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00화 (199/472)

200화. 죽은 환자는 돌아오지 않아

“아무래도……. 아닌 거 같은데요. 이거 보세요.”

간호사가 환자에게 꽂혀 있어야 할 수액 바늘을 베드에서 들어 올리며 보여 줬다.

“지금 이 상황이 뭐죠?”

“뭐긴 뭐예요. 도망간 거 같은데요.”

황당한 표정을 한 이찬희를 보며 간호사가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도망이요? 왜요?”

“보시면 몰라요? 아까 그 환자 돈 없게 생겼잖아요.”

사람 겉모습을 보며 판단한 게 아니었다.

“그 사람 노숙자예요.”

간호사의 말이 맞았다. 고집불통에 의사가 하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도 않던 50대 남자는 노숙자였다.

처음에 이찬희가 그를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던 이유도 퀴퀴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진짜 돈 때문에 도망간 거예요?”

“설마 돈 때문에 도망간 거 맞아.”

회진에서 돌아와 스테이션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최모나가 당연하다는 듯 한마디 거들었다.

“나 전에 근무하던 병원에도 돈 때문에 도망가는 환자들 가끔 있었어.”

“방금 최 쌤 말 들으셨죠? 찬희 쌤이 몰라서 그렇지 응급실에 돈 때문에 도망가는 사람 은근 많아요.”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이찬희는 아직 반신반의 마음으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

“화장실에도 없죠?”

“없네요.”

화장실뿐만 아니라 혹시 몰라 휴게실까지 병원 안을 둘러봤지만, 문제의 남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거 보세요. 도망간 거라니까요.”

“아니, 이렇게 도망갈 걸 왜 그렇게 고집을 피운 거죠?”

“글쎄요. 잡아서 물어보기 전에는 모르죠.”

“참나! 어이가 없네.”

“뭐가 또 참나야.”

수술을 끝낸 태경이 황당해하는 이찬희 옆에 앉으며 말했다.

“아! 선생님. 수술 잘 끝나셨어요?”

“어. 간단한 케이스여서 잘 마무리했어.”

“다행이네요.”

“근데 무슨 일이야?”

“아, 그게 있잖아요. 아까…….”

이찬희는 궁금해하는 태경에게 방금 도망간 노숙자 환자의 황당한 사연에 대해 말했다.

“참! 돈이 없으면 사람이 친절하기라도 하지 정말 속상했습니다. 막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이 있는데 그냥 솔직히 돈이 없다고 하면 도와줬을 텐데 도망을 갔다는 게 참……. 선생님도 황당하시죠?”

“…….”

불러도 대답 없는 태경을 향해 이찬희가 고개를 돌리자 태경이 노숙자의 CT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저, 선생님?”

꼼꼼히 CT를 보던 태경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지더니, 집중하는 미간이 급격히 좁혀지고 있었다.

‘아니, 갑자기 표정이 왜 저러신대?’

점점 불안함을 느낀 이찬희가 작은 목소리로 태경을 다시 불렀다.

“선생님……?”

“야, 찬희야?”

“네? 네.”

진지하게 부르는 소리에 이찬희가 어깨를 들썩였다.

태경이 이 선생이 아닌 이름을 불렀다는 건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예상 못 한 말이 들려왔다.

“가서 잡아 와.”

“네!?”

“뭐가 네야.”

태경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층 높아졌다.

“가서 잡아 오라고!”

“저기, 선생님 물론 환자가 도망간 것은 잘못됐지만, 그렇다고 이 밤에 도망간 환자를 잡아 오라고 하시면……. 그리고 작정하고 도망간 사람을 무슨 방법으로 잡아 오라는 말씀이신지…….”

점점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면서도 이찬희는 끝까지 할 말은 했다.

“찬희야, 너 이건 큰 잘못이야.”

“선생님이 생각해도 그렇죠? 돈 안 내고 도망간 건 잘못이 맞죠.”

“아니, 환자를 이렇게 보낸 게 큰 잘못이라고.”

“아…….”

이찬희도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니, 다른 의사라면 모를까 환자에 대한 마음이 큰 태경이었기에 아마도 도망간 환자가 안타까워 그런가 보다 했다.

“근데 선생님 제가 가라고 한 게 아니라 도망간 겁니다.”

“그게 아니라……. 하!”

태경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지금 내가 찬희 너한테 화를 내야 하는데 보니까 이해를 못 하는 거 같아서 일단 화는 안 낼게.”

“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아니. 잘못이라기보다는 무지했다는 게 맞지.”

“무지요?”

“그래. 그 환자 혈변 봤다고 했지?”

“네.”

“그래서 응급 내시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고?”

“네. 분명히 소화 기관 내부에 출혈이니까요. 먼저 들렀던 내과에서도 그랬다고 했고요.”

“자! 내과에서는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우리는 내과가 아니잖아. 알아야지.”

평소 같으면 벌써 목소리가 한층 올라갔을 태경은 일단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건 내부 출혈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

“가능성이 높다고요?”

“그리고 이 환자 오늘 밤을 못 널길 가능성이 높아.”

“네!? 오늘 밤을 못 넘긴다니…….”

무시무시한 소리에 이찬희 깜짝 놀라 반응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혈변을 보인다고 하룻밤에 죽는다는 건 어렵지 않을까요?”

“소화기 내부의 출혈이라면 그래도 괜찮을 수 있지. 하지만 이 환자는 소화기 내부가 아닐 거야.”

“하지만 혈변이…….”

“맞아. 소화 기관 내부의 공간 그러니까 위 내부나 장 내부에서의 출혈이 있으니 혈변이 나오는 거지. 그건 지극히 상식적이고 의학적으로 대부분은 맞는 말이야. 하지만 PPPD나 whipple operation을 받은 사람은 예외야.”

이찬희는 태경이 하는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죄송합니다. 솔직히 지금 선생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리 와 봐.”

“네, 선생님.”

태경은 이찬희를 부른 뒤 급하게 의학 논문 검색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검색 창에 두 가지 단어를 기입했다.

[PPPD], [Pseudoaneurysm]

“슈도아뉴리즘?”

“그래. 슈도아뉴리즘(pseudoaneurysm, 가성동맥류).”

“근데 이게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찬희야, 난 네가 멋진 의사가 되면 좋겠어. 근데 멋진 의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은 죽어 가는 환자를 구분해 내는 안목이야. 그걸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고……. 지금부터 정확히 3분 준다. 여기 나온 논문 중 아무거나 빨리 읽어 봐.”

“네?”

“2분 59초, 58초 시간 지나간다.”

“읽습니다. 읽어요.”

카운트 소리에 이찬희는 모니터에 얼굴을 고정한 채 읽기 시작했고, 태경은 노숙자를 담당했던 간호사에게 전후 사정을 들은 뒤 환자가 있던 베드를 향했다.

챠륵-

“……!”

커튼을 열자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다섯 번째 바이탈 냄새가 약하게 남아 있었다.

환자가 눈앞에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남아있는 냄새는 분명 지독한 분뇨 냄새로, 3단계 중에서도 높았다.

그리고 그사이 이찬희는 논문을 빠르게 읽고 있었다.

“whipple이나 PPPD 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췌장과 소장의 연결 부위에 소화효소로 인한 누공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Pseudoaneurysm이 발생할 수 있다.

증상으로는 복강 내 출혈이 있을 수 있으나 혈변 등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며 통증 등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

복강 내에 출혈이 아닌 혈변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2달 혹은 길게는 3달까지 아무 증상이 없다가 발생할 수 있다. 가성동맥류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행해지지 않을 시 대량 출혈로 환자는 사망할 수 있다.”

환자는 사망할 수 있다. 사망! 사망…….

마지막 문장을 반복해 읽은 이찬희의 동공이 심하게 요동쳤다.

‘대량 출혈로 사망할 수 있다고?’

이찬희는 부끄럽고 민망해서 몸들 바를 몰랐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불친절하고 고집부리는 면만 반복해 보느라 정작 오늘 죽을지도 모르는 환자의 위급한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물론 소화 기관 내의 출혈도 응급은 응급이다. 하지만 가성동맥류는 비교도 안 되는 초응급일 수 있다.

동맥의 일부 벽이 허물어서 점점 부풀어 오르는 동맥류가 터지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대량의 출혈이 배 공간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그럴 경우 몇 시간 이내에 사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찬희?”

“네, 선생님.”

“내가 평소랑 다르게 화내지 않아서 놀랐지?”

“네, 많이요.”

이찬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평소 태경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사자후를 날렸을 텐데 오늘은 어찌 된 영문인지 아직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보니까 내가 화내지 않아도 너 스스로 자책하는 게 보여서 굳이 화내지 않아도 되겠더라고.”

“죄송합니다. 제가 무지했습니다.”

모르는 게 잘못은 아니었지만, 의사는 아니다.

의사는 환자의 이런 부분을 모르면 안 되는 거였기에 이찬희는 무지한 자신의 잘못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풀 죽을 거 없어. 고개 들고 나 봐 봐.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그리고 다음에 안 그러면 돼. 하지만 우리의 실수나 무지로 인해 환자가 죽으면 우리에게 다음은 없다는 거 명심해.”

태경는 부드럽게 말을 이어 나갔지만, 그 내용은 날카롭게 이찬희의 머릿속에 박혔다.

“죽은 환자는 돌아오지 않아. 따라서 의사는 실수하면 안 돼. 아니 적어도 몰라서 환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야. 그렇기 때문에 공부도 계속해야 해. 내 말 알아들었어?”

“네, 선생님.”

“나도 너도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하듯이 그 환자도 소중한 사람이야. 환자들이 불친절하다고 거기에 연연하면 안 돼. 우리는 의사로서 환자가 생명을 잃지 않도록 집중하면 되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찬희 너, 지금 민망하고 스스로 용납이 안 되지?”

“……네.”

“그럼 만회할 기회를 줄게. 어때?”

“당연하죠.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가자!”

태경이 이찬의 어깨의 손을 올리며 말했다.

“에? 가다니 어디를…….”

“어디긴 어디야! 그 환자 찾으러 가야지.”

“화, 환자를 찾으러……. 지금이요?”

“뭐해! 시간 없어.”

“아, 네. 알겠습니다.”

태경의 표정을 보자 진심인 걸 느낀 이찬희가 가운을 벗고 있었다.

“일단 전화부터 해 봐.”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최모나가 말했다.

“아쉽게도 그 환자가 적었던 번호가 없는 번호라네요.”

역시나 모든 상황을 파악한 임정숙 간호사가 답했다.

“뭐야? 최 선생도 가게?”

조용히 가운을 벗고 있던 최모나를 향해 태경이 물었다.

“이 선생보다는 제가 훨씬 달리기가 빠를 겁니다. 저도 같이 찾겠습니다.”

“그래.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빨리 찾겠지.”

노숙자 환자가 워낙 급했기에 태경은 최모나를 말리지 않았다. 다행히 오늘따라 응급실에 환자도 적었고, 신규 환자도 아직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병원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길바닥에서 대량 출혈이 생길지도 모르는 환자를 찾는 게 지금은 훨씬 중요했다.

“임 선생님, 정 선생 응급실로 부르시고 응급 생기면 바로 연락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임정숙 간호사에게 지시한 태경은 이찬희와 최모나 그리고 장득칠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최 선생은 장 요원님과 같이 병원 정문 쪽 중심으로 확인해봐.”

“네, 알겠습니다.”

“난 이 선생이랑 주차장 쪽으로 해서 편의점 쪽으로 가 볼게. 찾으면 바로 콜하고. 빨리 가자!”

“네, 선생님.”

지시를 내린 태경은 이찬희와 함께 뒷문으로 뛰어나갔고, 장득칠은 최모나와 함께 정문으로 빠르게 나갔다.

그렇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노숙자를 살리기 위한 달밤의 체조를 능가하는 달밤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0