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르잖아.
잠시 뒤 뭔가 결심을 한 듯 별안간 사고 영상을 핸드폰으로 옮기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다. 그리고 급히 차를 몰고 집을 나온 그는 어느 회사 앞에 시동을 껐다.
“하아!”
집에서부터 아무 생각 없이 빠르게 회사까지 왔던 남자는 당장이라도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뱉으며 차 앞을 벗어나질 못했다.
분명 시동을 끌 때만 하더라도 회사 안으로 쉽게 들어갈 것 같았는데 다리가 마음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바른 정직 시트-
[내 아이가 사용한다는 마음으로 정직하고 안전하게 만듭니다.]
남자의 시선의 회사 이름과 슬로건이 적힌 간판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회사는 아동 카시트를 주력으로 만드는 회사로, 이쪽 업계에서는 꽤 탄탄한 회사였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가자.”
한참을 망설이던 남자는 이윽고 결심한 듯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어! 김 기사님?”
분주하게 카시트를 만드는 공장 안쪽을 지나던 그를 알아본 사무실 여직원이 급히 다가왔다.
“안녕하셨어요?”
“아, 네. 안녕하셨어요.”
“사장님도 그렇고 다들 김 기사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른 정직 시트에서 김 기사로 통하는 김혁진은 회사에서 사장의 전담 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단순히 차량 운전사가 아니라 회사의 일손이 부족할 때도 손을 보태 일손을 돕고 사장의 집안일도 도와줬다.
사장은 그런 김혁진을 직원 이상으로 생각하며 많이 아꼈고, 김혁진도 사장은 물론 가족들하고도 사이가 좋았다.
“이제 다시 회사 복직하시는 거예요?”
“아직…….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러시구나. 근데 어디 아프세요? 살도 좀 빠지신 거 같고 얼굴도 좀 안 좋아 보이네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형!”
어색한 표정으로 여직원과 대화를 주고받던 김혁진에게 젊은 남자가 반가운 표정으로 뛰어오며 어깨의 손을 올렸다.
젊은 남자는 사장의 막내아들로, 평소 김혁진을 잘 따르고 사적인 고민도 털어놓을 만큼 사이도 좋았다.
“혁진이 형! 언제 온 거야?”
오 대리의 반가운 표정과 달리 그를 보는 김혁진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역시 오 대리님이 김 기사님 제일 반가워하시네요.”
“당연하죠. 제가 형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저, 사무실 들어가 볼게요. 두 분 말씀 나누세요.”
여자가 자리를 비켜 주자 오 대리는 김혁진과 대화를 더 하고 싶은 눈치였다.
“내가 그동안 연락을 얼마나 했는데 형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집에도 몇 번 찾아갔었는데 갈 때마다 없더라.”
“그게……. 좀 일이 있었어. 철만아. 나 사장님 좀 봬야 할 것 같은데.”
“그래? 알았어. 그럼 아버지 만나고 그냥 가지 말고 나 보고 가. 형 복직하는 거지?”
“가 볼게.”
오 대리에게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은 김혁진은 그대로 사장실로 향했다.
철컥-
“이제 누구야!”
김혁진이 노크를 하고 사장실 안으로 들어가자 푸근한 인상의 사장은 활짝 웃는 얼굴로 그를 맞았다.
“김 기사? 아니 혁진아? 잘 왔다.”
사장은 꾸벅 인사하는 그를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집 나간 가족이 돌아온 것 같은 사장의 밝은 표정과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김혁진의 표정이 대비된 채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방금 너 왔다는 소식 듣고 내가 미팅 약속까지 미뤘어.”
“죄송합니다. 사장님.”
“죄송하긴 우리 사이에 별소리를 다 한다. 뭐, 커피 마실래?”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 녀석아 그런데 너 왜 이렇게 얼굴이 상했어? 그동안 연락도 안 받고 어디 아팠던 거야?”
“아니요. 아픈 곳 없어요.”
“근데 왜 이렇게 힘이 없어?”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갑자기 이렇게 찾아온 건 복직한다는 말 하러 온 거 맞지?”
“…….”
한 달 반 전, 별안간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김혁진의 말에 사장은 이유를 듣지 못했다.
그 전부터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밝은 사람이 어딘가 어두워져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며 물었지만, 그는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그만두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김혁진을 많이 아꼈던 사장은 무기한 휴직을 권했고 지금까지 쭉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연락도 없이 찾아온 그가 반가운 따름이었다.
“혁진아?”
“……네, 사장님.”
“너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 아직도 기사 새로 안 뽑았다.”
“…….”
“언제부터 다시 나올래? 내일은 너무 빠르겠지? 다음 주 괜찮니?”
“저기 사장님…….”
“어. 그래.”
“실을 사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래, 뭐든 좋으니까 말해 봐. 연봉이 부족하면 얼마든지 올려 줄게.”
그런 문제가 아니었기에 김혁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시, 어제 방과 후 시험 시간이라는 프로 보셨어요?”
“우리 아내가 그 프로 애청자야. 근데 갑자기 방송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별안간 뜬금없이 꺼낸 방송 이야기에 사장은 의아했다.
“어제 방송에 의사가 나와서 안타까운 환자 소식을 전하면서 뺑소니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나도 그건 봤어. 집사람도 그렇고 오늘 출근해서 직원들도 다들 그 얘기만 하더라니까. 그 뺑소니범인 놈인지 년인지 모르겠지만 빨리 잡혔으면 좋겠더라.”
“사장님. 제가 오늘 갑자기 찾아온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김혁진은 무거운 표정으로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것 때문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진짜 무슨 일 있니?”
차대한의 교통사고 영상을 갖고 있던 김혁진은 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그리고 그가 석 달이 넘게 이 사건을 신고하지 못했던 건 뺑소니 범인이 바로 사장의 아들인 오 대리였기 때문이다.
김혁진은 보육원 출신으로 자신을 후원해 줬던 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 들어갔던 직장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자 재취업을 알아보고 있던 차에 기사 자리를 제안해서 함께 일하게 됐다.
가족이 없는 김혁진을 사장 가족은 따뜻하게 대해 줬고, 특히 오 대리인 오철만은 김진혁을 친형처럼 따르며 사이가 좋았다.
석 달 전, 평소 싹싹하고 밝은 성격에 회사 일도 열심히 하는 오철만은 점점 틀어지는 여자 친구 관계에 대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형, 나 도저히 영이를 못 잊겠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냥 콱 죽고 싶어.’
‘야! 오철만! 너 또 술 마셨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형이 데리러 갈 테니까 거기 가만있어. 알았어?’
사고가 있던 그 날, 오래 사귀었던 여자 친구에게 며칠 전 이별 통보를 받고 힘들게 지내던 오철만은 술을 먹고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김혁진은 평소 둘이 자주 갔던 술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침 저 멀리 빠른 속도로 차를 끌고 가는 오철만을 보게 됐다.
이러다 무슨 일이 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뒤를 따라가던 그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사람을 치고 도망가는 뺑소니를 목격한 것이다.
‘처, 철만이가 사… 사람을 쳤어. 철만이가…….’
전혀 생각지 못한 예상 밖에 일에 당황한 김혁진은 멀리서 차를 세우고 그 모습을 보며 굳어 버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신고할까 했지만, 가족같이 자신을 챙기는 사장과 형처럼 따르는 오철만의 얼굴 눈앞에 아른거려 차마 신고를 할 수 없었다.
그 사고를 목격한 다음 날 김혁진은 회사를 결근한 오철만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었다.
‘형? 혹시……. 혹시 말이야. 어제 술집으로 나 찾으러 왔었어?’
‘어. 갔는데 너도 안 보이고 전화도 안 받아서 집에 왔어.’
‘그럼. 나 못 본 거야?’
‘어. 못 봤어.’
‘그랬구나. 내가 먼저 가서 엇갈렸나 보다.’
차대한을 길바닥에 내버려 두고 달아난 오철만은 그 전화를 끝으로 한동안 회사를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출근한 오철만을 볼 때마다 사고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악몽까지 꾸자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지나갔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김혁진이 어느 날 사고 현장을 방문하다 우연히 이수정을 보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방관했다는 마음을 더는 참을 수 없었고, 그렇게 전날 방송을 보고 사장에게 알리기로 했다.
“이것 좀 보시겠어요?”
김혁진은 감시 머뭇하더니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휴대폰에 담은 사고 영상을 클릭해 앞으로 건넸다.
“무슨 영상 같은데 이게 뭐야?”
“한번 보세요.”
계속된 권유의 사장은 일단 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상 속에는 어둠이 짙게 깔린 고요한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던 차가 사람을 치고 급히 멈추는 장면이 나왔다.
끼익- 쾅-
“세, 세상에 이거 뺑소니 영상 아니야? 근데 이런 영상을 왜 나한테……. 혁진아! 너 혹시?”
“아니요. 사장님. 제가 아니에요. 영상을 자세히 보세요.”
자신이 사고를 냈다고 생각한 사장에게 김혁진은 확대한 영상까지 틀어 주며 다시 보게 했다.
그 말에 사장의 시선이 다시 영상을 향했다.
“자, 잠시만!”
어딘가 익숙한 차량과 너무 친숙한 차 번호까지.
“이 차 이거 처, 철만이 차 아니야? 이거 우리 철만이 맞지?”
사장은 그제야 영상 속 사고를 낸 사람이 자기 아들임을 알 수 있었다.
“네, 사장님. 어제 방송에 나왔던 그 뺑소니범이 바로 철만이에요.”
“아이고!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얼굴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사장에게 김혁진은 지금까지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하! 어떻게.”
보고도 믿기지 않은 현실에 사장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석 달 전, 아들이 왜 갑자기 한동안 무단결근을 했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 친구와 헤어진 일로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뺑소니 때문이었다.
“사장님께 보여 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고민 끝에 찾아왔습니다.”
“혀, 혁진아! 이거 우리 둘만……. 둘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르잖아. 응?”
“……!”
사장은 하늘이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김혁진에게 손을 빌며 애원했다.
“내가 전 재산 다 줄게. 제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잖아.”
“사장님. 예전에 저 보육원 나올 때 저한테 그러셨죠?”
사장의 저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고로 인해 지금까지 고통받는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 김혁진을 용기를 내야 했다.
“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라고. 그러면 어려워도 누군가는 도와준다고요. 그렇게 말씀해 주신 분이 사장님이세요. 저한테는 사장님이 아버지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돈을 어떻게 받아요.”
“혁진아……. 흐흑! 내가 범인이라고 하면 안 될까? 내가 우리 철만이 대신할게.”
“…….”
김혁진은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이 없었지만, 사실 사장도 답은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 혁진아. 내가 미안해. 그동안 마음고생 심했겠네.”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 있겠니. 하!”
한동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사장은 김혁진에게 사과한 뒤 아들을 불렀다.
철컥-
“부르셨어요?”
“철만아?”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회사 유니폼을 벗으며 아들에게 말했다.
“예, 아버지.”
“지금 갈 데가 있으니까 너도 작업복 벗어.”
“어디를 가는데요?”
“경찰서!”
“……!”
“어제 방송에 나온 뺑소니 사건 네가 한 거야? 그래?”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
경찰서라는 단어와 갑자기 찾아온 김진혁을 보며 오철만은 어떻게 된 일인지 대번에 예상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 가슴에 대못 박고 발 뻗고 자면 안 되는 거야. 그러면 벌받아.”
자식을 제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장이었다. 하지만 오직 내 자식만 귀하다고 여길 만큼 그의 사랑은 삐뚤어지지 않고 정직했다.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늘 정직하게 살라고 강조했었기에 아들이 더 이상 회피하지 않았으면 했다.
“이놈아 가서 용서 빌어. 그리고 죗값 치러라. 너 때문에 사람이 죽을 뻔했어!”
“흑!”
눈물로 하소연하는 아버지의 말에 오만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눈물을 흘리며 작업복을 벗었다.
그 역시 사고를 내고 지금까지 하루하루가 삶이 지옥 같았다.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자신이 그 사고를 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도망간 자신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자수하자. 이렇게 살지 말자.’
속으로 숱하게 속삭이며 내뱉을 말이었지만 막상 발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제 방송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더는 이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렵고 겁이 났지만, 오만철은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며 아버지와 함께 경찰에 연락 후 회사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