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88화 (187/472)

188화. 더러운 짓

별안간 임정숙을 포함한 직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진료실 안까지 들려왔다.

철컥-

“……!”

그 소리에 즉시 밖으로 나온 태경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놀라며 뛰어갔다.

조금 전, 현웅이와 함께 진료실을 나갔던 이수정이 쓰러져 응급실로 옮겨지고 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수납하는데 갑자기 어지러운 듯 머리를 만졌어요. 그러더니 살짝 휘청하더니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태경의 물음에 접수처에서 볼일을 보고 있던 최모나가 상황을 전했다.

“쓰러지면서 부딪히진 않았고?”

“네, 없습니다.”

두 사람은 이수정을 이동 베드로 옮기며 급히 응급실로 향했다.

“엄마?”

갑자기 쓰러진 엄마를 보며 깜짝 놀란 현웅이가 응급실로 따라왔다.

“우리 엄마 왜 그래요?”

“현웅아, 엄마 괜찮으실 거야.”

“엄마 진짜 괜찮아요?”

“그럼. 선생님들이 엄마 봐주실 동안 선생님이랑 같이 있을까?”

“엄마 꼭 일어나게 해 주세요.”

임정숙 간호사가 놀란 현웅이를 달래는 사이 태경은 이수정의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잠시 뒤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 결과 나왔습니다.”

태경은 빠르게 마우스를 클릭하며 모니터를 확인했다. 다행히 이수정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선생님, 결과 어떻게 나왔어요?”

현웅이와 함께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걱정된 얼굴로 다가왔다.

“결과상으로 큰 이상 없고 미주신경성 실신이네요.”

“정말 다행이네요.”

“아까 현웅이 일로 많이 놀라셨나 봐요.”

고계득의 일과 생각지도 못했던 아들의 응급 상황까지 겹쳤던 이수정은 극심한 긴장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그로 인해 순간 급격히 낮아진 혈압으로 뇌로 가는 혈류량이 감소하며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 미주신경성 실신을 겪은 것이다.

이수정은 심장이나 뇌 질환 증상이 있는 질환적 미주신경성 실신이 아니었기에 심신 안정과 함께 휴식을 취하면 회복될 것이다.

“현웅이가 많이 놀랐는데 데려와서 알려 줘야겠어요.”

“참! 나 선생님은요?”

“현웅이 보고 계세요.”

“다 봤습니다.”

임정숙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장한 사람은 우리병원 비뇨기의학과 담당 나고한이었다.

마침 오늘은 그가 근무하는 날이었지만 아까 부를 수 없던 이유는 수술 중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수정이 쓰러지고 검사를 진행하는 사이 현웅이의 상태를 정확히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태경이 호출했다.

“퇴근 시간 다 됐는데 콜해서 죄송하네요.”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습니다. 그리고 저야 일찍 가지만 원장님과 우리 외과팀은 밤새 병원 지키고 계신데 부르면 얼른 와야죠.”

“수술은 잘하셨어요?”

“오늘도 한 환자분에게 아트를 선사해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나고한은 언제나 그렇듯이 유쾌하고 흥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이 상태는 제가 잘 확인했습니다.”

“어때요?”

“저 깜짝 놀랐습니다.”

“왜요? 아이가 아프다고 하나요?”

나고한의 말에 행여 현웅이가 또 아픈 건 아닌지 태경은 걱정이 앞섰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원장님이 도수 정복을 정확히 하셨던데요?”

나고한이 말한 도수 정복은 손으로 꼬인 고환을 푸는 것으로 태경이 했던 응급 처치를 말한 것이다.

“저 같은 비뇨의학 쪽 사람이야 그쪽 전문가라 잘 알지만, 응급실 선생님들도 잘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푸셨어요? 저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에 중학생을 응급 처치한 경험이 있어서 잘된 거 같습니다.”

“선생님은 손재주가 타고나셨네요. 아무튼 이제 통증도 없다고 하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근데 다음에 또 한 번 꼬이면 그때는 수술적 치료가 꼭 필요할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아까 보호자에게 그렇게 전달했습니다. 아이 봐주셔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필요한 일 있으시면 언제든 콜 주세요. 그럼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생하세요.”

“수고했어요.”

나고한이 응급실을 나가고 태경은 이수정의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회진을 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 병동에 좀 다녀올게요.”

“네, 선생님.”

태경은 아무래도 아이에게 갑자기 닥친 응급 상황에 이수정이 많이 놀라서 실신한 거라고 생각하며 응급실을 나갔다.

“태, 아니 원장님!”

응급실을 나가자 반대로 응급실로 들어오고 있던 이동훈이 태경을 급하게 불러 세웠다.

“선배님 아직 안 가셨네요? 콩나물은 잘 다듬으셨고요?”

“지금 콩나물이 문제가 아니야.”

“콩나물이 문제가 아니면 뭐, 다른 나물이 문제인가요?”

“그런 농담 따먹기 할 때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장난으로 던진 농담에 이동훈은 평소와 달리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괜찮은 거야?”

“괜찮다니 뭐가요?”

“그 왜 조금 아까 쓰러진 아이 엄마 말이야. 그 여자 괜찮으냐고?”

“이수정 환자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름이 이수정이야? 하! 그 남편 이름이 뭐였더라. 차, 차 뭐였는데…….”

“선배님 아는 사람이세요?”

태경은 별생각 없이 이동훈과 대화를 하며 병동으로 가기 위해 계단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김 원장님! 아무래도 이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잘못되다니 뭐가요?”

“차대한!!”

“네?”

태경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던 이동훈은 별안간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마주치며 속 시원한 얼굴을 했다.

“이제 생각났네. 맞아. 차대한 환자.”

이동훈은 조금 전, 이수정이 아들과 함께 수납하러 나왔을 당시 대기실에서 최 팀장과 대화 중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수정을 보고 아무래도 낯이 익은 얼굴에 계속 생각하다 외상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차대한의 부인이라는 게 기억났다.

“차대한이요?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순전히 내 느낌인데…….”

이동훈은 천천히 걸어가던 태경을 복도 벽으로 데려가며 은밀히 말을 이었다.

“이거 왠지 신화대병원이랑 관련 있는 거 같아.”

“갑자기 신화대병원은 또 무슨 소리예요?”

“고계득 말이야.”

반갑지 않은 이름이 나오자 태경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고계득이라니요? 알아듣게 이야기하세요.”

“일단 다른 데 가서 이야기하자.”

철컥-

두 사람은 진료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수정 씨 남편이 차대한이라고 현재 신화대병원 외상 중환자실에 있어. 뺑소니를 당했거든.”

“뺑소니요?”

차대한은 태경이 나간 다음에 들어왔기에 전혀 누군지 알지 못했다.

“응. 수술은 잘됐는데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내가 그때 수술실 들어가서 기억하고 있었거든.”

그날 이동훈은 새벽에 응급으로 차대환의 수술을 들어갔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사정이 딱해서 한동안 의료진들 사이에서 화제였기에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TICU(trauma intensive care unit, 외상 중환자실)가 돈이 많이 깨지잖아. 그런데 차대한 환자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거든. 나, 병원에 있을 때도 식당에서 파트장이 딱하다고 여러 번 그랬었어. 게다가 입원한 남편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인지 모른다니까.”

“근데 이게 고계득이랑 무슨 상관이라는 거예요?”

지금까지만 들어서는 이수정이 병원에 진료 본 것과 고계득을 연관 짓기는 무리가 있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신화대병원이랑 여기가 가까워?”

이동훈의 말대로 신화대병원과 우리병원 사이 거리는 한 시간 정도 거리로, 가깝다고 할 순 없었다.

“그리고 남편이 TICU에 입원한 보호자가 그쪽 병원이 아니라 굳이 여기까지 와서 유방 초음파를 본다고? 내가 저번부터 계속 그랬잖아?”

태경은 한동안 이동훈한테 자주 듣던 말이 있었다.

‘고계득 조심해야 해. 그 인간이 절대 당하고 있을 놈이 아니라니까. 독이 바짝 올랐다고.’

아무 연고도 연줄도 없는 사람이 벼랑 끝에서 기어 올라오는 심정으로 병원장이 된 인물, 그게 바로 고계득이었다.

오직 병원에 이익만을 갈구하며 이사장의 뒤라도 닦아 줄 것처럼 아부를 떨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켜 온 것이다.

그 뒤 고계득은 병원 내에서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며 자신의 위치를 과시했다.

이동훈은 그런 고계득이 태경에게 망신당한 뒤로 그가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혼자 소설 쓰는 걸까 봐 혹시나 해서 파트장한테 안부 묻는 척 전화했었거든. 요즘 잘 지내냐고 하니깐 특별한 건 없는데 한동안 원장이 TICU 문이 닳도록 와서 짜증 났다고 하더라니까.”

태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진료실에서부터 이수정은 예민한 듯 보였으며 상당히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이동훈이 열변을 토하듯 쏟아 낸 이야기와 연관을 짓자면 충분히 이상해 보이긴 했다.

‘고계득과 보호자 그리고 환자라…….’

태경 역시 고계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의사의 중심이 환자인 자신과 달리 오롯이 이익과 환자를 차별하는 그의 가치관 또한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이수정과 고계득을 연관 지을 순 없었다.

정말 이동훈의 말이 사실이라면 생각보다 큰일이기에 제대로 된 확인이 필요했다.

“태경아, 이거 확실하다니까. 고계득이 환자 엮어서 뭔가 더러운 짓을 꾸미고 있는 거라고.”

“그렇다면 이럴 게 아니라 확인해 봐야겠어요.”

“확인하다니 어떻게? 고계득한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거잖아.”

“고계득 말고요.”

“고계득이 아니면 설마……? 이수정 씨?”

“네. 이수정 씨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확실해요.”

계속 생각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당사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근데 이수정 씨가 말을 하려고 할까? 자기 남편이 신화대병원에 입원까지 하고 있는데 말하기 쉽지 않을 거야.”

“그래도 해 봐야죠.”

이동훈과 심각한 대화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다행히 쓰러졌던 이수정이 깨어났다.

“좀 괜찮으세요?”

태경은 이수정과 현웅이와 함께 진료실에 자리했다.

“네, 이제 괜찮아요. 아까 좀 어지러웠는데 그래서 쓰러진 거 같아요.”

“환자분이 쓰러지고 나서 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괜찮고요. 아무래도 과도한 긴장이나 스트레스로 잠깐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쓰러진 것 같습니다.”

태경의 말에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진 않았지만, 이수정은 자신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쓰러졌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남편 일과 고계득, 현웅이의 일까지 겹쳐 머릿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지금부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자신을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저 쓰러져 있던 사이에 선생님이 비뇨기과 선생님 불러서 우리 현웅이 봐주셨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마음이 복잡했지만, 이수정은 현웅이를 신경 써 준 태경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보다 환자분? 제가 잠시 물어볼 게 있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저한테요?”

질문이 있다는 태경의 말에 이수정은 살짝 긴장한 듯 보였다.

“네, 혹시 남편분 성함이 차대한 씨 되시나요?”

“……!”

남편의 이름이 나오자 급격히 긴장한 모습을 보인 이수정이 말을 아끼는 사이,

“맞아요! 우리 아빠 이름 차대한이에요.”

장난감 비행기를 만지던 현웅이가 엄마 대신 해맑은 표정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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