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93화 (192/472)

193화. 태경이 설치한 덫

새롭게 등장한 판넬에는 ‘금두꺼비’와 ‘뺑소니’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지금 상당히 흥미로운 단어가 등장했는데요? 금두꺼비와 뺑소니. 이게 어떤 뜻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와 안타까운 환자에 대한 키워드입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사전 인터뷰 때 선생님께 기억에 남는 환자와 안타까운 환자에 대한 에피소드를 물어봤는데요. 한 시간 동안 고민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사실 모든 환자가 기억에 남아서 어느 한 분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 먼저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어떤 분이었는지 궁금한데요.”

“60대 여자분이셨는데 이분께서 위암 진단을 받으셨어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길래 놀라신 것 같아 위로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제야 해방이네요.’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환자분께서요?”

“네. 알고 봤더니 남편분과 계속 사이가 안 좋았는데 3년 전부터는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남편분과 함께 살고 있지만, 3년 동안 말을 일절 하지 않는다는 소리인가요?”

“네. 알고 봤더니 부부 사이에 좀 사연이 있었습니다.”

태경의 이야기와 함께 화면에는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한 환자의 사연이 나오기 시작했다.

위암에 걸렸던 60대 후반의 환자는 많은 환자 중에서도 태경에게 기억에 남는 환자였다.

암 수술을 잘하는 의사로 입소문이 타기 시작할 즈음, 시집간 딸 손에 이끌려 온 환자였다.

‘환자분 다행히 전이된 곳이 없어요. 수술 후 치료를 잘 받으시면…….’

‘선생님, 세상에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제 마음이 아무렇지 않네요.’

옆에서 우는 딸과 달리 환자는 태연하게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선봐서 결혼한 남편이랑 지금껏 살면서 아내 대접은커녕 한 겨울 처마 밑 고드름이랑 사는 것 같았어요.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시어머님께 구박받고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남편의 구박이 시작됐어요. 이렇게 살아온 제가 속이 멀쩡할 리가 없죠.’

평생 따뜻함은 없이 찬바람 부는 남편과 산 환자는 심적으로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자식들도 제 짝들 찾아서 다들 잘 살고 손주들도 봤으니 전 더 바라는 거 없어요. 그냥 눈감고 편하게 쉬고 싶어요.’

충분히 수술하고 완치가 가능한 케이스였기에 태경은 환자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다친 환자는 거부했다.

환자를 포기하는 법이 없는 태경은 마음을 돌릴 사람은 남편뿐이라는 생각에 딸을 통해 남편과 만났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남편이 그동안 아내를 힘들게 하고 3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이없게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오해 때문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며느리가 못마땅했던 시어머니는 결혼한 아들에게 며느리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려 했다가 가족들의 반대로 억지 결혼을 한 거라고 주장했고, 아들을 이를 믿었다.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었던 남편은 그때부터 배신감에 모질게 대했다. 마음에 다른 남자를 두고 껍데기만 자신과 있다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시어머니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부부로 연을 맺은 두 사람을 평생 오해와 미움 속에 살게 만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딸은 눈물을 쏟았고 아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그 때문에 스트레스로 자신이 병에 걸린 거라고 소리쳤다.

아내에게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낀 남편은 자신이 할 일을 아내가 수술을 받도록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남편은 딸의 집에 머물고 있는 아내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매일 서울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갖은 노력과 300장이 넘는 손편지로 아내의 얼어붙은 마음을 간신히 녹일 수 있었다.

“와! 이게 진짜 선생님께서 진료하셨던 환자분 이야기라는 거죠?”

“네, 맞습니다.”

환자의 사연이 끝나자 진행자는 손뼉을 치며 놀라워했다.

“그래서 그 환자분께서는 수술 잘 받으셨나요?”

“네. 수술도 잘되고 남편께서 지극 정성으로 돌봐 주셔서 완치 판정도 받았습니다.”

“정말 잘됐네요. 그럼 금두꺼비는 무슨 이야기인지…….”

“남편분께서 저 때문에 두 분의 오해가 풀렸고 부인을 살려 주셨다면서 감사 인사를 오셨어요. 남편분이 농사를 지으셔서 감자를 몇 박스 주셨는데, 거기 금두꺼비가 있더라고요.”

“순금으로 된 두꺼비 모양에 금덩어리요?”

“네, 꽤 큰 거였는데 저한테 선물로 주고 싶어서 일부러 넣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당연히 돌려드렸죠.”

“그럼, 그 뒤로 두 분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네, 아내분 평생소원이 해외여행을 가는 거였는데, 1년 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추억도 쌓고 현재도 잘 지내고 계십니다.”

“와, 정말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네요. 무엇보다 환자분의 결말이 행복해서 다행입니다.”

진행자는 지금까지 웃고 있던 얼굴을 정리하며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판넬을 들었다.

* * *

신화대병원 원장실-

“방송국 놈들 눈깔이 삐었나? 섭외할 사람이 얼마나 없으면 저딴 놈을 섭외할 수 있는 거지?”

원장실에서 방송을 보고 있는 고계득은 소파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태경이 한 말을 비웃고 있었다.

“환자가 느끼는 외로움과 두려움? 병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러니까 교수 임명도 못 받고 쫓겨났지.”

갑작스러운 태경의 방송 출연 소식을 접하고 고계득은 살짝 긴장하며 시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방송 내용이 별거 없자 태경을 씹으며 천천히 집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쥐뿔도 없는 놈이 어떻게 방송까지 출연했을까? 참나! 그나저나 오늘 동영상이 올라온다고 했는데 왜 안 올라오지?”

분명 이수정이 오늘 너튜브 동영상이 올라온다고 했었다.

게다가 배달된 화분과 카드에 적힌 9시가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자 고계득은 이수정에게 직접 연락을 하려 하고 있었다.

“자! 그럼 다음 키워드를 볼까요? 뺑소니라고 적혀 있는데, 안타까운 환자에 관한 사연인가요?”

별안간 들려온 뺑소니라는 단어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손길이 멈칫했다.

고계득은 조금 전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진행자가 소개했던 뺑소니 키워드를 보지 못했다.

“키워드만 봐서 마음이 좀 무거워지는데 어떤 사연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작진에 따르면 선생님께서 방송 출연을 결심하신 이유가 바로 이 환자분 때문이라고 하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방송을 통해 환자분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으면 해서 출연을 하게 됐습니다.”

“어떤 사연일까요?”

“뺑소니를 당해 3개월째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의 사연입니다.”

쥐고 있던 핸드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고계득은 재빨리 TV 소리를 높이며 집중했고, 그사이 방송 화면은 제작진이 촬영했던 사고 현장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차대한이 교통사고를 당한 그 장소와 최초 신고자 그리고 형사의 인터뷰가 차례대로 나왔다. 그리고 현재 차대한의 상태와 함께 도움을 호소하는 이수정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저, 저, 저……. 저 여자가 왜 저기서 나오는 거지?”

화면을 본 고계득은 사고 현장과 함께 이수정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대번에 차대한 환자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올라와야 할 태경의 저격 영상 대신 방송에 나온 이수정의 모습이 황당했다.

“환자와 가족분들의 안전을 위해 신상을 공개해 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저 사건을 알고 있는 목격자분이 계신다면 지금 자막에 나가고 있는 번호나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계득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갈 즈음 방송에서는 그를 향한 태경의 참교육 멘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키워드 토크의 마지막인 사자성어 시간인데요. 우리 김태경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오늘의 사자성어는 어떤 건지 공개해 주시죠.”

진행자의 멘트에 태경이 들고 있던 판넬을 화면에 비췄다.

“바로 호질기의(護疾忌醫)입니다.”

“호질기의군요. 저는 솔직히 좀 생소한데요. 어떤 뜻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어요?”

“병을 숨겨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잘못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기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뭔가 의미심장한 사자성어네요. 호질기의를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네, 제가 이 자리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때 카메라가 태경을 줌으로 잡으며 화면에 태경의 얼굴이 정면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방금 소개해 드린 호질기의처럼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다른 이들의 충고는 전혀 듣지 않는 어느 잘못된 의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좀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의료계 쪽에 안 좋은 사건들이 있었죠.”

진행자가 자연스럽게 말하며 왕 작가가 미리 적어 준 멘트를 이어 나갔다.

“그중에는 의사와 환자의 분쟁 사건도 있었고요. 게다가 얼마 전에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정년을 맞이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다들 돈 버는 데 혈안이 돼서 진짜 의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몇몇 의사들은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환자들을 우습게 여긴다고 하셨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의사들이 환자를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병을 낫게 하는 일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죠. 사실 의사의 본분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죠?”

“맞습니다. 물론 지금도 환자를 위해 땀을 흘리는 의사 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환자를 위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환자의 목숨을 갖고 흥정하고 더러운 일을 일삼는 의사도 있기에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방금 환자의 목숨을 갖고 흥정한다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셨는데, 무슨 말씀이시죠?”

“형편이 어려운 환자가 병원비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병원에 장기로 입원하게 되면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거든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런 경우 환자나 보호자가 돈 걱정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의사들도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 차원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연결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죠.

보통은 이렇게 환자를 위해 노력하는 의사들이 많고 이게 정상이죠. 그런데 환자와 보호자의 이런 절박한 마음을 자신의 더러운 목적을 위해 이용한 의사가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태경은 고계득의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소 거친 표현입니다만,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를 이용했다는 건가요?”

“네, 잘못 없는 동료 의사를 매장하기 위해 거짓으로 진료를 보고 그에 대한 대가로 돈을 주겠다며 보호자를 회유한 일이 있었습니다.”

탁-

TV를 통해 태경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계득은 너무 놀라 손에 힘이 풀려 쥐고 있던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지금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가 자신이 이수정에게 꾸민 일인 것과 동시에, 태경이 자신을 두고 저격하는 말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제가 옆에서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죠?”

“네. 심지어 그 사람은 의사로서 사회적 지휘도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수정과 차대한의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태경은 오직 고계득에게만 포커스를 맞춰 영리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아무런 힘이 없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그런 제안을 하면, 과연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해 갈수록 고계득의 얼굴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점점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바짝 마른 입술과 눈 밑은 파르르 떨려 왔으며,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충격에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지금 김태경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저도 놀라서 정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의사 가운을 입을 자격은 없는 사람이라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진행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과 함께 태경의 말에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그 사람은 선생님께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알까요?”

“아니요. 전혀 모르고 있을 겁니다.”

“뭔가 상당히 흥미롭네요. 그 사람이 누군지는 오직 선생님만 알고 있기에 지금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분들도 상당히 궁금하실 겁니다.

이제 저희 프로의 하이라이트인 시험 시간으로 넘어갈 시간입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문제의 그 의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요.”

“훗!”

순간 태경은 자신을 줌인하며 잡는 카메라를 향해 의도적으로 실소를 터트렸다. 그 웃음은 지금 TV를 보고 있는 고계득에게 보내는 웃음이었다.

그리고 아주 당당한 눈빛과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도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을 텐데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다면 다시 한번 떠올려 봤으면 좋겠네요.”

더러운 쥐새끼를 포획하는 고양이처럼 태경은 방송을 이용해 고계득을 포획하고 있었다.

“같은 의사로서 부끄러운 짓 그만하고 의사로서 양심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진짜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가 되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두 번 다시 환자를 이용하는 그딴 짓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드르륵-

태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고계득은 책상 위에 있던 카드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제야 카드와 화분 그리고 의문의 문자까지 전부 태경이 보냈다는 걸 눈치챘다.

“하! 김태경…….”

부르르 떨리는 입술로 태경의 이름을 속삭인 그는 카드를 잡더니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김태경! 이 자식이 나를!”

TV에서 나오고 있는 방송이 자신의 저격 방송이라는 사실에 고계득은 분노했다.

“나를 물 먹여!”

탁- 쨍그랑-

어금니를 바득바득 갈며 분노하던 그는 급기야 TV 속 웃고 있는 태경의 얼굴을 향해 화분을 던졌다.

둔탁한 소리와 바닥에 떨어진 화분은 산산이 조각났다.

마치 그 모습이 태경을 매장하려던 고계득의 미래의 모습과 같았다.

“김태경! 김태겨엉~~!”

쾅- 쾅-

주먹으로 책상 치며 태경의 이름을 부른 고계득은, 한쪽으로는 이 사태를 어떻게 빠져나갈지 궁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방송이 끝나면 전 국민의 ‘고계득 찾기 술래잡기’가 시작된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태경이 설치한 덫에 걸렸다는 사실은 어리석게도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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