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휘파람 수술
“그리고 이건 내가 볼 때 과학적이에요.”
“그게 뭔데요?”
“환타요.”
“아, 환타.”
“환타……가 뭔데요?”
‘환타’라는 말에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선임 간호사와 달리 막내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특정 환타들이 근무하면 100% 사고가 난다는 거요.”
환타란 특정 근무자가 근무 시 환자가 더 오거나 입원해 있는 환자가 중증으로 변한다는 뜻으로 해당 의료인들을 일컫는 일종의 은어였다.
“그걸 환타라고 하는구나. 전 또 무슨 음료수 이름 말하는 줄 알았어요.”
“하긴. 환타도 맞죠. 그런데 우리 중에 환타가 있나요?”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선임 간호사를 향해 이찬희가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설마, 저예요?”
“네.”
“에이, 무슨 소리예요? 병원에서 일하면서 지금까지 환타라는 말 처음 들어 봐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당연히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요 몇 달간 근무를 생각해 봤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쌤이랑 같이 근무를 하면 심정지 환자, 혹은 다발성 외상 환자들이 그렇게 많이 오더라고요.”
“에이! 난 또 뭐라고. 찬희 쌤? 그건 좀 아니다.”
선임 간호사는 이찬희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 손을 가로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병원에서 일하는데 중증 환자 오는 건 당연하죠. 그냥 갖다 붙인 거잖아요.”
“쌤! 보세요. 그저께 다발성 외상 환자 기억나죠? 그 차대차(차와 차가 충돌한 교통사고) 환자요.”
“네, 당연하죠.”
“그리고 저번에 샘 나이트(밤 근무) 때 그 자살 시도한 환자도 기억나고요?”
“어……. 그럼요. 기억나죠.”
“봐요! 요 몇 달간 응급실 통해 내원한 중환자 중에 80%가 선생님 나이트 근무 때 왔다니까요. 이래도 환타가 아니에요?”
“세상에. 그러고 보니 맞는 거 같네요.”
가만히 생각하던 간호사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했다.
“거봐요. 이거는 과학이에요. 환타는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근데 그거랑 선생님 표정 안 좋으신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던 막내 간호사가 물었다.
“그게 제가 촉이 좋거든요. 뭔가 항상 정신없던 우리병원 응급실과는 동떨어진 이 고요함과 한가함이 마치 폭풍전야 같다고나 할까요?”
“이 쌤 무슨 소설 쓰세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이제 곧 중환자가 올 때가 됐다 이 소리입니다.”
“예!?”
“……!”
그 말을 듣자마자 두 간호사 모두 못 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크게 반응했다.
“이 선생님, 방금 하신 발언은 좀 실수하신 거 같아요.”
“그건 막내 말이 맞아요. 세상에 그런 악담이 어디 있어요?”
“내 촉이 맞는다니까요. 그리고 그거는 다 우리 중에 계시는 환타 때문이고요.”
“어휴! 진짜 이 쌤 재수 없게 왜 그래요.”
이찬희의 계속된 환타 타령에 선임 간호사가 앙칼지게 말하던 그때 막내 간호사가 응급실 출입구인 투명 유리문을 가리켰다.
“어! 아무래도 이 선생님 촉이 틀린 거 같은데요? 저기 보세요? 밖에 환자 온 거 같은데요.”
막내 간호사가 가리킨 투명 유리문 너머로 성인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휴! 다행히 걸어 들어오는 거 보니까 일단 중환자는 아닌 거 같죠? 우리 찬희 쌤 촉은 이제 안 맞는 거로.”
“그러네.”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던 이찬희가 응급실로 들어온 허름한 행색의 50대 남자에게 다가갔다.
“진료를 보러 왔는데요.”
“어디가……!”
남자의 말에 웃으며 대응하던 이찬희가 별안간 말을 하다 말고 숨을 들이쉬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돌렸다 다시 응대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일단 여기 혈압 측정 기계 손 넣으시고 혈압 체크부터 할게요.”
“손 빼셔도 됩니다. 어디가 불편하신데요?”
“그게 어디가 뚜렷하게 아픈 거는 아닌데요. 그 토하는데 피가 섞여 나와서 왔거든요.”
“피요?”
“네.”
“혹시 변으로는 안 나왔나요?”
“변으로도 나왔어요.”
“피가 보인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얼마 안 됐어요. 오늘……. 점심때부터니까 한 1시부터 그런 거 같네요.”
“환자분 구토는 왜 하신 거예요?”
“그 제가 낮술을 좀 많이 마셨거든요.”
환자는 낮부터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아주 당당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토하면서 봤더니 피가 한 움큼씩 나오더라고요.”
“혹시 복통은 없으시고요?”
“네.”
“설사는요?”
“설사도 없습니다.”
“앓고 있는 질환 없으신가요?”
“앓고 있는 거요?”
“네. 고혈압이나 당뇨나 그런 거요.”
“그런 거는 없는데 제가 두 달 전에 수술을 받았어요.”
“수술이요?”
“네, 그 대학병원 큰 수술을 했거든요.”
“무슨 수술이요?”
이찬희가 모니터에 환자 정보를 작성하며 꼼꼼하게 물어봤다.
“그 뭐시기냐 그게……. 그… 십이지장인가 췌장인가 거기에 혹이 있다고 떼야 한다고 해서 했거든요.”
본인 입으로 큰 수술이라고 하던 남자는 정작 자기가 받은 수술이 어떤 건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환자분 무슨 수술인지 모르세요?”
“그거 다 뗐어요.”
“네?”
“거기 의사가 큰 수술이라고 하더라고요. 뭐라더라. 무슨 휘파람 수술? 뭐라고 하던데……. 내가 의사도 아니고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하하!”
“아니 환자분. 본인 몸인데 그렇게 수술을 잘 알지도 못하고 받으신 거예요?”
보통 사람이 수술은 받으면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도 자세히 알게 된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 우리나라 사람들은 병에 걸리고 수술 후 퇴원을 하면 자신이 걸린 병에 관해서는 반전문가라고 할 만큼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남자는 큰 수술을 했다는 사람이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처럼 말하자 이찬희는 뭔가 싶었다.
특히 지금처럼 몸에 이상 반응이 있어 병원을 왔는데 얼마 전에 했던 수술을 모른다니 황당할 뿐이었다.
“내가 뭐 아나요. 그냥 수술 안 하면 6개월 이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니까 받았죠.”
“아, 그럼 암이신 건가요?”
‘침착하자! 이찬희 침착해!’
이찬희는 최대한 침착하게 남자를 응대했다.
“처음에는 암이 의심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했는데 7시간 넘게 했는데 암이 아니래요. 뭐 지들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는데 젠장 의사 놈들 지들 몸뚱어리 아니라고 그 큰 수술을 괜히 한 거잖아요. 하여튼 큰 수술 받았어요.”
“아! 휘파람 수술.”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해서 휘파람 수술을 생각하던 이 찬희는 그가 받은 수술이 어떤 수술인지 머릿속에 떠올랐다.
“환자분 휘플(whipple’s operation: 명치 부위에 있고 뒤 배벽에 고정되어 있는 장기 등의 특정 부위를 암 등의 이유로 적출해야 할 때 췌장의 머리, 십이지장, 담낭 등 해부학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모든 구획을 적출하는 수술로, 외과에서 가장 크고 어려운 수술로 여겨짐) 수술 받으신 거 아니세요?”
“맞아요. 맞아! 아이고 젊은 선생님 똑똑하시네. 휘플 그거예요.”
“그러셨구나. 암이신 줄 알고 했는데 다행히도 양성이셨군요? 고생하셨네요.”
“고생은 무슨 그 생각만 하면 제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화가 난다니까요.”
“그럼 수술 이후에 합병증은 없으셨고요?”
“네, 잘 있다가 나왔죠. 한 열흘 정도 있었고, 그 뒤에 그러니까 수술받고 두 달 동안 아무 일 없었어요.”
“식사도 잘하셨고요?”
“그럼요. 소화도 잘되고 별문제 없었는데요.”
“흠! 환자분 아무래도 지금 증상이 소화 기관 내의 출혈인 것 같은데요.”
“네, 사실 아까 동네 내과 갔었는데 거기서도 응급실 가는데 응급으로 내시경이 가능한 곳에 가라고 의사 양반이 그러더라고요.”
“제, 생각도 같아요. 우선 응급 내시경이 되는 곳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저희가 지금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이찬희가 환타라고 했던 선임 간호사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녀가 손으로 엑스를 만들며 다가왔다.
“이 쌤, 저희 지금 응급 내시경 안 돼요. 내과 선생님 오늘 당직도 아니고 원장님은 수술방에 계시잖아요.”
“아, 그러네요. 저기 환자분 죄송하지만 저희가 지금 응급 내시경이 안 돼서 가능한 곳으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해 줘요.”
“네?”
분명 사과와 함께 정중하게 그 이유까지 말했는데 환자에게 돌아온 대답은 너무 당당했다.
“내시경은 나도 할 생각 없수다.”
“예?”
“그냥 그거 있잖아요? 피검사라도 해 줘요.”
“환자분 원하시면 그럴 수는 있는데요. 지금 환자분에게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어차피 지금 다른 응급실 가시면 한 번 더 해야 할 수도 있고, 현재 환자분에게 필요한 건 내시경을 통한 지혈이라서 괜히 시간 낭비하시는 거예요.”
“아휴! 참나. 괜찮아요. 내 몸이니까 우선 피검사라도 해 줘요.”
가끔 이렇게 의사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환자를 만나며 순간 막막해진다. 이런 환자들은 아무리 뛰어난 의사를 데리고 와도 고집을 꺾지 않고 자기 말만 맞는다고 우기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환자분, 물론 환자분의 몸이니까 저희가 강요할 수도 없고 저희는 환자분이 원하면 진료를 거부할 수도 없어요.”
이찬희는 최대한 차분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설득해 나갔다.
“그런데 지금 빨리 응급 내시경이 필요한데 다른 검사로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면 오히려 환자분에게 해를 줄 수 있어요.”
“내가 젊은 의사 선생님이 어떤 뜻으로 하는 말인지는 잘 알겠는데 그냥 내 뜻대로 해 주세요. 내 몸이지 의사 선생님 몸이 아니잖아요.”
“……!”
“그거 뭐야! 그 CT 찍어 보면 알 거 아니에요.”
“환자분?”
“어허! 거참! 사람. 내가 내 돈 내고 한다는 데 왜 그렇게 말이 많으실까? 자꾸? 예?”
계속 이어지는 환자의 막무가내 태도에 이찬희도 점점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환자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가끔 이런 환자를 대할 때면 다시 한번 태경의 대한 존경심이 샘솟았다.
어떤 막무가내 환자가 와도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고 끝내 설득하고 수긍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이찬희 역시 당연히 태경처럼 하고 싶었지만, 지금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우기는 환자는 막막했다.
“환자분? 알겠습니다. 안쪽으로 우선 들어오세요.”
안 되겠다 싶은 선임 간호사가 막무가내 환자를 서둘러 안쪽으로 들여보냈다.
“저 사람 뭐야!”
이찬희가 답답한 마음에 짜증 섞인 말투로 낮게 내뱉었다.
“찬희 쌤, 기분 풀어요. 저런 사람들 간혹 있잖아요. 그냥 원하는 대로 혈액 검사하고 CT 찍고 빨리 내시경 되는 병원으로 전원 보내자고요.”
“하! 답답하네요.”
“누가 아니래요. 그냥 무시하세요. 저 환자 설득해 봐야 소용없어요. 아시잖아요.”
간호사는 그간 경험으로 말 안 듣는 환자와 불필요한 다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저런 환자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죠. 저런 사람이랑 싸워서 뭐 하겠어요. 그렇게 하시죠.”
의사도 사람이다.
가끔 이런 일이 있을 때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기분이 상한 이찬희는 환자가 응급실에 있는 동안 일부러 다가가지 않았다.
필요한 검사만 빠르게 하고 보낼 생각이었다.
“환자분, 우선 CT 촬영하려면 조영제를 투여해야 하는데요. 조영제 투여 시 부작용으로…….”
“됐고! 나 그딴 거 안 합니다.”
“네?”
“조영제 투여 안 한다고요. 그냥 빨리 찍어 주세요.”
근처에서 간호사와 환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찬희는 화가 났지만, 아까 간호사의 말대로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하고 보내 주기로 했다.
“선생님, 동의서 받고 환자분 뜻대로 해 주세요.”
“네.”
그 후 환자의 요구대로 어쩔 수 없이 조영제 투여를 하지 않고 CT 촬영을 진행했다.
조영제 없이 촬영할 경우 혈관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화 기간 내에 출혈 여부를 알 수가 없다. 다만 수술로 연결해 놓은 곳의 이상 등 구조적인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이 쌤 CT 결과 나왔습니다.”
간호사의 말에 이찬희가 모니터 앞에 앉아 결과를 확인했다.
“CT를 보니 PPPD(pylorus preserving pancreaticoduodenectomy, whipple’s operation과 유사하나 위 유출 부위를 보존한 술식)를 받았고 연결 부위들은 멀쩡하네요.”
“아까 그 고집쟁이가 두 달 동안 이상 없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이제 CT 설명해 주고 내시경 되는 병원으로 전원 알아볼게요.”
“네, 선생님.”
이찬희는 환자에게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있는 베드로 다가가 커튼을 열었다.
챠륵-
“환자분?”
“네.”
“방금 결과 확인 했는데, 아까 설명해 드린 대로 CT가 조영제 투여를 안 해서 경계가 온전히 보이지는 않아요. 하지만 수술 부위가 잘못되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주변 혈관은 잘 안 보여서 확실하지 않지만, 소화 기관 내부에서의 출혈인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내시경 되는 병원으로 전원 알아볼게요. 그리고 CD에 영상 담아 드릴게요.”
“아……. 그러세요.”
자세한 설명에 환자는 마치 남의 일처럼 무심한 듯 짧게 답했다.
그 후 이찬희는 주변에 응급 내시경이 가능한 곳을 찾아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네, 52세 남자고요. 네 과거력으로 특별한 건 없지만 수술력이 있는데요. 네. 그리고…….”
“어머! 이게 뭐야?”
전화하고 있던 이찬희는 별안간 들려오는 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네, 확인 후 연락 부탁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급하게 전화를 마무리한 뒤 목소리를 높인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에요?”
“쌤, 그 환자가 없어요.”
“누구? 그 고집쟁이 환자요?”
“네.”
“난 또 뭐라고. 화장실 갔겠죠.”
“아무래도……. 아닌 거 같은데요. 이거 보세요.”
선임 간호사가 환자에게 꽂혀 있어야 할 수액 바늘을 베드에서 들어 올리며 보여 줬다.
“지금 이 상황이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