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97화 (196/472)

197화. 의료진 커뮤니티

다음 날-

“현웅이 어머님!”

뺑소니 사건의 담당 형사는 경찰서 정문에서 정신없이 뛰어오는 이수정을 불렀다.

“괜찮으세요?”

“저, 정말 범임이 나타났어요?”

오늘도 전단지를 돌리고 집으로 돌아온 이수정은 막내의 간식을 차려 주다 말고 급히 집을 나섰다.

친한 이웃에게 아이를 급히 맡기고 버선발로 나오다시피 정신없이 경찰서로 왔다. 담당 형사로부터 범인이 경찰서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온 것도 모를 정도였다. 그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범인이 자수했어요.”

“자, 자수요……?”

“네. 방송을 보고 자수를 하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어제저녁 젊은 남자가 아버지랑 같이 왔는데 용서를 빌고 싶다고 와서 일단 조사하고…….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다리에 힘이 풀린 이수정이 휘청거리자 형사가 그녀를 부축했다.

“혹시 보기 힘드시면 굳이 지금 안 보셔도 돼요. 나중에…….”

“아니요. 형사님 저 볼래요. 보고 싶어요. 사과받을래요.”

이수정은 남편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꼭 보고 싶었다.

그 뒤 마음을 가다듬고 경찰서 내부로 들어와 형사가 따로 마련해 준 공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철컥-

그리고 잠시 뒤, 오만철이 형사의 뒤를 따라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그 공간으로 들어왔다.

“피해자 아내분입니다.”

“죄송……죄송합니다!”

오만철은 이수정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무릎을 꿇고 울면서 사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수정은 생각보다 젊은 가해자를 보며 살짝 당황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범인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나쁜 놈의 이미지처럼 누가 봐도 범인같이 생기지 않을까 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멀쩡한 사람이라면 그런 짓을 하고 도망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아직 한참 젊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범인의 모습을 보니 그런 짓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쪽이 우리 남편 치고 도망간 거예요? 맞아요?”

“죄송합니다.”

“왜 그랬어요? 왜!”

“제가 아들을 잘못 키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도 아들의 옆에서 무릎을 꿇고 함께 사과했지만, 이수정은 그 사과를 받은 준비가 되질 않았다.

“왜 그랬어요? 이유가 뭐예요?”

“제가 그날 술을 먹고 운전을 하는 바람에 실수를……. 아니,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술을 먹고 왜 운전을 해서……. 하! 신고라도 해 주고 가지 그랬어요? 신고라도!”

감정이 복받친 이수정은 울면서 소리쳤다.

“너무 겁이 나서… 무서워서 못 했어요. 죄송합니다.”

“당신 때문에 우리 가족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용서받을 수 없겠지만, 사과드리고 싶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하!”

오만철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진심으로 사과를 전했다.

석 달 동안 사실을 숨기고 마음이 불안했기에 죗값을 치러야겠다는 두려움보다는 마음이 도리어 편했다.

처절하게 울면서 사과하는 오만철의 모습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누군가의 제보나 경찰에 잡힌 것이 아닌 스스로 자수를 했다는 점이 저 사람도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구나 싶어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그쪽이 저지른 한순간의 실수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끝일 수도 있었어요.”

“흐흑! 정말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지 말고 살아서 죗값 받으세요. 그리고 두 번 다시 술 먹고 운전하는 짓 하지 마세요. 그거 살인이에요.”

“네…….”

어렵게 자신이 하고 싶던 말을 던진 이수정은 오열하는 오만철의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기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물이에요. 한 잔 드세요.”

동료에게 오만철을 넘기고 따라 나온 담당 형사는 물이 담긴 컵을 건네며 이수정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좀 괜찮으세요?”

“하아!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범인이 잡히면 속상한 마음이 좀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아요.”

그토록 바라 왔던 범인도 잡히고 태경의 도움으로 감사하게도 병원비 걱정도 덜었다. 그런데 마음은 아직도 여전히 쓰리고 아팠다.

정작 사랑하는 남편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채 병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남편의 웃는 얼굴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형사님. 그동안 애 많이 써 주셔서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마무리 조사 끝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진행 상항은 따로 또 연락드릴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오만철이 어떤 형량을 받고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형사가 알려 줬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보, 범인 잡혔어. 아니. 자수했대.’

이수정은 경찰서를 나오며 휴대폰에 있는 남편의 사진을 보며 속으로 속삭였다.

‘생각보다 젊은 청년이었어. 내가 사과는 못 받겠더라고. 당신 깨어나면 그때 받는다고 했어.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라.’

아까보다는 조금 후련해진 마음으로 지하철을 향해 걷던 이수정은 그제야 짝짝이로 신고 온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참! 이러고 여기까지 왔네. 당신이 이 모습 봤으면 웃으면서 놀렸을 텐데…….”

Rrrrrrrrrrrr

우스꽝스러운 신발을 보며 예전 남편과의 추억을 떠올리던 이수정은 급하게 울리는 핸드폰을 보고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선생님. 네! 지금 바로 갈게요.”

전화를 끊은 이수정은 그 길로 도롯가로 나와 택시를 잡고 신화대병원으로 향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차대한의 주치의인 구시경 교수였다. 그는 남편이 깨어났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했다.

“저기! 저기요?”

급히 병원에 도착한 이수정은 이제 막 문이 닫히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가며 소리를 높였다.

“저기 잠시만요? 정말 감사…….”

다행히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열림 버튼을 누르고 문을 열어줬다. 그런데 고맙다는 인사를 하던 목소리가 잠시 멈칫하다 다시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문을 열어 준 사람 뒤로 고계득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층에서 문을 열어 준 사람이 내리고 엘리베이터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조금 전, 고계득과 마주칠 때 멈칫했던 이수정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았다.

이제는 고계득이 더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을뿐더러 지금 머릿속에는 온통 남편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와 반대로 이수정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고계득은 달랐다.

눈빛은 사나웠고 표정은 어두웠으며 움찔거리는 입에서는 당장이라도 욕이 나갈 것만 같았다.

‘저 xx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끓어오르는 분노를 속으로 삼켰지만, 그게 다였다. 지금 벼랑 끝으로 몰려 몸을 사리고 있는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분을 삼킨 고계득이 엘리베이터를 먼저 내린 뒤 이수정도 몇 층을 더 가서 내렸다.

남편이 있는 곳에 도착한 이수정은 어안이 벙벙한 채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이게 꿈이 아니게 해 주세요. 그이를 지켜 주세요. 도와주세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요. 남편만 돌아오게 해 주세요.’

“보호자분?”

구시경이 다가오자 이수정은 재빨리 일어났다.

“연락받고 많이 놀라셨죠?”

“네, 선생님…….”

얼마 전, 이수정이 면회를 하고 간 뒤 차대한의 손이 움직인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잠깐의 움직임이었기에 이수정은 물론 간호사도 그의 움직임을 인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그날을 기점으로 차대한의 찰나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던 그때, 회진을 돌던 구시경이 그의 움직임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곧바로 이수정에게 알리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구시경은 오래전에 차대한 환자와 비슷한 케이스의 환자가 있었다.

그 당시에도 혼수상태에 있던 환자의 짧은 움직임이 있었고, 반가운 소식에 보호자에게 알렸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환자에게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고 그 환자는 그 뒤 상태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구시경은 그때부터 확실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말을 아끼게 됐다. 괜한 희망으로 가족들이 겪을 심적 고통이 만만치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차대한의 움직임을 보고 섣불리 먼저 알리지 않았다. 대신 더 많이 더 자주 차대한을 찾아와 상태를 살폈다.

그러다 그 찰나의 움직임이 점점 빈도가 높아가더니 몇 시간 전, 차대한이 깨어난 것이다.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구시경은 곧장 환자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며 각종 검사를 철저히 진행한 뒤 이수정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검사를 마친 차대한의 몸 상태도 좋았다.

“조금 전에 막 검사가 끝났어요.”

“선생님 그 사람 정말 깨어난 거 맞죠? 이거 꿈 아니죠?”

그동안 남편의 변화에 대한 일과 검사에 관한 일까지 전부 들은 이수정은 아직까지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네, 맞습니다. 물론 계속해서 잘 살펴봐야겠지만, 지금 상태를 잘 유지한다면 차대한 환자가 재활 치료 후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이수정은 온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어서 들어가 보세요.”

“아, 네…….”

세상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떨리는 순간이었다. 이수정은 사시나무 떨리는 손으로 병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 몇 초의 시간 동안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병실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들자,

“수, 수정아…….”

그토록 꿈에 그리고 그려왔던 남편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꿈이 아니었다.

“여보!”

이수정은 주르륵 눈물을 쏟으며 남편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당신, 진짜 깨어난 거지? 진짜지?”

“그럼. 울지 마. 왜 울어.”

목소리에 힘이 조금 없었지만, 차대한은 이수정을 향해 웃고 있었다.

“당신 맞구나! 여보! 흑!”

남편과 아내는 한동안 자석처럼 눈을 맞추고 서로만 바라본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 때문에 고생 많았지?”

“아니, 고생하지 않았어. 그보다 당신 괜찮아?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괜찮은 거 같아. 우리 현준이 현미 현웅이도 다 잘 있지? 애들 건강하고?”

“그럼. 다들 아빠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데. 여보?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나 당신 잘못될까봐 많이 무서웠어.”

“내가 예쁜 당신이랑 애들 두고 어딜 가. 나 그렇게 약한 사람 아니야.”

차대한은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지 이수정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고마워. 당신 때문에 내가 깨어난 거 같아.”

의학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차대한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동안 이따금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자신이 이렇게 다시 눈을 뜬 것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불러준 아내 덕분인 것만 같았다.

“아니야. 선생님들이 노력해 주신 덕분이지. 방금 구 교수님이 그러시는데 당신 깨어난 거 기적이래. 정말 하늘이 도왔다고 하시더라.”

“나도 그런 거 같아. 당신 다시 볼 수 있는 이 순간도 기적인 거 같아.”

빈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사고가 났던 그 당시,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차를 보며 순간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사랑하는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된 이 모든 것들이 차대한에게는 기적 그 자체였다.

평범한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게 됐다.

“내가 앞으로 재활 열심히 해서 퇴원하면 당신 평생 행복하게 해 줄게. 사랑해. 수정아.”

“나는 당신이랑 우리 가족만 건강하면 돼. 더 이상 바라는 거 아무것도 없어.”

그 후 이수정은 아이들과 차례대로 영상 통화를 하고 뺑소니 범인이 자수했다는 사실과 태경이 도움을 준 것까지. 지금까지 있던 일을 전하며 밀린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차대한은 이수정을 통해 자신을 도와준 태경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 자신도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다.

* * *

한편 기분 좋은 소식이 연이어 들리던 이때 혼자 죽상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고계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방송에 나온 자신의 이슈가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시간 검색어도 각종 커뮤니티 글도 그의 예상과 달리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은 듯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전 국민 한마음 한뜻으로 이뤄지는 술래잡기가 가장 활발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의료진들이 모인 곳이었다.

예비 의사 간호사들이 공부하는 의대, 간호대는 물론이고 동네 병원부터 대학병원은 물론 장소 불문 의료계에 일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의사가 누구인지 둘 이상 모이면 다들 그 이야기뿐이었다.

“뭐 해? 세수하는 거야 머리를 감는 거야? 자!”

화장실 세면대에서 머리에 물을 묻히고 있는 레지던트에게 다른 과 동기가 손수건을 건네며 물었다.

“꼴을 보니 어제 당직했네. 한숨도 못 잔 거야?”

“두 시간 잘 수 있었는데, 인터넷 보느라 황금 같은 시간 날렸다. 이따 구 교수님 어시 있는데 졸았다간 아작 날 거 같아서 잠 깨는 중이야.”

“너도 방송 봤지? 김태경 선생님은 더 멋있어지셨더라?”

“원래 수술방에도 x나 멋있고 카리스마 죽였잖아.”

레지던트는 머리를 털며 낮은 욕설을 뱉었다.

“하! 그나저나 망할 의사 새끼 때문에 잠도 못 잤네.”

“뭐야, 설마 너도 그 의사 찾고 있는 거야?”

“너도?”

두 사람이 찾고 있다는 사람은 당연 고계득이었다.

“당연하지. 이쪽 일하는 사람들 다들 찾고 있을걸?”

“하긴 그래.”

“이것 봐. 난 틈만 나면 휴대폰으로 커뮤니티 한 바퀴 다 순회한다니까. 어! 시x. 이거 뭐야!”

말을 하면서도 화면을 보고 있던 동기가 거친 말과 함께 흥분했다.

“뭐야? 왜?”

“나 방금 우리병원 의료진 커뮤니티 보는 중이었거든 ‘범인 색출해 준다’라는 글이 있네.”

“뭐, 진짜?”

“이상하다. 방금까지 없었는데.”

“누가 올렸나 보네. 빨리 클릭해 봐.”

구미가 당기는 제목에 흥분한 두 사람 말고 더 흥분한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바로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있던 고계득이었다.

‘범인 색출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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