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그 날의 진실
SBC 방송국
-여보세요.
“네, 방과 후 시험 시간 팀입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어제 방송 보고 뺑소니 사건 제보를 하고 싶어서 연락드렸는데요.
“아, 그러세요. 지금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네, 맞아요.”
방송이 나간 후 제작진 사무실에는 그야말로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가 그 사건을 목격한 거 같은데요?
-제 블랙박스에 뭔가 찍힌 거 같아요.
-제가 범인입니다.
사람들의 엄청난 관심과 함께 수백 통에 전화가 왔지만, 아쉽게도 장난 전화도 만만치 않았으며 아직 뚜렷하게 사건에 도움이 될 만한 제보는 없었다.
“좀 건질 만한 게 있어?”
예능국장을 만나고 온 박필승은 연출팀과 함께 모여 있는 왕 작가에게 다가갔다.
“제보는 역대급으로 많이 오는데 아직 확실한 게 없네요. 경찰서는 어떻대요?”
“아까 담당 형사님이랑 연락했는데, 거기도 제보는 엄청 오는데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대.”
“그래도 사람들 관심이 많아서 다행이에요. 참! 국장님은 왜 갑자기 호출하신 거예요?”
“그게……. 우리 팀 보너스 받는다!”
“정말요?”
“우와!”
보너스라는 소리에 제작진은 환호를 지르며 기뻐했다.
“어제 방송 최고 시청률 나왔다고 국장님이 이번 달에 보너스 나갈 거래.”
태경이 주인공으로 나간 특집 방송이 동 시간대는 물론, 어제 하루 통틀어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오전에 시청률이 공식적으로 뜨자마자 예능국장은 사무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태경의 이름을 연달아 외치며 기뻐했다.
“진짜. 김태경 선생님이 우리 은인이나 마찬가지네요.”
“마찬가지가 아니라 은인이지. 여러 사람 살렸잖아.”
“그건 맞아요. 정말 감사한데 뭐라도 보내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선생님이랑 통화하면서 보답하고 싶다니까 괜찮다고 거절하시더라고.”
“어쩜 사람이 저렇게 인성까지 완벽할까 싶어요. 참 대단한 분이에요.”
“대신 뺑소니 사건 제보 관련해서 잘 좀 도와 달라고 부탁하셨어.”
“당연하죠. 일단 제보 오는 것 중에 좀 중요하다 싶은 건 바로바로 형사님께 보내드리고 있어요.”
“잘했어. 제보 전화가 많아서 힘들겠지만, 보너스 생각하면서 다들 힘내자고.”
빗발치는 전화 속에서도 제작진은 이수정 가족을 돕기 위해 모든 전화를 친절히 받았다.
* * *
우리병원
“선생님! 세상에 어제 텔레비전 나온 거 잘 봤어요.”
“우리 선생님 인물이 좋아서 그런지 화면발이 진짜 잘 받던데요?”
“상금 타신 것도 축하드려요.”
방송이 나간 다음 날, 회진을 돌고 있는 태경은 들어가는 병실마다 축하를 받고 있었다.
“나는 진작 선생님이 왜 TV에 안 나오나 했는데 이제야 나오네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자들 하나같이 본인들이 겪은 일처럼 진심으로 축하를 해 줬다.
심지어 병원 내 입원해 있는 모든 환자는 전날 태경이 한 문제씩 통과할 때마다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처럼 환호하며 열광했다.
“선생님!!”
아까부터 눈만 마주쳤다 하면 부담스러운 표정과 함께 다가오는 이찬희가 역시나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태경에게 다가왔다.
“왜, 또?”
“왜 또라니요. 상금 말이에요. 그 상금 어떻게 하실 거예요?”
방송이 나가고 이찬희의 관심사는 온통 상금에 있었다. 물론 상금을 달라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유가 아니라 워낙 돈에 큰 관심이 없는 태경이 저 어마어마한 상금을 어디에 사용할지가 심히 궁금했다.
“그걸 이 선생이 왜 그렇게 궁금해하는데.”
“엄청난 금액을 선생님께서 어떻게 사용할지 궁금하잖아요.”
“이찬희?”
“네, 선생님.”
“뒤돌아봐.”
“뒤요? 갑자기 뒤는 왜…….”
“저기 보이지?”
태경의 말을 듣고 이찬희가 뒤를 돌아보자 최모나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빨리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상금은 그만 궁금해하고 얼른 가서 환자 봐. 뭐해? 안 가?”
“아니요. 갑니다. 가요.”
태경이 눈에 힘을 주자 이찬희는 냉큼 응급실로 뛰어갔다.
“전 가끔 이 쌤 볼 때면 꼭 제 막내 남동생 보는 것처럼 귀엽다니까요.”
접수처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어제도 선생님 마지막 단계 성공했다니까 제일 신나서 의국실을 뛰어다녔어요.”
“이 선생이 저보다 더 신난 거 같네요.”
“참! 선생님이 부탁하신 건 잘 처리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저희 직원들이 해야죠.”
“저기, 선생님……?”
태경이 임정숙 간호사와 함께 진료실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현웅이 안녕?”
“현웅이 안녕하세요. 해야지.”
“안녕하세요. 선생님.”
임정숙 간호사와 인사를 나눈 사람은 이수정과 아들 현웅이었다.
“선생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네, 진료실로 들어가시죠.”
이수정은 아들의 손을 잡고 태경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현웅이 이제 괜찮니? 아프지 않아?”
“네, 이제 하나도 안 아파요.”
태경이 현웅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의 상태에 관해 물었다.
“약은 잘 먹고 있죠?”
“네. 잘 먹고 있어요. 실은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이수정이 우리병원을 찾은 이유는 태경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전날 방송을 본 이수정은 남편의 사고 소식 장면을 보다 눈물을 쏟았다. 간략하게 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방송이 생각보다 분량도 길게 나가고 아주 자세하게 소개됐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자마자 제작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왕 작가에게 전화를 건 이수정은 뜻밖에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님. 방송 잘 봤어요. 피디님도 그렇고 다들 정말 감사해요.’
‘아니에요. 저희가 아니라 김태경 선생님께 인사하셔야 해요. 사실 처음 분량은 어제 나간 시간의 반이었는데, 김 선생님께서 소식을 듣고 더 늘려 달라고 부탁을 하셨어요. 그래서 좀 더 디테일하게 다룰 수 있었고요.’
사실 태경 때문에 남편의 사고 소식이 방송에 나가게 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자세한 내용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이수정은 태경에게 직접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직 뺑소니 사건이 해결된 건 아니지만, 전 국민이 알 정도로 사건이 유명해졌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선생님 덕분에 방송까지 나가게 되고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어요.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수정은 진심으로 마음을 전하며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제가 도움이 됐다니 저도 감사하네요. 안 그래도 제가 연락을 드리려고 했거든요.”
“저한테요?”
“네, 병원비 때문에 마음고생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어제 방송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받은 상금의 일부를 차대한 환자의 병원비로 도와드리고 싶어서요.”
“네……?”
전혀 예상 못 한 뜻밖의 말에 이수정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마 이번 주 안으로 제작진을 통해서 연락이 갈 겁니다.”
태경은 방송에 나가기 전 자신이 상금을 타게 된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이수정 가족에게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돈 때문에 힘들어했던 환자들을 많이 봤었기에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게다가 노력해서 번 돈이 아닌 방송을 통해 운이 좋아 탄 상금이기에 내 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아깝지 않았다.
태경은 방송 촬영이 끝나고 계좌번호를 묻는 박필승에게 상금의 일부인 몇천만 원을 이수정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다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받는 입장에서 정말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을 보내기로 했다.
배려도 도움도 받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걸 태경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양평에 있는 어머니께 드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금액은 직원들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다.
아까 임정숙 간호사에게 부탁했던 일도 직원들에게 업무용 신발을 선물하기 위해 치수를 물어본 것이었다.
“저기, 선생님. 말씀은 정말 감사한데요. 저도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서…….”
“현웅 어머님!”
당황함과 미안함이 교차한 표정으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말을 잇던 이수정을 태경이 말렸다.
“저 역시 돈 때문에 힘들어도 봤고 돈이 없어 힘든 환자들도 봤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요. 미안해하지 마시고 부담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 뒤 몇 번이나 거절하던 이수정은 태경의 진심 가득한 설득에 병원비를 받기로 했다.
그 마음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했던 이수정은 말도 제대로 못 하며 눈물로 인사를 대신했다.
“흑!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요.”
“엄마! 울어? 어디 아파?”
“아니, 엄마 안 아파. 선생님께 감사해서 그래. 선생님이 우리 도와주셨거든.”
“정말? 선생님 우리 엄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린 현웅이는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를 보며 덩달아 인사를 했다.
생각지도 못한 태경의 배려와 도움으로 큰 고민이던 병원비 문제를 해결한 이수정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따뜻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 * *
어느 주택단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방 안은 굳게 쳐진 커튼으로 어두웠으며 쾌쾌한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후!”
이 방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짙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컵 위에 쌓여 있는 담뱃재 위에 꽁초를 찔러 넣었다.
“돌아 버리겠다. 진짜…….”
어딘가 익숙함이 느껴지는 남자는 얼마 전, 도넛 가게에서 이수정을 보고 흠칫 놀랐던 바로 그 남자였다.
-제가 바라는 건 하나뿐이에요. 뺑소니 범인이 꼭 잡혀서 죗값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목격하신 분이 있다면 제발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초췌함과 피곤함이 느껴지는 남자는 전날 방송된 이수정의 인터뷰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고 있었다.
“하! 시x.”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며 불안한 눈빛으로 욕을 내뱉던 그는 이수정의 인터뷰가 끝나자 마우스로 파일을 클릭했다.
끼익- 쿵-
영상 속에서 짙은 어둠과 함께 빠른 속도로 달리던 승용차 한 대가 별안간 큰 소리와 함께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췄다.
멈춘 차량 근처에는 쓰러진 차대한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짧은 정적이 지난 후 운전석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곧이어 다시 문이 닫히고 승용차는 차대한을 바닥에 내버려 둔 채 그대로 사고 현장을 벗어났다.
“미치겠다. 정말…….”
이미 수십 번 넘게 본 영상이지만 볼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들고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탁- 탁-
남자는 인터넷 창을 열고 ‘뺑소니 형량’과 ‘뺑소니 도주’를 검색하며 내용을 살폈다.
끔찍했던 그 날의 진실과 뺑소니에 관한 내용을 보던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방과 후 시험 시간 제작진입니다.
“…….”
-여보세요?
“저, 어제 방송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여기가 그 뺑소니 사고 제보하는 곳 맞습니까?”
-네, 맞아요. 사고 제보하시려고요?
“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
-여보세요?
남자가 대답이 없자 전화를 받은 제작진이 연신 그를 불렀다.
-여보세요? 안 들리세요?
탁-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던 남자는 할 수 없이 급하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드르륵-
잠시 뒤 뭔가 결심을 한 듯 별안간 사고 영상을 핸드폰으로 옮기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다. 그리고 급히 차를 몰고 집을 나온 그는 건물 앞에 시동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