안녕히 가세요.”
“처방전 안내 도와드릴게요.”
두 사람이 임정숙 간호사와 함께 진료실을 나가고 태경이 초음파 기계와 진료 베드를 정리하고 있던 그때였다.
“어머!”
“보호자분 왜 그러세요?”
별안간 임정숙을 포함한 직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진료실 안까지 뚫고 들어왔다.
철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